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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창덕궁과 창경궁, 후원에서 정조를 만나다 스크랩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 여행(강희갑 작가,홍찬선 작가)




 

창덕궁과 창경궁은 슬픔을 안고 있다. 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의 비극이 얽혀있다. 창덕궁 인정전에서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힌 채 창경궁 홍화문 근처에서 죽었다.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은 정조의 평생 트라우마가 되었다. 흔히 비원이라고 알려져 있는 창덕궁과 창경궁의 후원의 아름다움도 정조의 고통을 달래주지 못했다. 후원은 요절한 효명세자의 숨결이 많이 남아 있어 더 애달프다. 할아버지, 정조를 이어받아 훌륭한 왕이 되려는 꿈을 이루지 못했고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창덕궁에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마지막 어전회의를 한 흥복헌이 있다. 창경궁에서는 사도세자가 죽은 장소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돈화문: 창덕궁 정문

<돈화문: 창덕궁 정문>




창덕궁은 조선시대에 건축된 5개 궁궐 가운데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어, 유일하게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1997). 태종이 1404년에 건립한 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화재로 폐허가 되자, 정궁 역할을 했다. 돈화문은 창덕의 정문으로 보물 383호로 지정됐다. 돈화문 앞에 동서로 이어진 도로가 율곡로다. 이 길은 원래 없었으나, 일제강점기 때인 1931, 배달민족 말살정책의 하나로 흥인지문(동대문)-창경궁-종묘를 관통해 새로 낸 도로다. 현재 돈화문에서 창경궁 앞 원남로 네거리까지 도로를 반지하화 하고 위로는 종묘와 창경궁을 연결하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인정전: 사도세자

<인정전: 사도세자>





인자한 정치를 펼친다는 인정(仁政)전은 창덕궁의 정전이다. 1418년에 지어졌다가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1610년에 복원됐다. 조선 역대 왕들이 이곳에서 정무를 보았고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건물이라는 점에서 국보 225로 지정됐다(1985). 인조가 광해군을 몰아낸 쿠데타가 이곳에서 일어났고, 1728년에 오명항이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고 돌아와 이곳에서 영조를 비롯한 백관의 축하를 받았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 임오화변(1762년 윤513)이 결정된 곳도 이곳이었다.

 




흥복헌: 마지막 어전회의

<흥복헌: 마지막 어전회의>




창덕궁의 가장 안쪽에 있는 중궁전인 대조전(大造殿; 왕비의 침전) 동쪽에 딸려 있는 전각이 흥복헌(興福軒)이다. 흥복헌은 1910822, 순종이 마지막 어전회의를 연 곳이다. 당시 이완용 등 친일주구 경술8적은 순종을 윽박지르고 어새를 훔쳐 일제가 작성한 한일합방조약서에 찍었다. 주권을 일제에 강탈당한 순종은 창덕궁에서 지내다 1926425일 흥복해서 운명했다.





부용정

<부용정>





창덕궁을 둘러보고 후원에 들어가려면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일정한 인원을 정해 해설사가 동반하는 식으로 입장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원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후원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부용지(芙蓉池)라는 연못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이란 사상에 따라 연못 가운데 둥그런 모양의 섬이 있고, 연못은 사각형이다. 부용지 동쪽에 자리 잡은 정자가 부용정이다. 활짝 피어난 한 송이 연꽃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부용정이란 이름이 붙었다. 정조가 이곳에서 신하들과 술 마시며 국정에 대해 한담하다가, 시를 짓도록 했는데 머뭇거리면 벌로 부용지 안에 있는 섬으로 유배 보냈다는 말이 우스개로 전한다.

 




주합루: 규장각

<주합루: 규장각>






부용지 서쪽, 부용정 맞은편에 있는 2층 건물이 주합루다. 1층은 왕실의 도서를 보관하는 규장각(奎章閣)이고 2층은 열람실로 주합루(宙合樓)였다. 요즘은 건물 전체를 주합루라고 한다. 주합루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수문(魚水門)을 지나야 하는데, 왕은 가운데 문으로 서서 들어가고 신하들은 양옆의 작은 문으로 허리를 굽히고 들어갔다. 어수문은 부용지의 물고기가 현명한 물(임금)을 만나 어룡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인재등용의 등용문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주합루는 1776, 정조가 즉위한 해에 완공한 건물로 정약용 박제가 유득공 등의 발자취가 서린 곳이다. 주합루 현판은 정조 친필이다. 보물 1769호로 지정됐다(2012).

 




영화당(映花堂)

<영화당(映花堂)>





부용지 북쪽, 부용정과 주합루 사이에 있는 건물이다. 조선시대 과거 시험장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숙종18(1692)에 재건됐다. 영화당 앞마당이 춘당대(春塘臺)인데 초시에 합격한 응시자들이 마지막으로 시험 치는 곳이었다. 춘당대는 창경궁에 있는 춘당지라는 연못까지 이어진 큰 마당이어서 활쏘기 대회가 열릴 정도였다. 지금은 담으로 창경궁과 나뉘어 있다. <춘향전>에서 이도령이 장원급제할 때 시험 본 곳이 바로 이곳. 당시 시제(詩題)가 춘당춘색고금동(春塘春色古今同; 춘당대의 봄은 옛날과 지금이 똑같다)였다. ‘映花堂이란 글씨는 영조의 친필이다.

 




불로문(不老門)

<불로문(不老門)>





늙지 않고 아프지 않으며 오래 사는 것은 모든 사람의 비원(悲願)이다. 구중궁궐 깊은 곳에 살던 왕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왕은 물론 왕자와 공주들도 전염병이 돌거나 원인을 알지 못하는 병에 걸려 갑자기 죽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순조의 위임을 받아 탕평정책을 펴던 효명(孝明)세자도 21세에 갑자기 훙서(薨逝; 왕이나 왕족의 죽음)했다. 그렇기 때문이었을까. 영화당에서 서북쪽으로 걷다보면 不老門을 볼 수 있다. 평평한 큰 돌을 ㄷ자모양으로 깎아 만든 문으로 문 위에 한자로 불로문이라고 새겨놓았다. 이 문을 지나가면 무병장수한다고 한다. 얼마나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두려웠으면 이런 문까지 만들어 놓았을까

 




의두합(倚斗閤)

<의두합(倚斗閤)>





불로문은 연경당(延慶堂)에 들어가는 문이다. 연경당은 효명세자(1809~1830)가 대리청정 할 때 순조를 위해 지은 건물이다. 1884년 갑신정변 때 김옥균 박영효 등이 고종과 함께 잠시 이곳에 피신했다. 고종과 순종은 이곳에서 내외 귀빈들에게 원유회(園遊會)를 베풀기도 했다. 연경당에 가기 전에 왼쪽에는 애련지(愛蓮池)라는 연못이 있고, 오른쪽에 소박한 건물 2개가 있다. 하나는 의두헌(현재는 기오헌(寄傲軒)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음)이고 다른 하나는 운경거(韻磬居)라는 1칸반짜리 조그만 집이다. 효명세자가 거처하던 곳, 못다 이룬 개혁의 꿈이 구석 어딘가에 남아 있을까

 




존덕정(尊德亭)

<존덕정(尊德亭)>





불로문을 들어가지 않고 직진하면 창경궁 담에 천연기념물 471호로 지정된 뽕나무가 있다. 왕은 쟁기질하고 왕비는 누에치는 것을 모범으로 보이기 위해 궁궐 안에 심은 뽕나무다. 뽕나무를 지나면 관람지와 관람정이 있고, 그 다음에 있는 정자가 존덕정이다. 조선시대 정자와는 색다르게 6각형으로 되어 원래 이름이 육면정이었다. 뒷날 덕성을 높인다는 뜻의 존덕정으로 바뀌었다. 존덕정 천정에는 용이 그려져 있고, 서북쪽 면에는 정조의 만천명월주인옹자서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정조 자신을 만개의 개천에 비친 밝은 달의 주인 노인이라고 하고 그 이유를 적은 글이다. 존덕정 뒤에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있다.

 






부용정 파노라마

<부용정 파노라마>





창덕궁 후원에서/ 如心 홍찬선

 

그때도 이렇게 발갰을까

그리움 이루려 한 그날 단풍

이리도 고와서 아프게 붉었을까

 

한 잔 술에 노론 벽파 시름 덜어

부용지 섬에 유배 보내는 가을 걱정,

추수(秋愁)가 만천명월주인옹의 가슴 물들였을까

 

그 사람 떠난 자리

파란 세월 이끼도 물드는 날

붉은 가을에 화들짝 놀란 새

회초리 되어 겨울로 내리는데

 

예쁜 꽃 빨리 지고 좋은 사람 서둘러 가니

복 듬뿍 쌓은 집집마다 틀림없이 경사 올까

안동김가 풍양조가 권력다툼 속에

백성 살림은 나날이 시궁창으로 빠지는데

 

봄 꽃 이어받은 여름 녹음이

가을 단풍과 겨울 흰 눈 맞을 준비하는 건

돌 다듬어 늙지 않는 문 만드는 것보다

훨씬 건강하게 오래 사는 당연한 이치인데

 

아둔한 눈에는 녹음만 들리고

미련한 귀에는 매미 울음만 보이고

귀찮은 맘에는 사심(邪心)만 그득하다

 








 

팁: 후원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맛이 다르다. 봄에는 꽃, 여름에는 녹음,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눈 덮인 고적함을 맛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애기단풍이 빨갛게 물드는 1110일 전후가 절정이다. 평소에도 예약하기 쉽지 않은데 이때에는 예약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치열하다. 혹서기인 여름과 혹한기인 겨울에는 관람객의 건강을 고려해 존덕정 안쪽의 옥류천 일대를 제외한다. 봄과 가을 평일에 찾으면 조용하게 옥류천 일대의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 취규정까지 후원을 거닐며 왕이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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