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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도깨비 문화유산여행] 알쓸신잡 따라잡기 - 강릉 스크랩

도깨비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알.쓸.신.잡. 시즌1!

잡학박사님들이 삶의 지혜가 묻어 있는 강릉으로 떠나셨습니다~

문화유산채널에서 선정한 문화유산 키워드는 두가지!








먼저, 키워드를 자세하게 알아보기 전에!
전문 해설가분과 함께 강릉의 문화유산 여행을 따라가 볼까요?
알쓸신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강릉의 선교장에 얽힌 이야기, 후에 자세하게 소개될 오죽헌 이야기에 빠져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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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나레이션) 태백산맥 동쪽, 깊은 산에 담긴 넉넉한 마음,오랜 역사와 전통, 멋이 살아 있는 땅~!
푸른 파도의 노래가 들려오는 강릉으로 떠납니다. 이른 아침, 강릉의 문화유산을 찾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큰 키에 환한 미소가 인상적인 테일러, 한국을 좀 더 알고 싶어 함께 했습니다.
평소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는 윤주와 우리의 것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혜빈~!
이 세 사람이 제일먼저 향한 곳은 강릉 선교장입니다. 선교장은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11대손 후손, 이내번’이 강릉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지은 집으로 조선시대 사대부의 생활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낮은 산기슭을 배경으로 따듯한 햇살이 비치는 단정한 고택, 집안에는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와 별당, 정자 등으로 되어 있는데요.
생각보다 소박한 건물이 정겨웠습니다. (나레이션)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따온 이름은 일가친 척들이 이곳에 모여 정담을 나누고 싶은 마음을 담았습니다.
조선 왕가의 후손이 살고 있는 이 집은 예부터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관동팔경과 경포대를 유람하는 선비들의 숙소로 사용된 행랑채, 도둑이 이 집의 긴 행랑을 빠져나가려면 재빠르게 줄달음질을 쳐야 해서 '줄행랑을 치다'라는 말이 나왔다고 하는데요,
선교장이 문화재로 지정된 이유는 ‘사랑채로 들어오는 문과 안채로 들어오는 문이 분리돼 있고 안채로 들어오는 문에는 안이 보이지 않도록 내외벽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3백년의 역사를 지닌 고택을 둘러보며 안주인인 여성을 배려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대문 밖 바깥마당의 남쪽에는 선교장에 딸린 외별당이 있는데요, 시인묵객들이 많이 머물다 갔다고 합니다.
(나레이션) 신분의 귀천 없이 누구에게나 개방된 선교장은 문화의 산실이 되었는데요, 흉년에는 곳간을 열어 가난한 이웃을 도왔다고 하니, 선교장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나눔과 배려 정신을 배우고 돌아갑니다.
(나레이션) 강릉하면 현모양처의 상징, 신사임당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자수는 물론 바느질 솜씨도 뛰어났다는 신사임당, 동양자수박물관에 가면 한중일 동양 자수의 진수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한 올 한 올, 섬세한 자수에 담긴 옛 여인들의 아름답고 소중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근대와 현대에 만들어진 생활 자수들이 눈에 띄었는데요, 이 많은 작품들을 직접 수집한 분이 계시다고 해서 만나봤습니다.
(나레이션) 자수에는 가족의 화목을 기원하면서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수를 놓은 어머니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데요, 최근 만들어진 자수 작품에는 한국적 미감과 실용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나레이션) 자수체험을 직접 해보기로 했습니다.
(나레이션) 본인이 원하는 문양을 그린 뒤 바느질을 하면 되는데요,
(나레이션) 먼저 한 땀 뜨고 다시 한 땀을 바깥쪽에서 처음 땀 쪽으로 절반씩 되돌려 뜨는 박음질,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바느질을 마지막으로 해 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나레이션) 삐뚤빼뚤한 솜씨지만 끝까지 완성~!
(나레이션) 사계절 아름다운 경치와 축제가 가득한 강릉,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축제는 바로 강릉 단오제입니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축제로, 강릉의 역사와 문화는 그만큼 깊고 다양합니다.
(나레이션) 강릉의 문화유산을 좀 더 알아보기 위해 나선 테일러, 드디어 오죽헌에 도착했습니다. 오죽헌하면 대나무를 빼 놓을 수 없죠.
(나레이션) 검은 대나무 오죽, 그중에서도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강릉 오죽은 세계적으로 희귀하다고 합니다.
(나레이션) 지폐와 비교하니 제대로 찾아 왔네요, 현재 방과 대청으로만 구성된 별당만 남아있고 전체 집 모양을 볼 수 있어 조금 아쉬웠지만 찾아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나레이션) 오죽헌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 성공~!
(나레이션) 그 사이, 강릉의 또 다른 문화재를 찾아나선 혜빈과 윤주~!
(나레이션) 사전 정보도 없이 길을 물어물어 찾아가는 길,
(나레이션) 오래된 문 발견, 이곳이 맞을까요? 일단 들어가 봅니다. 국보로 지정된 이곳은 고려시대에 지은 강릉 객사의 정문인데요, 현재 객사 건물은 없어지고 이 문만 남아 있습니다. 고려시대 공민왕이 직접 썼다는 현판, 임영관은 ‘바다에 접한 건물’이라는 뜻입니다.
(나레이션) 임영관 삼문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 성공~! 미션 수행을 마친 뒤 찾은 바닷가 광화문으로부터 정동쪽에 위치한 정동진, 푸른 파도 소리는 계절에 상관없이 시원하고 상쾌했습니다. 함께 나눈 강릉의 문화유산, 오늘 하루 어땠나요?
(나레이션)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삶과 지혜가 묻어있는 역사의 고장, 짜릿한 즐거움과 배움, 향기로운 전통과 활기찬 오늘이 공존하는 곳, 강릉이었습니다.

#신사임당

강릉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그의 아들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입니다.
이번 알쓸신잡 강릉편에서는 유시민 작가와 황교익 맛 평론가가 오죽헌을 찾아갔는데요, 이 오죽헌의 안내판에 대해 지적을 하며 시작합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바로 신사임당을 오로지 율곡 이이라는 한 남자의 어머니로서, 현모양처로서만 판단했다는 점입니다.
신사임당은 "조선시대 문인 예술가"로, 뛰어난 그녀를 수식해주는 단어는 어머니 외에도 많습니다. 7세에 안견의 산수화를 사숙(마음으로 본받아 배움)한 신사임당은 산수도, 초충도, 노연도와 같은 아름다운 작품을 남겼습니다.

섬세한 표현, 선명한 색채, 안정된 구도는 인생의 멋과 맛을 음미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화가 신사임당의 예술세계와 그 당시의 조선사회를 영상을 통해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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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보다가)친정을 떠나 한양시댁으로 가는 길.신사임당의 발길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막)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 외로이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친정을 떠나며 눈물로 지은 시. 신사임당은 왜 그토록 슬퍼하며친정을 떠난 것일까. (보다가)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쉽게 다루지 않던 소재인 식물과 풀벌레를 마치 살아있는 듯생생하게 화폭에 담아낸 이가 있다
FD (보다가)바로 조선 최고의 여류화가 신사임당이다. 신사임당은 강릉 오죽헌에서태어나 자랐다. 되면)집 뒤뜰에 줄기가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 오죽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하여 오죽헌이라 불리는 집. 이곳은 본래 신사임당의 외가로,신사임당의 어머니 이씨가 태어나 평생을 산 친정집이었다.무남독녀였던 이씨는 결혼을 해서도친정에 살면서 다섯딸을 낳아 길렀다. 신사임당은 그 가운데 둘째딸로어릴 적부터 재주가 많고 총명한 아이였다. 어머니 이씨는 이런 신사임당에게 자수에서 유교경전까지를 두루 가르쳤는데, 어린 신사임당이 특히 재능을 보인 것이 그림이었다. 외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이미 일곱 살 때는 안견의 산수화 양식을 따라 그릴 정도로 천부적인 재능을 드러냈다. 신사임당의 예술세계를 키운 것은 비단 가정 환경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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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가) 당시 오죽헌이 있던 마을은 강릉의 북평촌.동쪽으로는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보고) 서쪽으로는 대관령이 병풍처럼 펼쳐진 곳이었다.이런 천혜의 자연은 어린 소녀에게 많은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
(보다가)오죽헌 마당에도 언제나 꽃과 나무들이 가득했다. 신사임당은 이런 자연 속에 존재하는 식물과 풀벌레들을 오랫동안공들여 관찰했다. 그리고 눈과 마음으로 본 것을화폭 위에 그려내며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현해 나갔다.그렇게 완성된 신사임당의 초충도.꽃과 오이, 풀벌레와 나비처럼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이 그림의 주인공이다. 신사임당의 이런 그림은 여성의 예술을 폄하하던 조선의 사대부들마저 감탄과 충격으로 받아들일 정도였다. 신사임당의 그림 가운데 특히 유명한 것이 묵포도도이다.(자막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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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2년, 신사임당은 열 아홉에서울에 사는 이원수와 혼인을 한다.그리고 혼인 후에도 오죽헌에서 20여년을 살면서 7남매를 낳아 길렀다. 신사임당이 친정집에서 계속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신사임당이 살았던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결혼문화는 여성의 주거지 중심으로 형성됐다. 남자가 여자 집에 장가를 들고, 여자가 친정 집에서 자식을 기르며 사는 일이 보편적이었다. 이 당시에는 남녀의 차별이 엄격하지 않았던 것이다.이렇게 여자에게 자유롭고 개방적인분위기는 오죽헌의 가옥구조에서도 나타난다. 오죽헌은 남성들이 머물던 사랑채와여성이 거주하던 안채로 나뉘어져 있다하지만 두 공간 사이가 막힘없이 탁 트여 있다. 남녀가 자유롭게 사랑채와 안채를 드나들었음을 짐작케 하는 구조다. 반면, 조선후기 가옥은 높은 담장으로안채가 따로 분리돼 있다.
(좀 들어가면)사회로 갈수록 남녀구별이 엄격해졌던 것이다.여성 중심의 자유로운 시대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친정 오죽헌, 신사임당이 시댁 살림을 도맡기 위해 오죽헌을 떠난 것은 서른 여덟살 때였다. 태어나서 자란 친정, 홀로 계실 어머니를 뒤로 하고 영영 떠나는 길. 대관령 고갯마루를 넘어 신사임당은눈물로 어머니와 오죽헌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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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을 어머니 신사임당으로만 보는 것은 옳지 않지만, 신사임당은 분명 조선시대 대학자율곡 이이를 길러낸 어머니입니다. 어머니 신사임당은 어떤 사람이었고, 아들 율곡이이와의 관계는 어떠했을까요?

영상으로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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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7분 다큐> 오죽헌 제2편 시묘살이 3년, 이이의 사모곡 ======================================================================== # 무덤 8 (보다가) 그의 나이 열 여섯.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 삽화 5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 묘 앞에 서 있는 이이~슬픈표정 10 그는 어머니 묘옆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 절하는 5 그의 어머니는 조선 최고의 여류화가 신사임당. # 이이초상화 8 그는 조선 최고의 정치가이자 대학자인, 율곡 이이였다. # 타이틀 뜨고 ==================================================== # 하늘TD, 오죽헌 9 신사임당의 친정이자 율곡 이이의 생가인 강릉 오죽헌, # 오죽헌 5 조선 전기인 1450년에 지어진 오죽헌은 # 현판 4 원래 가옥의 별채였던 곳이다. # 문 팬 13 정면 3칸의 일자형 집으로 왼쪽 두칸은 율곡이 공부하던 대청마루 # 대청마루~마루바닥 8 오른쪽 한 칸은 온돌방으로 사용됐다 # 방안 4 (보고) # 몽룡실 TU 7 바로 이 온돌방이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낳았던 방이다. 용꿈을 꾸고 율곡을 낳았다 해서 # 몽룡실 현판 타이트 4 후에 몽룡실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 방 밖, 나무 보이고 4 (보고) # 저고리, 그림그리는 13 신사임당은 자식교육을 위해 늘 서화를 가까이 하며 스스로 모범을 보였다. # 벼루 +태임설명 13 또한 ‘사임당’이란 당호를 직접 지었는데. 이는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이자, 중국 최고의 현모양처로 이름난 ‘태임’을 본받겠다는 의미였다. # 빗방울 떨어지는 처마 4 (보고) # 경회루 9 신사임당은 특히, 율곡의 교육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 바다 9 율곡은 10살에 경포대 풍경을 보며 한시를 지을 정도로, 이름난 신동이었기 때문이다. # 경포대부 내용 뜨면 19 (자막+음악) (자막) “삶이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짧은 백년이고 넓은 바다의 한 알 좁살일세“ # 과거시험 17 타고난 머리에 어머니의 남다른 교육을 받은 율곡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불과 13살 나이에 진사 초시에 합격한 것이다. # 삼일유가도 19 이 천재소년은 벼슬길에 오를 때까지, 무려 아홉 번이나 급제해 ‘구도장원공’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는 조선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있는 일이었다. # 신사임당 초상화 15 이런 율곡에게 인생 최대 위기가 찾아온다. 어머니 신사임당이 병에 걸려 마흔 여덟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 향 + 선비행장 발췌 11 하지만 율곡은 외지에 나가있어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자막+음악) (자막) ‘행장 속에 든 유기그릇이 모두 붉게 변하였으므로 괴이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조금 있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기별이 들려왔다.‘ - 선비행장 중 # 사임당 묘역 21 어머니를 파주 자운산에 묻은 율곡은 묘 옆에서 3년간의 시묘살이를 시작했다. # 묘역 풀샷 그때 율곡의 나이는 불과 열 여섯이었다. # 선비행장 7 시묘를 하면서 율곡은 어머니에 대한 행장을 기록했다. # 글쓰는 재연 이미지~자막 25 (자막+음악) “바느질도 잘하고 수놓기까지 절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 “평소에 묵적이 뛰어났는데, 7세에 안산수도를 그린 것이 아주 절묘하다. ” “어렸을 때에 경전을 통했고, 글도 잘 지었으며 글씨도 잘 썼다. ” - 선비행장 중 발췌 # 금강산 14 그렇게 3년상을 다 치르고도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이 채워지지 않자, 율곡은 홀연히 금강산에 들어갔다. # 걷는 뒷모습 11 1년후 금강산에서 하산한 율곡은 한양 본가로 돌아가 오직 학문에만 정진했다. # 인정전 외경 7 그리고 스물 아홉에 대과 장원급제를 차지한 율곡은 # 왕좌, 품계석 7 20년을 관직에 머물며 실천하는 조선의 정치가이자, # 벼루~글쓰는 이미지 6 수많은 저술서를 남긴 대학자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 율곡전서 10 이런 율곡의 뛰어난 사상과 철학을 모아놓은 율곡전서. # 성학집요 8 이 안에 실려있는 책 가운데, 제왕의 학문을 정리한 ‘성학집요’와 # 격몽요결 9 후학을 위해 지은 ‘격몽요결’은 율곡의 높은 경륜을 증명하는 저서로 손꼽힌다. # 10만대군 양병론 9 율곡은 또한 십만 양병론을 건의해 훗날 있을 국난을 막고자한 선각자이기도 했다. --------------------------------------------------- # 어제각 외경 4 (보다가) # 어제각 줌인 8 이런 율곡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정조는 오죽헌 옆에 어제각을 지었다 # 격몽요걸 6 그 안에는 율곡이 지은 격몽요결과 # 벼루와 글귀 6 율곡이 어린 시절 사용했던 벼루를 보관하게 했다. # 벼루에서 팬 7 그리고 벼루 뒤에 율곡을 찬양하는 글을 친히 기록했다. # 벼루 뒤 문장 8 (자막보고) (자막) '무원의 못에 적셔 내어, 공자의 도를 본받아 널리 베풂이여! 용은 동천으로 돌아갔건만, 구름은 먹에 뿌려 학문은 여기에 남았구나“ -------------------------------------------------------- # 이이동상 TU 12 후대 왕조차 존경한 조선 최고의 대학자 율곡 이이. 그를 백대의 스승으로 길러낸 이는 지혜로운 어머니, 신사임당이었다. # 오죽헌 풀샷 15 두 사람이 태어나 함께 살았던 오죽헌. 그곳엔 서로를 깊이 존경하고 사랑한 모자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오죽헌

▲오죽헌 (출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그렇다면 신사임당과 율곡이이가 태어나고 자란 곳, 오죽헌이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요?
<내가 사랑한 문화유산>에서 방송인 박경림님이 사랑하는 문화유산으로 꼽은 강릉 오죽헌.
박경림씨는 자식이 있는 엄마로서 “신사임당이 어떤 곳에서 어떤 정서로 자식을 키웠을까?” 라는 생각에 오죽헌이 어떤 곳일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따뜻한 생각을 담고 있는 오죽헌의 구조와 다양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자연환경.

박경림씨가 사랑한 문화유산, 오죽헌을 영상으로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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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내가 사랑한 문화유산 박경림 편> 명문가 자녀교육의 비밀 강릉 오죽헌 # 오죽헌 부감 # 박경림 들어오는 # 박경림 얼굴 타이트 15“ 데뷔 20년 차 베테랑 방송인 박경림- 남다른 진행 능력을 인정받으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녀는 무엇보다 한 아이의 엄마임을 늘 잊지 않는다. # 인터뷰 저는 진짜 꼭 만나보고 싶어요 조선 최고의 여류화가시잖아요 자식이 있는 엄마의 마음으로서 어떤 곳에서 어떤 정서로 자식을 키우고 자라게 했을까 하는 생각에 굉장히 궁금했던 곳이고 와보고 싶었던 곳이에요 # 박경림 집안 둘러보는 # 건너편에서 보이는 박경림 얼굴 10“ 신사임당과 그의 아들 율곡 이이의 삶이 녹아있는 곳, 강릉 오죽헌이다. -------------------------------------------------------------------------- # 부제명문가 자녀교육의 비밀 강릉 오죽헌 -------------------------------------------------------------------------- # 부감 # 하늘 틸다운 오죽헌 21“ 강릉 오죽헌은 양반가의 저택에 딸린 작고 소박한 별당이다. 이 작은 별당이 후대에까지 알려진 건 이곳이 신사임당이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곳이자 율곡이이를 낳아 기른 유서 깊은 집이기 때문이다. # 오죽헌 현판 10“ 오죽헌에서 자라면서 배운 것들이 신사임당의 인품과 예술이 되었고, 그것이 자녀에게까지 이어진 것이다. # 박경림 얼굴 # 인터뷰 우리에가 한 사람의 발자취를 쫒아가기 위해서 어딘가에 가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두 사람의 발자취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그 곳 그리고 역사의 현장 그리고 어떻게 보면 우리가 늘 따르고자 하고 느끼고자 하는 명문 사학 명문 학습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우리가 매일 접하는 게 돈이잖아요 지폐도 있고 동전도 있는데 이 집안에서 우리가 쓰고 있는 화폐의 나오는 인물이 두 명이나 있다는 게 일단 가장 놀라워요 사실 저희 집안을 통틀어서 한 분도 안계시거든요 그런데 오죽헌에서 태어나서 자랐던 분이 두 분이나 있다는게 그것만으로도 일단 오죽헌은 대단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학교에서는 교육을 하고 학습적으로 지식의 깊이가 깊어질 수 있겠지만 집에서 갖는 것들이 가장 인간의 기본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정서고 기본적인 습관일 거예요 그게 인간 하나의 가치관이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 바깥채 안채 # 바깥채 안채 올라가는 박경림 20“ 오죽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개방적인 가옥 구조다. 담장이 낮고, 사랑채와 안채 또한 나뉘어져 있다 하지만 두 공간이 막힘없이 트여 있다. # 인터뷰 사랑채와 안채 여성들이 대체적으로 생활했던 안채 그리고 남성들이 생활을 했던 사랑채에 크게 담벼락이 있어서 담장을 뒀다든지 차별을 뒀다든지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아요 그래서 사랑채와 안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교류가 왕성했겠구나 하는 걸 담장만 봐도 쉽게 유추해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인 거 같아요 사실 낮은 담장이라는 것이 그냥 우리가 봤을 때 담장이 낮다 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게 가치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에게 있어서 높고 낮음이 없고 남녀가 서로 귀하다 라는 걸 직접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몸소 느끼게 해줌으로써 그 당시 백성을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이 삶에 있어서 저절로 배우게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 부감 # 부감에 박경림 보이는 10“ 모자는 아담한 집의 활용을 극대화하기도 했다. # 인터뷰 공간이 굉장히 독특한 게 원룸식으로 크게 하나로 있는 게 아니라 한 방에서도 한 공간에서도 공간이 나뉘더라고요 3칸으로 나뉘어져 있고 그 곳에서 굉장히 다른 일들이 벌어져요 이 방에서 책을 읽고 이 방에서는 잠을 자고 이 방에서는 가르침을 얻었을 수도 있고 딱 보는 순간 구분이 지어진다 그러면 그거는 분명히 습관을 그렇게 만들었을 거 같아요 환경을 통해서 그래서 율곡이이가 신사임당에게 한 공간에서도 다른 배움과 깨달음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게 공간이 주는 매력으로 저에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 어제각 12“ 어머니로부터 학문의 기초를 배워 성리학자로 이름을 떨친 율곡 이이- 정조는 그의 학문을 높이 사 특별한 집을 짓도록 했다. # 벼루 13“ 율곡의 책 격몽요결과 벼루를 보관하기 위한 어제각이다. 벼루 뒤에는 정조가 직접 쓴 글을 새겼는데 율곡을 용에 비유해 존경심을 드러냈다. # 조충도 공원 걷는 박경림 # 인터뷰 사실 까마귀 같이 까만 대나무가 많다고 해서 오죽헌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곳에 와보면 대나무뿐만이 아니라 꽃과 나무들이 집과 함께 어우러져 있어요 그러니까 자연 속에 집이 중앙에 딱 위치한 느낌이고 그래서 저는 더 편안하고 정서적으로 굉장히 따뜻해 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신사임당이 주경야독도 하면서 본인이 그림도 그리면서 십자수도 하면서 몸소 실천했던 것들을 율곡이이가 그대로 이어받아서 본인도 학습에 있어서 공부 해야돼가 아닌 당연히 해야된다라는 분위기가 이곳에서 만들어 졌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공부를 해라 지금 하려고 했다 왜 내 마음을 모르냐 공부하려고 하면 책상 청소부터 들어가고 그런 게 아니라 이곳에 평상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자연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그러면서 자연을 귀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그림에 담고 # 문 너머 풍경 27“ 오죽헌 마당을 가득 채운 꽃과 나무를 오랫동안 관찰하며 우주의 신비와 원리 깨우친 신사임당은 이것을 화폭 위에 그려내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 갔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이야말로 율곡 이이라는 대학자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된 것이다. # 인터뷰 사실 21세기는 너무 빨라요 모든 것이 빠르고 모든 것이 새롭고 그런데 그럴 때일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근본이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곳 오죽헌은 집안의 분위기 내 방의 분위기 가족의 분위기를 통해서 한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게까지 되느냐 라는 정서의 장이고 학습의 장이 된 곳이 이 곳 오죽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 역시도 내 동네보다 중요한 것은 내 집의 분위기고 나의 기분이고 나의 행복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의 행복감과 집안의 분위기가 내 아이를 행복하고 더 훌륭한 사람으로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오죽헌이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꽃 걸고 박경림 15“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배우고 탐구하는 방송인 박경림- 그녀에게 문화유산은 어떤 의미일까? # 인터뷰 저에게 있어서 문화유산이란 사실 뿌리고 근본이잖아요 그래서 부모님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은 사실 자식에게 절대 해를 끼치지 않잖아요 무언가 항상 아낌없이 주려고 하시잖아요 그리고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잖아요 문화유산도 그런 거 같아요


여기까지 알쓸신잡 강릉편에 얽힌 문화유산 이야기였습니다!

다음 여행지의 문화유산 키워드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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