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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기와집과 송림, 연못이 어우러진 명당 선교장 스크랩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 여행(강희갑 작가,홍찬선 작가)



모든 것은 시간의 포로다. 해와 달이 떴다 지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모든 게 바뀐다. 사람은 나서 죽고, 자연도 비바람에 모습을 바꾼다. 지금 보이는 것에 사로잡히는 순간 바로 시간의 포로가 된다. 강릉시 운정동 431에 있는 선교장도 마찬가지다. 배다리집이라는 뜻의 선교장은 현재 지형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경포호가 지금보다 훨씬 넓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이곳이 배를 타고 건너다니는 마을이었다. 그 마을에 있는 집이니 선교장이다. 시간의 포로에서 벗어나면 전혀 다른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선교장은 효령대군의 11대손인 이내번(李乃蕃, 1703~1781)이 지었다. 그는 강릉으로 이사해서 처음엔 경포대 주변의 저동에서 살았다. 하루는 족제비 떼를 쫓다가 우연히 그다지 높지 않은 시루봉에 둘러싸여 있는 이곳이 명당임을 알아보고 집을 지어 이사했다고 전한다. 집터 덕분으로 그 뒤 가세가 크게 번창해 건물이 차츰 늘어 지금의 모습으로 커졌다.

 



선교장 배치도

<선교장 배치도>




선교장은 조선시대 사대부의 일반적 모양인 ㅁ자형 건물배치에 구애받지 않고 산자락 모습에 맞춰 자유롭게 건물을 배치했다. 한꺼번에 모두 지은 것이 아니라 집안이 번창함에 따라 건물을 늘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안채와 사랑채인 열화당(悅話堂)에 이어 동, 서별당과 사당 및 연당과 활래정(活來亭)을 갖췄다. 서별당과 연지당 홍혜헌 등에서는 한옥을 체험할 수 있도록 숙박도 가능하다. 가끔 열리는 음악회도 찾는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선교장 전경

<선교장 전경>




선교장은 건물 전체 면적이 318평에 99칸의 규모를 자랑한다. 한일()자 형태로 펼쳐져 있는 행랑채만 해도 방이 20개나 된다. 입구 왼쪽에 박물관이 있어 선교장과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오른쪽에 연꽃이 아름답게 피는 연못 안에 활래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다. 언뜻 보면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와 부용정 느낌을 받는다. 직진하면 왼쪽에 자그마한 연못과 건물이 있고 그 앞에 대문이 있는 곳이 선교장 본래 건물이 있는 영역이다.

 



선교장 대문

<선교장 대문>




긴 행랑채에 있는 대문은 안채로 통하는 평대문과 사랑으로 가는 솟을대문이 간격을 두고 나란히 있다. 이는 창덕궁 후원에 있는 연경당(延慶堂)과 비슷한 구도다. 대문 오른쪽 기둥에는 세로로 <船橋莊>이라 쓰여 있고, 위에는 가로로 <仙嵪幽居(선고유거)>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신선이 살 정도 높은 산에 그윽하게 사는 집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 아래에는 집주인 이름을 새긴 <李康隆(이강륭)>이란 문패가 붙어있다. 요즘은 문패가 걸린 집이 거의 없으나 30~40년 전만해도 문패 달린 집을 갖는 게 꿈이었던 때가 있었다.




동별당

<동별당>




대문을 들어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문을 따라 끝까지 가면 동별당이 나온다. 집안의 잔치나 손님을 맞기 위해 50년 전에 새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방과 마루의 모든 벽체가 문으로 되어 있어 활달하고 개방적인 느낌을 준다. 현재는 선교장 주인이 거처하는 곳이다. 문 위에 <鰲隱古宅(오은고택)>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오은은 선교장을 처음으로 지은 이내번의 손자, 이후(李垕, 1773~1832)의 호다. 은둔처사의 표본적인 인물로 유명했던 오은은 아버지 이시춘과 함께 선교장을 크게 확대시켰다.

 



안채주옥

<안채주옥>




이내번이 선교장을 지을 때 맨 처음에 세워진 건물이다. 선교장의 안방마님인 종부가 사는 곳으로 직계 여인들과 함께 지내던 곳이다. 안주인들이 거처하는 곳이라 바깥사람들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던 공간이다. 건물 안에 거실로 보이는 곳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침상이 놓여 있다. 낮에는 손님 접대 등으로 이용하고 밤에는 침대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나무침상은 경교장 주인의 살림살이가 어느 정도였을 지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가구다.

 



열화당(悅話堂)=사랑채

<열화당(悅話堂)=사랑채>




오은 이후가 1815년에 지은 사랑채다. 외벽을 모두 들어열개 문짝으로 만들어 여름에 전부 떼어 걸어놓으면 전후좌우로 통풍이 되어 자연의 흥취를 맛볼 수 있다. 대청마루 앞에 햇볕을 가리기 위해 붙인 차양은 구한말 개화기 때 설치된 것이다. ‘기쁜 이야기라는 뜻의 열화는 도연명의 유명한 시 <귀거래사>에서 따온 말이다. “친척들과 정다운 이야기를 즐겨 나누고, 거문고와 책을 벗 삼아 걱정을 씻겠노라(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며 은둔생활을 즐긴 오은의 삶과 생각이 스며들어 있다.

 



초정(草亭)=초가정자

<초정(草亭)=초가정자>




열화당 뒤뜰에는 으리으리한 기와집과 달리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는 자그마한 초가집이 하나 있다. <초정>이란 이름의 이 집은 1820년 경에 지어졌다. 선교장의 선조들이 자연 속 초가에서 살며 소작인들의 애환을 공유하며 서로 함께 사는 상생(相生)의 길을 닦던 곳이다. 후원에 원추리 군락지가 조성되어 있어 녹야원(蔍野苑)이라고도 불린다. 원추리는 야생력과 번식력이 강해 선교장 가에도 이런 흐름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초정 앞에는 나이 많은 배롱나무가 줄기가 상당히 손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

 



회화나무

<회화나무>




초정을 지나 뒷산의 소나무 숲으로 가는 길 왼쪽에 커다란 회화나무가 서 있다. 나이가 600년 정도 되고 키는 25m, 나무 둘레는 3.8m에 이른다. 회화나무는 한자로 괴화(槐花)라고 한다. 괴는 귀신 와 나무 을 합해 만든 글자로 잡귀를 쫓는 나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 궁궐 마당이나 출입구 부근에 많이 심었다. 서원이나 향교 등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당에도 회화나무를 심어 악귀를 물리치기를 염원했다. 선교장 나이가 300 살이고 회화나무가 600 살이니 이곳의 역사가 매우 깊음을 알 수 있다.

 



송림(松林)=소나무 숲

<송림(松林)=소나무 숲>




선교장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는 멋진 소나무 숲이다. 선교장 동쪽에 있는 둘레길인 청룡길과 서쪽의 백호길을 따라 걸으면 솔향기가 폴폴 나는 송림을 즐길 수 있다. 청룡길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엄청 크고 품위 있는 소나무를 만난다. 나이가 600 살 가까이 되고 키는 23m, 둘레는 3m나 된다. 대궐 기둥으로 손색없을 정도로 곧장 뻗은 몸통을 따라 올라가면 그다지 많지 않은 가지에 혈색 좋은 솔잎이 나 있는 모습에 눈을 뺏긴다. 송림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에 아무리 무더운 여름도 그다지 힘들지 않게 지낼 수 있다.

 



활래정(活來亭) 

<활래정(活來亭)>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연당(蓮塘)이 있고 동쪽 편에 세워진 정자가 활래정이다. 1816년에 세워진 활래정은 선교장 서쪽 태장봉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연당을 거쳐 경포호로 빠져 나가는 활수(活水)가 온다는 뜻이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바람을 맞아 흔들리는 연꽃을 보며 한 여름을 지낼 수 있다. 열화당이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손님을 맞는 곳이라면 활래정은 개방적이고 정겨운 자연미를 벗삼아 여름에 손님을 맞는 곳이다. 활래정으로 드나드는 문 이름이 월하문(月下門)이다.

 



박물관_천군태연

<박물관>




선교장 출입구 왼쪽에 있어 관람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곳이다. 선교장 300년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뜻밖에도 김구 주석의 <天君泰然(천군태연)>이란 글씨를 만난다. 김구 주석이 선교장 주인 이돈의에게 조국 광복을 위해 후원해준 것에 대해 감사의 뜻으로 써준 글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또 추사 김정희의 유묵(遺墨), <紅葉山居(홍엽산거)도 보는 보너스까지 얻을 수 있다. 아기가 첫돌을 맞이했을 때 차리는 돌상에 올려놓은 돈꾸러미 실타래 지필묵 책 등과 조선후기의 각종 생활용품도 살펴볼 수 있다.

 



선교장에서

<선교장에서>




선교장/ 如心 홍찬선

 

땅 길이 넓어지고

물길이 사라졌다

배다리마을도 없어지고

배다리집, 선교장(船橋莊)만 남았다

 

삼백 년은 짧고도 길었다

그 집을 짓고 살았던 사람은 가고

그 집은 차츰 넓어져 국가민속문화재가 됐다

초정 옆 회화나무는 세월을 힘들어 하고

 

시간 앞에 장사 없어도

집 뒤 송림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아직 불끈불끈 젊음을 자랑하며

솔솔 부는 바람으로 발길을 유혹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듯

남아 있는 이름은 지나가 사라진 옛날을

상상으로 되살려내는 부활의 실마리이다







 

 

: 강릉에서 선교장은 오죽헌이나 경포대 등보다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시간 내서 찾아가면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연꽃이 아름답게 피는 7~8월에 선교장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참여하는 맛도 좋다. 다양한 한옥체험 프로그램도 있어 호텔보다 색다른 숙박경험도 할 수 있다. 선교장 근처에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1493) 기념관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아침 일찍 또는 해질 무렵에 경포호로 나가 해돋이와 낙조를 보는 것을 아주 멋진 보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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