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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기사

원불교 익산 성지 스크랩












  • - 등록번호 : 제179호(2005년 6월 18일 등록)

  • - 소유자(관리자) : 재단법인 원불교

  • - 설 계 자 : 미상

  • - 건립연도 : 1926년

  • - 면적 : 연면적 1,304.9㎡

  • - 위치 :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 344-2 외 3필지

  • - 구조 : 목구조 및 석조

  • - 입장료 : 없음

  • - 운영시간 : 24시간 개방.

  • - 연락처 : 중앙총부 063-850-3261 문화사업부 063-850-3333

  • - 주변 갈 만한 곳: 원광대학교



2010년 6월, 너무나도 뜨거웠던 태양을 머리에 이고 도착한 익산의 원불교 성지는, 지친 여행자의 몸을 시원하게 만져 주었다. 종교의 성지답게 넓은 대지 위에 과거와 현재의 건물들이 성스럽고 아주 정갈하게 잘 정리 정돈되어 있었다. 곳곳에 서있는 아름드리 나무, 벤치들과 성지의 건물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며, 아름다운 정원에 들어온 느낌을 받게했다.

원불교 익산성지는 도심내의 넓은 면적을 차지하면서 커다란 오픈스페이스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성지 내부에는 1924년 9월 익산총부를 건설하면서 최초로 지어진 본원실을 비롯, 1927년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의 처소로 지어진 금강원 등 8개의 건물과 2개의 탑이 초창기 모습 그대로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2005년 6월 지정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 179호로 등록된 익산성지 지정 목록은 구조물 8건과 조형물 2건이다. 구조물 8동은 대각전, 청하원, 구정원, 정신원, 본원실, 금강원, 종법실, 공회당 이고, 조형물은 대종사성탑과 대종사성비다.

구내에는 소태산 대종사와 선진들의 총부건설당시 초기교단의 역사가 그대로 보전되어 있는 보존구역과 원불교 개교반백년 기념사업 이후 총부 공동체 건설을 목적으로 확장한 두 지역 외에 원불교 대학원대학교, 수도원, 복지기관 등 많은 기관이 총 15만여 평의 면적위에 각종 기념물과 건물들이 건립되어 있다.

보존구역은 일제의 탄압과 생활의 곤궁 속에 낮에는 소작작농, 엿 장사, 고무공장 공원 등으로 일을 하고 밤에는 한 자리에 모여 소태산 대종사의 법설로 지도를 받으며 공부를 한 영육쌍전의 산 도량이었다. 곳곳에 당시 대중모임, 훈련, 공동생활 등의 목적으로 세웠던 도치원, 공회당을 비롯, 법신불 일원상을 최초로 봉안했던 대각전 등 소태산 대종사의 교화경륜과 선진들의 희생정신이 스며있는 각종 사적과 유물, 사료 등이 보전되어 있다.
또한 이곳에는 초기 교단의 역사적 발자취 이외에도 교단을 주재하는 종법사를 비롯하여 최고 의결기구인 수위단회, 중앙집행기관인 교정원, 감찰기관인 감찰원, 의결기구인 중앙교의회 등 원불교의 교화, 행정, 교육, 문화, 복지, 산업의 중심기관이 자리하고 있어 교단의 심장부라 할 수 있다.

19세기 이후 한국사회에서 나타난 급격한 봉건적 사회구조의 해체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역사적 격동기 속에서 우리 민족은 새로운 신앙 운동을 통하여 기존 전통 종교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종교적, 사상적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다. 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처음 전래된 천주교가 전통 종교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이에 대응하여 나타난 동학(東學)은 새로운 신앙 운동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1894년부터 1910년까지의 시기는 격심한 사회적 변화와 가치변동에 따라 한국종교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새로운 종교 활동이 활발하였다. 천도교와 대종교, 증산도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원불교 역시 한국 근대기의 새로운 신앙운동의 과정에서 형성된 새로운 종교 중 하나이다.

원불교의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 박중빈(朴重彬, 1891~1943)은 전라남도 영광에서 태어났으며, 20년 동안의 구도 고행 끝에 1916년 4월 28일 큰 깨달음(大覺)을 얻었다고 한다. 원불교에서는 이 날을 원불교가 시작된 날로 정하고 있다. 박중빈은 1917년에 저축조합을 만들어 금주, 금연, 소비절약, 공동출역 시민운동 등을 전개하여 상당한 기금을 마련하였고, 이 자금으로 1918년부터 1년간 바다를 막아 논을 만드는 방언공사(防堰工事)를 전개하여 2만 6천여 평의 농토를 마련함으로써 원불교 창립의 경제적 기초를 다졌다. 이후 1920년에는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에 들어가 5년 동안 교리 초안을 작성하였고, 1924년부터 전라북도 익산에서 불법 연구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교화활동을 시작하였다. 이곳이 현재 원불교 중앙총부와 원불교 익산 성지가 위치하고 있는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이다.

익산성지내 광복이전에 세워진 건축물을 건립연도 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 본원실(1924) : 익산성지에 최초로 지어진 집으로 ‘불법연구회’간판이 처음 걸렸던 곳

  • - 세탁부(1924) : 본원실과 함께 건립되었으며 엿장사를 위해 엿 곱는 일을 해서 ‘엿집’이라 불리었고 1971년 이후 총부의 세탁 업무를 담당

  • - 금강원(1927) : 대종사의 처소와 제자 교육장소로 사용

  • - 종법실(1928) : 대종사가 1939년 이후 거처하던 곳

  • - 공회당(1929) : 대중 집회 장소로 사용했고, 대종사가 제자를 지도한 원불교 초기의 교역자 양성소

  • - 청하원(1932) : 개인주택으로 건립되어 소집회 장소로 사용

  • - 대각전(1935) : 원불교 신앙의 대상인 일원상(一圓相)을 최초로 봉안한 곳

  • - 구정원(1936) : 개인주택으로 건립되어 사무실로 사용

  • - 정신원(1941) : 개인주택으로 건립되어 외빈 응접장소로 사용

  • - 송 대(1941) : 대종사의 휴양과 원불교 정전집필이 이루어진 장소 11  


<총부 대각전의 정면 모습이다.>

대각전(大覺殿)은 중앙총부 정문을 들어서면 왼쪽 종각을 지나 언덕에 세워진 건물로 총부에 대 집회를 위해 지은 현대식 건물이다. 원기19년 5월 9일(음3.26) 총대회에서 익산 대각전 건축기성회를 조직하고, 원기20년부터 복숭아 밭 위 언덕에 터를 다듬고 기념관 건축공사가 시작되어 4월 27일(음3.25)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동생일 기념일에 기념관 준공식을 가졌다. 대각전 전면 중앙에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인 법신불 일원상을 최초로 정식 봉안하였다. 대각전이 건축됨으로 해서 공회당에서 행해졌던 예회나 선(禪)등을 이곳에서 하게 되었으며 특히 공동생일기념일(대각개교절)이나 정기총회 등 전국적인 행사 때에는 많은 대중이 운집했다. 당시에는 이리시내에도 이처럼 큰 집회장소 건물이 없을 정도여서 촌로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대각전을 구경 올 정도였다고 한다. 대각전은 건축 당시 84평이었으나 원기40년 확장 증축을 통하여 107여 평에 이른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고 불단 옆에 있는 법좌는 소태산 대종사, 정산 종사 등이 앉아 법을 설한 법좌로 원래의 것은 역사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다. 대각전의 현판 글씨는 강암 송성용의 부친인 송재호의 글씨이다. 원기71년(1986년) 5월 2대말 성업봉찬사업회 사업의 일환으로 대각전 주위에 황등석을 깔았다.

원기19년 정기 총 대회에서 기념관 건축의 안이 발의되었다. 삼산 김기천의 제안으로 기념관 건축 기성위원회가 조직되어 유산 유허일, 구타원 이공주를 남녀 중앙위원장에 추천하고 건축성금은 권장한다든지 하는 방법은 없도록 하고 반드시 교도의 자발적 희사를 받도록 하였다. 원기20년 기념관 준공에 교도 공동생일기념일이라 500여명의 교도들이 참석하였다. 신축 기념관은 경성(서울)지부 회관을 신축한지 1년 만에 교단에서 가장 큰 규모로 지어진 대강당이었다.


<총각전의 내부 모습이다.>

대각전 전면에 일원상 봉안은 불법연구회 창건사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일원상 표현의 효시는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에서부터 비롯하여 개념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여러 차례 표현하였으나 직접 형상으로 그려 보인 것은 원기4년 가을 잠시 머물렀던 모악산 금산사 송대 건물에서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28년(1943) 5월 16일 이곳에서 최후법문을 설하시었다. 또한 열반 후 발인식과 종재식을 대각전에서 가졌으며, 정산종법사 취임식과 대산 종법사 취임식도 대각전에서 행해졌다. 반백년 기념관이 건축될 때까지 각종 행사 등이 대각전에서 이루어졌다.




























작성자
한국문화재재단
작성일
2010-07-07
조회
1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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