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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오죽헌에서 찾은 뜻 경포호 신혼부부에게서 찾다 스크랩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 여행(강희갑 작가,홍찬선 작가)







강릉은 먼 곳이었다. 굽이굽이 돌고 돌아 코끝까지 올라온 숨을 바삐 내쉬어야 겨우 오갈 수 있었다. 인적이 끊긴 산길에서는 범과 도둑을 만나 삶과 죽음을 오가기도 했다. 불과 100년 전에만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상전벽해가 됐다. 대관령 속으로 뚫린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면 서울에서 2시간 남짓이면 닿는다. 일요일 이른 점심을 먹고 출발해도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살았던 오죽헌, 허균과 허난설헌의 고택은 물론 선교장과 경포호의 황홀한 해넘이까지 즐길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안반데기를 들르면 쏟아지는 은하수까지 맛볼 수 있다. 강릉은 코로나19로 시달리는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곳이다. 이웃집 마실 다녀오듯 갔다 올 수 있는 강릉의 멋을 느껴보자.

 






오죽헌 입구

<오죽헌 입구>






같은 하늘이지만 다르다. 언제 어디서 누가 보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난다. 긴긴 장마가 끝나고 난 뒤의 강릉 오죽헌의 하늘은 눈부심 그 자체였다. 파란 하늘에 풍덩풍덩 던져진 하얀 구름은 마치 카푸치노 닮았다. 그 맛을 느끼며 오죽헌으로 발길을 옮긴다. 신사임당과 이율곡이 어서 오라고 반기는 듯,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율곡과 신사임당은 500년 뒤의 우리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오죽헌; 몽룡실

<오죽헌; 몽룡실>





오죽헌(烏竹軒)은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몽룡실(夢龍室)이 있는 별당 건물이다. 우리나라 주택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 중의 하나인 것으로 평가받아 보물 165호로 지정돼 있다.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단종 때 대사헌을 지낸 최응현(1428~1507)의 고택이라고 불리는 점으로 미루어 15세기 후반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500 살은 되는 셈이다. 최 씨 집이 이씨 집으로 된 사연은, 남자가 결혼하면 부인 집이나 근처에서 살고 처가 재산을 물려받는 조선시대 결혼제도와 관련이 있다.

 





오죽: 검은 대나무

<오죽: 검은 대나무>







몽룡실이 오죽헌으로 불린 것은 집 뒤에 있는 숲에 검은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랐기 때문이다. 물론 오죽헌에 있는 대나무만 검은 것이 아니라 강릉에 있는 대나무는 대체로 검다. 신사임당이 꿈에서 용을 보고 율곡을 낳았다는 전설이 생기면서 오죽헌이란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오죽 앞마당에는 군자를 상징하는 오래된 배롱나무가 있어 오죽과 좋은 짝을 이루고 있다. 배롱나무는 꽃이 100일 동안 핀다고 해서 나무백일홍이라 부르기도 하고, 매끈한 줄기를 만지만 잎사귀가 간지름을 탄다고 해서 간지름나무라고도 한다.

 





오죽헌 주련

<오죽헌 주련>






오죽헌을 돌아가면 복원된 고택이 나온다. 다른 곳에 있는 유명한 고택과 비슷하지만 이곳 고택에서 눈에 띄는 것은 기둥에 붙어 있는 주련(柱聯)이다. 모두 10폭의 주련이 있는데 명나라 진계유라는 사람이 쓴 <암서유사(巖棲幽事)>라는 시에 나오는 시구를, 추사 김정희의 필적으로 판각한 것이다. 정면 가운데에 있는 주련은 종화춘소설 간록야분향(種花春掃雪 看籙夜焚香, 봄에 눈을 쓸고 꽃을 심으며 밤에 책을 읽으니 향기가 풍겨온다)’는 내용이다. 그냥 지나치지만 말고 주련의 내용을 음미해보면 오죽헌에 온 뜻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오천원에 있는 사진

<오천원에 있는 사진>






고택을 돌아 나와 율곡기념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넓은 마당에서 오죽헌을 바라보면 오천원 지폐에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오죽헌 담장 바깥에 배롱나무가 무성해져서 돈에 나오는 모습과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모양은 그대로 찍을 수 있다. 이 이벤트를 잊는 것은 오죽헌을 찾는 맛 하나를 잃는 것이다.

   





신사임당 화초병풍

<신사임당 화초병풍>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아들을 대학자로 키웠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5만원짜리에 등장한 것은 이런 점이 평가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도 학문과 화초 그림 및 서예로도 일가를 이루었다. 율곡기념관 안에 전시돼 있는 8폭 화초병풍과 초서병풍은 그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만원 권에도 그의 포도그림이 들어가 있다. 어머니와 아들이 화폐 얼굴로 채택된 것은 아마 전 세계에서 유일할 것이다.

 





허난설헌 동상

<허난설헌 동상>







오죽헌을 나와 경포호 부근에 있는 허난설헌(1563~1589) 고택으로 간다. 그는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許筠, 1569~1618)의 누나다. 비교적 자유로운 가풍에서 자란 그는 불행한 천재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여덟 살 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란 한시를 지어 주변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현실에서 겪고 있는 어린이의 한계와 여성의 굴레를 모두 벗어버리고 가상의 신선세계에서 주인공이 되는 자신을 표현했다.

 





허난설헌 영정

<허난설헌 영정>







허난설헌의 비극은 열다섯 살에 김성립과 결혼하면서 시작됐다. 주희 성리학에 고착돼 있어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집안에서의 시집살이는 자유분방하게 큰 그에게 큰 스트레스였다. 시어머니는 시를 짓는 그를 탐탐치 않게 여겼고, 신랑은 그를 이해하기는커녕 밖으로 나돌았다. 게다가 돌림병으로 어린 아이 둘을 잇달아 잃었다. 뱃속의 아이도 유산됐다. 그는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 차갑기만 하다(芙蓉三九朶 紅墮月霜寒)’는 시로 자신의 죽음을 내다봤다.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사망했다. 허균은 누나의 시를 모아 중국에서 <허난설헌집>을 발간했다.

 





경포호 연인과 해넘이

<경포호 연인과 해넘이>







율곡과 신사임당의 아름다운 모자관계와 허난설헌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포호의 해넘이는 황홀하다. 오대산 선자령과 대관령 위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가 연출하는 저녁노을은 밥 먹지 않아도 배부를 정도다. 게으른 왜가리도 고기 잡는 것보다 경포호에 펼쳐지는 해넘이 정경을 보느라 정신을 빼놓고 있다. 사랑 만들기 추억여행에 나선 연인은 노을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 만드느라 옆에 누가 있는지, 시간이 흘러가는지조차 의식하지 않는다.

 





경포호 신혼부부

<경포호 신혼부부>







경포호 신혼부부/ 如心 홍찬선

 

물고기도 사람 사는 게 궁금한 거였다

코로나19로 헉헉 대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 넘는 것 보고 꿈꾸고 희망 만들면서

살아갈 힘 얻는지 알고자 함이었다

 

경포호가 하늘 닮아 발갛게 물들어 가자

물고기들이 여기저기서 퐁퐁 소리를 내며

뛰어 올랐다 이렇게 좋은 날에 기죽지 말고

팔팔하게 살아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이었다

 

오리 가족도 느긋하게 장단 맞추는 거였다

앞에는 엄마가 뒤에는 아빠가 울타리 치고

중간에는 딸 세 마리 아들 세 마리 사이좋게

물살 가르며 어려움이 행복이라고 전해주었다

 

어제 결혼하고 해외 대신 여기로 신혼여행 온

신혼부부 얼굴이 발갛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물결에 삶이 춤추고 무더위도 물리치는 거였다

아이는 얼굴 맞댄 연인 보고 또 볼이 빨개졌다

 









: 강릉하면 경포대 해수욕장과 바다를 떠올린다. 물론 바다도 아름답다. 바다와 함께 오죽헌 선교장 허난설헌기념공원을 거닐며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정동진에서 추억을 쌓는 것도 좋다. 그럴러면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도시 리듬에서 벗어나 느긋하게 자연의 숨결과 역사의 향기를 음미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강릉을 찾으면, 전에 만나지 못했던 색다른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초당두부에 막걸리 곁들인 밥을 먹는 것도 큰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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