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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3세계 부처가 사는 불국사에서 맛에 빠지다 스크랩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 여행(강희갑 작가,홍찬선 작가)





불국사는 신라인들이 3세계 부처가 사는 불국(佛國)을 현세에 구현한 절이다. 하나는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여래의 사바(娑婆)세계, 다른 하나는 무량수경 또는 아미타경에 따른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또 하나는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蓮華藏)세계다. 석가여래는 대웅전에, 아미타불은 극락전에, 비로자나불은 비로전에 모셔져, 중생들이 고해를 무사히 넘어 극락과 연화장으로 가기를 비는 염원을 표현하고 있다. 이차돈이 순교한 1년 뒤인 528년부터 조금씩 짓기 시작해 780년에 2000여 칸의 큰 절로 완성됐다.

   불국사에는 국보만 7개 있다. 불국사의 상징처럼 알고 있는 다보탑(20)과 석가탑(21), 청운교와 백운교(23) 연화교와 칠보교(22), 비로전의 비로자나불(26), 극락전의 아미타불(27),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다라니경(126)이 그것이다. 보물도 다수 있다. 대웅전(1744)과 비로전 옆에 있는 사리탑(61), 가구식 석축(1745), 칠보교 앞에 있는 커다란 석조(石槽, 1523) 등이다. 임진왜란 때 전소되지 않았다면 국보와 보물은 훨씬 많았을 것이다. 또 일제강점기 때인 1924년에 다보탑을 해체보수하고 법당을 중수하는 괴정에서 다보탑 속의 사리장치가 행방불명됐다. 공사기록도 남기지 않아 얼마나 많은 문화유산이 도난당했는지 알 수 없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청운교와 백운교: 국보 23호

<청운교와 백운교: 국보 23>




자하문(紫霞門)에 오르는 두 쌍의 돌다리와 돌계단이다. 자하문은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 불국인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33계단으로 되어 있다. 33계단은 33()을 상징한다. 욕심을 깨끗이 씻고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걸어서 올라가는 다리다. 자하문이란 붉은 노을이 서린 문으로, 자하문을 지나면 세속의 무지와 속박을 떠나 부처님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을 상징한다. 현재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언제쯤 풀릴 날이 있을까




   연화교와 칠보교: 국보 22호

<연화교와 칠보교: 국보 22>




청운교와 백운교 왼쪽에 있는 돌다리와 돌계단이다. 이 돌다리를 오르면 극락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안양문(安養門)으로 이어진다. 안양은 극락의 다른 이름이다. 안양문 앞 계단 디딤판에는 디딤판마다 커다란 연꽃머리 무늬(연두문, 蓮頭紋)가 새겨 있다. 연꽃을 하나씩 밟고 안양문을 지나면 극락정토로 들어간다는 것을 상징한다.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와 마찬가지로 출입은 금지돼 있다.

 



다보탑: 국보 20호

<다보탑: 국보 20>




청운교와 백운교를 옆으로 돌아가면 대웅전으로 들어가면서 처음 만나는 것이 다보탑이다. 10원짜리 동전에서 볼 수 있는 다보탑은 석가탑과 함께 불국사의 사상과 예술을 대표한다. 법화경에는 현재 부처인 석가(釋迦)여래가 설법하는 것에 대해 과거 부처인 다보여래가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고 쓰여 있다. 다보탑이 대웅전 동쪽에 서 있는 것은 법신불인 다보(多寶)여래와 보신불인 석가모니불이 이곳에 항상 있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딱딱한 화강암을 비단처럼 부드럽게 쌓아올린 아름다움에 빠지면 시간이 멈춘다.




석가탑: 국보 21호 

<석가탑: 국보 21>




대웅전 서쪽에 다보탑과 마주보고 서 있는 삼층석탑이다. 다보탑이 아기자기한 여성미를 자랑한다면 석가탑은 단순하면서도 위엄 있는 남성미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742년에 세워진 뒤 원형대로 보존되다 19669월 도굴범에 의해 훼손됐다. 수리를 위해 해체하는 과정에서 2층 탑신 윗면 중앙에서 네모난 사리공이 발견됐다. 그 안에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나왔다. 이 불경은 목판인쇄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석가탑은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다는 뜻의 무영탑이라고 불린다. 석가탑을 세운 백제의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의 비극적인 전설에 따른 것이다.

 



대웅전: 보물 1744호

<대웅전: 보물 1744>




다보탑과 석가탑을 거느리고 있는 불국사의 중심이다. 현재 건물은 1765(영조 41)에 중창된 것으로 가운데 문인 자하문과 함께 조선 후기 불국사 건축을 대표한다. 대웅전 둘레를 에워싸고 있는 회랑은 1973년에 복원됐다. 건물 밑의 기단은 지대석과 면석 및 갑석 등을 고루 갖춘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쌓은 것이다. 사바세계를 관장하는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2011년에 보물 1744호로 지정됐다.

 



극락전: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27호)

<극락전: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27)> (출처: 경주문화관광)




대웅전 옆 서쪽에 대웅전보다 한단 낮은 곳에 있다. 국보 22호인 연화교와 칠보교를 거쳐 안양문을 지나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안양문 출입이 금지돼 있어 대웅전을 통해 갈 수 있다. 극락전에는 국보 27호인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봉안하고 있다. ‘무한한 수명의 것이라는 뜻의 범어 아미타우스에서 유래한 아미타여래는 중생들이 염불을 하면 극락왕생의 길을 제시한다고 한다. 으레 외는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불에게 귀의한다는 뜻으로, 상례를 치를 때 암송한다.

 



무설전(無說殿)

<무설전(無說殿)>




대웅전 바로 뒤에 있는 건물로, 불경을 강의하는 강당이다. 670년에 처음 건립돼 의상대사(625~702)가 이곳에서 최초로 화엄경을 설법했다고 <불국사고금창기>에 기록돼 있다. 진리의 본질과 불교의 깊은 뜻은 말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를 표현하기 위해 무설전이라고 이름 지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1708년에 중창돼 1910년까지 남았는데, 그 뒤 허물어져 방치됐다가 1973년 현재 모습으로 복원됐다. 20095, 태궁 왕실이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로 만든 석가모니불 좌상이 이곳에 봉안됐다. 감은사 서석탑과 황룡사 9층목탑 및 분황사 모전석탑에서 나온 사리도 이곳에 모셔져 있다.

 



관음전

<음전>




무설전 뒤에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관음전이 나온다. 자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으로 불국사에서 가장 높다. 관세음보살은 남쪽바다에 솟아있는 보타락가산에 살면서 사바세계를 굽어보면서 중생을 구원해준다. 그래서 관음전이 옆에 있는 비로전보다 높은 곳에 있다. 원래 이곳에는 922년 경명왕비가 낙지공에게 명하여 전단향목(栴檀香木)으로 만든 관세음보살상이 안치돼 있었다. 18세기 중엽까지는 이 관음상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뒤 없어졌다. 누가 언제 어떻게 가져갔는지 기록이 없다. 현재 관음입상은 1973년 복원 때 봉안한 보살이다.

 



비로전: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26호)

<비로전: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26)>




관음전 바로 아래 서쪽에 있다. 국보 26호인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이 봉안돼 있다. 700~8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및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높이 1.77m나 되며 1300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당시 황금 도금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원래 황금으로 만든 대좌와 광배가 있었지만 현재는 없어졌다. 최치원이 불국사를 방문해 이 불상을 본 뒤 쓴 글에 따르면 이 불상은 진성여왕이 화엄사상에 의해 만든 불상이다.

 



가구식석축(架構式石築)

<가구식석축(架構式石築)>




비로전 옆에 있는 사리탑(보물 61)을 감상하고 연화교와 칠보교 쪽으로 내려오면 불국사의 또 다른 매력인 멋진 돌 축대를 볼 수 있다. 불국사를 처음 지을 때인 8세기 중엽에 화강암으로 쌓은 축대로, 북고남저와 동고서저로 높이가 맞지 않는 지형을 고르게 하기 위해 쌓은 것이다. 가구식이란 각 부재의 이음과 맞춤에 의해 쌓은 방식을 말한다. 축조기법이 매우 독특하고 건축적 조형미가 뛰어난 통일신라시대 석조 건축물의 수준이 매우 높았음을 보여준다.

 



불국사 전경

<불국사 전경>





불국사/ 如心 홍찬선

 

올 때마다 달랐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는

그저 와서 사진 찍은 게 다였다

이십대 후반에 와서는

염불보다는 잿밥이 관심이었다

삼십대 사십대 때는

가끔 설명문을 읽어보고

옆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올 때마다 보고 듣는 게 달랐다

 

이순을 코앞에 둔 지천명 후반에는

지나간 것보다는 앞으로 올 것이

내 느낌보다는 다른 사람의 설명이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두 마리 개보다는

명심과 정심이라는 두 개의 마음이

내려놓으라고, 비워야 채울 수 있다고

소곤소곤 속삭였다

 

다시 올 때는 느낄 수 있을까

 

다보탑과 석가탑 타고 살랑대는 바람을

청운 백운 연화 칠보 다리를 건너는 소리를

대웅 비로 극락전을 감도는 말없음의 말을

화강암을 찰흙처럼 부드럽게 다룬 손길을

사리탑과 석조에 남아 있는 세월의 두께를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의 어처구니없는 훼손을

나뉜 것을 반드시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염원을

 

 









 

: 불국사는 그저 한 번 휙 둘러보는 곳이 아니다. 찾기 전에 여러 자료를 찾아 공부하고, 방문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그 의미와 아름다움을 음미하면서 보는 게 좋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감동한다는 말은 불국사에 딱 맞는 말이다. 한 번 가서 두서너 시간 만에 둘러보고 불국사에 다녀왔다고 하는 것은 코끼리 코나 발만 보고 코끼리를 안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보탑 하나만도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반나절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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