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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덕수궁에서 대한제국의 멋과 한을 찾는다 스크랩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 여행(강희갑 작가,홍찬선 작가)



덕수궁의 여름은 요란하다. 가마솥더위가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왕매미 울음이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되새기게 한다. 서울시청 앞에 있는 덕수궁은 수많은 사연을 안고 산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총칼로 침략해 불법적으로 국권을 빼앗아간 현장이 바로 덕수궁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전설 아닌 전설도 내려온다. 고종 때 지어진 석조전은 대한제국역사관으로 아픈 역사를 보여준다. 덕수궁 주위도 대한제국과 관련된 유적이 많다.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한일관계를 이해하려면 덕수궁에 가서 120년 전에 있었던 일을 되새겨 보자. 역사를 보면 현재를 알고 미래가 보인다.




대한문; 덕수궁 정문

<대한문; 덕수궁 정문>


덕수궁은 이름부터가 아픈 역사다. 대한제국 때까지 경운(慶運)궁이었으나,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킨 일제가 덕수(德壽)궁으로 바꾸었다. 글자만의 뜻은 좋으나, 정치에 개입하지 말고 뒷방에 물러나 있으라는 압력이었다. 대한(大漢)문도 슬프다. 경운궁의 대한문은 원래 지금의 서울시청 앞 광장 서쪽 끝부분에 있었다. 일제가 도로를 정비한다는 미명 아래 숭례문(남대문)과 광화문 네거리를 잇는 도로를 새로 내면서 대한문을 서쪽으로 밀었다. 1960년대 도로를 확장하면서 지금자리로까지 더 뒤로 물러앉았다.




중화전; 덕수궁 정전

<중화전; 덕수궁 정전>


중화전은 덕수궁의 정전(正殿)이다. 정전은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왕과 고위관료들이 모두 참석해서 조회하는 장소다.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 창경궁의 명정전, 경희궁의 숭정전이 정전이다. 왕이 실제로 거처하며 정무를 보는 곳은 편전(便殿)이다. 덕수궁 편전은 덕홍(德弘)전이다. 중화전과 덕홍전 등 거의 모든 건물은 1904년 4월14일 밤에 있었던 화재로 소실됐다가 복원됐다. 당시 화재는 일제가 고종을 분시(焚弑, 불태워 죽임)하려고 불을 지른 것이었다. 고종은 다행이 황실도서관이었던 수옥헌(漱玉軒, 현 중명전)으로 피신했다.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중화전 뒤에 대리석으로 된 건물이 석조전이다. 고종이 1900년에 착공해 순종 때인 1910년에 완공됐다. 18세기 신고전주의 유럽의 궁전건축양식으로 황제의 집무실과 거실 및 침실로 지어진 석조전은 아픈 덕수궁에서 가장 아플 것이다. 고종은 황제로서 석조전을 이용하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때는 미술관으로 쓰이다 해방 직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이 됐다. 2005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궁중유물관으로 사용됐다. 나라 운명이 풍전등화일 때 많은 돈을 들여 서양식 궁전을 지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석조전 서쪽에 있는 돌로 된 건물은 덕수궁 미술관으로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것이다.




석어당: 선조 살던 곳

<석어당: 선조 살던 곳>


중화전 동북쪽에 단청을 하지 않은 목재 그대로 드러난 건물이 석어당(昔御堂)이다. 임진왜란 때 백성과 한양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난 갔던 선조가 돌아와 임시로 정치하던 곳이다. 원래 건물은 1904년 화재 때 불탔다. 현재 건물은 화재 직후 다시 지은 것이다. 석어당 마당 오른쪽에 살구나무가 있는데, 덕수궁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다. 봄에 활짝 핀 살구꽃도 덕수궁의 아픔을 함께 할 것이다.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대한문에서 왼쪽으로 가면 정동교회 앞 로터리와 주한미국대사관저로 덕수궁 돌담길이 이어진다. 고즈넉하고 아담한 산책길로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애용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 때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말이 유행했다. 왜 그랬을까? 법원의 역사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쓰이는 건물이 대법원이었다. 그 주위에 여러 법원이 있었고, 당연히 가정법원(현재는 양재동)도 있었다. 이혼을 하려면 가정법원에 가야했기 때문에 그런 말이 생겼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지 않는 법이다.




대한제국군 전투지: 을미의병 발상지

<대한제국군 전투지: 을미의병 발상지>


남대문 옆 서울상공회의소 건물에 ‘대한제국군 서울시가 전투지’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1907년 8월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하자 시위대 제1연대 1대대장인 박승환 참령이 자결했다. 그의 부하들이 무기고를 털어 왜군과 맞서 싸우자 2연대 1대대 병사들도 함께 싸웠다. 그날 오전 내내 치열하게 ‘소의문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조금 옆의 부영빌딩 앞에는 ‘을미왜병 발상지’라는 표지석이 있다. 대한제국 군인들은 대등하게 싸웠지만 무기 부족으로 소의문에서 퇴각한 뒤 민간인들과 함께 국민군이 되어 을미의병으로 계속 투쟁했다.




중명전: 을사늑약 강탈당한 곳

<중명전: 을사늑약 강탈당한 곳>


정동교회 건너편에 있는 정동극장을 끼고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중명(重明)전이 나온다. 길에서 조금 들어간 곳이어서 지나치기 쉽지만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다. 일제가 불법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해 간 을사늑약을 이곳에서 강도 맞았다. 중명전과 덕수궁 사이에 미국대사관저가 있어 의아스러울 수 있으나, 원래 중명전도 덕수궁 경내에 있었다.




을사늑약 조약문

<을사늑약 조약문>


중명전 안에는 을사늑약이 맺어지던 당시의 회의 상황이 재현돼 있다. 또 한문으로 작성된 을사늑약 조약문과 한글 번역문도 전시돼 있다. 조약문을 보면 당시 일본 외교부대신과 대한제국 외부대신의 서명 날인만 있고, 고종의 서명과 어새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교문서에는 국정최고책임자의 서명날인이 있어야 효력이 발생한다. 따라서 을사늑약은 원천적으로 무효다. 이를 근거로 한 외교권 박탈과 그 뒤의 대한제국강점도 원천무효일 수밖에 없다.




이화백주년기념관; 손탁호텔 터

<이화백주년기념관; 손탁호텔 터>


중명전을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 앞으로 가면 왼쪽에 이화여고가 나온다. 옛 이화학당 정문이 있고 그 옆에 이화백주년기념관이 있다. 이 건물이 대한제국 때 외교관들의 사교장으로 유명했던 ‘손탁호텔’이 있던 자리다. 고종은 일제를 견제하기 위해 덕수궁과 그 외곽에 유럽과 미국의 공사관을 유치했고, 손탁호텔도 지어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숭정전: 경희궁 정전

<숭정전: 경희궁 정전>


서울역사박물관 뒤편에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興化)문이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숭정전이 나온다. 경희궁은 영조가 오랫동안 거쳐한 곳이지만, 일제 강점기 때 훼손이 심해 궁이라는 인식이 거의 없다. 요즘은 ‘경희궁의 아침’이라는 주상복합건물이 더 유명하다. 일제는 경희궁을 허물고 그 자리에 일본인 학생을 위한 경성중학교(현 서울고등학교)를 세웠다. 정문인 흥화문은 장충단을 훼손하고 세운 박문사(이등박문 사당) 정문으로 가져갔다. 정전인 숭정전도 가져갔다(현재 동국대 안에 있는 정각원 건물). 한 나라의 궁전을 일개 중학교만도 못하게 여긴 일제의 문화수준을 그대로 보여준 야만행

위였다.




덕수궁 전경: 중화전과 석조전 파노라마

<덕수궁 전경: 중화전과 석조전 파노라마>


덕수궁에서/ 如心 홍찬선

덕수궁에 바람이 분다

긴긴 장마와 불볕 무더위 몰고

코로나19 불청객 한꺼번에 쓸어

한강물에 풍덩 빠뜨릴 바람이

인왕산 너머 가을 가득 안고

시마(時馬) 타고 온다

덕수궁에 새 바람이 인다

총칼로 황제 자리 빼앗고

경운궁에 불 질러 분시(焚弑)하려다

마침내 청산가리로 독시(毒弑)해

나라 빼앗았던 일제를 날려버릴

새 바람이 불쑥불쑥 인다

아무리 모진 북풍한설도

때가 되면 봄을 거역하지 못하고

제 아무리 캄캄한 밤도

새벽에 자리 내 주어야 한다

달도 차면 기울고

물이 바람을 만나면 너울이 되는 법

덕수궁에 바람이 가득하다

울음을 웃음으로 바꾸는 바람

불행을 행복으로 전하는 바람

갈등을 조화로 뒤바꾸는 바람

분단을 통일로 만드는 바람이

아픈 틈, 틈 틈에 차곡차곡 바람이다

팁: 덕수궁은 덕수궁 안과 함께 주변의 역사현장과 함께 둘러보는 것이 의미 있다. 정미의병발상지와 서울시립미술관 및 정동교회, 서울역사박물관과 4.19혁명기념관 및 경교장(김구 주석이 환국해서 거주하던 곳) 등이 그곳이다. 성공회성당 옆에 있는 주한영국대사관 때문에 덕수궁 돌담길이 막혔었는데, 이제는 모두 뚫렸다. 덕수궁 돌담길이 이별길이 아니라 정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연인의 길이 되었다. 서울시 서소문청사 13층에 있는 정동전망대에 오르면 덕수궁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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