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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 완료 이미지

국립문화재연구소,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 완료

2022-01-20

- 병풍틀 배접지에 사용된 시권으로 1840년대 이후 제작품이라는 사실 확인 - - 의궤, 유리건판 자료 등을 토대로 금박 장황 복원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센터장 정소영)는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의 보존처리를 완료하고, 보존처리 과정과 관련 연구 결과를 담은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 그 아래 다섯 봉우리와 소나무 그리고 파도치는 물결이 좌우 대칭을 이루며 영원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조선 왕실에서 왕의 존재와 권위를 나타내고자 왕의 공간에 설치하는 회화다. 창덕궁 인정전의 일월오봉도는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당가(唐家)의 어좌 뒤에 설치된 4폭 병풍으로, 인정전이 일반 관람객들에게 개방되어 바깥 공기가 들어오는 환경에 노출되면서 일월오봉도의 화면이 터지거나 안료(顔料)가 들뜨고, 구조를 지탱하는 병풍틀이 틀어지는 등의 손상을 입으면서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2015년 말에 옮겨와 2016년부터 전면 해체 보존처리를 시작해 지난 2021년 말 작업을 마쳤다.   * 당가(唐家): 어좌와 좌탑을 둘러싼 닫집(어좌를 장엄하는 조형물)   해체 과정에서 화면-배접지-1960년대 신문지-시권-병풍틀의 순서로 겹쳐진 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1960년대 일월오봉도를 처리할 때는 조선 시대 일월오봉도의 제작 시 사용하였던 기존의 병풍틀을 재사용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시권(試券): 조선 시대 과거 시험 답안지   * 배접지(褙接紙): 서화를 지지하고 장황하기 위해 뒷면에 붙이는 종이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전면 해체 후 각 재질을 분석해 병풍틀의 수종과 사용된 안료, 배접지, 바탕 화면의 재질 등을 각각 확인했으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보존처리에 적용하였다. 이번 보존처리에서는 기존 병풍틀이 충해(蟲害)와 틀어짐 등의 구조적인 손상으로 인해 재사용이 불가능해지면서 수종 분석 결과를 토대로 새로 제작했다.   이외에, 『인정전영건도감의궤』와 『인정전중수도감의궤』, 1900년대 초 경복궁 근정전 일월오봉도와 덕수궁 중화전 일월오봉도의 유리건판 사진, 창덕궁 신선원전 일월오봉도 등 문헌과 사진, 유사유물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인정전 일월오봉도의 장황을 녹색운문단(녹색 구름 무늬 비단)에 꽃문양 금박을 붙이는 등 의궤 속 모습을 재현하였다.   * 장황(粧䌙): 글씨나 그림을 족자‧병풍‧책 등의 형태로 꾸미는 일   또한, 고문서 전문가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병풍틀의 첫 번째 배접지로 사용된 여러 장의 시권 중 총 27장이 과거 시험 답안과 관련 있는 시권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이중 25장의 시권이 동일한 시험에서의 답안으로 1840년에 시행된 식년감시초시의 낙폭지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선왕실에서 제작한 일월오봉도는 낙폭지를 재활용하여 제작한다는 사실과 제작 연대가 1840년대 이후로 특정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 식년감시초시(式年監試初試): 조선 시대 3년마다 정기적으로 치러진 과거시험이 식년시이며, 감시초시는 생원시와 진사시를 합하여 부르는 말임   * 낙폭지: 과거에 떨어진 사람의 답안지   한편, 이번에 발간한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보고서에는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에 대한 그동안의 보존처리 과정과 재료 분석 내용, 일월오봉도 병풍의 변형에 관한 미술사적 연구와 장황의 고증, 병풍틀에 배접된 시권의 내용과 의미 등을 상세히 실었다. 보고서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누리집(http://www.nrich.go.kr,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에도 공개하여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이번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 완료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회화문화재의 원형보존과 과학적 보존처리를 위해 꾸준히 노력할 계획이다.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 후> 첨부파일 0119 국립문화재연구소,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 완료(본문).hwp 0119 국립문화재연구소,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 보존처리 완료(붙임2).pdf

문화재청 소관 법률 개정안 5건 공포 이미지

문화재청 소관 법률 개정안 5건 공포

2022-01-20

문화재보호법, 무형문화재법, 매장문화재법, 역사문화권법, 문화재수리법 등 5건 공포 - 감염병 방역계획 수립, 문화재지능정보화 사업 추진, 국외소재문화재 기부금품 접수(문화재보호법) - 무형문화재 전승공동체에 대한 지원∙국제적 협력 근거 마련(무형문화재법) - 중요 인골·미라의 연구 및 국가 또는 지자체의 지표조사 가능(매장문화재법) -‘마한역사문화권’ 지역 확대, ‘중원역사문화권’․‘예맥역사문화권’ 신설(역사문화권법) - 일본식 용어인‘노임(勞賃)’을 ‘임금’으로 대체(문화재수리법)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지난해 12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문화재청 소관 법률 개정안 5건이 18일 공포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개정된 법률 5건을 통해 ▲ 문화재지능정보화 사업 추진 기반을 마련하고, ▲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기부금품 접수가 가능토록 하였으며, ▲ 무형문화재 전승공동체에 대한 지원과 국제적 협력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또한, ▲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중요 인골·미라에 대한 연구 근거를 마련하고, 국가 또는 지자체의 지표조사가 가능토록 하였으며, ▲ 역사문화권 중 ‘마한역사문화권’ 지역을 확대하고, ‘중원역사문화권·예맥역사문화권’을 신설하였다. 세부적인 개정 법률내용은 다음과 같다. □ 「문화재보호법」개정으로 문화재 관련 시설에서의 감염병 방역 관련 계획의 수립, 문화재지능정보화 사업 추진과 국외소재문화재 사업 추진을 위한 기부금품 모집 가능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장기화되면서 국민의 문화재 관람 시 지속적인 위생·방역 대책의 수립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문화재 관련 시설·구역에서의 감염병 등에 대한 위생ㆍ방역 관리에 관한 사항을 문화재기본계획에 포함하도록 개정하였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지능정보사회에 접어들면서 디지털 대전환이 급격하게 이뤄짐에 따라 문화재청은 문화재지능정보화 정책을 수립ㆍ시행하고, 문화재지능정보기술의 개발·실용화를 위한 사업을 추진하며, 문화재데이터와 서비스가 문화재 보존ㆍ관리ㆍ활용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문화재지능정보서비스플랫폼을 구축할 예정이다.   이외에, 국외소재문화재 환수·활용과 관련한 여러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상시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부금과 같은 재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됨에 따라 국외소재문화재의 환수ㆍ활용 등을 위한 기부금품을 접수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문화재청장은 환수ㆍ활용에 공로가 있는 기부자에 대하여는 시상(施賞) 등의 예우를 하도록 하였다.(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 □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개정으로 전승공동체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고,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국제적 협력 근거를 마련함   유네스코 협약에서는 무형문화유산의 전승주체를 개인, 집단, 공동체로 규정하고 있지만, 현행법에서는 전승주체를 개인(보유자), 집단(보유단체)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2015년부터 ‘아리랑’, ‘김치담그기’ 등 특정 보유자 또는 보유단체를 인정하기 어려운 국가무형문화재 종목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관련 전승공동체를 육성·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온 터라 이번 개정을 통해 관련 전승공동체를 전승주체의 하나로 육성·지원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국가무형문화재 보전과 전승이 더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 무형문화재를 지역적 또는 역사적으로 공유하며 일정한 유대감 및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로서 자발적으로 무형문화재를 실현ㆍ향유함으로써 전승하고 있는 공동체를 말함   한편, 유네스코 협약에 따른 인류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국제협력 사항을 이행하고 문화재청 주도하에 다른 나라, 국제기구·전문가단체 등과 협력관계 증진 등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개정해 국제사회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보호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 □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인골 및 미라의 연구가 가능토록 하고,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지표조사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함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되는 인골(人骨)·미라(mummy) 등은 옛사람들의 유전적·형질적 특성과 식생활문화, 사망 원인 등의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의 질병 지도나 수백 년 전 생활 습관, 과거의 문화·역사 등을 밝혀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지만, 현행법에는 유물·유구에 관한 내용만 있을 뿐 인골과 미라 등의 출토자료 처리와 관련한 별도의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이번 개정을 통하여 매장문화재 발굴허가를 받은 자는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에서 인골, 미라 등이 출토되면 지체없이 문화재청장에게 신고하도록 하고, 문화재청장은 해당 인골이나 미라 등이 중요출토자료에 해당하는 경우 전문가 2인 이상의 자문을 받아 연구‧보관 조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일정 규모 이상의 건설공사의 시행자는 해당 건설공사 지역에 문화재가 매장ㆍ분포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사전에 매장문화재 지표조사를 시행하여야 하나,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재 현황 파악과 보호·관리를 위하여 스스로 지표조사를 실시할 수 있는 근거는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점을 개선하기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매장문화재의 효과적인 보호·관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지표조사를 시행할 수 있고, 그 지표조사의 직접적인 수행은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이 수행하도록 개정하였다.(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 □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개정으로 기존 ‘마한역사문화권’ 지역을 확대하고, ‘중원역사문화권’과 ‘예맥역사문화권’을 신설함   현행법은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문화권과 그 문화권별 문화유산을 연구ㆍ조사하고 발굴ㆍ복원하여 그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비하고자 ‘고구려역사문화권’, ‘백제역사문화권’, ‘신라역사문화권’, ‘가야역사문화권’, ‘마한역사문화권’, ‘탐라역사문화권’을 구분하여 정의하고 있다.   이 중에서 ‘마한역사문화권’은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전남 일대 마한 시대의 유적ㆍ유물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으로 한정하여 정의하고 있으나 고고학 자료와 역사적 사료 등에 따르면 마한은 역사적으로 광주와 전라지역, 충청지역 등에 걸쳐 존재하였다. 이에 따라 마한역사문화원의 범위를 충청‧광주‧전북지역으로 확대하도록 개정하였다.   또한, 충북ㆍ강원ㆍ경북ㆍ경기 일부 지역에 분포하면서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문화가 서로 융합되어 발전하는 독특한 문화적 양상을 보이는 ‘중원역사문화권’이 누락되어 있다는 의견에 따라 역사문화권의 종류에 충북ㆍ강원ㆍ경북ㆍ경기지역을 포함하는 ‘중원역사문화권’을 신설하였다. 그리고, 고대국가 형성 이전부터 강원 영동과 영서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던 예맥이 조사ㆍ연구와 발굴ㆍ정비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의견을 반영하여 강원지역을 포함하는 ‘예맥역사문화권’을 신설하였다.   이외에도 역사문화권정비위원회의 분과위원회에서 심의를 받으면 역사문화권정비위원회의 심의를 받은 것으로 보도록 하여 위원회가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하였고, 역사문화권정비구역과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의 지정지구가 중복되는 지역에서의 개발행위 등의 허가에 대해서는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도록 하여 허가 절차를 일원화함으로써 민원인의 행정편의를 높였다.   또 역사문화권정비구역에서 행위허가를 받은 자는 허가받은 사항의 착수‧변경 또는 완료 사실을 특별자치시장‧시장‧군수‧구청장에게 신고하도록 하여 역사문화권정비구역이 체계적으로 보존·정비되도록 하였다.(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 □ 「문화재수리 등에 관한 법률」개정으로 법률용어를 이해하기 쉽게 표현함   알기 쉬운 표현으로 용어를 개정해 국민의 이해 정도와 접근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일본식 용어인 ‘노임(勞賃)’을 「근로기준법」 등 대부분의 법률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임금’으로 대체하였다.(공포한 날부터 시행)   문화재청은 이번 법률 개정을 통하여 문화재지능정보화와 국외소재문화재 사업의 활성화를 꾀하고, 국제 협력을 통한 무형문화재 지원을 강화하며, 매장문화재 보호와 역사문화권 지원 등 체계적인 문화재 보존, 관리, 활용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첨부파일 0118 문화재청 소관 법률 개정안 5건 공포.hwp

2020 두바이엑스포,‘ 한국의 날’(1.16.),‘한국 주간’(1.16~20.) 이미지

2020 두바이엑스포,‘ 한국의 날’(1.16.),‘한국 주간’(1.16~20.)

2022-01-20

- 문화재청, 한국관 내‘한국의 문화유산관’에서 BTS 영상 상영 등 관람객 특별행사 개최 -   지난해 10월 1일 UAE(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개관한 ‘2020 두바이엑스포‘가 16일에 한국의 날과 한국 주간(1.16.~20.)의 시작을 맞는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과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최영창)은 이를 기념해 한국관(총 면적 4,651.41㎡, 지상4층, 지하1층) 내에 마련된 「한국의 문화유산관」에서 전통 복주머니와 왕가 보자기 문양이 새겨진 스카프를 현지 관람객들에게 증정하는 행사를 준비했으며, 하이브(의장 방시혁)와의 협업을 통해 한국관 중정 ‘마당‘에서 문화유산 배경의 방탄소년단(BTS) 공연영상도 상영할 계획이다.      참고로, 5년 주기로 열리는 국제박람회기구(BIE) 등록엑스포는 지난 해 10월부터 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최초로 두바이에서 열리고 있으며, 오는 3월 31일까지 열리는 ‘2020 두바이엑스포‘에는 ‘Connecting Minds, Creating the Future‘(마음의 연결, 미래의 창조)를 주제로 총 191개국이 참여했다. 전체 참가관 중 다섯 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관은 2022년 1월 초 누적 방문객 수 50만 명을 넘기며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의 문화유산관’에서는 한국의 문화유산과 사계, 나전칠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LED(발광다이오드) 영상 전시와 인스타그램을 통한 AR체험, 한지 홍보물을 배포하는 현장 행사가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문화재청이 한국의 날(1.16)과 한국 주간(1.16.~20.)을 맞아 한국관 중정 ‘마당’에서 대형 LED 화면으로 상영하는 ‘방탄소년단’(BTS)‘ 영상은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배경으로 한 ‘다이너마이트(Dynamite)’와 국보인 숭례문을 배경으로 한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 2편으로, 전 세계 관람객들의 호응과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흥미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한국의 날에는 문화유산관을 방문하는 관람객 700여 명에게 전통 공예품인 복주머니를 나눠주면서 한국의 새해맞이 전통 풍습을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한국 주간(1.16.~1.20.)에는 한국의 문화유산관 인스타그램의 홍보행사에 참여한 관람객들에게 선착순으로 ‘왕가 보자기 문양‘ 스카프를 증정한다. 전시 영상 속에도 등장하는 왕가 보자기 문양이 그려진 스카프는 머리, 가방 등에 가볍게 착용할 수 있는 소품으로 관람객들에게 시각적인 노출을 통해 방문객 유입과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 문양을 널리 알리는 효과를 동시에 줄 것으로 기대된다.   * 한국의 문화유산관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expo2020kculture   이밖에도 ‘모두가 연결되는 거대한 움직임(Massive Vibe)’이라는 주제로 매일 10회씩 한국 음악과 사물놀이를 디지털 기술과 융합한 상설공연을 개최하고, 한국상품전, 한국관광박람회, 특별공연이 한국 주간 내내 진행된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은 한국 주간에 이루어지는 여러 행사를 통해 한국관과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3월까지 이어지는 행사에서도 세계인에게 한국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리고자 노력할 계획이다. 첨부파일 0116 2020 두바이엑스포, ‘한국의 날’(1.16), ‘한국 주간’(1.16~20)(본문).hwp 0116 2020 두바이엑스포, ‘한국의 날’(1.16), ‘한국 주간’(1.16~20)(붙임).pdf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왕실의 현판Ⅱ』∙『금보개조도감의궤』 발간 이미지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왕실의 현판Ⅱ』∙『금보개조도감의궤』 발간

2022-01-20

- 조선왕실 현판 288점 연구 결과와 왕실 금보 연구 성과 수록 -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인규)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시대 종묘와 사직단 등에 걸렸던 현판에 대한 조사 결과를 수록한 『조선왕실의 현판Ⅱ』와 1705년 종묘와 영녕전의 금보(金寶)와 관련 물품들을 개수(改修)한 과정의 기록을 국역한『국역 금보개조도감의궤』2종을 발간하였다.   * 금보(金寶): 왕과 왕비의 덕을 기리는 존호(尊號)와 돌아가신 후 공덕을 칭송하는 시호(諡號) 등을 내릴 때 제작한 어보의 한 종류   * 개수(改修): 고쳐서 바로잡거나 다시 만듦   소장품도록 『조선왕실의 현판 Ⅱ』는 2020년에 발간된 『조선왕실의 현판Ⅰ』의 후속편으로, 이번에는 종묘(宗廟), 사직단(社稷壇), 사묘(私廟), 능원묘(陵園墓), 별궁(別宮), 행궁(行宮), 궐외각사(闕外各司) 등에 걸었던 현판 총 288점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 책에는 현판에 대한 사진과 유물 설명 등의 기본 정보, 게시 장소와 서사관의 이름을 기록한 뒷면 글씨, 테두리의 문양을 비롯하여 본래 현판이 걸려 있었던 왕실 건축물의 도면, 사진, 지도까지 종합적으로 수록했다.   * 종묘(宗廟):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   * 사직단(社稷壇): 농경사회의 근본인 땅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   * 사묘(私廟): 자신은 왕이 되지 못했지만 아들이 왕위에 오른 생부, 왕을 낳은 후궁의 신주를 모신 사당   * 능원묘(陵園墓):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며, 원은 왕의 사친(私親)이나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왕세자의 무덤, 묘는 왕자나 공주, 폐위된 왕, 일반 후궁의 무덤을 말함   * 별궁(別宮): 왕자나 공주가 궁궐 밖에서 살던 궁, 왕실 가례를 행했던 궁   * 행궁(行宮): 왕이 왕릉, 온천 방문 등 지방 행차 때 머물렀던 임시 거처   * 궐외각사(闕外各司): 의정부와 육조 등 궁궐 밖에 있던 관청     이번에 조사된 현판에는 조선 시대 국왕이 종묘와 사직단 등에서 제사를 지내며 나라의 발전과 백성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글, 조선 왕릉을 참배하고 선왕의 공덕을 찬양하는 글, 능의 관리와 제사 준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재관(齋官)들에게 당부하는 글, 별궁과 행궁에 방문하여 옛일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감회를 읊은 글과 국정의 운영과 관련한 내용과 관리 명단 등과 같은 다양한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다. 이처럼 현판에 새겨진 다양한 기록을 통해 조선 시대 유교적 세계관과 나라의 운용을 위한 제도와 특징, 후대 왕의 효심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조사된 현판 중에 ‘의열사기(義烈祠記) 현판’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현판 중 가장 앞선 시기의 것임을 확인하였다. 이 현판은 1581년(선조 14년)에 류성룡(柳成龍)이 지은 부여 의열사의 기문(記文)을 1582년(선조 15년)에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년)가 쓴 것으로 밝혀졌다.   * 의열사(義烈祠):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조선 시대 사당으로 백제의 성충·흥수·계백과 고려 후기의 충신 이존오를 위해 부여 현감 홍가신(洪可臣)이 세운 사당. 본래 부여 용정리 망월산에 있었으나 1866년(고종 3년) 훼철되었다가 1924년 유림(儒林)들이 단을 세웠고, 1970년 현재의 자리(부여군 의열로 29번지)에 복원됨   * 기문(記文): 기록한 글   『국역 금보개조도감의궤』는 오랜 세월과 전쟁 등으로 파손되거나 유실된 종묘와 영녕전에 보관된 명종금보와 각종 물품들을 1705년(숙종 31년)에 대대적으로 정비한 과정에 대한 기록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금보개조도감의궤』를 번역한 것이다.   이 의궤는 종묘와 영년전의 정비 작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때부터 도감(都監)이 설치되고 관련 물품들을 모두 제작하여 봉안(奉安) 의식을 마치고 상을 내리기까지의 전 과정을 담고 있다. 특히, 명종대왕(明宗大王) 금보(金寶)와 신실별 물품 등의 개수 과정과 의식 진행 절차, 개수에 필요한 인력과 사용된 물품들의 종류·수량 등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어 조선 시대 최고의 장인들이 참여하여 작업한 구체적인 내역을 파악할 수 있으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왕실의 어보와 관련 기물 제작의 전 과정을 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이다.   * 도감(都監): 특정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치된 임시기구   * 봉안(奉安): 신주(神主)나 어진(御眞) 등을 받들어 모시는 절차     발간된 책자는 국공립 도서관과 관련 연구기관 등에 배포하고, 문화재청 누리집(www.cha.go.kr)과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www.gogung.go.kr)에 공개하여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앞으로도 왕실 문화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여, 조선 시대 왕실 문화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이를 국내‧외에 널리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다. <국립고궁박물관 발간 『조선왕실의 현판Ⅱ』> 첨부파일 0113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왕실의 현판Ⅱ』『금보개조도감의궤』 발간(본문).hwp 0113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왕실의 현판Ⅱ』『금보개조도감의궤』 발간(붙임).pdf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일제강점기 전북지역 농촌 수탈 조사보고서 발간 이미지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일제강점기 전북지역 농촌 수탈 조사보고서 발간

2022-01-11

- 『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Ⅱ』·『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농촌 수탈의 痕跡(흔적)』2종 발간 -   문화재청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소장 유재은)는 일제강점기 전북지역 농촌 수탈에 관한 조사 결과를 담은 학술총서 2종을 발간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전북지역 평야에서 생산되는 미곡을 본격적으로 수탈하기 위해 군산항을 개항시켰고, 이를 통해 전북지역에는 대규모 일본인 지주 농장이 설립되었다. 이번 국립완주연구소에서 발간한 『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Ⅱ』·『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농촌 수탈의 痕跡(흔적)』2종 책자는 일제강점기 경제적 수탈을 위해 전북지역에 진출한 일본인 농업경영자와 자본가가 세운 농장과 관련된 조사내용을 수록한 보고서다.  『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Ⅱ』에는 일제강점기 농촌 수탈과 해방 후 농촌 보건의 역사가 남아있는 정읍시 화호리의 웅본농장(熊本農場)과 군산, 익산, 김제, 전주 등에서 당시 1,000(9,917백만㎡)정보 이상 대규모 토지를 운영한 불이흥업주식회사(不二興業株式會社), 다목농장(多木農場), 석천현농업주식회사(石川縣農業株式會社), 세천농장(細川農場), 이엽사농장(二葉社農場), 동산농사주식회사(東山農事株式會社) 전북출장소에 대한 조사·연구 결과 등을 수록하였다.   책자는 총 3부로 구성되었고 ▲ 1부에서는 정읍 화호리마을 역사와 인물, 문헌과 건축물 분포 현황 등을 수록하였고 ▲ 2부에서는 불이흥업주식회사, 다목농장 등 6개 일본인 지주 농장에 대한 역사, 문헌, 건축물과 토지 변화 등을 기술하였다. ▲ 3부에서는 일제강점기 전북지역 농촌 수탈과 관련된 건축물에 대한 논고와 기록 사진을 담았다.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농촌 수탈의 痕跡(흔적)』은 지난 7월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와 전주시가 체결한「전주지역 문화유산 학술조사연구 및 활용을 위한 공동협력」의 첫 번째 사업으로, 전주역사박물관에 소장된 일제강점기 기록 사진, 일본인 농장과 관련된 도서, 설계도, 지적도, 문서 등을 수록한 도서로 연구소와 전주역사박물관이 공동 발간하였다. 일제강점기 전북지역에 설립된 일본인 지주 농장과 수탈의 역사에 대해 ▲ 1부에서는 일제강점기 전주지역 시가(市街), 경제적 수탈을 지원한 관공서, 농장 사무소 등 기록 사진을 수록하였고, ▲ 2부에서는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일본인 소유 농장에 대한 역사를 기술하였다. ▲ 3~4부에서는 일제강점기 농촌 수탈의 선봉이었던 일본인 지주 농장과 관련된 도서, 농장 건축물 설계도, 지적·지적도, 문서, 교량 설계도 등을 수록하였다.   이번 조사로 확보한 자료는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가 앞으로 전북지역 일제강점기 근대건축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 계획 수립과 유적 보존·관리를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것이다.   또한, 책자 2종은 국공립 도서관과 지방자치단체 등에 배포되며, 문화재청 누리집(http://www.cha.go.kr)과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누리집(http://www.nrich.go.kr/wanju)에 공개하여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문화재청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도 고대부터 근대까지 전라북도에 산재한 건축유산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하여 그 결과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일제강점기 전북지역 농촌 수탈 조사보고서 2종 발간 (오른쪽 -『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Ⅱ』· 왼쪽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농촌 수탈의 痕跡(흔적)』)> 첨부파일 0105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일제강점기 전북지역 농촌 수탈 조사보고서 발간(본문).hwp 0105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일제강점기 전북지역 농촌 수탈 조사보고서 발간(붙임).pdf

자연유산「정선 봉양리 뽕나무」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지정 이미지

자연유산「정선 봉양리 뽕나무」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지정

2022-01-11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강원도기념물인「봉양리 뽕나무(’71.12.16.지정)」를 「정선 봉양리 뽕나무」라는 명칭으로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강원도 정선군청 앞에는 유서 깊은 살림집인 정선 상유재 고택(시도유형문화재 제89호)과 뽕나무가 있다. 정선군 문화유적 안내(1997. 우리문화 유적)에 따르면 약 500년 전 제주 고씨가 중앙 관직을 사직하고 정선으로 낙향할 당시 고택을 짓고 함께 심은 뽕나무라 전해지며 후손들이 정성스럽게 가꾸어 오고 있다.   봉양리 뽕나무는 비교적 크고 2그루가 나란히 자라 기존에 단목으로 지정된 뽕나무와는 차이가 있고, 북쪽 나무는 높이 14.6m 가슴높이 둘레 3.5m 수관폭은 동-서 15m 남-북 15.2m이며, 남쪽의 나무는 높이 13.2m 가슴높이 둘레 3.3m 수관폭은 동-서 18m 남-북 15.8m로, 규모에서도 사례가 드물고 생육상태가 좋아 수형이 아름답다.   정선군 근대행정문서에는 1909년 이 지역의 양잠 호수와 면적에 대한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이번에 지정한 봉양리의 뽕나무는 정선 지역에서 양잠(養蠶, 누에를 사육하여 고치를 생산)이 번성했음을 알려주는 살아있는 자료로서 역사적인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역주민과 함께 자연유산에 대한 관심을 이끌고 정선 양잠 문화의 상징인 뽕나무의 역사적 가치를 함께 향유할 수 있도록 지정 기념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또한 현재 도로와 인접한 뽕나무의 생육공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도로 이설 등을 통해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이 공간이 뽕나무와 함께 하는 역사문화 거리로 재탄생해 지역 관광에도 기여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양잠(養蠶): 누에를 사육하여 고치를 생산, 명주(眀紬) 실로 비단을 만드는 재료로 활용됨 첨부파일 1230 자연유산「정선 봉양리 뽕나무」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지정(본문).hwp 1230 자연유산「정선 봉양리 뽕나무」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지정(붙임2).pdf

메타버스에서 즐기는 문화유산 방문캠페인 이미지

메타버스에서 즐기는 문화유산 방문캠페인

2022-01-11

'제페토’ 내 ‘문화유산 방문캠페인 홍보관’개관 기념행사 개최 /‘21.12.29. ~ 10개 문화유산 방문길 중 ‘제주 설화와 자연의 길’첫 공개 ‧ 인증사진 행사도   문화재청(청장 김현모)과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최영창)은 우리나라 대표 메타버스 운영체제인 ‘제페토’ 안에 ‘문화유산 방문캠페인 홍보관(이하 방문캠페인 홍보관)’을 개관하고 12월 29일부터 개관행사를 진행한다.   * 메타버스: 가상, 초월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루어지는 3차원의 가상세계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은 국내‧외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문화유산을  소개해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고자 기획된 사업으로, 최근 코로나 19 확산으로 국가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아 현장홍보가 어려워짐에 따라 최신IT(정보통신) 기술과 온라인을 활용한 다양한 방법의 홍보를 병행해왔다. 이번  ‘제페토’ 내 홍보관 개관도 이러한 시도의 하나로, 세계의 젊은이들이 가상공간을 즐기는 사실에 착안해 마련됐다.   제페토 내 ‘방문캠페인 홍보관’은 캠페인 전반에 대한 소개와 각종 행사 소식, 10개의 문화유산 방문길 정보를 제공하고 그 각각의 방문길로 넘어갈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도록 구성되었다. 10개의 방문길 중 ‘제주 설화와 자연의 길’이 먼저 홍보관과 함께 공개되고, 나머지 9개 방문길도 순차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성산일출봉, 산방산, 쇠소깍, 용머리해안 등 4개의 장소로 구성된 ‘제주 설화와 자연의 길’은 각 지역의 독특한 실감 이미지와 더불어 제페토 내 맵에서 다양한 과제와 관련 행사를 구현해 이용자들이 한국 문화유산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느끼도록 하였다.   「방문캠페인 홍보관」개관을 기념한 다양한 상품 제공 행사도 개최된다. 먼저,  2022년 1월 11일까지 「방문캠페인 홍보관」을 방문하여 투명 계단 꼭대기에 오른 인증사진을 찍어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면 10개 방문길을 바탕으로 구현한 지역별 상징 상품(아이템)을 추첨을 통해 증정한다.  * 10개 방문길을 바탕으로 구현한 지역별 상징 상품(아이템)   : 왕가의 길–곤룡포 / 소릿길–고깔 / 산사의 길–염주 / 서원의 길–유생복 / 관동 풍류의 길–삿갓 / 가야 문명의 길–목걸이 / 천년 정신의 길-신라금관 / 선사 지질의 길-원시인 옷 / 백제 고도의 길-백제 의복   또한, ‘제주 설화와 자연의 길’을 방문하여 성산일출봉, 쇠소깍, 산방산, 용머리해안마다 준비된 스탬프 과제를 장소별로 수행하면 지역별 상징 상품(아이템)을 제공하고, 4개 맵의 과제를 모두 완료하면 해녀복과 해녀테왁(가방)을 묶음상품으로 증정한다.  * 제주 상품(아이템) : 성산일출봉-하루방 모자 / 쇠소깍-귤 모자 / 산방산-녹차 모자 / 용머리해안-제주 전통 갓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은 메타버스 운영체제 내 「방문캠페인 홍보관」 과 「제주 설화와 자연의 길」의 공개를 시작으로 전 세계인이 가상세계에서도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흥미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다. 첨부파일 1229 메타버스에서 즐기는 문화유산 방문캠페인(본문).hwp 1229 메타버스에서 즐기는 문화유산 방문캠페인(붙임).pdf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무예교과서, 「무예제보」 보물 지정 이미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무예교과서, 「무예제보」 보물 지정

2021-12-28

- 고려·조선 시대 전적ㆍ불교조각 등 총 7건 지정 -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무예서로 알려진 ‘무예제보’를 비롯해 고려·조선 시대 전적과 불교조각, 괘불도 등 7건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였다.     보물 「무예제보(武藝諸譜)」는 1598년(선조 31) 문인관료 한교(韓嶠, 1556∼1627)가 왕명을 받고 편찬한 무예기술에 대한 지침서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무예서(武藝書)이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1592년)과 정유재란(1597년) 등 일련의 전쟁을 치르면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군사훈련의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효과적인 훈련을 위한 지침서 간행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명나라 군대의 전술을 참조해 무기 제조법과 조련술을 군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과 함께 한글로 해설을 붙여 간행한 것이 이 ‘무예제보’이다.   * ?무예제보? 수록 내용:  대봉(大棒, 곤봉), 등패(藤牌, 방패), 낭선(狼筅, 낭선창으로서 9∼11개의 날이 달린 창), 장창(長鎗, 긴창), 당파(鎲鈀, 삼지창), 장도(長刀, 장검) 등 6종의 무기 제작법과 조련술   1598년 첫 간행된 ‘무예제보’ 초간본은 프랑스동양어대학과 수원화성박물관 두 곳에만 소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번에 지정된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무예제보’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조선 전기 무예 관련 서적으로서 희소성과 역사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책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무예서 중 가장 먼저 편찬되었고 이후 ?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1610년, 2001년 보물 지정),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1790년) 등 조선 후기 무예서 간행에 많은 영향을 끼쳐 우리나라 무예사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는 만큼 보물로 지정해 연구하고 보존할 필요가 있다.   * 무예제보번역속집: 1610년에 훈련도감의 도청(都廳)이었던 최기남이 주관해『무예제보』의 내용을 보충해 한글로 편찬한 관찬(官撰) 무예서   * 무예도보통지: 1790년 정조의 명으로 규장각 관리였던 이덕무와 박제가가 장용영(壯勇營, 정조의 친위부대) 소속 장교 백동수 등과 함께 편찬한 무예 교본    대구 용문사 소장 보물 「대승기신론소 권하(大乘起信論疏 卷下)」는 당나라 승려 법장(法藏, 643~712)이 저술한 총 3권을 저본(底本)으로 하여 1461년(세조 7)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만든 목판으로 찍은 불경 중 권하(卷下)에 해당하는 1책(33장)이다.   *대승기신론소: 인도 승려 마명(馬鳴)이 짓고 양나라의 진제(眞諦, 499∼569)가 한문으로 번역한 ?대승기신론? 을 법장이 주석을 달고 저술한 불교경전. 우리나라에서는 『금강경』,『원각경』,『능엄경』 등과 함께 불교전문강원의 사교과(四敎科) 과목으로 예로부터 학습됐던 주요 경전임     조선 시대에 간행된 법장의 ?대승기신론소?는 1457년(세조 3)년에 간행된 초주갑인자본(初鑄甲寅字本, 갑인자로 찍은 금속활자본)과 1528년(중종 23), 1572년(선조 5)에 중간(重刊)된 목판본 등이 있으나, 1461년에 간행된 사례로는 용문사 소장본이 유일하다.   조선 시대 ?대승기신론? 주석의 내용과 간행 양상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자 지금까지 알려진 유일본으로서 불교학, 서지학적 가치가 크므로 보물로 지정해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연구ㆍ관리하는 것이 타당하다.     보물 「초조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75(初雕本 阿毗達磨大毗婆沙論 卷一百七十五)」은 11세기에 완성된 고려 초조대장경에 속한 경전으로서, 총 200권 중 권175의 1권에 해당하는 두루마리 경전이다.   * ?아비달마대비바사론?: ?대비바사론(大毗婆沙論)? 등으로 줄여 부르며, ?아비달마발지론(阿毗達磨發智論)?의 주석서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소승불교의 한 분파)의 이론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다른 부파와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교리를 비판한 내용을 담고 있음. 인도 쿠샨왕조의 카니시카(Kaniska) 국왕 때 5백인의 아라한(阿羅漢ㆍ羅漢)이 주석을 달고 저술하였으며, 당나라 삼장법사 현장(玄奘)이 한문으로 번역. 후대에는 아비달마의 이론을 체계화하는 논서(論書)의 모범이 되었음    법장사 소장 ‘초조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75’ 1축은 고려 11세기에 판각된 초조대장경판 가운데 해당 경판을 바탕으로 간행한 것으로, 팔공산 부인사(符仁寺)에 소장되어 있다가 1232년(고종 19) 몽골 침략군에게 불타버린 초조대장경판에 편입된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75의 목판에서 인출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권175의 유일본으로서 희소가치가 있으며, 고려 12세기 전후 경에 인출한 불교경전으로, 초조대장경판 조성 불사(佛事)의 성격과 경전의 유통상황 등을 파악하고 경판을 복원할 수 있는 원천자료로서의 역사ㆍ문화적인 가치가 높다.    보물 「강진 무위사 감역교지(康津 無爲寺 減役敎旨)」는 1457년(세조 3) 음력 8월 10일 국왕이 강진 무위사의 잡역을 면제하도록 명령을 내린 국가의 공식적인 교지 문서다. 불교시책의 일환으로, 1457년 불교 관련 조목을 제정하였고, 같은 해 7∼8월 동안 주요 사찰에 잡역(雜役)을 면제 또는 축소하는 내용의 교지를 발급하였다. 이 때 발급된 감역교지로 원본이 전해지는 것은 무위사 교지를 포함해 <예천 용문사 감역교지>, <능성 쌍봉사 감역교지>, <천안 광덕사 감역교지>가 있으며 이 3건은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세조의 서명인 어압(御押, 임금의 사인)과 ‘시명지보(施命之寶)’의 어보(御寶)가 명확하게 남아 있는 조선 초기 고문서로서, 조선 전기 국왕 발급 문서양식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이다. 아울러 조선 세조 때 사찰 정책과 인식을 살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조선 시대 경제사와 불교사 등 관련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강진 무위사에 발급된 감역교지로서는 유일한 자료로서 희소성과 역사성이 분명하며, 같은 시기 작성된 다른 문서들과 함께 역사적ㆍ학술적인 의의를 지닌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존할 필요가 있다.   보물 「강릉 보현사 목조문수보살좌상(江陵 普賢寺 木造文殊菩薩坐像)」은 제작 시기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1599년 중수기(重修記)와 전체적인 조각양식을 통해 고려 후기∼조선 초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복장(腹藏) 후령통에서 발견된 중수기에 의하면, 이 보살상은 조각승 석준(釋俊)과 원오(元悟)가 1599년에 평창 상원사(上院寺) 문수동자상과 함께 중수한 것으로, 보현사 보살상과 상원사 문수동자상은 형태상 차이가 있으나, 1599년 중수 불사를 함께 시행했다는 점에서 두 사찰의 성격, 승려 문중, 후원자 등에서 유사한 배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현사 문수보살좌상은 두 어깨를 감싼 통견(通肩) 형식의 대의를 입었으며 어깨가 좁고 길쭉한 비례에 앞으로 약간 숙인 자세를 하고 있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寶冠)을 쓰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땋아 올려 보계(寶髻)를 만들었으며, 갸름한 얼굴, 깊게 팬 눈썹 골, 부푼 눈두덩이, 높고 오뚝한 코 등으로 인해 또렷하고 이국적인 인상을 풍긴다. 풍만하게 표현된 목과 가슴, 가늘고 긴 두 손에는 양감이 느껴지며, 몸 전체를 감싸며 흘러내린 가사의 자연스러운 기법이 돋보인다.   ‘강릉 보현사 목조문수보살좌상’은 얼굴 모습, 신체 비례, 세부적인 표현에서 고려 후기∼조선 초기의 조형적인 특성을 갖추고 있으며, 현존작이 많지 않은 이 시기 불상 연구에 크게 기여할 작품으로 평가된다. 조선 초 왕실발원이라는 배경과 이국적이면서도 화려한 조각 수준, 17세기 대표적 조각승 석준과 원오의 중수작품이라는 점 등 한국불교조각사에 뚜렷한 위상을 갖추고 있어 보물로 지정해 연구하고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  보물 「울산 신흥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蔚山 新興寺 石造阿彌陀如來坐像)」은 신흥사 대웅전에 봉안된 대세지-관음보살좌상으로 구성된 아미타삼존상 중 본존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재질은 불석(佛石 또는 沸石, 규산염의 일종으로 흰색의 광물)이다. 이 불상은 발원문에 1649년 불석의 산지였던 어천(현재 포항 오천읍)에서 돌을 채석해 조성하고 배를 이용해 신흥사까지 옮겨온 사실이 밝혀져 있어 당시 불석 불상의 제작지와 운반 경로를 구체적으로 밝힌 첫 번째 사례이다.   신흥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17세기 전반기 전국에 걸쳐 활동한 조각승 영색(英賾)이 경상도 지역에서 불석이라는 재료를 사용해 만든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기년명 불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각승 영색은 ‘英賾’(영색) 또는 ‘英頤’(영이)라고도 쓰며, 신흥사 불상은 그가 수조각승이 되어 양주 회암사 불상 다음으로 두 번째로 제작한 불상이다.  본존인 아미타여래좌상은 짧은 목에 머리를 약간 숙인 결가부좌의 자세를 하고 있으며, 짧은 상반신에 비해 다리 간격이 넓고 무릎이 높은 편이어서 하체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비교적 넓적한 얼굴과 긴 눈썹, 작고 오뚝한 코, 눈꼬리가 올라간 긴 눈, 깊게 팬 입술 가장자리와 볼록하게 올라온 턱에서 온화하면서도 개성 있는 인상이 느껴진다.     ‘울산 신흥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1649년이라는 명확한 제작 시기, 영색이라는 수조각승, 아미타불상이라는 존명 등을 바탕으로 17세기 중엽경 불상 조성의 기준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료의 산지(山地)와 이운(移運, 불상을 옮겨 모심) 과정을 발원문을 통해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ㆍ예술적 가치가 크다.   보물 「서울 흥천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서울 興天寺 毘盧遮那佛 三身掛佛圖)」는 1832년(순조 32)에 수화승 화담신선(華潭慎善)을 비롯해 총 17명의 화승이 조성한 왕실 발원 불화다. 화담신선은 1790년 용주사 불화를 주도했던 상겸, 민관, 연흥 등 서울경기 지역 화원들의 화풍을 계승한 인물로, 19세기 ‘경성화파(京城畵派)’를 대표한 화승이다.   * <흥천사 비로자나불 심신괘불도>의 시주자: 이 괘불도는 1832년 순조(재위 1800∼1834)와 왕비, 효명세자의 부인과 빈궁, 세손(후에 헌종)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제작한 것으로, 시주에는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을 비롯해 정조의 딸 숙선옹주(淑善翁主)와 부마, 순조의 딸 명온공주(明溫公主), 복온공주(福溫公主), 덕온공주(德溫公主)와 부마 등 왕실 인사와 상궁 등이 참여하였음   흥천사 괘불도의 가장 큰 특징은 도상(圖像)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처의 제자들인 가섭·아난존자, 사자와 코끼리를 탄 문수·보현동자가 결합한 구성과 함께 ‘부처-제자-동자(문수·보현)’ 도상을 상·중·하단으로 배치한 구도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서울·경기지역의 괘불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괘불도는 당시 서울‧경기 지방의 많은 괘불에서 볼 수 있는 비로자나 삼신불 도상의 경향을 알려주고 있을 뿐 아니라, 온화하고 기품 있는 존상의 표현, 정확하고 견고한 필치와 선명하고 밝은 채색, 그리고 섬세한 문양 등이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격조 있는 화풍을 유지하고 있어 예술적 가치도 인정된다. 이와 더불어 복장물, 그리고 괘불함까지 갖추고 있고 각기 화기(畵記)를 비롯한 기록도 남아있어 완전성이 뛰어나므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지정한 ‘무예제보’ 등 7건에 대해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해 체계적으로 보존‧활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무예제보> 첨부파일 1222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무예교과서, 무예제보 등 7건 보물 지정(본문).hwp 1222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무예교과서, 무예제보 등 7건 보물 지정(붙임2).pdf

국민 72.2% “문화재 안내판, 이해하기 쉬워졌다” 이미지

국민 72.2% “문화재 안내판, 이해하기 쉬워졌다”

2021-12-28

- 문화재청, 최근 3년간 3,600건 안내판 정비 후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 발표 -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문화재 안내판 정비사업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문화재 전문용어가 많은 기존의 문화재 안내판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여 문화재청은 지난 2019년부터 알기 쉽고 흥미로운 내용을 담은 문화재 안내판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최근 3년 간 3,600여 건의 문화재 안내판을 정비한 바 있다.   경기리서치연구소에서 시행한 이번 설문조사는 전국의 만 16세 이상 남여 1,000명을 대상으로 ▲ 문화재 안내판 정비사업에 대한 인식, ▲ 문화재 안내판 정비사업 평가, ▲ 앞으로의 문화재 안내판에 대한 정책 수요 등 3개 영역 총 12개 문항에 대해 11월 18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간 온라인 설문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화재 안내판 정비사업이 필요하다는 긍정평가가 84.8%로 나타나 사업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의 공감수준이 매우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안내판 개선 효과가 높다는 긍정평가가 72.2%, 개선된 안내판에 대해 만족한다는 긍정평가가 74.3%로 나와 ‘쉬우면서 국민이 알고 싶은 정보 중심으로 안내판을 개선’한다는 사업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문화재 안내판 도입방안 조사에서는 찬성 또는 부분찬성 한다는 국민이 97.4%로 나타나 국민 대다수가 도입을 적극 찬성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안내판의 국민 수요는 매우 높으나, 연령별로 원하는 기술유형은 다르게 나타났다. 10대와 20대에서는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기술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고, 위치기반 온오프라인 결합(O2O) 서비스는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높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 * 위치기반 온오프라인 결합(O2O) 서비스: 차량용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문화재가 위치한 지역 등을 연계하고 예약부터 관람, 체험 등 관련 서비스 경험을 반영하는 서비스   문화재청은 이번 인식조사를 통해 문화재 안내판 정비 사업의 필요성이 다시 한번 확인됨에 따라 전국의 문화재 안내판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해 추가적으로 정비한 필요한 곳을 확인할 것이며, 최근 시행되고 있는 문화재 지정(등록) 번호 개선 정책에 발맞춰 안내판에 기존에 기재되어 있는 문화재 지정(등록) 번호를 노출하지 않는 방향으로 순차적으로 추가 정비할 계획이다.   아울러 안내판에 정보통신기술 도입을 찬성하는 대다수 국민의 의견에 따라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문화재 안내판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여 국민이 더 편하게 문화재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첨부파일 1223 국민 72.2퍼센트 “문화재 안내판, 이해하기 쉬워졌다”.hwp

문화재청, 관아건축 8건 ‘보물’ 신규 지정 이미지

문화재청, 관아건축 8건 ‘보물’ 신규 지정

2021-12-28

- 조선 시대 중앙 관아와 감영, 동헌, 객사, 병영 관아 등 다양한 관아건축문화재, 보물로 지정 -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宣化堂)」 등 8건의 관아(官衙)건축 문화재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였다.   이번에 지정되는 관아 문화재는 서울 1건, 대구 1건, 경기도 3건, 강원도 2건, 경남도 1건이며, 행정체제상으로는 중앙 관아가 1건, 지방 관아로 감영과 동헌 3건, 객사 2건이며, 남한산성의 병영 관아 2건이다. 참고로, 현재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관아건축은 총 5건으로, 모두 객사 건물이다.  * 감영(監營): 조선시대 중앙에서 지방 8도에 파견된 관찰사가 정무를 보는 관청 공간  * 동헌(東軒): 각각의 읍치(邑治)에서 지역행정을 총괄하는 지방관의 집무 공간을 통칭  * 국보․보물 관아건축: 강릉 임영관 삼문(국보), 통영 세병관(국보), 여수 진남관(국보), 전주 풍패지관(보물), 나주 금성관(보물) 등 * 객사(客舍):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상징인 전패(殿牌)를 안치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왕궁을 향해 절을 올리는 곳. 아울러 양쪽 익헌 건물은 사신의 숙소로도 사용.   관아건축이란 왕조시대 관원들이 모여 나랏일을 다스리기 위해 지은 건축물로, 중앙집중의 행정체제가 마련된 조선 시대의 지방 행정도시에는 동헌을 중심으로  관아건축이 전국적으로 건립되어 그 수효가 상당하였지만, 현재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도시지역에 집중되어 있던 관아건축은 수차례의 전쟁으로 파괴되었고, 근대도시로의 변화과정에서는 급격히 소멸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존하는 관아의 대부분은 지방에 있고, 일제강점기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학교 등으로 전용되면서 상당 부분 변형되어 사용되었고 특히, 한성부(漢城府)에 있던 관아들은 현재 3개동만 남은 상황이다. 이렇게 남아있는 관아건축이 적다보니 그동안 다른 건축유형에 비해 연구와 관심이 일부 소홀했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관아건축은 본래 관원이 나랏일을 보는 곳인 만큼 궁궐건축이나, 사찰건축과는 달리 화려하지 않으나, 비교적 높은 기단과 익공식 공포, 팔작지붕 등을 사용하여 일반민가와 달리 단아하면서도 위엄 있게 지어졌다. * 익공(翼工): 창방과 직교하여 보를 받치며 쇠서모양을 내고 초각(草刻)한 공포재  * 공포(栱包): 처마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   이번 관아건축 문화재의 보물 지정은 ▲ 조선 시대 중앙관아 건물 중 원위치에 보존되고 있는 종친부 건물이 지정되어 조선 후기 중앙 관아건축물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다는 점, ▲ 지방관아 중 관찰사가 파견되어 근무하던 감영(監營)의 정당(正堂)인 선화당과 읍치에 파견된 지방관의 집무 공관인 동헌(東軒)이 처음 보물로 지정되었다는 점, ▲ 전란(戰亂) 속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후대에까지 교훈의 공간으로서 역할 했던 남한산성 내의 병영 관아건물이 지정되었다는 점 등이 눈여겨 볼만하다. * 감영의 정당: 관찰사가 공식적으로 행정업무를 보는 곳이지만 관찰사가 일상생활을 하거나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으로도 사용하였음.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은 조선 시대 관공서 중 최고 등급인 정1품아문의 하나인 종친부(宗親府) 건물로, 관아건축이면서 궁궐건축의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 흥선대원군 집권 당시 왕권강화의 일환으로 종친부의 권한과 조직을 확대하면서 종친부 건물이 대규모로 늘어날 당시 중건(1866)되었다. 당시 경근당(敬近堂)은 대군, 왕자군 등 종친들의 대청으로 종친부의 중심 건물로서, 좌우로 각각 옥첩당(玉牒堂)과 이승당(貳丞堂)을 두고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이승당은 1950년대 이후 사라졌다.   * 정1품아문(正1品衙門): 조선 시대 관아의 으뜸 벼슬 또는 그 벼슬아치의 품계가 정일품인 관아. 종친부, 의빈부, 충훈부, 의정부 등이 속함.    경근당은 정면 7칸, 옆면 4칸으로 된 이익공 공포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정면에는 넓은 월대를 두었고, 옥첩당은 정면 5칸, 옆면 3칸으로 된 초익공의 팔작지붕으로, 건축물의 규모나 공포의 형식 모두 경근당 보다 격을 낮추어 위계를 두었다.   경근당과 옥첩당은 고종대 302칸에 달했던 종친부 건축군의 중심 전각으로서 19세기 중앙 관아 건축의 배치와 구성, 연결방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사례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또한, 1981년 경근당과 옥첩당은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가 2013년 다시 원위치로 이전되었지만, 당초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며 많은 부재를 재사용했다는 점이 건축물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충분한 근거가 되었다.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은 조선시대 지방관아 중 최상위 관직자였던 종2품 관찰사가 파견된 감영(監營) 중 경상도 감영의 정당(正堂)으로, 1807년에 중건된 이후 몇 차례의 수리를 거치면서 다소 규모의 변화가 보이나 대체로 건립 당시의 건축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간결하고 짜임새 있는 2고주 7량가의 지붕가구를 이루고 있고, 지붕마루의 양성 마감과 용마루에 취두를 갖춘 팔작지붕 등은 조선후기 관아건축으로서 위계와 높은 품격의 건축적 특성을 갖고 있다.조선 시대 팔도와 읍치에 설치되었던 수많은 관청 건물 가운데서 현존하는 드문 사례로서 조선 후기에 다시 시작된 강우 측정 기구인 측우대, 깃대를 꽂았던 깃대꽂이 등도 남아 있어 감영의 공간구성과 운영시설을 살필 수 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는 남한산성 서쪽의 청량산 정상에 성의 안팎을 모두 굽어 볼 수 있는 군사적 요충에 위치하며, 남한산성의 축조 때부터 성내를 지휘하는 장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1751년(영조 27년) 중층의 장대를 건축하고, 안에는 무망루, 밖에는 서장대라 편액하였고 현재의 건물은 1836년(헌종 1년) 개건된 것이며, 이 때 지금의 ‘수어장대’란 현판을 써서 달았다.  * 편액: 건물 정면의 문과 처마․천장 사이에 건물명칭을 쓴 액자   하층은 정면 5칸, 옆면 4칸, 상층은 정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중층 건물로, 하층 실내 공간의 기둥 내부는 장마루를 깔고 판벽과 평난간으로 구획한 공간으로 꾸미고, 그 둘레의 퇴칸부는 네모난 벽돌(방전)을 깐 바닥공간으로 하여 두 영역을 나누었으며, 상층의 실내 공간은 전체에 장마루를 깔고 사방으로 널판문을 달았다. 이와 같이 중심부와 주변부를 정확히 구분하여 구조와 실내공간을 이에 맞춘 것은 기능을 우선하는 군사 건축적 성격을 보여준다.   또한, 이 장소는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물론이고, 이후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 역대의 국왕이 남한산성을 찾을 때 반드시 올라서 옛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였던 곳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남한산성 연무관」은 남한산성을 수축(修築)하던 시기인 1625년(인조 3년)에 창건되어, 그 직후 1626년에 창설된 중앙 군영인 수어청의 중심 건물로, 1795년(정조 19년) 수어청의 본영이자 광주유수의 집무처로 사용되었다. 창건 이래 세 번에 걸친 중수의 기록을 상량묵서와 상량문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편액에 있는 연기(年紀)는 1762년(영조 38년)의 것이다.    연병장을 바라보는 높은 위치에 건립한 연무관은 정면 5칸, 옆면 4칸으로 정면과 배면에 퇴칸을 두고 있으며. 중앙부에서 기둥을 뒷면으로 이주하고 벽을 세워 국왕이나 수어사가 자리할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건립기록이 확실하고, 타 지역에 남아있는 사례가 드물면서도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정조의 남한산성 행차 당시 사용되어 정조의 애민정신이 깃든 장소로서 그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수어청: 조선 시대 오군영의 하나   「안성 객사 정청」은 안성 객사 내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대궐을 향해 망궐례를 행하는 공간으로, 많은 축소와 변형을 겪은 동‧서 익헌 건물을 제외한 정청(正廳)만 보물로 지정된다. 안성 객사는 1363년(공민왕 12년) 이전에 건립된 이후 조선 후기에 지붕기와를 바꾸었고, 근대기인 1931년, 1995년 2차에 걸쳐 이건하여 원위치가 아닌 단점이 있다. 그러나 정청의 공포 형태와 구성은 수덕사 대웅전과 유사하면서도 살미와 살미 사이에 장식재와 같은 동그란 부재를 깎아 놓은 특징이 있다. 공포에 이런 모습이 남겨진 건물은 안성 객사 정청이 유일하다. 또한, 대들보와 종보는 고려후기 건축물의 전형적 특징인 항아리형 보를 사용하고 있으며 고려 시대 건립되어 현존하는 객사 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 * 살미: 전통 목조건축물 공포를 구성하는 부재   「강릉 칠사당」은 강릉대도호부 관아 구역 내에 있으며, 조선 시대 지방 수령의 집무처로 사용되어 온 건물로, 칠사당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수령의 주요 업무가 칠사(七事)로 규정되었던 데서 연유하여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칠사란 농사, 호구, 교육, 병무, 세금, 재판, 풍속을 말한다. 최초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632년(인조 10년)에 중건하고, 이후 1867년(고종 4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5량가 건물로, 실 배치는 중앙 대청마루를 기준으로 왼쪽은 온돌방 1칸과 마루방 2칸, 누마루 2칸, 그리고 대청에서 누마루로 올라갈 수 있도록 툇마루 앞으로 대청마루보다 높은 작은 툇마루를 덧달았다. 중수‧중건 시기, 시대적 배경, 역사적 인물과 사건 등이 기록으로 남아있는 점, 관아건물로 대청마루 등 다양한 마루의 높낮이를 달리하여 공간의 변화와 위계를 구분하고 있는 평면 형태와 구성, 바닷가에 위치한 지역적 특성을 나타내는 물고기 모양 화반과 삼익공의 공포 형식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남아있는 지방의 동헌 건물 중 매우 독특한 가치를 지닌다.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은 조선 시대 강원도 감영의 정당(正堂)으로서 중앙에서 파견된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공간이다. 특히, 강원감영 선화당은 정문인 포정문도 원형으로 남아있어 조선 시대 감영의 구성 중 핵심적인 공간인 진입공간의 위계를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감영이다. 기록상 1665~1667년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는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은 정면 7칸 옆면 4칸의 평면에, 가구는 2고주 7량가이며, 팔작지붕 겹처마에 양성을 하였으며, 용마루에 용두, 내림마루와 추녀마루에는 망와를 설치하였다.   원주 선화당은 조선후기 남부 6도 감영의 선화당 중 가장 큰 규모에 속하고, 중수와 개건, 도시적 변화가 있었음에도 같은 자리에 실물 그대로 전승되고 있으며, 1875년 개건 당시의 건축적 양상을 보여주는 포작과 ‘주삼포’라는 구체적인 명칭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기록이 있는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1667년 중건된 이후 현재까지 주요 목조가구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조선 시대 고급 관아건축의 전형으로 감영 정당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건축사례라 하겠다. * 망와: 지붕 마루 끝에 세우는 암막새   「거제 기성관」은 거제현과 거제도호부의 객관으로서 1665년(현종 6년) 창건 이래, 1726년(영조 2년), 1801년(순조 1년), 1892년(고종 29년)의 중수를 거쳐 1909년경까지 기능을 유지하였다. 1974년의 해체수리 시에 종도리 아래에서 창건 시의 상량묵서와 함께, 3건의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이 상량묵서와 상량문은 승장(僧匠)들이 등장하는 점 등 조선 후기 지방 관아 건축의 건립 상황을 추적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또, 풍부한 회화식 지도와 사진 등의 자료가 남아 있어 기성관의 전체적인 원형을 추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건물은 정면 9칸, 측면 3칸의 직사각형 평면을 갖는 단층 팔작집인데, 정청에 해당하는 중앙의 3칸은 그 전면의 지붕을 양익헌 부분보다 한단 높게 만들어 앞에서 보았을 때 솟을지붕을 가진 것처럼 꾸민 점이 특별하다. 뒷면의 지붕은 전체가 같은 지붕면으로 되어 있는데 이와 같이 전후면의 지붕면을 다르게 구성한 것은 매우 드문 사례다. * 양익헌(兩益軒): 객사 건축에서 중앙에 정청(살아있는 왕을 위한 망궐례 행하던 곳)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붙어있던 건물로서, 주로 지방관과 외국 사신들의 숙소로 사용   행정과 군사적 성격을 갖는 남해안 관아의 객사로서 인근의 통영 세병관, 여수 진남관 등과 비견할 수 있는 규모와 형식을 고려할 때, 보물로 지정하여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   문화재청은 2018년부터 건조물 문화재에 대한 지정가치 조사를 통하여 2019년에 누정(樓亭) 문화재 10건, 2020년에 서원‧향교 20건을 보물로 지정한 바 있으며, 지난해부터는 120여 건의 관아건축들 중 전문가 사전 검토를 거쳐 선정한 총 11건을 대상으로 지정 조사해 최종적으로 이번에 8건의 관아 문화재를 보물로 지정하게 됐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건조물 문화재 주제연구를 통하여 가치가 알려져 있지 않은 건조물 문화재를 적극 발굴하여 국민들에게 알리고 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등 지역 문화재의 사회적 가치 제고와 주변 환경 정비 등 역사문화환경을 개선하는 사업도 관심을 가지고 지원할 계획이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하는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등 8건의 관아건축 문화재가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할 계획이다. 첨부파일 1223 문화재청, 관아건축 8건 ‘보물’ 신규 지정(본문).hwp 1223 문화재청, 관아건축 8건 ‘보물’ 신규 지정(붙임4).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