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뛰기링크

문화유산여행

[도깨비 문화유산여행] 알쓸신잡 따라잡기 - 경주 (2) 스크랩

도깨비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알.쓸.신.잡 시즌1!

지난 경주 심화학습 1편에서는 문화유산으로 가득한 경주로 떠났는데요. 재미있게 보셨나요?
1편에 이어 오늘도 바로 저 도깨비와 함께 열심히 경주 곳곳으로 문화유산여행을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주 심화학습 2편! 오늘 남은 키워드는 세가지
#처용 #성덕대왕신종 #첨성대


세 가지 문화유산을 만나보러 GOGO~ !






#처용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선생님의 처용가를 시작으로 처용 이야기가 시작 됩니다.

동경 밝은 달에 밤새 놀러 다니다가
집에 들어와 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어라.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 것인고
본디 내 것이지만 빼앗겼음을 어이할꼬
-처용가, <삼국유사> 中


국어시간에 얼핏 공부해본 기억이 나는 노래죠?
김영하 작가님이 처용가 이야기를 굉장히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밤, 처용이 집에 왔는데 아내와 귀신이 동침을 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난입해서 귀신을 때려잡는데 처용이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니, 귀신이 도망을 갔다고 합니다.

도망을 가면서 한 말이
“처용 얼굴이 보이면 나타나지 않겠다.”
그 후 처용의 얼굴은 귀신 막는 부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처용이 추었던 노래와 춤은 처용가, 처용무가 되었고 궁에서는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에 악귀를 몰아내고 왕실의 평화를 기원하는 새해맞이 행사로 처용무를 추었습니다.



다채롭고 화려한 다섯 가지 색깔의 옷을 입고 추는 처용무는 궁중무용의 화려함과 여유를 보여줍니다.
중요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인 처용무의 원형을 1년 중 딱 한 번 관람 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귀한 처용무를 지금 영상으로 감상해 볼까요?


대본보기
프로그램 동영상 소스코드 정보
대본보기 궁에서는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에 악귀를 몰아내고 왕실의 평화를 기원하는 새해맞이 행사로 처용무를 추었다.
다섯 사람이 처용의 탈을 쓰고 다섯 방향을 상징하는 색깔의 옷을 입고 추는 춤으로 오방처용무라 이르기도 한다.
다채롭고 화려한 색상의 의상이 부드럽고 인자한 모습의 가면과 조화를 이루어 궁중무용의 화려함과 여유를 보여주는 처용무.
음양오행의 원리를 담고 있는 처용무를 만나본다.
처용무란 처용 가면을 쓰고 추는 춤으로 처용설화에서 유래됐다 전해진다.
삼국유사에 이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라는 사람의 아내가 무척 아름다웠는데, 역신마저 흠모해 사람으로 변하여 남몰래 처용의 아내와 동침을 하였다.
처용이 밖에서 돌아와 두 사람이 누워있는 것을 보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자 역신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 뒤 물러났다고 한다.
이때, 처용이 악귀를 쫓기 위해 만든 노래가‘처용가’이고, 덩실덩실 추었던 춤이 ‘처용무’라 전해진다.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처용무는 악귀를 몰아내는 의식을 넘어 궁중 잔치에도 곧잘 등장하는대표적인 궁중 무용으로 정착되었다.
처용무는 궁중에서 추는 춤으로는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가면을 쓰고 추는 춤이다.
처용탈이 팥죽색을 띠는 이유는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와 관계가 깊다.
탈에 사모를 쓰고 좌우에 모란꽃을 꽂고 가운데 복숭아 열매를 장식하는데,복숭아는 잡귀를 쫒기 위한 것이고, 모란꽃은 재물을 불러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신라 때는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1인 처용무였다고 한다.
조선 초기 성현의 [용재총화]에 따르면 “처음에는 한 사람이 검은 장삼에 머리에는 사모를 쓰고 춤을 추었다. 그 후에 오방처용무로 변하였고 세종이 복잡한 내용과 노래의 가사를 고치고 이름을 봉황음이라 하고 궁정악으로 삼았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성종 때에는 더욱 발전해 궁중 의식에 사용되었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섣달 그믐날 전도와 후도 두 차례에 걸쳐 처용무를 추었는데 전도에서는 의식무용으로 오방처용무만 추고 후도에서는 학무와 연화대무와 합설해 무용극 형식으로 공연되었다.
화려하고 장엄한 무용으로 발전된 처용무는 나례의식은 물론 각종 연회, 중국 사신접대 등다양한 궁중 의식에 연희되었다.
처용무는 처용탈을 쓴 다섯 명의 처용이 중앙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이때 수제천 음악이 연주된다. 다섯 사람이 두 팔을 허리에 붙이고 청색 처용부터 홍색, 황색, 흑색, 백색 처용 순서로 등장한다.
나란히 선 다섯 처용은 모두 북쪽인
관객석을 바라보고 처용가를 노래한다.
노래를 마치면 앞을 향하여 절을 하는데 이를 ‘전배’라 한다.
전배가 끝난 후 중앙에 서 있는 노란 옷의 처용을 중심으로 푸른 옷과 붉은 옷, 검은 옷과 흰 옷의 처용이 서로 마주 보고 인사한 후 관객 쪽을 바라보고, 다시 등을 대고 선다.
이 과정이 끝나면 모두 관객 쪽을 향해 돌아선다.
서로 덕을 칭송하는 과정이다.
다섯 처용이 5방위의 각 자리에 서서 추는‘사우작대무’는 역신으로부터 사방을 지키려 한 처용의 모습을 춤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다섯 색깔의 옷은 오방위를 나타내는데 중앙을 의미하는 노란 옷의 처용을 중심으로, 동쪽엔 파란색, 서쪽엔 흰색, 남쪽엔 붉은색, 북쪽엔 검은 옷을 입은 처용이 선다.
가운데 서 있는 노란 옷의 처용은 제자리에서 조금씩 돌고, 사방의 처용들이 왼 쪽으로 원을 만들며 돈다.
‘오방작화무’에서는 중앙의 황색 처용이 흑색 처용, 청색 처용, 홍색 처용, 백색 처용의 순서로 가까이 다가갔다가 마주 돌아서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사방의 네 처용과 개별적인 맞춤을 벌이는 것으로, 시간의 변화인 동지, 춘분, 하지, 추분의 사계절의 시점과 순환을 의미한다.
이 부분이 처용무의 절정을 이룬다. 이어 일렬로 북쪽인 관객 쪽을 바라보고 처용가를 노래한다.
마지막으로 낙화유수의 춤사위, 즉 두 팔을 양쪽 어깨로 들었다가 뿌리는 동작을 하면서 한 사람씩 퇴장한다.
신라시대부터 천년 넘는 시간을 끊이지 않고 전해 내려온 처용무.
사람들은 다섯 빛깔의 처용이 나와 춤을 추면 온갖 사악한 기운이 물러가고 기쁘고 경사스러운 일이 생긴다고 믿었다.

#성덕대왕신종

서양의 종은 귀에 들리고, 한국의 종은 가슴 깊은 곳에 울린다
-<유홍준의 국보 순례> 中


가슴 속에 깊은 울림을 주는 한국의 종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을 꼽아보자면
바로, 1300년간 우리에게 울림을 준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입니다.



“에밀레종”이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하죠?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은 성덕대왕신종을 만들 때 아이를 넣어 종소리가 아이 울음소리 같다는 것에서 따왔습니다.

하지만, 잡학박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제로 에밀레종에 사람을 넣지는 않았을 거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일까요?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이유가 궁금하시죠?

힌트는 “정치”에 있습니다.
힌트를 더 드려보자면, “혜공왕과 반란군 이야기”입니다.
짐작이 되시나요? 서경석님과 함께 영상으로 답을 확인해 보시죠!


대본보기
프로그램 동영상 소스코드 정보
대본보기 1. 오프닝
MC 한상헌 오늘도 아주 흥미진진한 세 가지 보물이
여러분의 선택을 기다립니다.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을 선택하는 시간!
천상의 컬렉션!
오늘도 아주 매력적인 세 분의 호스트가
세 가지 감동적인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었던 보물의 숨겨진 사연,
알려지지 않은 감동적인 스토리가
다채롭게 펼쳐질 텐데요.
호스트의 이야기가, 그리고 보물이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인 바로 그 순간!
버튼을 눌러 이 스튜디오를 밝혀주시면 됩니다.

100분의 현장평가단의 선택으로
이 주의 천상의 컬렉션이 결정됩니다

자,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에는
과연 어떤 보물이 오르게 될까요. 궁금하시죠?
(관객 호응 유도)
바로 만나보겠습니다! (CUE)

2. 서경석 <성덕대왕 신종>

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소리

서경석 반갑습니다
제가 첫 순서여서 저와 여러분의 긴장을 좀 풀 겸
특별한 소리로 시작해 볼까합니다

먼저 파리로 한번 가볼까요?
노트르담 성당의 종소립니다.

이번엔 런던으로 가보죠
대형 탑시계 빅벤의 종소립니다

방금 들으신 서양의 종들은
종 자체를 흔들어야 소리가 납니다
이렇게

? W1-4 : 성덕대왕신종 루핑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종은 어떨까요?
이렇게 나무로 쳐서 소리를 냅니다
서양종과 우리 종 사이에 이런 차이가 있다는 것
정확히 모르셨죠?
모르셨던 분들은 지금 버튼 눌러주면 좋겠죠?
자, 이 소품으로는 우리 종소리 표현이 잘 안되니까
제대로 들어볼게요
어떻습니까? 뎅~ 뎅~ 아주 웅장하고 여운이 길죠
오늘 제가 소개할 보물은 우리나라 종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성덕대왕 신종입니다!

제가 나오기 전에 들었던 심장소리, 기억나시죠?
성덕대왕 신종의 종소리를 음파로 보면
사람의 맥박이 뛰는 것처럼 두근두근 길게 이어집니다
우리의 종, 성덕대왕 신종은
서양종처럼 단순히 귀에만 들리는 게 아니에요
가슴 깊은 곳까지 울림을 주죠

2) 성덕대왕 신종 소리의 비밀

그렇다면 성덕대왕 신종은 어떻게
이렇게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소리를 내는 걸까요?
바로 우리 종이 가진 독창성 때문입니다

종의 맨 꼭대기, 꿈틀거리는 용 한 마리 보이시죠
이 용이 감싸고 있는 게 바로 대나무로 된 피리인데
이게 바로 소리를 깊고 은은하게 만드는 소리통입니다

아름다운 종소리를 듣고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죠
신라 종에서만 볼 수 있는 비천상입니다

그리고 종을 아무데나 치는 것이 아니라
딱 정해진 곳을 치기 때문에 고운 소리가 납니다
야구에서 배트에 공이 딱 맞는 순간!
백발백중 홈런인 바로 그 포인트에 해당하는
‘당좌’라는 곳이 딱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굉장히 치밀하고 과학적이죠

성덕대왕 신종은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만 가진 게 아닙니다
외형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고 무겁습니다
높이가 무려 3.7미터!
제 키가 180 조금 안 되니까 제 키의 두 배가 넘죠
무게는 약 20톤! 20킬로그램 쌀 천 가마입니다
엄청나죠?

3) 제작기간 34년, 에밀레종 설화의 탄생

그런데 사실 성덕대왕 신종의
이런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십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바로 에밀레종 설화에 관한 것인데요

화면에 보이는 문제에서처럼
성덕대왕 신종은 ‘에밀레종’이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죠?
어린아이를 넣었더니 종이 완성되었더라는 이야기
지금부터 그 ‘에밀레종’ 설화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CUE)

? W1-9 : 에밀레종 설화

4) 에밀레종 설화는 정치 고발 설화다?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스님에게 바칩니다
그 아이를 쇳물이 끓는 도가니에 넣었더니
종이 완성됐다는 에밀레종 설화, 끔찍하죠?
저는 이 설화에 뭔가 음모가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집중해 주십시오, 여러분!
성덕대왕 신종을 누가 만들었을까요?
이름 그대로 성덕왕이 만들었을까요?
성덕왕은 종을 만들 생각조차 안 했습니다
그럼 누가 만들었냐?
일단 성덕왕의 아들인 경덕왕이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덕왕이 죽자 나라에
이상한 일이 계속 벌어집니다.
해가 두 개가 뜨질 않나,
혜성이 떨어지질 않나,
다리 다섯 달린 기이한 동물도 태어납니다
불안했겠죠?

그래서!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선왕인 성덕왕의 업적을 기리고
점점 쇠락하는 나라의 기운을 불심으로 되살려보고자 종을 만들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한 번에 만들지 못합니다
실패의 실패를 거듭하다가...
결국 경덕왕 대에 완성 못하고
무려 3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려
그다음 왕인 혜공왕 대에야 완성되죠 그런데 말입니다요
여기서 우리는 ‘혜공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혜공왕은 여덟 살에 왕이 되었어요
정치를 하기엔 너무 어렸습니다
그럼 누가 했을까요?
바로 엄마가 합니다
엄마인 만월부인이, 그런데 혼자 안 했어요
자기 오빠랑 같이 해요

성덕대왕 신종에는
총 천 자가 넘는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 ‘김옹’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는데요
맡은 직책이 8개나 돼요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장, 국방부장관 같은
중요 보직을 혼자 도맡고 있어요
이 사람이 바로 만월부인의 오빠,
그러니까 혜공왕의 외삼촌입니다!

어린 혜공왕은 허수아비 취급당하고
엄마, 외삼촌 둘이서 좌지우지! 다 해먹은 거죠
국정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제멋대로 흔들었으니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겠죠
씁쓸하지만 우리도 낯설지 않은 얘깁니다

5) 어린 혜공왕의 고군분투로 완성된 성덕대왕 신종

아무튼 혜공왕은 만월부인과 김옹의 횡포가 심해질수록
성덕대왕 신종에 필사적으로 매달립니다

다른 건 다 엄마와 외삼촌에게 휘둘려도
아버지인 경덕왕이 신신당부한 유언을 떠올리며
성덕대왕 신종을 반드시 완성하여
불심으로 위태로운 신라를 지키려고 했던 겁니다

혜공왕은 아버지인 경덕왕과
할아버지인 성덕대왕에 대한 효심이 대단했습니다

신라에는 ‘오묘제’라고 해서
역대 왕의 넋을 기리는 제사가 있었는데
매뉴얼처럼 정해진 다섯 왕이 있습니다

신라의 건국 시조 미추왕,
그리고 진지왕, 문흥왕, 태종무열왕, 문무왕!
어리지만 효심이 뜨거웠던 혜공왕은 왕의 명단을 바꿉니다

객관적으로 조금 덜 유명한 문흥왕, 진지왕을 빼고
대신 자기 아버지랑 할아버지를 싹 끼워 넣습니다

이렇게 부친과 조부에 대한 효심이 강했던 혜공왕은
조상님과 부처님의 힘으로
꺼져가는 신라를 어떻게든 되살리기 위해
성덕대왕 신종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을 겁니다

6) 에밀레종 설화, 반란군의 음모 아닐까?

하지만 혜공왕은 스물셋이라는 젊은 나이에
반란군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됩니다

반란군들은 자신들의 반란을 정당화하기 위해
에밀레종 설화를 만들어서
‘혜공왕은 엄마와 외삼촌의 손아귀에 놀아난 무능한 왕이다‘
‘백성을 보살피지 않고 종을 만들기 위해
아이를 희생시킨 혜공왕의 처단은 정당했다’라고
외치고 싶었을지 모른다는 것이죠

여러분, 오늘부터는 ‘에밀레~ 에밀레~’라는 소리가
종에 들어간 아이의 울부짖음으로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아들을 뒷전에 두고
오빠와 함께 마음껏 권력을 휘둘렀던
어머니를 원망하며
나라를 살려내고자 했던
혜공왕의 의지의 울부짖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버튼 꾹~~~!!! (CUE)

MC 한상헌 어린 왕의 슬픈 사연이 담겨 있는
<성덕대왕 신종>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에밀레종 설화에 이런 정치적인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아주 놀라웠는데요.
이제 서경석 씨의 최후의 한마디와 함께
중간투표를 마감하겠습니다.
서경석 씨, 최후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8) 최후의 한마디

서경석 나라의 혼란을 극복하고
신라의 중흥을 바라는 마음으로
어린 혜공왕이 만들었던 성덕대왕 신종은
현재 훼손 우려 때문에 타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전의 기록만 남아있는 상황인데요
그 소리, 다시 한 번 들어볼까요?

이 소리가 시청자 여러분이 계신 곳곳에 울려 퍼져서
혼란스러운 대한민국이 다시 밝아지길 바랍니다


## 최후 한마디 듣고 난 뒤

MC 한상헌 서경석 씨의 최후의 한마디를 끝으로
<성덕대왕 신종> 투표가 마무리됐습니다
서경석 씨,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박수 부탁드립니다.

3. 방은진 -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1) 빛바랜 종이와 사진의 정체

방은진 익숙한 분들이죠?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
한 번쯤 본 기억 있으실 거예요.

특히 화난 표정으로 카메라를 노려보는 이 분.
누군지 아시겠어요?
“님은 갔습니다.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님의 침묵이라는 시, 많이 외우고, 읊으셨던 시.

네, 조국을 님에 빗대어 그 아픔을 표현한
한용운 시인이십니다.
애틋한 시와 달리 표정은 상당히 매섭죠.

이 빛바랜 사진은 이 종이 한 장에 담겼어요.
이름과 직업, 신분 그리고
키나 몸무게, 사는 곳, 생년월일 등이 기록되어있죠.

이런 분 뿐만이 아닙니다.
15살 빡빡머리 남학생부터
버스 기사, 간호사 그리고 식당 주인.
고령의 72살 어르신까지.
이들 모두가 저 낡은 흑백 사진 속에 담겨있죠.

그리고 저 사진들은
자그마치 6,000여 장이 넘습니다.
모두 한 자리에서 발견됐어요.

그런데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이들의 기록이 남겨진 날짭니다.
대부분 1919년 3월 이후거든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네, 삼일운동!
무려 국민 200만 명이 참여한 독립운동이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들고 일어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죠.

물론 일본은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독립 운동가들을 샅샅이 찾아 감옥에 가뒀습니다.

그리고 그때, 일본인들이 이 카드를 작성합니다.
바로 일제 감시대상 인물 카드.
이 인물카드 속 인물들은
대부분 형무소에 갇혔던
수형자였습니다.

3) 인물 카드 속에 감춰진 진실

이분들 대부분은 수의를 입고 있어요.
그런데 조금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도 있고요,
부부가 함께 다정히 찍은 사진도 있네요.
분명 이건, 수형소 안에서 찍은 사진은 아닙니다.

게다가 이분들은 단체 사진이에요.
어떤 단체일까요?
의열단이라고 들어보셨죠?
이분들은 단순히 만세를 외치는데 그치지 않았어요.
조금 더 스케일이 컸죠.
일본 관리들의 암살작전이나 관공서 폭파 같은
대규모 일들을 실행에 옮겼어요.

특히 이 분, 한 번 주목해보시죠.

영화 암살에서는 조승우 씨,
그리고 밀정에서는 이병헌 씨가 했던 역할
“나 김원봉이요.”라고 말하던.
그 독립운동가 김원봉 선생의 실제 모습입니다.

일설에 따르면 일본인들이 당시 걸었던 현상금이
100만 원 이었다고 해요.
지금으로 치면...최고 3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죠.

일본인들 입장에선
검거 0 순위였을 거예요.

결국 이 인물카드는 단순히
수형자 관리 목적만이 아니었습니다.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선 이들을
검거하기 위한 "수배자 카드"였던 셈이죠.

4) 수상한 사진사 (일본인들의 사진 수집 방법)

당시 일본인들은 인물 카드를 이렇게 불렀어요.
‘범죄인 명부’ 자신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저항하는 조선인들을 ‘불령선인’이라고 부르며
수배자 카드로 만든 겁니다.

한참 시끄러웠던, 저도 그 선상에 올랐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시초가
바로 이 인물카드가 아니었을까요.

수배 카드를 만들기 위한 일본인들의 노력은
치밀했습니다, 밀정. 들어보셨죠?

당시 밀정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아시나요?
네, 역시 영화의 힘은 위대!
사진사였습니다.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척 하거나
기념으로 단체 사진을 찍어주고는
그 사진을 일본 경찰에 넘겼죠.

그리고 그 사진이
수배자 카드로 둔갑을 한 겁니다.

5) 삶을 던진 독립 운동가들
이렇게 검거된 사람들을 기다린 건
차가운 형무소에서의 모진 고문이었습니다.
얼마나 지옥 같았을까요.

현대처럼 범죄자의 인권이라는 개념이 있었을까요?
없었겠죠. 최악의 상황에서 영양실조나 폐렴으로
죽는 사람들도 속출했어요.

여기 이 분들 누군지 아시나요?
사실 모두 같은 사람이에요.
아셔야 되는데? 일단 모르겠다? 꾹 눌러주시고!
힌트는? 세월! 잔인한 세월.
바로 도산 안창호 선생, 한 사람의 사진입니다.
전혀 다르죠?
형무소에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셨는지..
. 사진을 통해 확인 됩니다.
아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겁니다.
그들의 신념, 그 간의 고통이 저 흑백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CUE)

6) 사라질 뻔 한 기억, 인물 카드

김관신 씨. 이분은 식당 주인이었어요.
고종의 국장이 있던 날 독립만세를 외치고
체포됩니다.

지금으로 치면 광화문 일대의 많은 음식점 중
한 곳의 주인이 촛불집회 보다가
구호에 맞춰 한 마디 외쳤다는 이유로 끌려간 것과
같습니다.

강병학 씨는 당시 18살로
자동차 운전수였어요.
이 청년은 일본군에게 폭탄을 던지고 잡힙니다.
자신의 청춘을 국가의 미래와 맞바꾼 것이죠.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담긴 인물 카드는
총 6,264장이었는데요,
이 가치를 모르고 누군가 버렸더라면
잊혀졌을지도 모르죠.

과연 이게 전부였을까요?
아닙니다. 당시 인물 카드에 기록된 번호를 보면,
6만 5천 번이 넘습니다.
즉 최소 6만 명 이상의 기록이 있던 겁니다.
하지만 발견된 카드는 10분의 1도 되지 않죠.

아마 해방 후 일본 경찰이나 친일파들이
적극적으로 폐기하지 않았을까...짐작되는데요,
다행히 그 중 6천여 장이 발견된 겁니다.
여기서 자,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눌러주세요!

7) 평범한 이들이 이뤄낸 독립

그들 대부분은 농사를 짓는 농민이었고
서점주인, 약국 알바생, 혹은 버스 안내양, 주부
그리고 어린 학생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임산부도 있었고요.

정말 지극히 평범한 이웃들이
목숨을 걸고 대한의 독립을 외친 겁니다.

하지만 이분들의 업적은 제대로 평가받고 있을까요.

이들의 희생으로 누리는
우리의 삶에 대한 보답은 이 인물카드를 통해
이들을 기억하는 것, 아닐까요. (CUE)

MC 한상헌 빼앗긴 나라를 찾고 역사를 바로 잡으려던
우리 독립 운동가들의 처절한 외침이 담긴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과연 얼마나 많은 현장 참여단들이
독립 운동가들과 뜻을 함께 했을까요.
방은진 감독님의 최후의 한마디와 함께
투표 마무리하겠습니다.

9) 최후의 한마디

저희 어머니는 당신의 아버지와 찍은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어요.
외할아버지께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다
돌아오지 못하셨거든요.
성도 바꾸셨고, 언제나 육혈포를 지닌 체
만주를 활보하셨다고 합니다.

오늘 설명한 이 인물 카드 속에
저희 외할아버지는 계시지 않습니다.
아마 우리 역사 속 수많은 분들이
저희 외할아버지와 같으실 거예요.

이 인물카드 속에 있는 분들도,
그리고 없는 분들까지.
우리는 꼭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또 반복될 테니까요.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듭니다.

MC 한상헌 방은진 감독님의 멋진 최후의 한마디 잘 들었습니다.
이제 <일제 감시대상 인물 카드> 투표가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방은진 감독님,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여러분 박수 부탁드립니다.

4. 김응수 - <김정희 세한도>

1) 외롭고 쓸쓸한 그림 국보180 세한도

외로운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쓸쓸하고, 춥고, 공허합니다.
제목은 세한도.
세한, 우리나라 말로 설을 전후한 날의 추위입니다.
1년 중 가장 추운 날을 그렸죠.

그림을 보고 난 뒤 반응이 다~ 똑같습니다.
한번은 극단 젊은 후배에게
이 그림을 보여준 적이 있어요.
‘엄청 쓸쓸하네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림을 볼 줄 알건 모르건
쓸쓸하다. 지독하게 쓸쓸하다. 이걸 느낍니다.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는
제겐 단연 세상 최고의 그림입니다.
오죽하면 이 그림을 우리집 현관에
나무로 음각해서 붙여 놨습니다. 매일 보려고요.

2) 미래가 보장된 당대 최고의 세도가 김정희.

김정희, 다들 들어는 보셨을 거예요.
추사체, 이 분 글씨만 봐도 인격이 보입니다.
증조할아버지가 무려 영조의 사위! 금수저죠. <

당시 청나라면 최고 선진국! 지금 미국 같은 나라인데,
거기서도 최신 유행학문 금석학으로
수많은 팬까지 거느리고, 이름을 날렸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그때 북한산에 천년 넘게 글씨를 알아 볼 수 없던
비석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김정희가 이 명문을 해석해 내서,
누가, 뭐라고 쓴 비석인지를 밝혀냅니다.
이것이 바로 신라 진흥왕 순수비!
천재죠.
문학자이자 고고학자이자 역사학자.
모든 학문을 꿰고 있는 천재 김정희여서
가능했던 겁니다.

게다가, 다음 왕이 될 사람이 누구였냐면, 효명세자.
차기 왕, 효명이 그렇게~ 김정희를 좋아해서
스승으로 모셨다고 하니, 얼마나 잘나갔겠어요.
당시 효명은 대리 청정을 맡아 안동 김씨를
견제하던 왕실의 핵심 인물이었죠.
그런 사람의 스승이었던 김정희는
앞날이 창창한 예비 실세였던 셈이죠.

3) 1840년 유배, 그리고 그의 인생에 찾아온 세한.

그런데 갑자기 효명세자가 요절을 하고,
안동 김씨들이 효명의 사람들을 몰아냅니다.
스승 김정희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었죠

조선에서는 죄질이 나쁠수록 먼 곳으로 귀양 보냅니다.
그럼 거의 사형 직전의 죄인은 어디로 유배 보냈겠어요.
조선의 땅 끝, 망망대해로 둘러싸인 제주도죠.

지금이야 제주도가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의 여행지지,
걸어서 근 한 달하고도 배로 이틀이 걸려서,
제주도 모슬포,
사람이 못 살 데라 모슬포라 불렸던 곳에 도착합니다.

집에는 가시나무를 둘러서
외부인 출입까지 금하는 위리안치형에 처했어요.
정권에게 완전히 찍혀버린 정치범인 셈이죠.
금수저로 태어나 외국까지 명망을 떨친 천재였던 양반이
귀양지에 갇혀버린 겁니다. (CUE)

3) 세한에 찾아온 보석같은 한 친구.

어느덧 김정희는 더 이상 서울에 있는
친구들과 연락이 닿지 않기 시작합니다.
요즘말로 정권에 찍힌 사상범,
누가 연락이나 했겠습니까.
그야말로 가시나무에 둘러싸인 섬에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날의 연속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책이 한 수레 보내집니다.
청나라의 신상 책! 경세문편이란 책 세트였어요.
누가 보내줬느냐.
자신의 제자, 이상적이었습니다.

조선에서 구하기 힘든 귀한 책들.
그 당시 잘나가는 실세들한테 선물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이상적은 그렇지 않았어요.
귀양 가고, 패가망신한,
끈 떨어져서 뭐하나 해줄 수 없는 나한테 보냈어요.

이게 바로 보답을 바란 게 아닌, 진짜 선물인거죠.
이 때 심정이 어땠을까요?
정권에 찍혀서 쫓겨나간 나 같은 놈!
다들 모르쇠 하고 죄다 떨어져나갔는데,
내 옆에 마지막까지 있어주는 단 한사람을 찾았습니다.

그 고마운 마음에 김정희는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게 이 세한도죠.

우선시상(藕船是賞). ‘우선’은 이상적의 호입니다.
우선은 감상하게나 라고 쓰고,
‘장무상망(長毋相忘)’.
도장으로 찍었습니다.
장무상망.
우리,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

김정희는 아마 세상에 딱 하나!
단 하나!
남은 이 친구를 절대 잃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이상적은 추사에게 남은 단 하나이자 전붑니다.

그래서 전 ‘장무상망’을 글이 아니라,
일부러 도장을 새겼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은 모두 떠나갔지만.
제발 이 친구만큼은 제 옆에 남아 있게 해주십시오.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장을 새기고, 찍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4) 인생의 세한을 버틸 수 있게 해준 단 하나의 힘.

이 그림을 다시 한 번 천천히 봅시다.
누추하고 볼품없는 집.
하지만 이 초라한 집만 있느냐? 아니죠.
그 옆에는 아무리 추운 겨울이더라도 여전한,
변함없는, 푸른빛을 간직한
소나무와 잣나무가 함께 있습니다.
추사에게 변치 않았던 친구, 이상적처럼 말이죠.
서울서 잘나갈 때, 다들 옆에서 아부할 땐 몰랐겠죠.
그런데 추운 날을 맞이하니까 비로소 알게 된 겁니다.

추락한 나.
실패한 나.
초라하고 볼품없는 나.
하지만 내 옆 에는 나를 여전히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단 한 사람이 있습니다.

5) 세한도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설을 전후한 가장 추운 날, 세한.
왜 추사는 1년 중에 가장 추운 계절을 그렸을까요?

잘나가고 주변에 사람들이 넘칠 땐 차마 알지 못하죠.
하지만 이 추운 계절, 시련이 오면
비로소 따뜻함이 뭔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세한을 그린 겁니다.
따뜻함을 알기 위해서 추위를 그린 겁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차가운 그림이 아닙니다.
따뜻한! 정녕 따뜻한 그림인겁니다.

간절히 기도했는데, 실패했습니다.
이룰 거라 생각했던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는 나아질 것이 하나 없습니다.
혹독한 절망이 찾아올 때,
무엇이 우릴 버텨내게 합니까.

그때, 우리를 살게 하는 건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 단 한 명.
여전한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어떤 세찬 겨울에도 버틸 수 있다는 사실.
그 따뜻한 위로의 말을 이 그림이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겁니다. (CUE)

★MC 한상헌 자 어떻게 보면 고고했던 김정희를
따뜻한 남자로 만든 정말 따뜻한 그림이군요.
이제 이야기 여기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김응수 씨가 소개한 <세한도>
최후의 한마디를 들어볼까요?

7) 최후의 한마디

김응수 지금 인생 가장 추운 날에 서 계신 분들. 이 따뜻한! 그림을 떠올려 보시고,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가장 추운 날 내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에게 고맙다. 고맙다 인사 한번 해보면서 이 차가운 계절을 견뎌 봅시다. 감사합니다.

MC 한상헌 김응수 씨의 최후의 한마디를 끝으로 <김정희 세한도> 투표를 모두 마감했습니다. 김응수 씨,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여러분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5. 최종 투표 및 클로징

MC 한상헌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 천상의 컬렉션!
자, 호스트 세 분의 경연이 모두 끝났는데요. 서경석 씨의 성덕대왕 신종, 방은진 감독님의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김응수 씨의 김정희 세한도까지 아주 흥미진진했는데요. 패널과 현장평가단 100인의 중간 투표! 그 결과가 아주 궁금한데요.

MC 한상헌 (MC 결과 듣고) 중간 투표 결과! OOO의 OOOOO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습니다.

VER 1) 아직까진 아슬아슬 합니다. 최종투표 결과가 더욱 중요해 졌습니다.

VER 2) 차이가 많이 나는데요.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릅니다. 지금부터 진행되는 최종 투표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데요, 이렇게 되면 지금부터 여러분의 선택은 더욱 더 중요해집니다.

MC 한상헌 자, 패널과 현장 평가단 여러분, 이제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 이 대단한 보물 가운데 단 하나만 선택하셔야 합니다. 너무 어려운가요?

## 호스트 서경석, 방은진, 김응수 모두 무대 위로 등장

MC 한상헌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 천상의 컬렉션!

이제 마지막 결과 발표만 남아 있습니다. 과연 어떤 보물이 이번주 천상의 컬렉션에 오르게 될까요? 최종 결과! 보여주세요! (CUE)

오늘 천상의 컬렉션에는 호스트 OOO씨의 OOOO가 올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1등 하신 OOO 씨,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 1등에게 소감

호스트 (* 1등 소감 및 프로그램 참가 소감)

## 2등, 3등에게 이 프로그램 참가한 소감

MC 한상헌 아쉽게도 이주의 천상의 컬렉션엔 오르지 못했지만 멋진 무대 준비해 주신 두 분의 소감도 들어봐야죠. 준비를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어떠셨나요?
? W0-2 : 타이틀 루핑_01
호스트 (차례대로 나머지 두 분 프로그램 참가 소감)
## 패널들에게 천상의 컬렉션 소감
MC 한상헌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패널 분들의 이야기도 안 들어 볼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
OOO 씨 오늘 와서 직접 보시니까 어떠셨나요?

패널들 (차례대로 나머지 두 분 프로그램 참가 소감)

MC 한상헌 (* 현장평가단에게 감사 인사 부탁드립니다.) 이번 주 천상의 컬렉션은 치열한 경합 끝에! 000의 00000이 선정되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불을 밝혀 줄 단 하나의 보물! 단 하나의 이야기! 다음주도 기대해주세요. 지금까지 천상의 컬렉션이었습니다.


성덕대왕신종에 숨겨진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은 사실 2003년 10월까지 타종을 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유시민 작가님께서 어렸을 적에 종소리를 들으셨다고 하네요.
그런데 어릴 적에 듣던 종소리와 현재 녹음된 종소리가 다르다고 하는데요.
왜 그런 걸까요?

녹음된 종소리는 종 가까운 곳에서 녹음을 하였고 유시민 작가님이 듣던 종소리는 먼 곳에서 들었기 때문이랍니다. 거리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들린다니,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맥놀이 현상” 때문입니다.
“맥놀이 현상”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주파수가 간섭을 해서 발생하는 것인데요. 이 “맥놀이 현상”은 끊어질 듯~이어질 듯한 다양한 음들을 만들어냅니다.
맥놀이 현상은 우리나라의 다른 종에서도 느껴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덕대왕신종은 가볍지 않고 조금은 묵직한 소리를 낸답니다.

그러면 이제 묵직~한 맥놀이로 심금을 울리는 성덕대왕신종의 소리를 직접 들어보러 가볼까요?

대본보기
프로그램 동영상 소스코드 정보
대본보기 1300여년, 세상을 울리는 성덕대왕 신종입니다.
경주 국립박물관의 야외 전시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문화재, 국보 제 29호인, 성덕대왕 신종입니다.
그 명성답게,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성덕대왕 신종, 종에서 에밀레~ 하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난다고 해서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립니다.
맑고 청아한소리에 가려, 그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었던 성덕대왕 신종, 비천의 형상을 동종에 새긴 섬세함은, 그 아름다운 소리에 못지않습니다.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종의 하단부, 곡선으로 길이를 달리해 둔 모습은 단지 디자인만을 고려한 것이 아닙니다. 육중한 무게의 종에서 맑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300여년을 이어올 수 있는 성대대왕 신종의 소리, 그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끊어질 듯 이어지는 울림... 심금을 울리는 이 소리는 성덕대왕 신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톤에 달해 세계 최대규모를 자랑하지만, 제작과정에 깨져 한 번도 쳐보지 못했고, 그 유명한 자유의 종도 깨친 상탭니다. 이에 반해 성덕대왕 신종은 어떤가요..
러시아, 미국의 종과 마찬가지로 동으로 만들었지만, 우리의 종은 1,300여년을 문제없이 견뎠습니다. 당시 신라의 기술이 얼마나 좋았기에 이런 일이 가능한걸까. 이번엔, 종의 소리를 한번 들어볼까요..
진동하듯 울려 퍼지는 소리..이는, 한국의 종에서만 볼 수 있는, 맥놀이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맥놀이 현상: 주파수의 차이가 근소한 두 개의 파동이 간섭을 일으켜두 음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현상끊어질 듯 이어지는 여운의 비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종을 칠 때 울리는 울림통의 깊이 차이가, 은은하게 여운을 내며 펴져간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다른 종의 소리는 어떨까..
맥놀이는 있지만, 소리가 가볍습니다. 조금은 묵직~한 소리를 냅니다. 성덕대왕 신종 맑은 소리가 울림통을 통해 퍼집니다. 성덕대왕 신종에는 글이 하나 새겨져 있습니다.
- 그 모양은 큰 산이 선듯하고 소리는 용이 우는 듯하여 위로는 하늘 끝까지 그 소리가 울려 퍼지고 아래로는 지옥에까지 그 소리가 스며들어가니 종을 본 사람은 기이하다고 하고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복을 받을지어다
-성덕대왕 신종에 새겨진 명문 중에서 고대 범종의 역사를 새로 쓴 위대한 걸작, 1300년 전 구리로 빚어낸 성덕대왕 신종입니다.

#첨성대

경주에는 정말 많은 문화유산들이 있지만, 지금까지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문화유산은 유일합니다. 바로, 경주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첨성대”입니다.
첨성대에 관해서는 여러 말들이 있습니다. 황교익 선생님이 말하신 것처럼 천문대가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는 말도 있고, 선덕여왕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기 위한 장치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논쟁 속에서도 첨성대의 역사적 가치는 대단합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에 지어져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보수 없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고대건축물입니다. 무려, 1300년이 넘게 그 원형을 유지한 첨성대. 정말 대단하죠? 도대체 어떻게 첨성대는 13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일까요?

답은 바로 “첨성대 안”에 있습니다. 첨성대 내부 구조를 보신 적이 있나요? 첨성대 내부에는 바닥부터 출입문까지 자갈과 흙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자갈과 흙이 요즘의 시멘트와 같은 접합제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요. 밖에서 봤을 때는 첨성대 안이 이렇게 생겼으리라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볼록한 치마 같은 하단부에 흙과 자갈을 섞어 첨성대를 지탱하게 하여 지금까지 첨성대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첨성대 내부가 궁금하시죠?

더 자세한 설명과 함께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대본보기
프로그램 동영상 소스코드 정보
대본보기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대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랜 천문대로, 1300여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변함없이 서 있을 수 있는 첨성대, 그 비밀은 무엇일까요?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반월성과 대릉원 사이 벌판에 우뚝 서 있는 첨성대..
특이한 점은, 7세기 중반, 신라시대 선덕여왕 때 세워져 지금까지 단 한번의 보수나 개축이 없었다는 겁니다. 고대 건축물 중에 유일하게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첨성대가 갖는 의미는 특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3층 건물 높이에 달하는 첨성대의 돌의 개수는 음력으로 1년을 의미하고, 단의 수는 신라 27대 선덕여왕을 상징한다고 전해집니다.
쌓아올린 돌의 개수와 단의 수에서도 그 치밀함이 엿보이는 첨성대, 천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 현재까지 그 모습을 유지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첨성대의 축조방식을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 대전 국립 문화재 연구팀이 함께 했습니다.
실측결과, 첨성대는 1300여년 이란 세월 속에 미세하게 기울어져 있을 뿐이었고, 첨성대를 이룬 화강암의 강도는 콘크리트에 2배가 될 정도로.. 아직도 견고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재료의 선정과 건축기술에 있어 뛰어났음을 보여주는데, 그렇다면, 내부 구조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첨성대의 출입문은 독특하게도 중간 위쪽 부분에 위치해 있습니다. 출입문 아래에는 당시, 사다리를 댔던 흔적이 보입니다. /왜 출입구가 높은 곳에 있어야 했을까요?/어쩌면 그 안에 비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문화재 연구팀의 도움으로, 늘 궁금했던 첨성대 내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첨성대의 내부는 조직적으로 돌을 쌓아 두른 모습이었습니다.
(여유)그리고, 그 위로 하늘이 보이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첨성대의 바닥을 보면, 출입문 4.5미터 높이까지 자갈과 흙으로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갈과 흙의 적절한 배합은 1300여년 동안 첨성대의 좋은 배수로 역할을 했습니다.
자세히 보면 바닥 뿐 아니라, 쌓아 올린 단에서도 흙과 자갈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요즘의 시멘트와 같은 접합제 역할을 했습니다.
안정적인 볼록한 아치형 하단부를 만들어 흙과 자갈을 적절히 섞어둔 건, 첨성대를 지탱하게 한 힘이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첨성대가 1300여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던 비밀입니다.
당시 신라인의 건축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알 수 있는데, 지진으로 100여명이 사망했던 당시에도,무너지지 않았던 기록이 전해집니다.
몸체를 비집고 나온 이 돌 역시, 건축기술의 과학성을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내부 구조를 가로지르는 돌의 끝부분으로, 이 길다란 돌은 둥근 구조를 잡아주어 첨성대의 견고함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돌은 상층부로 올라가는 받침대 역할까지 했습니다.
신라인들은 이런 모습으로 상층부 꼭대기에 올라갔을거라 여겨집니다.
그렇게 첨성대에 오르면, 보이는 판석 하나. 한 명 정도 앉을 크기의 판석으로, 신라인은 이 위에 앉아 천문을 관측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 최초의 천문대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자랑스런 우리의 문화유산 천문대. 여전히 신비에 쌓인 채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천문대는, 신라인의 건축과학이 빚어낸 자존심으로, 1300여 년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습니다.


문화유산의 비밀로 가득한 경주이야기는 다음 문화유산 키워드에서도 이어집니다~!

다음편도 기대해주세요~

댓글등록 비밀댓글

(0 / 300)

전체댓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