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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갤러리

2019 문화유산채널 영상공모전 수상작 (동상)

2019년 문화유산채널 영상공모전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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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영추문 이루어지지 못한 평화의 염원

https://youtu.be/xJZb1ln9JJA


■ 팀명: 훕미팅(이태경, 이수지)


■ 제작의도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은 2018년에 대중에게 공개되기 전까지 다른 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문입니다.

영추문은 '가을을 맞이하다' 그리고 봉황새의 상징으로부터 '평화를 염원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문입니다.

하지만 그 염원과는 다르게, 조선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와 함께하며 문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는 상반되는 운명을 겪었습니다.

이에 '훕미팀'은 이러한 영추문의 이야기를 통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경복궁의 서문에 대해 소개하며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에 대해 알리고자 이 영상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 작품설명

1392년에 경복궁 완공 이후 태조 7년부터 정종 때에 이르러, 경복궁의 동문, 서문 그리고 남문이 완성되었다.

그 중 서문인 영추문(延秋門) 설에 따라 가을을 상징하여, '가을을 맞이하다'는 의미가 있게 되었다.

영추문은 조선 시대 문무백관들이 주로 출입했던 문이었으며, 궁을 출입하는 백성에 유일하게 허락된 문이었다.

영추문 담장에는 봉황 문양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태평성대를 상징하며 오랜 평화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평화를 염원한다는 영추문의 의미와는 다르게,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며 경복궁과 함께 영추문이 소실된다.

그리고 1865년부터 1872년까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무려 270년이라는 세월 동안 폐허로 방치되었다.

영추문의 기구한 운명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는데, 1894년에는 일본이 영추문을 통과하여 경복궁을 침입하여 고종을 위협했다.

또한 그다음 해인 1895년에는 고종이 일본을 피해 영추문을 통과하여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한다. (아관파천)

그리고 고종의 아들인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승하한 지 이틀 뒤인 1926년 4월 27일에는 영추문의 담이 또다시 붕괴되었다.

일본은 "그 앞으로 지나다니던 전차의 진동 때문"이라며 책임을 회피했지만, 순종이 승하한 지 이틀 후였기 때문에 일제가 계획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붕괴된 이후 영추문은 철거되었고, 1975년에 복원되기까지 또다시 49년이라는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그러나 복원된 영추문은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한 무리한 복원으로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덧붙여서, 본래 위치보다 45m가량 북쪽에 복원되었다는 한계점이 있다.

그리고 2018년 12월 6일 다시 개방되기 전까지, 영추문은 또 43년간 굳게 닫혀 있었다.

'가을을 맞이하다' 그리고 '평화를 염원하다', 태평성대를 꿈꿨지만 참혹한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영추문, 그 오랜 꿈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작성일
2020-08-31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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