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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땅과 물과 사람이 만든 하회마을. 세계문화유산 되다 스크랩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 여행(강희갑 작가,홍찬선 작가)



 

낙동강이 태백산의 막내, 화산(花山, 327m)을 만나 부끄러운 듯 에스(S)자 모습으로 몸을 꼬았다. 화산은 수줍어하는 낙동강을 마다하지 않고 서쪽 품에 넉넉하게 안았다.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 품에 포근한 보금자리를 차렸다. 물이 회회 돌아나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하회(河回)마을에서 올려다 본 화산은 꽃 핀 것처럼 예쁜 봉우리를 여러 개 거느리고 있다. 화산을 주산으로 삼은 하회마을은 연화부수(蓮花浮水)형 배산임수의 길지(吉地)답게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조선중기 대 유학자인 겸암(謙唵) 류운룡(柳雲龍, 1539~1601)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냈고 징비록(懲毖錄, 국보132)을 쓴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 형제가 태어나고 자랐다. 풍산 류씨가 600여 년 동안 대대로 살아온 동성(同姓)마을로 기와집과 초가가 조화를 이루며 보존되어 있다. 유네스코는 20107월에 경주의 양동마을과 함께 하회마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주거 건축물과 정자 서원 등이 조화를 이루어 보존돼 있으며, 문집과 예술작품, 공동체 놀이와 세시풍속 같은 무형유산이 전승되고 있는 점이 평가받았다.

 



하회마을 황금빛 벼

<하회마을 황금빛 벼>




하회마을 주차장에서 마을까지 가려면 셔틀버스를 타거나 걸어갈 수 있다. 오고 갈 때 한 번쯤은 숲속 오솔길을 따라 20(1km) 정도 산책하는 기분으로 걷는 것도 좋다. 오솔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전망대에서 S자로 흐르는 낙동강 물과 부용대의 깎아지른 절벽, 그리고 넓은 모래밭은 보는 맛이 색다르다. 셔틀버스를 내려 마을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펼쳐진 논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한가위를 앞두고 황금들녘으로 변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푸근하고 여유로워진다. 하회마을 이쪽이 논이 많아 서민들이 살면서 농사를 짓는 모습이다.

 



하회마을 안내도 

<하회마을 안내도>




산비탈에 계단식으로 논을 만들어 정성들여 키운 황금빛 논이 기와집보다 초가집이 많은 것과 조화를 이뤄 멋진 가을 풍경을 보다보면 마을입구에 다다른다. 안내도를 보면서, 마을 가운데 길을 따라 하동고택염행당(남촌댁)양오당(주일재)를 지나 낙동강 물을 한 번 보고 되돌아와 충효당양진당삼신당 신목화경당(북촌댁)을 거쳐 원지정사빈연정사를 지나 만송정 숲 속 뚝방길을 따라 돌아 나오면서 왼쪽으로 낙동강 건너 부용대와 섶다리 및 그 건너편의 옥연정사를 관람하는 게 자유로운 관람순서다.

 



염행당(念行堂) 남촌댁

<염행당(念行堂) 남촌댁>




류치목(1771~1836)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처음에는 단출하게 지었는데 증손자인 류영우가 1905년에 크게 확정하였다. 1954년에 불이 나서 안채와 사랑채 및 나중에 지은 작은 사랑채가 소실된 뒤 복원되었다. 국가민속문화재 90호로 지정돼 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니 사랑채에서 젊은 노인 분께서 짚으로 콩나물시루와 짚신, 닭이 알을 낳는 둥지 등을 삼고 계셨다. 잊혀가는 짚공예를 직접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것도 초가집 사랑방이 아니라 으리으리한 종가댁 기와집에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충효당(忠孝堂)

<충효당(忠孝堂)>




서애 유성룡의 종택으로 보물 414호로 지정됐다. 서애는 청렴하게 살아 삼간초옥에서 지내다 서거했다. 그 뒤 그의 문하생과 지역 유림이 선생의 유덕을 추모해 지었다. 손자인 류원지가 안채를, 증손자인 류의하가 사랑채를 중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호인 충효당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고 강조한 선생의 말을 강조해 붙인 것이다. 글씨는 미수(眉叟) 허목(許穆)이 전서로 쓴 것이다. 충효당 바깥마당에는 1999421일 방한했던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한 기념으로 심은 구상나무가 늠름하게 자라고 있다.




양진당(養眞堂)

<양진당(養眞堂)>




충효당 건너편에는 서애의 형인 겸암 유운룡의 종택인 양진당(養眞堂)이 자리 잡고 있다. 양진당은 겸암 서애 형제의 선조인 류종혜가 하회마을에 처음 들어와 지은 집으로 풍산 류씨의 대종택이다. 보물 306호인 이 집 이름은 풍산 류씨 족보를 완성한 류영(柳泳)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사랑채에 걸린 입암고택(立巖古宅)이란 현판은 겸암과 서애의 부친인 류중영의 호를 따라 지은 것이다.

 



삼신당 신목

<삼신당 신목>




양진당에서 나와 조금 걷다 왼쪽으로 난 좁은 골목길을 20m 들어가면 거대한 느티나무를 만난다. 하회마을에서 가장 높고 가운데에 자리 잡은 이 나무는 류종혜가 이 마을에 터를 잡으면서 심은 것. 나이가 600살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싱싱한 잎이 무성해 팔팔한 젊음을 과시한다. 이 나무 이름은 삼신당 신목(神木)’. 마을에 아기를 점지해 주고 출산과 성장을 돕는 신령한 나무로 여겨진다. 나무의 기를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마음이었을까? 신목은 사방에서 갑갑하게 조여 오는 담으로 막힌 좁은 공간에서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신성(神性)은 있는가 보다. 동네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이 나무에게 마을의 평안을 비는 동제를 지낸다.




화경당(和敬堂) 북촌댁 

<화경당(和敬堂) 북촌댁>




남촌과 북촌으로 나뉘는 하회마을에서 양진당과 함께 북촌을 대표하는 집이다. 1797년 류사춘(柳師春)이 사랑채와 날개채 및 대문채를 짓고, 1862년에 그의 증손자인 류도성이 안채와 큰사랑채 및 사당을 지었다. 화경당은 로 어버이를 섬기고 으로 임금을 섬긴다는 뜻을 담고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가면 화경당이란 현판이 달린 사랑채를 만나고, 오른쪽에 북촌유거가 있다. 이 건물 뒤에 하회마을 모습과 비슷하게 생긴 소나무라고 하여 하회소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소나무가 있다. 코로나 때문에 입장이 안 돼 직접 볼 수 없었고, 대문에 전시돼 있는 사진으로 대신 봤다.

 



하회탈

<하회탈>




하회마을 이곳저곳에는 하회탈을 파는 매장이 있다. 1964330일에 국보 121호로 지정된 하회탈, 주지(2)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부네 백정 할미 등 1011개와 병산탈 가운데 대감과 양반 2개 등을 재현한 탈이다. 안동시립민속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하회-병산탈은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미상이나, 고려 중엽인 11~1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만든 사람과 관련해, 허도령(허도령)이 꿈에서 탈을 만들라는 신의 명을 받는다. 작업장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금줄을 치고 목욕재계하고 탈을 만드는데, 그를 사모하는 여인이 몰래 휘장에 구멍을 뚫고 엿본다. 그때 허도령은 피를 토하고 숨진다. 마지막 10번째 이매탈은 턱이 없는 미완성으로 남게 됐다.

 



섶다리와 옥연정사

<섶다리와 옥연정사>




이제 겸암 류운룡이 마을의 서쪽 지기를 보충하기 위해 심은 소나무 숲 만송정 숲을 따라 뚝방길을 걸으며 하회마을과 이별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아직 아쉬워하기는 이르다. 왼쪽 강 건너에 깎아지른 64m 절벽이 인사한다. 한 떨기 연꽃을 닮았다고 해서 부용대라고 부르는 절벽이다. 강을 건너 직접 오를 수는 없고 마을을 나갔다가 뒤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조금 더 가면 강에 섶다리가 놓여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부용대 오른쪽에 있는 옥연정사로 갈 수 있다. 안타깝게도 올해는 비가 많이 와 물에 떠내려가서 이용할 수 없다.

   



병산서원

<병산서원>




눈앞에 있는 부용대에 가려면 차를 타고 멀리 돌아야 한다. 이때 하회마을 오른쪽에 있는 병산서원에 먼저 가는 것이 순도다. 서애 선생이 1572년 풍산읍에 있던 풍악(豊岳)서당을 이곳으로 옮겼으며 1614년에 병산서당이 되었다. 1863년 철종이 병산(屛山)이란 사액(賜額)을 내려줘 서원이 됐다. 흥선대원군이 1868년에 내린 사원철폐령에도 헐리지 않은 47개 중 하나로 사적 260호로 지정됐다. 병산서원 출입문인 복례문을 지나며 만나는 웅장한 건물이 만대루(晩對樓). 만대는 두보의 시 <백제성루>에 나오는 푸른 절벽은 저녁 무렵에 마주하기 좋으니(翠屛宜晩對)”에서 따왔다. 만대루를 지나 입교당 옆으로 돌아가면 제향영역인 존덕사가 있다. 그 앞에 있는 배롱나무는 400살이나 된 보호수이다.



 

   

<부용대>




병산서원을 음미하고 오던 길을 되돌아 부용대로 간다. 겸암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화천서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운치 있는 소나무 길을 3~4분 오르면 부용대에 이른다. 하회마을 뚝방길에서 보면 깎아지른 절벽이지만 부용대 위에선 절벽을 볼 수 없다. 강건너 하회마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게 멋이다. 화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와 그 산줄기를 회회 감아 돌아 흐르는 낙동강과 그 사이에 자리 잡은 하회마을이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부용대에 오르지 않고 하회마을을 다녀왔다고 하지 말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부용대에서 내려와 화천서원을 지나 조금 걸으면 옥연정사가 나온다. 서애 유성룡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징비록(국보 132)를 쓴 곳으로 유명하다. 고즈넉한 밤을 즐기고 싶다면 이곳에서 숙박하면서 머무를 수 있다.

 



부용대

<하회마을 전경>




부용대/ 如心 홍찬선

 

내가 너를 보면 한 떨기 연꽃이고

네가 나를 보면 갓 피어난 부용이다

 

낙동강 물 회회 돌며 깎다, 깎다, 깎다

다 깎지 못하고 예순넷 높이 절벽으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뜻 알려주었다

 

새벽엔 아침 햇살 고스란히 받아

섶 다리 너머 물돌마을에 돌려주고

저녁엔 고운 노을 아쉬움에 담아

그 말 사람들 가슴에 새기었다

 

오르는 사람만 깨닫는 그 뜻

임진년 왜놈침략 참혹하게 겪고도

반성하지 못한 선조와 기득 권력층

정신 차리라고 네 허리에서

촛불 다 꺼지도록 쓰고 썼어도

 

때 될 때까지는 헛된 것이었다

조급 떨어도 될 일이 아니었다

욕심덩어리에 짓눌려 사는 놈들은

쫄딱 망해 봐야 아는 아픔이었다

 

해와 달 끊임없이 떴다 지고

낙동강 물 하회마을 셀 수 없이

휘돌아 나가고 넘치고 흘러도

 

내가 너를 보면 갓 피어난 부용이고

네가 나를 보면 한 떨기 연꽃이다

 









: 어디를 가나 아는 만큼 보이게 마련이지만 하회마을은 특히 그렇다. 사전지식이나 설명자료 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무엇 봤는지, 이걸 왜 봐야 하는지, 의미를 찾기 힘들고 그러니 재미가 없다. 모든 것은 다 그것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알고 보면 재밌고, 재밌으면 즐기게 된다. 증명사진 찍듯이 서둘러 다니지 말고 집집마다, 골목마다, 사람마다 간직하고 있는 사연을 알면서 보는 것, 하회마을을 백배 즐기는 방법이다. 구경하다 힘들면 안동찜닭을 먹으면 피곤이 싸악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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