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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 vs 이완용 스크랩 소스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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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의 한국점령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일본의 강제 보호조약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이는 바로 당시 학부대신이었던 이완용이었다. 한편 조선의 3대 부자였던 우당 이회영과 형제들은 6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모두 정리해 만주로 향하는데, 이들의 전 재산을 독립자금으로 사용 했고, 50여명의 가족은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대표적인 친일파로 조국을 일본에 넘기고 막대한 부와 권력을 누린 이완용.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도 독립투쟁을 계속했고, 일본군의 고문으로 순국한 이회영. 명문가의 자제로 국난의 시대를 살아간 이회영과 이완용의 삶과 죽음은 극과 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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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801:1506005-008-V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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