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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발해(渤海)의 건축의 백미, 용머리상과 녹유치미, 녹유괴수면와 2016-07-24 스크랩

발해(渤海) 건축 미술 장식 중 백미는 용머리상(石製龍頭像)과 녹유치미(綠釉鴟尾)와 더불어 녹유괴수면와(綠釉怪獸面瓦)이다.
용머리상(石製龍頭像)은 상경성 제1궁전지에서 출토되었는데 건축물의 기단 장식품이다. 머리 부분에 납작하게 붙은 귀와 짙은 눈썹, 양쪽 눈을 크게 뜨고 있고 커다란 눈과 코, 귀밑까지 찢어진 큰 입, 그 사이의 굵은 이와 날카로운 송곳니 이빨 사이로 드러난 커다란 앞니가 위아래 4개씩 표현되어 있다. 목 둘레에는 머리털과 갈기가 새겨져 있는 따위가 사나운 용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상경성 궁전지에서 모두 일곱 개가 나왔는데 원래 궁전 기단부의 석축사이에 끼워 석축을 튼튼히 하는 쐐기 역할을 했다. 녹유치미(綠釉鴟尾)는 지붕 용마루 양끝에 세워 건축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권위를 드러내는 장식이고, 녹유괴수면와(綠釉怪獸面瓦)는 발해 궁전이나 사원 건축물의 지붕을 장식하던 마루 기와의 일종이다.
- 용머리상(石製龍頭) 중국 헤이롱장성 닝안시 상경성 제1궁전지 1933·1934년 발굴, 일본 도쿄대학, 복제품 남북국시대 발해(南北國時代 渤海) 8-9세기 -
- 녹유치미(綠釉鴟尾) 중국 헤이롱장성 닝안기 상성경 1933·1934년 발굴, 일본 도쿄대학, 복제품 남북국시대 발해(南北國時代 渤海) 8-9세기 -
- 녹유괴수면와(綠釉怪獸面瓦), 중국 지린선 허룽시 서고성, 1937년 발굴, 서울대학교박물관, 남북국시대 발해(南北國時代 渤海) -
발해(渤海)는 670년 신라와 당의 전쟁 이후 격동하던 한반도와 주변 정세는 당을 축으로 신라와 발해가 공존하는 국제 관계의 틀이 확립되었다. 그 결과 한반도는 대동강 이남 지역을 통합한 통일신라와 고구려의 옛 땅에서 고구려 계승을 표방한 발해가 새롭게 건국해 남북국시대가 되었다. 발해는 698년 건국하여 926년까지 존속했으며, 당시 주변 국가인 당, 통일신라, 일본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불렀다. 건국 이후 중앙의 3성6부 조직을 완비하고, 전국을 5경 15부 62주로 정리하여 중앙집권화를 추진하고 지방 사회를 효율적으로 통합, 재편해 갔다. 발해는 왕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유교 정치 이념을 수용하고 불교를 통해 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면서 대내적으로는 황제국을 표방했다. 발해 지배층은 건국 당시부터 후기까지, 그리고 멸망 이후에도 지속해서 고구려를 계승하였다고 생각해 왔다.
동아시아 주변 국가들도 발해를 기본적으로 고구려 부흥 국가 또는 후계 국가로 인식하고 있었다. 발해는 이러한 고구려의 전통을 기반으로 세워진 나라였으며, 당을 비롯한 동아시아 주변 국가들과 본격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해 갔다. (자료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주소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 donga.com Jounalog: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3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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