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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논산 명재고택에서 충청도양반의 멋을 맛보다 스크랩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 여행(강희갑 작가,홍찬선 작가)





논산(論山)은 보이는 게 논과 산밖에 없어서 붙은 이름이다. 원래 우리말 논뫼였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논은 음을 빌려 으로 뫼는 뜻을 빌려 으로 했다. 1656년에 유형원이 발간한 <동국여지지>에는 논과 뫼를 모두 뜻으로 표현한 답산(畓山)이란 말이 등장했다. 논산훈련소로 많이 알려진 논산에서는 명재 윤증(明齋 尹拯, 1629~1714)이 살던 고택과 노성산성, 은진미륵으로 유명한 관촉사, 계백장군 묘와 탑정호 일몰, 강경읍의 옥녀봉과 연산면의 개태사 등이 유명하다.

   명재고택이 있는 마을은 소론의 거두로 노론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과 날카롭게 대립했던 명재를 중심으로 조선 후기의 정치 및 학계를 주름잡던 인물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충청도 양반의 본거지로 유명하다. 노성향교가 있어 향교말로 불리다가 교촌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명재고택 전경

<명재고택 전경>




명재고택은 조선후기 향촌 사대부 집의 전형적인 전통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 성리학의 가례를 실현한 모범주택으로 유명하다. 집 앞에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원리에 따라 인공으로 만든 연못이 있고, 그 안에 석가산을 만들었다. 연못을 지나면 정면에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이 있고, 그 오른쪽에 사랑채가 보인다. 왼쪽에는 창고로 쓰이는 광채가 있다. 안채의 대청마루가 남쪽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남향집이다. 고택 안채에는 명재의 후손이 살고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명재고택 장독 

<명재고택 장독>




사랑채 옆으로 눈을 돌리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넓은 마당 몇 개를 가득 채운 장독들이 갓 입학한 초등학교 1학년 학생처럼 줄을 똑바로 맞춰 길게 줄서 있다. 장독 옆으로 다가가 걸으면 장 익는 내음이 진하게 코를 찌른다. 이곳에 사는 명재 후손에게 물어보니 교동이라는 브랜드로 된장과 고추장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잊혀가는 장독에서 바람과 햇살을 받아 맘껏 발효되는 장을 맛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장독 너머엔 명재고택의 역사를 드러내듯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우람하게 보초처럼 서있다.

  

 



명재고택 안채

<명재고택 안채>




명재 후손이 안채에서 살고 있어 출입이 제한된다는 안내문이 대문 앞에 세워져 있다. 300년 된 집에 아직도 살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대문이 열려 있어 안을 살펴보니 마침 아무도 없다. 살짝 들어가 창호문을 열어두어 시원하게 보이는 대청마루와 그 위에 걸려 있는 액자를 살펴본다. 은둔하는 곳으로 돌아와 맑게 살고 있다는 뜻의 귀은재청(歸隱在淸)’과 청렴한 관리가 대대로 사는 집이라는 뜻의 청백전가(淸白傳家)’이란 액자가 보인다. 명재의 가풍을 짐작할 수 있는 글귀들이다.

 




노성(魯城)향교 명륜당

<노성(魯城)향교 명륜당>




명재고택을 돌아 나와 오른쪽에 노성향교가 있다. 1878년에 세워진 비교적 최근의 향교다. 향교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있는 것이 학생들의 교육이 이뤄지는 명륜당(明倫堂)이다. 마당 동쪽에는 선배들이 기거하는 기숙사인 동재(東齋), 서쪽에는 후배들의 서재(西齋)가 자리한다. 명륜당 뒤에는 공자와 맹자 등 5성과 10철 및 한국의 18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대성전(大成殿)이 있다. 이 구조는 서울의 성균관은 물론 전국 각지의 향교 모두 똑같다. 항교에는 토지와 노비가 지급돼 경비를 충당한다. 학비는 무료다. 1894년 이후 신학제가 도입되면서 교육기능은 없어졌다.

 



명재고택 사색의 길

<명재고택 사색의 길>




명재고택과 노성향교를 둘러보는 것으로 심심함을 느낀다면 <사색의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고택 오른쪽 언덕길을 지나 전망대와 선비계단을 거쳐 돌아오는 20분 정도의 짧은 길과, 선비계단에서 노성궐리사까지 갔다 되돌아오는 40분 정도의 긴 길이 있다. 노성산성은 <논산8>의 제8경에 해당된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명재고택과 마을의 풍수지리의 모습을 즐길 수 있다.

 




관촉사(灌燭寺) 일주문

<관촉사(灌燭寺) 일주문>




은진미륵으로 유명한 관촉사는 논산8경 가운데 제1경이다. 고려 광종19(968)에 혜명이 불사를 시작해 1006년에 완공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의 유명한 승려인 지안(智安)이 관촉사에 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일명 은진미륵)의 눈썹 사이의 옥호에서 발생하는 빛이 마치 촛불은 보는 것처럼 미륵이 빛난다고 했다고 해서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관촉사가 세워진 뒤 세월이 많이 흘렀음일까? 절과 속세를 나누고 속세에서 절로 들어가는 첫 문인 일주문 안에도 인가가 적지 않다. 음식점에서 곡차도 판다. 어쩌면 속세와 승세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승속불이(僧俗不二)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은진미륵=석조미륵보살입상

<은진미륵=석조미륵보살입상>





관촉사라는 이름보다는 은진미륵이 더 유명하다. 이곳이 은진면이라서 은진에 있는 미륵불이라는 뜻이다. 정식 명칭은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이다. 불상 이름은 만들어진 재질(나무 돌 금동 철 등), 불상이 나타내는 대상(석가모니 미륵불 약사불 관세음보살 등), 그리고 형상(서 있으냐, 앉아 있느냐 등)의 순서로 정한다.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돌로 만든 서 있는 미륵보살이란 뜻이다. 은진미륵은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된 뒤 55년만인 2018420일에 국보323호로 승격됐다. 키가 18.2m, 몸 둘레가 9m나 되는 엄청난 크기에다 단단한 화강암에 새긴 부드러운 선 등이 평가받은 것이다. 귀의 길이만 3m 정도 된다. 은진미륵을 완선하는 데 100명이 37년 걸렸다는 말이 전한다.

 

 



돌 해탈문(解脫門

<돌 해탈문(解脫門>





은진미륵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코로나 퇴치와 가을 풍년, 그리고 분단된 조국이 하루빨리 통일되도록 빌어본다. 미륵보살의 너그러운 미소를 뒤로 하고 돌아 나오다 돌로 만든 돌 해탈문(解脫門)’을 만났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양 옆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를 넓적한 돌을 올려 놓아 만든 문이다. 창덕궁 후원에 있는 불로문(不老門)’이 크고 넓은 돌 한 개를 깎아 통으로 만든 것과 달리 여러 개 돌이 함께 어우러져, 중생이 지고 있는 고민거리를 모두 벗어던질 수 있도록 도아 준다는 뜻을 담고 있는 듯하다. 높지 않아 허리를 굽히고 드나들어 본다. 걱정거리가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탑정호(塔亭湖) 노을

<탑정호(塔亭湖) 노을>





관촉사를 나와 계백장군 묘와 박물관이 있는 곳으로 달린다. 해가 벌써 뉘엿뉘엿 서쪽 하늘로 넘어가고 있다. 하늘엔 10호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검은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문 닫기 전에 도착하려고 자동차 속도를 높였다. 그러다 문득, 하늘이 빨개지는 것이 느껴졌다. 먹구름이 갑자기 사라지고 하얀 솜털구름이 깔리더니 이내 붉은 노을이 삽시간에 덮친다. 과연 신은 있는 모양이다. 불과 30초 사이에 일어난 변화다. 사람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솜씨다. 탑정호에서 낚시를 하던 강태공들도 잠시 황홀한 노을에 빠져 물고기가 미끼를 무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탑정호는 논산시 가야곡(可也谷)면과 부적(夫赤)면에 걸쳐 있는 저수지다. 논산천을 막는 공사를 1941년에 착공해 1944년에 완공했다. 북쪽에 계룡산, 서쪽에 관촉사 은진미륵불이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탑정호 저녁노을에 빠져 있는 사이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계백장군 묘는 다음을 기약하며 계백이 전한 말을 마음속으로 들었다.





탑정호 노을 속의 배 

<탑정호 노을 속의 배>

 





계백이 전한 말/ 如心 홍찬선

 

검은 구름은 솎아내는 그물이었다

하이선은 귀찮은 놈들 걸러내는 체였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만 누린다

체와 그물에 걸리지 않은 사람만 복 받는다

 

때를 아는 게 길을 얻는 길이요

때에 앞서는 것은 반역이다

때에 늦는 것은 일을 그르친다

 

계백은 때를 알았으나

때를 얻지 못해 충신이 되었다

의자는 때도 모른데다

때까지 잃어 망군으로 낙인찍혔다

 

계백의 천사백 년 체증이 풀렸다

계백의 붉은 마음이 빨갛게 쏟아졌다

계백을 기다린 사람이, 오래 마주 선 사람이

보았다 탑정호 눈 깜짝할 새에 단심으로

물들인 계백이 전하는 말 새겼다

 








 

: 명재고택과 관촉사 탑정호 등을 둘러보고 연산의 개태사와 강경의 옥녀봉을 가보면 좋다. 개태사에는 고려를 세운 왕건의 영정이 모셔 있는 유서깊은 절이다. 강경은 군산이 항구로 개발되고, 금강 하구가 하구언으로 막히지 않았을 때 서해안을 오가는 배들이 강경까지 드나들어 유통의 중심지가 됐다. 김구 주석이 인천감옥에서 탈옥한 뒤 은둔생활을 할 때 강경에 들렀다는 기록이 백범일지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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