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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물에 잠긴 반구대암각화와 눈물 젖은 망부석 스크랩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 여행(강희갑 작가,홍찬선 작가)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 때를 잘 맞추면 일이 술술 풀리지만 때를 놓치거나 잘못된 때를 고르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오죽하면 때와 철을 모르는 사람을 철부지라고 했을까. 철부지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워하던 내가 어처구니없이 철부지가 되고 말았다.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지나간 며칠 뒤 울산에 있는 반구대암각화를 찾았다. 혹시나 하고 갔지만 역시나였다. 태풍이 퍼부은 비로 사연댐 수위가 높아졌고 반구대암각화는 물속에 잠겨 볼 수 없었다.

물에 잠기고 물로 길이 끊겨 볼 수 없는 암각화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울산의 또 다른 상징인 박제상 유적지를 찾아갔다. 신라 눌지왕을 위해 아내와 딸을 버리고 왜()에 가서 죽은 충신 박제상.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망부석 바위가 된 아내. 충신은 역사에 기록돼 길이길이 인구에 회자되지만 충신의 아내는 아픈 전설로 남아있다. 아이러니 현장에도 태풍이 할퀴고 간 흔적은 많이 남아 있었다.

 



반구대 암각화 가는 길

<반구대 암각화 가는 길>




쭉쭉 뻗은 대나무 숲이 어서 오라며 인사했다. 코로나19로 사람들 발길이 뜸했는데,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잇따라 강타하면서 찾는 사람이 더욱 줄었다. 울산시 언양읍 대곡리 991에 있는 반구대암각화에 가는 고즈넉한 길은 외로울 정도였다. 이따금 들리는 발소리와 두런두런 대는 말소리에 말 못하는 대나무 줄기와 잎사귀도 바람을 빌려 반갑다는 노래를 은은히 들러주었다.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풀벌레 합창도 국보 285호와 첫 상견례 하는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물에 잠긴 암각화

<물에 잠긴 암각화>




10분쯤 걸리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곧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만은 아니었다. 길옆에 서있는 <공룡발자국화석> 안내판을 보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불어난 물 뿐, 안내판에 있는 화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불안은 곧 현실이 됐다. 물이 불어나 암각화가 물속에 잠겨 볼 수 없다는 안내문이 바람에 흔들렸다. 보이지 않는 암각화의 안타까움을 대변하는 듯 했다. 물 건너 바위에 암각화가 있는데, 암각화 부분은 잠기고 그 위의 바위면만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암각화를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설치해 놓은 망원경도 쓸모가 없었다. 암각화에 어떤 물고기들이 그려져 있는지 알려주는 안내판도 태풍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모처럼 벼르고 별러 왔는데 때를 잘못 고른 철부지였다.




반구대암각화 보존하자

<반구대암각화 보존하자>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기 사연(泗淵)댐의 만수위 높이를 60m에서 52m로 낮추자는 제안이 나왔다. 사연댐은 울산시에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대곡천을 막는 공사를 196210월부터 시작해 19510월에 완공됐다. 이로 인해 반구대암각화가 장마철에 지속적으로 침수와 노출이 반복되면서 풍화가 가속화되어 사라질 위험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5년 국보지정 당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이 300여개였다. 하지만 2016년에는 20~30점 밖에 되지 않았다. 암각화 보존을 위해 한 때 암각화 앞에 이동식 투명댐을 설치하기 합의하고 모의실험을 한 결과 현실성이 없어 백지화됐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암각화로 가는 길 양옆에 <암각화를 보존하여 국격을 높이자>는 등의 현수막이 많이 걸려 있다.




반구대(盤龜臺)

<반구대(盤龜臺)>




대곡리에 있는 암각화는 흔히 반구대암각화라고 불린다. 반구대는 차에서 내려 암각화를 보기 위해 가는 초입의 강 건너에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은 신라 때부터 알려졌으며, 고려 말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가 은거한 곳으로 유명하다. 반구대 아래 조그만 언덕에 있는 포은대(圃隱臺)에는 포은과 이언적(李彦適) 및 정구(鄭逑) 등 삼현의 행적을 기록한 유허비와 모은대영모비가 세워져 있다. 여지도서에는 산이 준마가 모로 달리는 듯, 창칼이 죽 늘어선 듯하다. 산기슭이 물가까지 달려가서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듯한 모습이어서 반구대라고 한다고 기록돼 있다.




   천전리 암각화

<천전리 암각화>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대곡리 암각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천전리(川前里) 암각화가 있다. 국보 147호인 천전리암각화는 6개 바위조각에 그려져 있다. 가장 큰 바위는 너비 950cm, 높이 270cm나 된다. 표면에 다양한 모양의 기하학적 문양과 금속도구를 사용해 새긴 선각화 및 삼국시대에 새겨진 명문(名文) 등이 확인됐다. 새김기법이나 묘사내용이 대곡리암각화와 비슷하다. 다만 사실 묘사에서는 대곡리 암각화가 훨씬 세련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천전리 암각화 가는 길

<천전리 암각화 가는 길>




천전리암각화는 마이삭과 하이선에도 불구하고 침수 같은 직접적 피해는 입지 않았다. 하지만 암각화로 가는 길이 물에 잠겨 건너갈 수 없었다. 홍수로 인해 대곡천 수량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대곡천 이쪽을 따라 가서 먼발치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부근에 울산암각화박물관이 건설돼 울산지역 암각화를 자세히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박물관이 문을 닫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길도 막혔다. 태풍과 코로나 여파가 암각화까지 미치는 것을 보니, 세상은 여러 가지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공룡발자국 화석

 <공룡발자국 화석>




하지만 나쁜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천전리암각화를 멀리서나마 보기 위해 대곡천을 따라 걷다가 공룡발자국화석을 볼 수 있었다. 대곡리암각화 부근에 있는 공룡발자국화석은 물에 잠겨 볼 수 없었는데, 이곳에서 바위에 큰 원이 박혀 있는 모습의 화석을 보았다. 이 지역에 공룡이 살았고, 바닷물이 들어와 고래사냥까지 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귀중한 화석이다.




   박제상 추모비

<박제상 추모비>




암각화를 직접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고 발길을 박제상 유적지로 돌렸다. 신라 눌지왕 때 충신인 박제상은 목숨을 걸고 왜()로 건너가 눌지왕의 동생을 신라로 탈출시켰다. 그는 왜왕의 신하라고 인정하면 살려주고 높은 벼슬도 주겠다는 꼬임에 대해, 신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의 신하가 되지 않겠다고 해 처형당했다. 울산시 두동면 만화리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관과 추모비, 그리고 치산서원이 있다.




   삼모녀상

<삼모녀상>




박제상기념관 앞 넓은 뜰에는 삼모녀상이 있다. 박제상의 부인과 두 딸을 형상화한 것이다. 박제상은 고구려에서 눌지왕의 동생을 구한 뒤 집에도 들리지 않고 왜로 향했다. 그의 부인이 박제상이 탄 배가 떠나는 율포까지 달려가 가지 말라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박제상은 돌아보지도 않고 왜로 갔다. 눌지왕은 동생이 무사히 귀국한 뒤 박제상의 둘째 딸을 며느리로 삼고, 박제상 부인을 보살핀 것으로 전해진다.




   망부석(望夫石)

<망부석(望夫石)>




울산과 경주 사이에 있는 수릿재(치술령, 鵄述嶺, 765m) 정상 부근에 망부석이 있다. 박제상 부인이 남편을 그리워하다 동해바다가 훤히 내려 보이는 이곳에 올라 남편이 오는 것을 기다리다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사람이 어찌 바위로 바뀔 리가 있겠는가. 마침 큰 바위가 있고, 박제상 부인의 스토리가 겹쳐 그런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망부석 치켜세우기

<망부석에서>




망부석/ 如心 홍찬선

 

그리움이 사무친다

가슴 후비는 그리움을 달랠 길 없어

가파른 수릿재를 한달음에 오른다

 

뿌연 안개비가 앞을 가로 막는다

무정하게 떠난 님보다 더 야속한

안개비, 저것만 걷히면 파~

동해바다가 한눈에 보이고 그

너머 왜국에 있는 님에게도 갈 수 있으련만

 

하늘은 비를 뿌리고

땅은 안개 피운다

사람은 그리움 풀지 못해

바위가 되어 멎었다

 

충신이 무엇이길래

애국이 무엇이길래

아내는 망부석 만들고

두 딸은 고아 되게 했는가

 





 

꿀팁: 반구대암각화를 잘 보려면 맑은 날 오후 3~5시 사이에 가야 한다. 암각화가 서향이이서 그때쯤 햇살을 받아 밝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철 비가 많이 왔을 때는 피해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암각화를 찾을 때 반드시 되새겨야 한다. 사전에 암각화에 대한 공부를 한 뒤 현장에 가야 하나라도 더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다. 박제상기념관에서 법왕사까지 차로 간 뒤 망부석까지 1km 정도 등산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그리움에 사무쳐 여기를 올랐을 박제상 부인의 심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박제상이 배를 타고 떠난 율포도 가볼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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