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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인가? 명분인가? 세종 vs 최만리 스크랩 소스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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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446년 9월, 우리말을 정확히 표기할 수 있는 문자가 반포 되었다. 훈민정음에는 백성을 위해 누구나 쉽게 글을 읽게 하려는 뜻. 그리고 조선의 찬란함을 홍보하려는 통치자의 입장도 담겨있다. 그러나 임금이 백성들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인 훈민정음에 반대했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세종의 총애를 받던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였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했던 세력의 논리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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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801:1506005-006-V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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