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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삼척 지역 통치중심지 ‘삼척도호부 관아지’사적 지정 예고 이미지

조선 시대 삼척 지역 통치중심지 ‘삼척도호부 관아지’사적 지정 예고

2021-11-01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강원도 삼척시에 자리한 「삼척도호부 관아지(三陟都護府 官衙址)」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   「삼척도호부 관아지」는 삼척이 1393년(태조 2년) 삼척부로 승격되고 1413년(태종 13년) 삼척도호부로 지명이 변경된 후 1895년(고종 32년) 삼척군으로 개명될 때까지 조선 시대 삼척 지역 통치의 중심지였던 삼척도호부의 관아가 있던 터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의 건물은 소실되고 오십천과 함께 죽서루만 전해 왔다   * 1757년(영조 33년)~1765년(영조 41년)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삼척도호부 공해조(公廨條)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에는 객사(客舍) 50칸, 아사(衙舍) 91칸, 향청(鄕廳) 10칸, 훈련청(訓練廳) 6칸, 군기고(軍器庫) 20칸 등이 있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총 4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객사, 동헌, 내아 등 관아의 중요 건물 유적과 삼척읍성의 남문지와 체성부를 확인하였고 더불어 많은 고문헌 기록(김홍도의 금강사군첩 죽서루 그림 등)을 통해 실체가 밝혀졌다. 이를 통해 삼척도호부가 조선 시대 삼척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도호부 관아 유적으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 삼척 죽서루: 보물/ 1963년 지정, 삼척 죽서루와 오십천: 명승/ 2007년 지정   발굴조사에서 조선뿐 아니라 신라와 고려 시대 유적과 유물도 함께 확인되었는데 이러한 유적과 유물을 통해 「삼척도호부 관아지」와 그 일대가 조선뿐만 아니라 고려와 신라를 거슬러 까지 삼척 지역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해온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 신라·통일신라(5∼8세기): 수혈주거지, 투장, 고배편, 각종 토기 등   * 고려: 토성, 각종 기와류와 도자기류   문화재청은 앞으로 30일간의 예고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삼척도호부 객사 - 1915년 조선총독부 유리건판 사진> 첨부파일 1029 조선 시대 삼척 지역 통치중심지 ‘삼척도호부 관아지’ 사적 지정 예고(본문).hwp 1029 조선 시대 삼척 지역 통치중심지 ‘삼척도호부 관아지’ 사적 지정 예고(붙임2).pdf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무예교과서 「무예제보」 보물된다 이미지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무예교과서 「무예제보」 보물된다

2021-11-01

- 고려·조선 시대 전적과 불교조각 등 총 7건 지정 예고 -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무예서로 알려진 『무예제보』를 비롯해 고려·조선 시대 전적 및 불교조각, 괘불도 등 7건에 대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무예제보』(武藝諸譜)는 1598년(선조 31년) 문인관료 한교(韓嶠, 1556∼1627)가 왕명을 받고 편찬한 무예기술에 대한 지침서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무예서(武藝書)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1592년)과 정유재란(1597년) 등 일련의 전쟁을 치르면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군사훈련이 필요한 상황으로, 이를 위한 지침서 간행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명나라 군대의 전술을 참조해 무기 제조법과 조련술을 군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과 함께 한글로 해설을 붙여 간행한 것이 바로 『무예제보』다.   * ?무예제보? 수록 내용:  대봉(大棒, 곤봉), 등패(藤牌, 방패), 낭선(狼筅, 낭선창으로서 9∼11개의 날이 달린 창), 장창(長鎗, 긴창), 당파(鎲鈀, 삼지창), 장도(長刀, 장검) 등 6종의 무기 제작법과 조련술   1598년 첫 간행된 『무예제보』 초간본은 프랑스동양어대학과 수원화성박물관 두 곳에만 소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번에 지정 예고된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무예제보』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조선 전기 무예 관련 서적으로 희소성과 역사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책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무예서 중 가장 먼저 편찬되었고 이후 ?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1610년 발행, 2001년 보물 지정),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1790년) 등 조선 후기 무예서 간행에 많은 영향을 끼쳐 우리나라 무예사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는 만큼 보물로 지정해 연구하고 보존할 필요가 있다.   * 무예제보번역속집: 1610년에 훈련도감의 도청(都廳)이었던 최기남이 주관해『무예제보』의 내용을 보충해 한글로 편찬한 관찬(官撰) 무예서   * 무예도보통지: 1790년 정조의 명으로 규장각 관리였던 이덕무와 박제가가 장용영(壯勇營, 정조의 친위부대) 소속 장교 백동수 등과 함께 편찬한 무예 교본    대구 용문사 소장 ‘대승기신론소 권하(大乘起信論疏 卷下)’는 당나라 승려 법장(法藏, 643~712)이 저술한 총 3권을 저본(底本)으로 하여 1461년(세조 7년)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만든 목판으로 찍은 불경 중 권하(卷下)에 해당하는 1책(33장)이다.   *대승기신론소: 인도 승려 마명(馬鳴)이 짓고 양나라의 진제(眞諦, 499∼569)가 한문으로 번역한 ?대승기신론? 을 법장이 주석을 달고 저술한 불교경전. 우리나라에서는 『금강경』,『원각경』,『능엄경』 등과 함께 불교전문강원의 사교과(四敎科) 과목으로 예로부터 학습됐던 주요 경전임     조선 시대에 간행된 법장의 ?대승기신론소?는 1457년(세조 3)년에 간행된 초주갑인자본(初鑄甲寅字本, 갑인자로 찍은 금속활자본)과 1528년(중종 23년), 1572년(선조 5년)에 중간(重刊)된 목판본 등이 있으나, 1461년에 간행된 사례로는 용문사 소장본이 유일하다.   조선 시대 ?대승기신론? 주석의 내용과 간행 양상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자 지금까지 알려진 유일본으로서 불교학, 서지학적 가치가 크므로 보물로 지정해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연구‧관리하는 것이 타당하다.     ‘초조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75(初雕本 阿毗達磨大毗婆沙論 卷一百七十五)’은 11세기에 완성된 고려 초조대장경에 속한 경전으로서, 총 200권 중 권175의 1권에 해당하는 두루마리 경전이다.   * ?아비달마대비바사론?: ?대비바사론(大毗婆沙論)? 등으로 줄여 부르며, ?아비달마발지론(阿毗達磨發智論)?의 주석서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소승불교의 한 분파)의 이론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다른 부파와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교리를 비판한 내용을 담고 있음. 인도 쿠샨왕조의 카니시카(Kaniska) 국왕 때 5백인의 아라한(阿羅漢ㆍ羅漢)이 주석을 달고 저술하였으며, 당나라 삼장법사 현장(玄奘)이 한문으로 번역. 후대에는 아비달마의 이론을 체계화하는 논서(論書)의 모범이 되었음    법장사 소장 ‘초조본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75’ 1축은 고려 11세기에 판각된 초조대장경판 바탕으로 간행한 것으로, 팔공산 부인사(符仁寺)에 소장되어 있다가 1232년(고려 고종 19년) 몽골 침략군에게 불타버린 초조대장경판에 편입된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75의 목판에서 인출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권175의 유일본으로서 희소가치가 있으며, 고려 12세기 전후 경에 인출한 불교경전으로, 초조대장경판 조성 불사(佛事)의 성격과 경전의 유통상황 등을 파악하고 경판을 복원할 수 있는 원천자료로서의 역사‧문화적인 가치가 높다.    ‘강진 무위사 감역교지(康津 無爲寺 減役敎旨)’는 1457년(세조 3) 음력 8월 10일 국왕이 강진 무위사의 잡역을 면제하도록 명령을 내린 국가의 공식적인 교지 문서다. 불교시책의 하나로, 1457년 불교 관련 조목을 제정하였고, 같은 해 7∼8월 주요 사찰에 잡역(雜役)을 면제 또는 축소하는 내용의 교지를 발급하였다. 이 때 발급된 감역교지로 원본이 전해지는 것은 무위사 교지를 포함해 <예천 용문사 감역교지>, <능성 쌍봉사 감역교지>, <천안 광덕사 감역교지>가 있으며 이 3건은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교지는 세조의 서명인 어압(御押, 임금의 사인)과 ‘시명지보(施命之寶)’의 어보(御寶)가 명확하게 남아 있는 조선 초기 고문서로서, 조선 전기 국왕 발급 문서양식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다. 아울러 조선 세조 때 사찰 정책과 인식을 살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조선의 경제사와 불교사 등 관련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강진 무위사에 발급된 감역교지로서는 유일한 자료로서 희소성과 역사성이 분명하며, 같은 시기 작성된 다른 문서들과 함께 역사‧학술적인 의의를 지닌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존할 필요가 있다.   ‘강릉 보현사 목조문수보살좌상(江陵 普賢寺 木造文殊菩薩坐像)’은 제작 시기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1599년 중수기(重修記)와 전체적인 조각양식을 통해 고려 후기∼조선 초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복장(腹藏) 후령통에서 발견된 중수기에 의하면, 이 보살상은 조각승 석준(釋俊)과 원오(元悟)가 1599년에 평창 상원사(上院寺) 문수동자상과 함께 중수한 것으로, 보현사 보살상과 상원사 문수동자상은 형태상 차이가 있으나, 1599년 중수 불사를 함께 시행했다는 점에서 두 사찰의 성격, 승려 문중, 후원자 등에서 유사한 배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후령통: 불상이나 불화 등을 조성할 때 함께 넣는 금ㆍ은ㆍ칠보 등의 보물과 오곡(五穀)ㆍ오향(五香)ㆍ오약(五藥)을 복장(服藏)이라 하며, 후령통은 이 복장을 넣는 통을 이르는 말    보현사 문수보살좌상은 두 어깨를 감싼 통견(通肩, 양쪽 어깨를 덮는 형식)의 대의를 입었으며 어깨가 좁고 길쭉한 비례에 앞으로 약간 숙인 자세를 하고 있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寶冠)을 쓰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땋아 올려 보계(寶髻)를 만들었으며, 갸름한 얼굴, 깊게 팬 눈썹 골, 부푼 눈두덩이, 높고 오뚝한 코 등으로 인해 또렷하고 이국적인 인상을 풍긴다. 풍만하게 표현된 목과 가슴, 가늘고 긴 두 손에는 양감이 느껴지며, 몸 전체를 감싸며 흘러내린 가사의 자연스러운 기법이 돋보인다.   * 보관(寶冠): 불상의 머리 위에 얹은 보석이나 금속으로 장식된 관   * 보계(寶髻): 머리 위에 두발을 묶거나 땋아 올린 부처의 머리 형태   ‘강릉 보현사 목조문수보살좌상’은 얼굴 모습, 신체 비례, 세부적인 표현에서 고려 후기∼조선 초기의 조형적인 특성을 갖추고 있으며, 현존작이 많지 않은 이 시기 불상 연구에 크게 이바지할 작품으로 평가된다. 조선 초 왕실발원이라는 배경과 이국적이면서도 화려한 조각 수준, 17세기 대표적 조각승 석준과 원오의 중수작품이라는 점 등 한국불교조각사에 뚜렷한 위상을 갖추고 있어 보물로 지정해 연구하고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  ‘울산 신흥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蔚山 新興寺 石造阿彌陀如來坐像)’은 신흥사 대웅전에 봉안된 대세지-관음보살좌상으로 구성된 아미타삼존상 중 본존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재질은 불석(佛石 또는 沸石, 규산염의 일종으로 흰색의 광물)이다. 이 불상은 발원문에 1649년 불석의 산지였던 어천(현재 포항 오천읍)에서 돌을 채석해 조성하고 배를 이용해 신흥사까지 옮겨온 사실이 적혀 있어 당시 불석 불상의 제작지와 운반 경로를 구체적으로 밝힌 첫 번째 사례이다.   신흥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17세기 전반기 전국에 걸쳐 활동한 조각승 영색(英賾)이 경상도 지역에서 불석이라는 재료를 사용해 만든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기년명 불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각승 영색은 ‘英賾’(영색) 또는 ‘英頤’(영이)라고도 쓰며, 신흥사 불상은 그가 수조각승이 되어 양주 회암사 불상 다음으로 두 번째로 제작한 불상이다.  본존인 아미타여래좌상은 짧은 목에 머리를 약간 숙인 결가부좌의 자세를 하고 있으며, 짧은 상반신에 비해 다리 간격이 넓고 무릎이 높은 편이어서 하체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비교적 넓적한 얼굴과 긴 눈썹, 작고 오뚝한 코, 눈꼬리가 올라간 긴 눈, 깊게 팬 입술 가장자리와 볼록하게 올라온 턱에서 온화하면서도 개성 있는 인상이 느껴진다.     ‘울산 신흥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1649년이라는 명확한 제작 시기, 영색이라는 수조각승, 아미타불상이라는 존명 등을 통해 17세기 중엽 경 불상 조성의 기준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료의 산지(山地)와 이운 과정을 발원문을 통해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ㆍ예술 가치가 크다.   ‘서울 흥천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서울 興天寺 毘盧遮那佛 三身掛佛圖)’는 1832년(순조 32년)에 수화승 화담신선(華潭慎善)을 비롯해 총 17명의 화승이 조성한 왕실 발원 불화이다. 화담신선은 1790년 용주사 불화를 주도했던 상겸, 민관, 연흥 등 서울경기 지역 화원들의 화풍을 계승한 인물로, 19세기 ‘경성화파(京城畵派)’를 대표한 화승이다.   * <흥천사 비로자나불 심신괘불도>의 시주자: 이 괘불도는 1832년 순조(재위 1800∼1834)와 왕비, 효명세자의 부인과 빈궁, 세손(후에 헌종)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제작한 것으로, 시주에는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을 비롯해 정조의 딸 숙선옹주(淑善翁主)와 부마, 순조의 딸 명온공주(明溫公主), 복온공주(福溫公主), 덕온공주(德溫公主)와 부마 등 왕실 인사와 상궁 등이 대거 참여하였음   흥천사 괘불도의 가장 큰 특징은 도상(圖像)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처의 제자들인 가섭·아난존자, 사자와 코끼리를 탄 문수·보현동자가 결합한 구성과 함께 ‘부처-제자-동자(문수·보현)’ 도상을 상·중·하단으로 배치한 구도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서울·경기지역의 괘불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괘불도는 당시 서울과 경기 지방의 많은 괘불에서 볼 수 있는 비로자나 삼신불 도상의 경향을 알려주고 있을 뿐 아니라, 온화하고 기품 있는 존상의 표현, 정확하고 견고한 필치와 선명하고 밝은 채색, 그리고 섬세한 문양 등이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격조 있는 화풍을 유지하고 있어 예술적 가치도 인정된다. 이와 더불어 복장물 그리고 괘불함까지 갖추고 있고 화기(畵記)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어 완전성이 뛰어나므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   문화재청은 ‘무예제보’ 등 7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며, 앞으로 정부혁신과 적극행정의 하나로 우리 문화재의 숨겨진 가치를 재조명하고, 보다 합리적인 국보‧보물 지정제도가 정착되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무예지보> 첨부파일 1029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무예교과서 「무예제보」 보물된다(본문)-수정.hwp 1029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무예교과서 「무예제보」 보물된다(붙임2).pdf

문화재청, 관아건축 8건 ‘보물’ 지정 예고 이미지

문화재청, 관아건축 8건 ‘보물’ 지정 예고

2021-10-28

- 조선 시대 중앙 관아, 감영, 동헌, 객사, 병영 관아 등 다양한 관아건축 문화재 가치 발굴 -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宣化堂)」 등 8건의 관아(官衙)건축 문화재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   이번에 지정 예고되는 관아 문화재들은 지역적으로 살펴보면 서울 1건, 대구 1건, 경기도 3건, 강원도 2건, 경남도 1건이며, 행정체제상으로는 중앙 관아가 1건, 지방 관아로는 감영과 동헌 3건, 객사 2건이며, 남한산성의 병영 관아 2건도 포함된다. 참고로, 현재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관아건축은 총 5건으로, 모두 객사 건물이다.  * 감영(監營): 조선시대 중앙에서 지방 8도에 파견된 관찰사가 정무를 보는 관청 공간  * 동헌(東軒): 각각의 읍치(邑治)에서 지역행정을 총괄하는 지방관의 집무 공간을 통칭  * 국보ㆍ보물 관아건축: 강릉 임영관 삼문(국보), 통영 세병관(국보), 여수 진남관(국보), 전주 풍패지관(보물), 나주 금성관(보물) 등  * 객사(客舍):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상징인 전패(殿牌)를 안치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왕궁을 향해 절을 올리는 곳. 아울러 양쪽 익헌 건물은 사신의 숙소로도 사용.   관아건축이란 왕조시대 관원들이 모여 나랏일을 다스리기 위해 지은 건축물로, 중앙집중의 행정체제가 마련된 조선 시대의 지방 행정도시에는 동헌을 중심으로 하는 관아건축이 전국적으로 건립되어 그 수효가 상당하였지만, 현재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도시지역에 집중되어 있던 관아건축은 수차례의 전쟁으로 파괴되기 쉬웠고, 근대도시로의 변화과정에서 급격히 소멸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존하는 관아 대부분은 지방에 있고, 일제강점기 이후부터는 대부분 지역에서 학교 등으로 전용되면서 상당 부분 변형되어 사용되었다. 특히, 한성부(漢城府)에 있던 관아들은 현재 3개동만 남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관아건축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다른 건축유형에 비해 소홀했던 원인이 되었다.   관아건축은 본래 관원이 나랏일을 보는 곳인 만큼 궁궐건축이나, 사찰건축과는 달리 화려하지 않으나, 구조적으로는 비교적 높은 기단, 익공식 공포, 팔작지붕 등을 사용하여 일반민가와 달리 단아하면서도 위엄 있게 지어졌다. * 익공(翼工): 창방과 직교하여 보를 받치며 쇠서모양을 내고 초각(草刻)한 공포재   * 공포(栱包): 처마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   이번 관아건축 문화재의 보물 지정 예고는 ▲ 조선 시대 중앙관아 건물 중 원위치에 보존되고 있는 종친부 건물이 지정되어 조선후기 중앙 관아건축물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다는 점, ▲ 지방관아 중 관찰사가 파견되어 근무하던 감영(監營)의 정당(正堂)인 선화당과 읍치에 파견된 지방관의 집무 공관인 동헌(東軒)이 처음 보물로 지정되었다는 점, ▲ 전란(戰亂) 속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후대에까지 교훈의 공간으로서 역할 했던 남한산성 내의 병영 관아건물이 지정되었다는 점 등이 눈여겨 볼만하다.  * 감영의 정당: 관찰사가 공식적으로 행정업무를 보는 곳이지만 관찰사가 일상생활을 하거나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으로도 사용하였음.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은 조선 시대 관공서 중 최고 등급인 정1품아문의 하나인 종친부(宗親府) 건물로, 관아건축이면서 궁궐건축의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 흥선대원군 집권 당시 왕권강화의 일환으로 종친부의 권한과 조직을 확대하면서 종친부 건물이 대규모로 늘어날 당시 중건(1866)되었다. 당시 경근당(敬近堂)은 대군, 왕자군 등 종친들의 대청으로 종친부의 중심 건물로서, 좌우로 각각 옥첩당(玉牒堂)과 이승당(貳丞堂)을 두고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이승당은 1950년대 이후 사라졌다.   * 정1품아문(正1品衙門): 조선 시대 관아의 으뜸 벼슬 또는 그 벼슬아치의 품계가 정일품인 관아. 종친부, 의빈부, 충훈부, 의정부 등이 속함.     경근당은 정면 7칸, 옆면 4칸으로 된 이익공 공포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정면에는 넓은 월대를 두었고, 옥첩당은 정면 5칸, 옆면 3칸으로 된 초익공의 팔작지붕으로, 건축물의 규모나 공포의 형식 모두 경근당 보다 격을 낮추어 위계를 두었다.   경근당과 옥첩당은 고종대 302칸에 달했던 종친부 건축군의 중심 전각으로서 19세기 중앙 관아 건축의 배치와 구성, 연결방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사례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또한, 1981년 경근당과 옥첩당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다가 2013년 다시 원위치로 이전되었지만, 당초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며 많은 부재를 재사용했다는 점이 건축물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충분한 근거가 되었다.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은 조선시대 지방관아 중 최상위 관직자였던 종2품 관찰사가 파견된 감영(監營) 중 경상도 감영의 정당(正堂)으로, 1807년에 중건된 이후 몇 차례의 수리를 거치면서 다소 규모의 변화가 보이나 대체로 건립 당시의 건축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간결하고 짜임새 있는 2고주 7량가의 지붕가구를 이루고 있고, 지붕마루의 양성 마감과 용마루에 취두를 갖춘 팔작지붕 등은 조선후기 관아건축으로서 위계와 높은 품격의 건축적 특성을 갖고 있다. 조선 시대 팔도와 읍치에 설치되었던 수많은 관청 건물 가운데서 현존하는 드문 사례로서 조선후기에 다시 시작된 강우 측정 기구인 측우대, 깃대를 꽂았던 깃대꽂이 등도 남아 있어 감영의 공간구성과 운영시설을 살필 수 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는 남한산성 서쪽의 청량산 정상에 성의 안팎을 모두 굽어볼 수 있는 군사적 요충에 위치하며, 남한산성의 축조 때부터 성내를 지휘하는 장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1751년(영조 27년) 중층의 장대를 건축하고, 안에는 무망루, 밖에는 서장대라 편액하였고 현재의 건물은 1836년(헌종 1년) 개건한 것이며, 이때 지금의 ‘수어장대’란 현판을 써서 달았다. * 편액: 건물 정면의 문과 처마ㆍ천장 사이에 건물명칭을 쓴 액자   하층은 정면 5칸, 옆면 4칸, 상층은 정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구성된 중층 건물로, 하층 실내공간의 기둥 내부는 장마루를 깔고 판벽과 평난간으로 구획한 공간으로 꾸미고, 그 둘레의 퇴칸부는 네모난 벽돌(방전)을 깐 바닥 공간으로 하여 두 영역을 나누었으며, 상층의 실내공간은 전체에 장마루를 깔고 사방으로 널판문을 달았다. 이같이 중심부와 주변부를 정확히 구분하여 구조와 실내공간을 이에 맞춘 것은 기능을 우선하는 군사 건축적 성격을 보여준다.   또한, 이 장소는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물론이고, 이후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 역대의 국왕이 남한산성을 찾을 때 반드시 올라서 옛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였던 곳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남한산성 연무관」은 남한산성을 수축(修築)하던 시기인 1625년(인조 3년)에 창건되어, 그 직후 1626년에 창설된 중앙 군영인 수어청의 중심 건물로, 1795년(정조 19년) 수어청의 본영이자 광주유수의 집무처로 사용되었다. 창건 이래 세 번에 걸친 중수의 기록을 상량묵서와 상량문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편액에 있는 연기(年紀)는 1762년(영조 38년)의 것이다.    연병장을 바라보는 높은 위치에 건립한 연무관은 정면 5칸, 옆면 4칸으로 정면과 배면에 퇴칸을 두고 있으며. 중앙부에서 기둥을 뒷면으로 이주하고 벽을 세워 국왕이나 수어사가 자리할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건립기록이 확실하고, 타 지역에 남아있는 사례가 드물면서도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정조의 남한산성 행차 당시 사용되어 정조의 애민정신이 깃든 장소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수어청: 조선 시대 오군영의 하나   「안성 객사 정청」은 안성 객사에서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대궐을 향해 망궐례를 행하는 공간으로, 많은 축소와 변형을 겪은 동ㆍ서 익헌 건물을 제외한 정청(正廳)만 보물로 지정된다. 안성 객사는 1363년(공민왕 12년) 이전에 건립된 이후 조선 후기에 지붕기와를 바꾸었고, 근대기인 1931년, 1995년 2차에 걸쳐 이건하여 원위치가 아닌 단점이 있다. 그러나 정청의 공포 형태와 구성은 수덕사 대웅전과 유사하면서도 살미와 살미 사이에 장식재와 같은 동그란 부재를 깎아 놓은 특징이 있다. 공포에 이런 모습이 남겨진 건물은 안성 객사 정청이 유일하다. 또한, 대들보와 종보는 고려 후기 건축물의 전형적 특징인 항아리형 보를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안성 객사 정청은 고려 시대 건립되어 현존하는 객사 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강릉 칠사당」은 강릉대도호부 관아 구역 내에 있으며, 조선 시대 지방 수령의 집무처로 사용되어 온 건물로, 칠사당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수령의 주요 업무가 칠사(七事)로 규정되었던 데서 연유하여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칠사란 농사, 호구, 교육, 병무, 세금, 재판, 풍속을 말한다. 최초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632년(인조 10년)에 중건하고, 이후 1867년(고종 4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5량가 건물로, 실 배치는 중앙 대청마루를 기준으로 왼쪽은 온돌방 1칸과 마루방 2칸, 누마루 2칸, 그리고 대청에서 누마루로 올라갈 수 있도록 툇마루 앞으로 대청마루보다 높은 작은 툇마루를 덧달았다. 중수‧중건 시기, 시대적 배경, 역사적 인물과 사건 등이 기록으로 남아있는 점, 관아건물로 대청마루 등 다양한 마루의 높낮이를 달리하여 공간의 변화와 위계를 구분하고 있는 평면 형태와 구성, 바닷가에 자리한 지역적 특성을 나타내는 물고기 모양 화반과 삼익공의 공포 형식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남아있는 지방의 동헌 건물 중 매우 독특한 가치를 지닌다.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은 조선 시대 강원도 감영의 정당(正堂)으로서 중앙에서 파견된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공간이다. 특히, 강원감영 선화당은 정문인 포정문도 원형으로 남아있어 조선 시대 감영의 구성 중 핵심적인 공간인 진입공간의 위계를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감영이다. 기록상 1665~1667년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는 「원주 강원감영 선화당」은 정면 7칸 옆면 4칸의 평면에, 가구는 2고주 7량가이며, 팔작지붕 겹처마에 양성을 하였으며, 용마루에 용두, 내림마루와 추녀마루에는 망와를 설치하였다. 원주 선화당은 조선후기 남부 6도 감영의 선화당 중 가장 큰 규모에 속하고, 중수와 개건, 도시적 변화가 있었음에도 같은 자리에 실물 그대로 전승되고 있으며, 1875년 개건 당시의 건축적 양상을 보여주는 포작과 ‘주삼포’라는 구체적인 명칭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기록이 있는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1667년 중건된 이후 현재까지 주요 목조가구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조선 시대 고급 관아건축의 전형으로 감영 정당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건축사례라 하겠다.  * 망와: 지붕 마루 끝에 세우는 암막새   「거제 기성관」은 거제현과 거제도호부의 객관으로서 1665년(현종 6년) 창건 이래, 1726년(영조 2년), 1801년(순조 1년), 1892년(고종 29년)의 중수를 거쳐 1909년경까지 기능을 유지하였다. 1974년의 해체수리 시에 종도리 아래에서 창건 시의 상량묵서와 함께, 3건의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이 상량묵서와 상량문은 승장(僧匠)들이 등장하는 점 등 조선 후기 지방 관아 건축의 건립 상황을 추적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또, 풍부한 회화식 지도와 사진 등의 자료가 남아 있어 기성관의 전체적인 원형을 추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건물은 정면 9칸, 측면 3칸의 직사각형 평면을 갖는 단층 팔작집인데, 정청에 해당하는 중앙의 3칸은 그 전면의 지붕을 양익헌* 부분보다 한단 높게 만들어 앞에서 보았을 때 솟을지붕을 가진 것처럼 꾸민 점이 특별하다. 뒷면의 지붕은 전체가 같은 지붕면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전후면의 지붕면을 다르게 구성한 것은 매우 드문 사례다.  * 양익헌(兩益軒): 객사 건축에서 중앙에 정청(살아있는 왕을 위한 망궐례 행하던 곳)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붙어있던 건물로서, 주로 지방관과 외국 사신들의 숙소로 사용 행정과 군사적 성격을 갖는 남해안 관아의 객사로서 인근의 통영 세병관, 여수 진남관 등과 비견할 수 있는 규모와 형식을 고려할 때, 보물로 지정하여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   문화재청은 2018년부터 건조물 문화재에 대한 지정가치 조사를 통하여 2019년에 누정(樓亭) 문화재 10건, 2020년에 서원‧향교 20건을 보물로 지정한 바 있으며, 지난해부터는 120여 건의 관아건축들 중 전문가 사전 검토를 거쳐 선정한 총 11건을 대상으로 지정 조사해 최종적으로 이번에 8건의 관아 문화재를 보물로 지정 예고하게 됐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건조물 문화재 주제연구를 통하여 가치가 알려져 있지 않은 건조물 문화재를 적극 발굴하여 국민들에게 알리고 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등 지역 문화재의 사회적 가치 제고와 주변 환경 정비 등 역사문화환경을 개선하는 사업도 관심을 가지고 지원할 계획이다. a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한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등 8건의 관아건축 문화재에 대하여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첨부파일 1028 문화재청, 관아 건축 8건 ‘보물’ 지정 예고(본문).hwp 1028 문화재청, 관아 건축 8건 ‘보물’ 지정 예고(붙임4).pdf

2021년 한해를 마무리하는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 이미지

2021년 한해를 마무리하는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

2021-10-28

- 아름다운 가을 단풍과 함께하는 공개행사 전국 각지에서 열려 -   국가무형문화재의 보전과 진흥을 위해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이종희)이 지원하는 11월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가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최영창)의 진행으로 전국 각지에서 펼쳐진다.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는 무형유산의 대중화와 보전·전승 활성화를 목적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 11월에는 전국에서 총 21건의 공개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다만, 코로나19의 지속적 유행과 사회적 거리두기 이행 등에 따라 부득이하게 기능 종목은 전시 위주로, 예능 종목은 무관객 혹은 최소관람 공연으로 진행된다. 정부혁신의 하나로서 코로나19로 인한 제한된 성과를 공유하고 국민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서비스를 선제적으로 제공하고자, 무관객 공연은 행사 종료 후에 약 한 달 전후로 국립무형유산원 누리집(www.nihc.go.kr, 전승지원 통합플랫폼)에서 온라인으로 영상을 공개할 계획이다.   서울특별시에서는 총 6건의 공개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민속극장 풍류에서는  과거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좋은 세상으로 인도하기 위해 행해진「서울새남굿」(11.1.), 황해도 전역에서 행해진 가면놀이로, 활발하고 경쾌한 춤사위로 유명한 「봉산탈춤」(11.4.)이 진행된다. 또한 장구반주에 맞추어 가야금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가야금산조 및 병창」(보유자 양승희, 11.6./ 보유자 강정숙, 11.13./ 보유자 문재숙, 11.27.)과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창, 말, 몸짓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엮어가는「판소리」(보유자 송순섭, 11.17.)등 6건의 공개행사가 진행된다.   인천광역시 금화당에서는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한 화려하고 규모있는 굿으로 황해도 해주와 옹진, 연평도 지역에서 행해진「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11.3.~4.)공개행사가 진행된다.   경기도 안성시 동창석재에서는 궁궐이나 사찰 등에 남아 있는 불상, 석탑, 석교와 같은 석조물을 제작하는「석장」(보유자 이의상, 11.8.)공개행사가 펼쳐진다.   전라북도에서는 3건의 공개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익산시 전수교육관에서는 익산 지방에서 전승되어 현악영산회상이라는 기악곡인 「이리향제줄풍류」(11.6.) 공개행사가 열리며, 전주시 온고을소리청에서는 「판소리」(보유자 김일구, 11.20./ 보유자 김영자, 11.21.) 공개행사가 진행된다.   전라남도 장흥군 제와장 제와소에서는 건축물 지붕에 빗물, 습기로 인한 침수와 부식을 막고 건물의 경관과 치장을 돋보이게 하는 등 실용성과 장식성를 모두 지닌 기와를 제작하는「제와장」(보유자 김창대, 11.11.~14.) 공개행사가 진행된다.   광주광역시 고싸움놀이테마파크에서는 정월대보름 전후로 전라남도일대에서 두 개의 고가 서로 맞붙어 붙는 격렬한 남성집단놀이인「광주칠석고싸움놀이」(11.26.~28.) 공개행사가 진행된다.   경상북도에서는 2건의 공개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문경시 전수관에서는 흙으로 빚는 그릇으로, 백토 등이 혼합되어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그릇인 「사기장」(보유자 김정옥, 11.5.~7.)공개행사가, 김천시 빗내농악전수관에서는 경상북도 내륙지역에서 전승된 농악으로 양손으로 치는 대북놀음과 판굿에서 드러나는 군사진이 두드러진「김천금릉빗내농악」(11.6.) 공개행사가 진행된다.   경상남도에서는 3건의 공개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창녕군 영산놀이마당에서는 나무로 엮어 만든 소를 어깨에 메고 맞부딪쳐서 상대방 쇠머리를 쓰러뜨리는 집단놀이인「영산쇠머리대기」(11.7.)가 진행된다. 통영시 전혁림미술관에서는 여름철 강한 햇볕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하는 등 보호기능을 하는 발을 제작하는「염장」(보유자 조대용, 11.12.~14.), 통영시 시민문화회관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병사들의 사기를 돕고 망중한의 여가에 추게 한「승전무」(11.21.) 공개행사가 진행된다.   부산광역시에서는 3건의 공개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동래구 놀이마당에서는 정월대보름 농사를 점치거나 풍년을 기원하며 오광대가 전래한 놀이인「동래야류」(11.7.)가 진행되며, 수영구 놀이마당에서는 정월대보름 산신령과 샘물, 그리고 최영 장군묘에 제사를 지낸 후 달이 뜨기를 기다려 행해진 놀이인 「수영야류」(11.13.), 어업의 작업과정과 노동요를 놀이화한「좌수영어방놀이」(11.20.) 공개행사가 진행된다.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는 앞으로도 매월 전국 각지에서 개최될 예정이며, 공개행사에 관한 세부 사항은 국립무형유산원 누리집(www.nihc.go.kr)을 방문하거나, 한국문화재재단(☎02-3011-2153)으로 문의하면 일정, 장소 등을 자세히 안내받을 수 있다. <김천금릉빗내농악> 첨부파일 1028 11월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 개최(본문).hwp 1028 11월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 개최(붙임).pdf

지역민과 함께하는 문화재 대담 『완주전주 공감』 개최 이미지

지역민과 함께하는 문화재 대담 『완주전주 공감』 개최

2021-10-27

-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10.28. 오후 4시 전주 전라감영 -   문화재청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소장 유재은)는 지역민들과 문화재를 소재로 소통·공감하는 자리인 문화재 대담『완전 공감』을 28일 오후 4시 전주 전라감영에서 전주시 지역민들과 함께 진행한다.   전주시민과 함께하는 이번 행사는 전북대학교 소순열 교수와 함께 ‘조선 최대지주 농벌 구마모토와의 만남’을 주제로 일제 강점기 시대 수탈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지역민들이 더욱 쉽게 이해하고 관심을 갖도록 이야기할 계획이다.   일제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필두로 농지를 개간하면서 다수의 일본인이 이주하였고 이 중 한 명이었던 구마모토 리헤이(熊本利平)는 개간된 농지의 대지주였다. ‘조선 최대지주 농벌 구마모토와의 만남’은 소순열 교수가 그동안 연구해왔던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조선 농촌개발에서 나타난 수탈적 성격의 내용 등을 소개하고 전주시민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다. 지역 시민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으며 전화(☎063-290-9317)로 신청(선착순 20명 내외)하면 된다.   참고로, 『완전 공감』은 문화재 전문가들이 우리 문화재를 소재로 지역 시민들과 소통·공감하기 위해 기획된 문화재 대담행사다. 완주에서 2019년 10월 열린 1회 행사는 독일로 간 우리 문화재(‘1883년, 독일로 간 타임캡슐’)를 주제로 해외 소재 문화재에 대해 지역민과 이야기하였고, 남원에서 2020년 11월 열린 2회 행사는 ‘고고학으로 본 남원의 고대문화’을 주제로 남원 운봉고원과 가야사에 관련된 이야기를 지역민들과 나눈 바 있다.     문화재청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완전 공감』이 전북지역 문화재 연구기관의 사회적 가치를 향상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진행할 예정이다.  <안내 홍보물> 첨부파일 1027 지역민과 함께하는 문화재 대담 『완주전주 공감』 개최.hwp

창덕궁관리소, 의궤속 왕실잔치 ‘연경당 진작례’ 재현 이미지

창덕궁관리소, 의궤속 왕실잔치 ‘연경당 진작례’ 재현

2021-10-26

- 순조비 순원황후 40세 맞아 효명세자가 준비한 왕실잔치 재현(11.3.~5.)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소장 문영철)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부설 세계민족무용연구소(소장 서정록)와 함께 오는 11월 3일부터 5일까지 창덕궁 후원 연경당에서 「조선 순조 무자년 연경당 진작례」를 재현한다.  * 11월 3일: 영상기록을 위한 시연과 촬영(무관중 진행)  * 11월 4~5일: 오후 1시부터 각각 한 차례씩 공연(유튜브 생방송 중계, 후원 관람객 관람 가능)             - 유튜브: https://youtube.com/channel/UCQWeOnBtsoNoxz9UujXy0QA     ‘진작례’란 왕실의 특별한 날에 신하들이 임금에게 술과 음식을 올리고 예를 표하는 의식을 말한다. 「조선 순조 무자년 연경당 진작례」는 순조 무자년(1828년 음력 6월)에 효명세자가 모친인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1857, 순조비)의 40세 탄신을 축하하기 위하여 연경당에서 마련한 왕실잔치다.   이번 공연은 세계민족무용연구소가 「순조무자진작의궤純祖戊子進爵儀軌」의 문헌기록을 학술적으로 고증하고 이를 격조 높은 전통의례로 재현한 것이다. 진작례는 전통 종합예술의 성격을 지닌 의례로, 이번 행사는 기록에 근거해 춤, 음악, 노래, 복식, 음식, 의물 등을 재현한다. 2006년 첫 공연 이후 올해 일곱 번째로, 의례와 함께 영지무(影池舞), 향령무(響鈴舞), 박접무(撲蝶舞), 춘앵전(春鶯囀),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 등의 정재춤이 무대에 오른다.   * 영지무(影池舞): 네모난 연못 가운데 학, 사슴, 탑등을 올린 산을 만들고, 둘레는 연꽃으로                  장식하여 그 주변에서 춤을 추는 궁중무용   * 향령무(響鈴舞): 두 손에 방울을 들고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장단에 따라 방울을 흔들고 뿌리면서 추는 춤   * 박접무(撲蝶舞): 나비가 날개짓 하듯 춤추는 향악정재   * 춘앵전(春鶯囀): 1828년(순조 28년) 효명세자가 순원왕후의 보령 40세를 경축하기 위하여 창제한 향악정재 봄날 아침, 버드나무 가지에서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에 도취되어 이를 무용화한 것이라 전해짐    *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 송나라 악무 10대 중 하나로서 ‘홍생색체(紅生色砌)옷을 입고 금봉관을 쓴 아름다운 사람이 모란을 꺾는다’라는 내용의 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이정기 악기장과 한국예술종합학교 허영일 명예 교수가 관련 문헌을 고증하여 새로 제작한 영지(影池)가 무대에 올라 더욱 의미가 깊다.   이번 공연은 창덕궁 후원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이라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으며 더 자세한 사항은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 누리집(www.cdg.go.kr)을 참고하거나 전화(창덕궁관리소 ☎02-3668-2300/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부설 세계민족무용연구소☎02-746-9347)로 문의하면 된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는 학술연구와 고증자료를 바탕으로 재현한 이번 전통의례 공연이 일반인들에게 더욱 친숙하고 궁중연향에 대한 이해를 돕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앞으로도 궁궐이 지닌 역사‧문화적 가치를 온 국민이 함께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유관기관과 더 적극적으로 협업할 계획이다.  <안내 홍보물> 첨부파일 1026 창덕궁관리소, 의궤속 왕실잔치‘ 연경당 진작례’ 재현(본문).hwp 1026 창덕궁관리소, 의궤속 왕실잔치‘ 연경당 진작례’ 재현(붙임2).pdf

익산 쌍릉에서 제의시설 관련 대형건물지 2동 확인 이미지

익산 쌍릉에서 제의시설 관련 대형건물지 2동 확인

2021-10-26

- 문화재청과 마한백제문화연구소, 발굴조사 성과 26일 오후 3시 현장 공개 -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의 허가를 받아 익산시(시장 정헌율)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김정희)가 발굴조사한 익산 쌍릉(사적 제87호) 정비예정구역에서 쌍릉 관련 시설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지 2동이 확인되었다. 조사단은 발굴조사 결과를 26일 오후 3시에 관련전문가와 일반인에게 공개한다.   * 발굴현장: 전북 익산시 덕기동 374-5번지   익산 쌍릉은 백제 제30대 무왕과 왕비 능으로 전해지는 곳으로, 2017년부터 2019년까지의 학술발굴조사에서 인골 발견(대왕릉)과 봉분의 성토가 판축(대왕릉+소왕릉)된 사실이 확인되어 학계는 물론, 언론에서도 주목받은 바 있다.   이번 정비예정구역은 익산 쌍릉과 연접한 구릉의 동쪽에 해당되는 곳으로, 2009년 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시행한 인근 지역 발굴조사에서도 백제 사비시기의 연화문 막새를 포함하여 녹유벼루 조각, 전달린토기(유악토기) 등이 출토된 바 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길이 30m에 이르는 대형건물지 2동을 비롯하여 수혈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건물지는 모두 기둥을 이용하여 지상에 조성한 지상식 건물지인데, 건물지의 경사면 위쪽에는 유수(물)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기 위한 구상유구를 만들고, 내부에는 기둥구멍(柱孔)을 배치한 형태이다.   각 건물지의 특징을 살펴보면, 1호 건물지는 길이 35m, 최대너비 11m 내외이며,  백제 사비시기에 해당하는 벼루조각, 대형 뚜껑편, 인장이 찍힌 기와 등과 함께 통일신라 인화문토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2호 건물지 규모는 길이 27m, 최대너비 10m 내외이며, 특이하게 남서쪽 구상유구가 끝나는 지점에 집수정(우물)을 확인했다. 2호 건물지 구상유구(도랑시설) 내부에서도 백제 사비시기의 토기조각과 통일신라의 인화문 토기조각이 수습되었다.   * 구상유구(溝狀遺構): 도랑 모양으로 만든 터   * 전달린토기(耳杯, 有顎土器): 턱 혹은 귀가 달린 그릇   * 인화문(印花紋): 도장 따위의 도구로 눌러 찍은 문양     이번에 조사된 대형건물지는 내부에 부뚜막(화덕)시설 등이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반 거주시설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더불어 기둥을 이용한 지상식 건물의 구조, 내부에서 출토된 벼루, 대형의 토기조각 등으로 볼 때 익산 쌍릉과 연관된 특수한 성격의 건물지로 추정된다. 또한,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로 볼 때 백제 사비시기에 조성되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일정시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문화재청 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와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인접해 있는 쌍릉과의 관련성 여부 등에 대해 검토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익산시, 유관 기관 등과 적극적인 연구협력 쳬계를 구축하여 익산지역의 백제왕도 핵심유적에 대한 학술조사와 보존 관리체계를 꾸준히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유적 발굴현장> 첨부파일 1026 익산 쌍릉에서 제의시설 관련 대형건물지 2동 확인(본문).hwp 1026 익산 쌍릉에서 제의시설 관련 대형건물지 2동 확인(붙임).pdf

조선 후기 조각승, 색난의 대표작 4건과‘데니 태극기’등 태극기 유물 3건 보물 지정 이미지

조선 후기 조각승, 색난의 대표작 4건과‘데니 태극기’등 태극기 유물 3건 보물 지정

2021-10-25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조선 17세기 조각승(彫刻僧)으로 이름을 떨친 색난(色難)이 만든 ‘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을 비롯해 ‘데니 태극기’ 등 태극기 유물 3건을 포함한 총 7건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였다.   색난은 17세기 전반에 활약한 여러 선배 조각승들을 이어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대표적 조각승이다. 대부분의 동시대 조각승들처럼 정확한 생몰연대와 행적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관련 기록 등을 통해 1640년 전후 출생해 1660년대 수련기를 거친 후 1680년 조각승들의 우두머리인 수조각승이 되어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약 40년 넘게 활약한 것으로 추정된다.   * 조각승(彫刻僧): 불교조각을 전문하는 승려로, 일군의 조각승 중 으뜸을 ‘수조각승(首彫刻僧)’이라고 함. 연륜이 싸이고 오랫동안 제자들과 작업하면서 나름의 사승관계와 작품양식을 이루어 계보(系譜)를 형성하기도 했는데 색난이 대표적 인물   색난은 동시기 조각승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인물로 유명하다. 보통 유명 조각승이 평생 10건 내외의 작품을 남긴 것에 비해 색난의 작품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해도 20여 건에 이른다. 또한, 솜씨가 뛰어난 장인이라는 뜻의 ‘교장(巧匠)’ 또는 ‘조묘공(彫妙工)’으로도 불렸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색난이 만든 불상을 선호했고 그의 조각 기술을 높이 평가했음을 의미한다.   보물「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光州 德林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은 지금까지 알려진 색난의 작품 중 제작시기가 가장 빨라 그의 작품세계에서 상징성이 큰 작품이다. 발원문을 통해 수조각승으로 활동한 40대(1680년/숙종 6)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으며, 총 26구로 구성된 대규모 불상이다.  * 시왕(十王): 사후세계에서 인간들의 죄의 경중을 가리는 열 명의 심판관을 가리키는 불교용어 구체적으로 ① 진광대왕(秦廣大王), ② 초강대왕(初江大王), ③ 송제대왕(宋帝大王), ④ 오관대왕(五官大王), ⑤ 염라대왕(閻羅大王), ⑥ 변성대왕(變成大王), ⑦ 태산대왕(泰山大王), ⑧ 평등대왕(平等大王), ⑨ 도시대왕(都市大王), ⑩ 전륜대왕(轉輪大王)을 말함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색난이라는 작가의 위상을 고려할 때 작품의 중요성과 상징성이 인정되고 조성 당시부터 지금까지 주요 존상(尊像)의 손실이 없고, 작품성도 뛰어나 17세기 후반 명부전 불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보물「고흥 능가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일괄(高興 楞伽寺 木造釋迦如來三尊像 및 十六羅漢像 一括)」은 능가사 응진당(應眞堂)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 일괄로, 복장(腹藏)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해 1685년 6월 전라도 홍양현(洪陽縣) 팔영산(八影山) 능가사(楞伽寺) 승려 상기(尙機)가 발원하였고, 색난이 수조각승으로서 그의 동료·제자들과 함께 주도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 팔영산: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에 있는 산. 지금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음   * 응진당(응진전): 사찰에서 석가모니를 본존으로 모시면서 그 제자들에 대한 신앙세계를 함께 묘사한 불교건축물. 보통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부름   고흥 능가사는 색난의 본사(本寺)이자 활동의 본거지로서, 이번에 지정된 보물은 그가 오래도록 머문 사찰에서 대단위 불사를 진행하고 남긴 작품이라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는 이곳에서 1698년 능가사 범종 시주, 1707년 능가사『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간행 시주, 1730년 능가사 기와 시주 등 이곳의 다양한 불사(佛事)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 : 고려 후기 승려 각운(覺雲)이 스승인 혜심(慧諶)의 『선문염송(禪門拈頌)』에서 중요한 용어를 발췌해 풀이한 불교 주석서    주요 존상이 결실되지 않아 구성이 거의 완전하고, 나한상의 표정과 몸짓이 지물(持物, 불보살 등이 손에 지닌 물건)과 잘 어우러져 풍부한 표현력을 보여주고 있어 예술성도 탁월하다. 색난 조각의 형성과 발전, 그의 사승관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보물「김해 은하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일괄(金海 銀河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은 1687년(숙종 18) 제작되어 김해 신어산(神魚山) ‘서림사(西林寺) 시왕전(十王殿)’에 봉안된 불상으로, 서림사 시왕전은 현재의 은하사 명부전을 가리킨다. 은하사 명부전 존상은 모두 21구로,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귀왕, 판관, 사자, 금강역사 등 거의 완전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이 불상은 경상도 최동부 지역인 김해 지역에 조성된 색난의 작품으로서, 주로 호남지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활동 영역을 파악하는데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존상의 완전성과 창의적인 도상(圖像), 그리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는 점에서 학술·예술적 중요성이 크며,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 한 획을 그은 색난의 전성기 작품이라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   보물「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求禮 華嚴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四菩薩立像)」은 경북 예천 학가산에서 화엄사로 온 계파 성능(桂坡 聖能)이 장육전(丈六殿, 지금의 각황전覺皇殿)을 중창한 후 1703년 조성한 대형 왕실발원 불상으로서(평균 높이 약 3.3m), 색난의 50대 만년작(晩年作)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현재 불상에 재복장된 발원문을 통해 7존(尊)의 불보살상은 수조각승 색난을 중심으로, 그의 제자인 충옥(沖玉), 일기(一幾) 등 24명의 조각승이 1703년 협업해 만든 사실을 알 수 있다. 석가여래좌상은 색난, 다보여래상과 문수보살상은 충옥, 아미타여래좌상은 일기, 보현보살상은 웅원(雄遠), 관음보살상은 색난과 추붕(秋朋), 지적보살상(智積菩薩像)은 추평(秋平)이 각각 주도하여 조성하였고 당시 최고 권위의 왕실발원 불상 조성에 색난과 그 제자들이 초빙된 것은 조각승으로서 그의 명성이 대단했음을 반증한다.  * 지적보살: 다보여래를 따라 석가여래의 법화경 설법자리에 왔다가 문수보살과 성불(成佛)하는 일은 논한 보살    석가·다보·아미타여래 삼불상과 석가여래의 좌우협시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다보여래의 협시보살로 지적보살이, 아미타여래의 협시보살로 관음보살이 짝을 이룬 도상은 1665년 간행『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에 의거한 ‘법화거불(法華擧佛)’, 즉 법화신앙 바탕의 불교의식집에 등장하는 도상을 최초로 조각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은 40여 년 동안 수화승으로 활동한 조각승 색난의 거의 마지막 시기 작품으로, 숙련된 기량과 원숙함이 반영된 그의 기념비적인 대작이자, 도상학적으로도 의의가 크다는 점, 수준 높은 조형성과 기술적 완전성을 갖췄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       이상 ‘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등 4건의 작품은 ▲ 관련 자료를 통해 조성시기와 배경, 제작자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점, ▲ 동일작가작품 중 대표성과 상징성이 있다는 점, ▲ 주요 존상의 결손이나 변형이 적어 완전성이 뛰어나고 작품성도 우수하다는 점, ▲ 제작 당시부터 원봉안처를 벗어나지 않아 유래가 뚜렷하다는 점 등에서 보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와 더불어 국가등록문화재의 가치를 재평가해 ‘데니 태극기’를 비롯해 ‘김구 서명문 태극기’, ‘서울 진관사 태극기’ 등 태극기 유물 3건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였다.   문화재청은 독립운동사료를 포함한 근현대문화유산에 대한 적극적인 역사ㆍ학술 가치의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2019년부터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국가등록문화재들에 대한 검토를 시작해 작년에 「말모이 원고」 등 한글 관련 문화재 2건을 보물로 지정했으며, 이후 두 번째로 태극기 3건을 이번에 보물로 추가 지정하였다.   * 조사대상 선정 국가등록문화재: ①데니 태극기(국가등록문화재 제382호), ②김구 서명문 태극기(제388호), ③불원복(不遠復) 태극기(제394호), ④진관사 소장 태극기 및 독립신문류(제458호), ⑤말모이 원고(2020년 보물 지정), ⑥조선말 큰사전 원고(2020년 보물 지정), ⑦윤동주 친필 원고(제712호), ⑧이봉창 의사 선서문(제745-1호)   보물「데니 태극기(데니 太極旗)」는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한 미국인 오웬 니커슨 데니(Owen Nickerson Denny, 1838~1900)가 소장했던 것으로, 1891년 1월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가지고 간 것을 1981년 그의 후손이 우리나라에 기증해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태극기의 존재는 1977년 미국인 역사학자 로버트 R. 스워타우트(Robert R. Swartout) 교수에 의해 오리건 대학교에 보관된 ‘데니문서’가 발굴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O.N.데니: 1877년 중국 천진(天津) 주재 미국영사를 시작으로 1880년 중국 상해(上海) 주재 미국영사로 재직 중, 1886년 이훙장(李鴻章)의 추천을 받아 묄렌도르프의 후임으로 조선 정부의 외교 및 내무 담당 고문으로 부임. 1886년 6월 조선과 프랑스 간의 통상조약 체결 시 국제관례에 익숙하지 않은 조선이 불리한 통상 조약을 맺지 않도록 조선을 보호하고자 했고, 조선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으로서 조약을 맺을 수 있도록 조력함.   ‘데니 태극기’는 세로 182.5cm, 가로 262㎝로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옛 태극기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클 뿐 아니라 우리나라 국기 제정의 초창기 역사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라는 점에서 뜻깊은 사료다.   제작기법 측면에서도 근대문물이 밀려오던 19세기 말 정세가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즉, 당시 서양 국기를 제작하는 방법을 참조한 것으로, ▲ 전통적인 손바느질이 아닌 상하 90cm 정도 크기의 넓은 폭의 면직물을 바탕재료로 하여 재봉틀을 사용해 박음질했다는 점, ▲ 청색ㆍ홍색 태극과 청색의 4괘(四卦)를 부착하는 데 있어 바탕천을 오려내고 두 줄로 박음질해 멀리서도 문양이 또렷하게 보이도록 시각적 효과를 꾀한 점 등 초창기 국기 제작법을 적용해 매우 정교하고 정성껏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데니 태극기’는 ▲ 국기를 제정해 독립국임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외교적 노력을 증명하는 유물이자, 일제강점기 독립을 향한 열망의 상징이 된 태극기의 기원을 보여준다는 점, ▲ 조선의 자주독립을 지지한 미국인 외교관 가문이 90여년 넘게 간직해 오다 우리 정부에 기증함으로써 진정한 호혜(互惠, 서로 동등하게 혜택을 누림)의 상징이 되었다는 점, ▲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큰 태극기라는 점 등 역사적 의의가 매우 높아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할 사유가 충분하다.   보물「김구 서명문 태극기(金九 署名文 太極旗)」는 1941년 3월 16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김구(金九, 1876~1949) 주석이 독립의지를 담은 글귀를 적어 친분이 있던 벨기에 신부 매우사(梅雨絲, 본명 샤를 미우스 Charles Meeus)에게 준 것이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매우사 신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이 태극기를 전했고, 후손들이 보관하다가 ‘안창호 유품’ 중 하나로 1985년 3월 11일 독립기념관에 기증되었다.   * 1941년 경 매우사 신부는 선교사로서 중국 충칭(中慶)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선교를 위해 미국으로 가기 전 김구 선생이 태극기에 글을 써서 주며 미국에 가서 우리 동포를 만나면 이 글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고 함. ‘김구 서명문 태극기’의 전래에 얽힌 일화는 미주 한인들이 발간한 신문인『신한민보』1942년 3월 19일자(3면)에 자세히 보도됨.     세로 44.3cm, 가로 62cm 크기의 비단 천에 청색과 홍색의 천으로 태극을 만들어 붙이고, 흑색 천으로 4괘를 덧대어 제작한 소형 태극기이다. 깃대는 오른쪽에 천을 덧대어 만들었으며, 괘는 가로 상단에 건괘(乾卦)와 감괘(坎卦), 하단에 이괘(離卦)와 곤괘(坤卦)가 배치되어 있다. 깃대와 괘의 사이에는 김구 선생의 친필로 묵서 4줄 143자가 쓰여 있고 마지막에 ‘김구(金九)’라고 새겨진 작고 네모난 인장이 찍혀 있다.  이 태극기의 가장 큰 역사적 의의는 일제강점기 해외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한국인들의 광복에 대한 염원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서명문에서 김구는 망국의 설움을 면하고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광복군을 도와줄 것을 강하게 호소하였다.  * 김구 서명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매우사 신부에게 부탁하오. 당신은 우리의 강복 운동을 성심으로 돕는 터이니 이번 행차의 어느 곳에서나 우리 한인을 만나는 대로 이 의구(義句, 올바른 글)의 말을 전하여 주시오. 지국(止國,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ㆍ인력ㆍ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 힘을 가진 세상의 나쁜 무리)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 1941년 3월 16일 충칭에서 김구 드림”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 지금까지 알려진 19세기~20세기 초 제작 태극기 중 제작 시기가 정확히 알려진 유일한 자료라는 점, ▲ 대한민국의 독립을 열망한 독립운동가들의 간절한 신념이 대표적으로 담겨있다는 점, ▲ 매우사 신부로부터 안창호 선생의 부인이 태극기를 전달받기까지 상황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있어 전래 경위가 분명하다는 점, ▲ 1942년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태극기의 제작규정을 통일하기 직전에 제작되어 태극기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역사ㆍ학술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보물「서울 진관사 태극기(서울 津寬寺 太極旗)」는 2009년 5월 26일 서울시 은평구 진관사의 부속건물인 칠성각(七星閣)을 해체ㆍ복원하는 과정에서 내부 불단(佛壇) 안쪽 벽체에서 발견된 것으로, 태극기에 보자기처럼 싸인 독립신문류 19점이 함께 발견되었다. 신문류는 「경고문」ㆍ?조선독립신문?ㆍ?자유신종보(自由晨鐘報)?ㆍ?신대한(新大韓)?ㆍ?독립신문? 등 5종으로, 1919년 6월 6일부터 12월 25일까지 발행된 사실로 미루어 진관사 소장 태극기 역시 3.1만세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즈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칠성각: 무병장수의 신(神) 칠성(七星)을 모신 불교 전각   *학계에서는 태극기를 숨긴 인물로 진관사 승려였던 백초월(白初月) 혹은 그와 밀접한 연관이 있던 승려라고 추정하고 있음. 백초월은 3.1만세운동 직후 비밀 지하신문인 ?혁신공보?를 발간해 독립의식을 고취시켰으며, 불교계의 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와 만주지역의 독립군 부대에 제공하는 등 국내 불교계의 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총괄한 인물임. 또한 태극기가 싸고 있던 자료들이 1919년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련되어 국내에 밀반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를 감추기 위해 태극기에 싸서 칠성각에 숨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음   ‘진관사 태극기’는 우리나라 사찰에서 최초로 발견된 일제강점기의 태극기로, 불교 사찰이 독립운동의 배후 근거지나 거점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형태상으로도 일장기 위에 태극의 청색부분과 4괘를 검정색 먹물로 덧칠해 항일 독립의지와 애국심을 강렬하게 표현했으며,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사례라는 점에서 항일 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   이처럼 ‘진관사 태극기’는 ▲ 불교계 등 다양한 계층에서 주도했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 ▲ 항일 정신을 형태상으로 강력하고 생생하게 담고 있다는 점, ▲ 함께 발견된 독립신문류를 통해 태극기의 변천사와 그 의미를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점에서 역사ㆍ학술적 가치가 높아 보물로 지정해 문화재에 담긴 의미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이번에 지정된 태극기 3건은 19세기~20세기 초 제작된 것들로, 일제강점기 혹독한 시련 속에서 독립에 대한 열망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문화재이자, 우리 역사 최초로 국기(國旗) 제작이 시도되고 변천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한민국 역사를 대표하는 유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문화재청은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협조해 이번에 지정한 ‘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데니 태극기’ 등 보물 7건이 체계적으로 보존‧활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또한, 정부혁신과 적극행정으로 우리 문화유산의 숨겨진 가치를 발굴하는 데 더욱 노력할 것이다. [참고] 진관사 태극기와 발견된 독립신문류 현황 진관사 태극기와 발견된 독립신문류 현황을 안내해주는 표 자료명 발행일 수량 비고 신대한신문 제1호 1919년 10월 28일 화요일 제2호 1919년 11월 3일 월요일 제3호 1919년 11월 12일 수요일 3점 단재 신채호가 발간한 신문으로 국내에 새롭게 알려짐 독립신문 제30호 1919년 11월 27일(2점) 제32호 대한민국 원년 12월 25일(2점) 4점 특히, 제30호에는 ‘태극기’라는 제목의 시(詩)가 수록되었음 조선독립신문 <호외> 제32호 1919년 6월 6일 제40호 1919년 8월 12일 제41호 1919년 8월 제42호 1919년 8월 20일 5점   자유신종보 제4호 미확인 제7호 대한민국 원년 9월 19일 제12호 대한민국 원년 10월 6일(4점) 6점 중국 상해에서 발간된 독립운동계 신문으로, 최초 공개된 자료 경고문 1919년 6월 1일 1점 민중들에게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고한 경고문으로 3.1운동 직후 국내에서 간행된 것으로 추정 <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첨부파일 1025 조선 후기 조각승, 색난의 대표작 4건과 ‘데니 태극기’등 태극기 유물 3건 보물 지정(본문).hwp 1025 조선 후기 조각승, 색난의 대표작 4건과 ‘데니 태극기’등 태극기 유물 3건 보물 지정(붙임2).pdf

「정선 봉양리 뽕나무」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지정 예고 이미지

「정선 봉양리 뽕나무」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지정 예고

2021-10-25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강원도기념물 제7호인「봉양리 뽕나무(’71.12.16.지정)」를「정선 봉양리 뽕나무」라는 명칭으로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강원도 정선군청 앞에는 유서 깊은 살림집인 정선 상유재 고택(시도유형문화재 제89호)과 뽕나무가 있다. 정선군 문화유적 안내(1997. 우리문화 유적)에 따르면 약 500년 전 제주 고씨가 중앙 관직을 사직하고 정선으로 낙향할 당시 고택을 짓고 함께 심은 뽕나무라 전해지며 후손들이 정성스럽게 가꾸어 오고 있다.   봉양리 뽕나무는 비교적 크고 2그루가 나란히 자라 기존에 단목으로 지정된 뽕나무와는 차이가 있고, 북쪽 나무는 높이 14.6m 가슴높이 둘레 3.5m 수관폭은 동-서 15.m 남-북 18m이며, 남쪽의 나무는 높이 13.2m 가슴높이 둘레 3.3 수관폭은 동-서 18m 남-북 15.8m로서 규모면에서도 사례가 드물고 생육상태가 좋아 수형이 아름답다.   조선말 문신 오횡묵(생몰연대 미상)이 정선군수로 재임 시 작성한 ?정선총쇄록(1887.3~1888.8.)? 에 정선 지역의 뽕나무에 대해 기록되어 있고 또한 정선군 근대행정문서에는 1909년 이 지역의 양잠호수와 그  면적에 대한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이번에 지정 예고한 봉양리의 뽕나무는 정선 지역에서 양잠(養蠶, 누에를 사육하여 고치를 생산)이 번성했음을 알려주는 살아있는 자료로서 역사적인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뽕나무는 6월에 꽃을 피우고, 오디라는 열매를 맺으며 뿌리껍질은 한방에서 해열‧진해‧이뇨제‧소종(消腫, 종기 치료)으로 쓰이는 등 그 활용도가 높다.    참고로,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뽕나무는 2건으로 지정현황은 다음과 같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뽕나무 지정 현황을 안내해주는 표 연번 지정번호 지정 명칭 수고 (m) 가슴높이둘레(m) 수관폭 (m)/ 동-서, 남-북 수령 (년) 소재지 지정일자 1 471 창덕궁 뽕나무 12 2.39   400 서울 종로구 율곡로 90(창덕궁 내) 2006.04.06. 2 559 상주 두곡리 뽕나무 10 3.93 12.7/ 16.2 300 경북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324 2020.02.03.   문화재청은「정선 봉양리 뽕나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예정이고 향후 지방자치단체, 지역 주민과 함께 보존과 활용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관리해 나갈 계획이다. <정선 봉양리 뽕나무> 첨부파일 1025 「정선 봉양리 뽕나무」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지정 예고(본문).hwp 1025 「정선 봉양리 뽕나무」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지정 예고(붙임2).pdf

(국영문 동시 배포) ‘제주큰굿’ 국가무형문화재 신규종목 지정 예고 이미지

(국영문 동시 배포) ‘제주큰굿’ 국가무형문화재 신규종목 지정 예고

2021-10-25

- ‘제주도 무속의례 중 규모가 가장 큰 굿’… 보유단체도 같이 예고 -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제주도에서 전승되고 있는 무속의례 중 규모가 가장 큰 ‘제주큰굿’을 신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한다.   ‘제주큰굿’은 제주지역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굿으로, 그 안에 음악·춤·놀이 등이 한데 어우러지고 지역민의 살아온 내력이 온전히 담겨있는 종합적 형태의 무속의례이다. 의례는 보통 큰 심방을 포함하여 5명 이상으로 구성하여 짧게는 7일에서 길게는 대략 보름 정도 진행한다.   * 심방: 제주도에서 무당을 일컫는 용어   ‘제주큰굿’은 ▲ 오랜 역사적 내력을 지니고 있고, ▲ 우리나라 굿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으며, ▲ 제주지역 음악·춤·구비서사시·놀이 등을 다양하게 포함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또한, ▲ 수많은 신(神)들을 초대하여 제청(祭廳)에 앉히는 의식부터 시작하여, 영신(迎神)-오신(娛神)-송신(送神)의 완벽한 제의적 형식미를 갖추고 있는 점, ▲ 열두본풀이로 전해지는 서사무가(敍事巫歌)에는 제주도 사람들의 천지창조·삶·죽음 등에 대한 관념들이 투영되어 지역민의 세계관을 온전히 확인할 수 있는 점, ▲ 사설은 과거 ‘제주 방언’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살아있는 제주방언 사전이라고 할 정도로 언어학적으로 중요한 문화자산인 점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 영신(迎神): 무당이 굿을 하기 전 신(神)을 맞아들이는 것을 일컫음.   * 오신(娛神): 무당이 굿을 할 때 춤, 노래로 신을 찬양하여 즐겁게 하는 것을 일컫음.   * 송신(送神): 무당이 굿을 마치고 신을 보내는 것을 일컫음.   * 열두본풀이: 본풀이는 ‘본(本)[근본]’을 푼다는 뜻으로, 열두본풀이는 제주에서 심방들이 굿을 할 때 제상(祭床) 앞에 앉아서 신(神)의 내력담을 읊는 것을 말함.                  천지 개벽 신화인 ‘천지왕본풀이’를 비롯하여 ‘초공본풀이’, ‘이공본풀이’, ‘삼공본풀이’ 등이 있음    또한, 보유단체로 인정 예고된 ‘(사)제주큰굿보존회(대표 서순실)’는 2012년 9월 설립된 단체로 제주큰굿을 전형대로 구현할 수 있는 전승능력을 갖추었고, 전승의지 등이 탁월하여 제주큰굿의 보유단체로 인정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되었다.   제주큰굿은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이 1980년 11월 지정된 이후, 제주도에서 41년 만에 지정되는 무속의례로 제주도 주민들의 삶과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가치와 의미가 크다고 판단된다.   *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칠머리당’에서 바다 생업의 안녕(安寧)과                          풍요(豐饒)를 기원하는 당굿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지정 예고 기간에 각계의 의견 수렴 후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제주큰굿’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과 ‘(사)제주큰굿보존회’의 보유단체 인정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JejuKeungut’ To Become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It is the largest shaman rituals in Jeju -Its group will also be acknowledged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Administrator Kim Hyun-mo) plans to designate JejuKeungut, the largest shamanistic ritual in Jeju, as the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JejuKeungut, also known as Jeju Grand Gut, is the shamanistic ceremony that has been passed down for the longest period in Jeju Island. It encompasses traditional music, dance and game as well as the history of the people of Jeju. It is usually conducted by more than five people – including the leading simbang, or shaman – and continues for 7 to 14 days. *simbang- shaman in Jeju dialect JejuKeungut has a long history and as a result maintains the original format of Korean gut. It consists of music, dance, oral epics and games indigenous to Jeju, which makes it a highly valuable subject of study. Experts also note its format: It begins with a ritual of inviting gods and bringing them to a special seating area; and progresses in stages like yeongsin, osin, songsin, consecutively.The shaman’s narrative song, yeoldubonpuri, reflects the views of the Jeju people on creation, life and death. * yeongsin- Shaman receives and guides gods, before starting gut *osin – Shaman entertains by giving praise to gods with dances and songs *songsin – Shaman concludes gut and sends off gods *yeoldubonpuri– Shaman sits in front of an ancestral ritual table and introduces gods by reciting the account of their histories. There are several well-known examples like ‘cheonjiwangbonpuri’, ‘chogongbonpuri’, ‘yigongbonpuri’, ‘samgongbonpuri.’ It is also notable how the shaman’s narrative uses the Jeju dialect from a long time ago. Linguists note how it is tantamount to adictionary of Jeju dialect and thus, an invaluable source for their research. JejuKeungut Preservation Society (Director Seo Soon-sil), the group that has been preserving this gut ritual, will also be acknowledged in the designation. Established in 2012, the society has the capabilities to reenact the JejuKeungut in its original form, and has been continuously dedicated to passing down the JejuKeungut to people today. It has been more than 40 years since a Jeju gut ritual that embodies the joy, sorrow and life of the Jeju people has been designated as a national intangible heritage item. In November of 1980,JejuChilmeoridangYeongdeunggut was recognized as a national intangible heritage item in Korea. * JejuChilmeoridangYeongdeunggut(Fishing village’s shaman ritual) - a ritual held at Chilmeoridang in the village of Gun-rip to pray for calm seas and a plentiful sea catch. It was inscribed on UNESCO’s 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in 2009.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will receive opinions for a monthon the planned designation and hold a committee review session, before making a final decision on the designation. <시왕맞이(시왕[十王]을 맞이하여 기원하는 의례)(출처 제주특별자치도청)> 첨부파일 1025 ‘Jeju Keungut’ To Become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Heritage.docx 1025 ‘제주큰굿’ 국가무형문화재 신규종목 지정 예고(본문).hwp 1025 ‘제주큰굿’ 국가무형문화재 신규종목 지정 예고(붙임).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