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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도깨비 문화유산여행] 알쓸신잡 따라잡기 - 순천&보성 스크랩

도깨비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알.쓸.신.잡!
잡학박사님들이 이번 여행에서는 순천과 보성으로 찾아갑니다~


문화유산채널에서 선정한 문화유산키워드는 세가지!
#선암사 #낙안읍성 #태백산맥

그럼 이번에도!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암사
잡학박사님들이 순천에서 가장 먼저 들른 곳,
자연의 숨길로 둘러싸인 숲길을 지나 있는 "선암사"입니다.

특히, 황교익 선생님이 선암사에 관한 이야기를 열심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잠깐, 선암사가 어떤 곳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가면 이해가 더 쏙쏙! 되겠죠?

영상으로 고향의 향취가 풍기는 "선암사"를 확인해보고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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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이토록 사람을 편하게 하는 절집이 있을까? 순천 조계산 기슭에 위치한 선암사는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한 절집'이라 평가받는데, 이는 가람의 규모나 건축의 기법으로서의 기준이 아니다. 선암사로 향하는 진입로는 그 경관이 빼어나기도 하거니와 경내의 낮은 담장을 따라 걷다보면 사계절 다양하게 피어나는 꽃과 나무들이 여느 호젓한 고향집에 온 듯한 인상을 준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향에 대한 기억과 흡사한 절집이 선암사인 것이다. 경내에는 지정된 유명한 문화재들도 많이 있지만 이곳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것은 단연 수령 600여년이 넘는 매화나무. 나무의 기품있는 형태와 짙은 향은 '선암매(仙巖梅)'라 이름짓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우아하다. 천년고찰로 오랜 시간 시나브로 빛바랜 단청과 기둥들이 은은한 멋과 고즈넉한 풍취를 더하고 사찰을 둘러싼 자연림이 주는 포근함을 간직한 선암사를 만나 본다. <선암사 방문 정보> 소재지: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산 802번지 연락처: 061)754-5247, 선암사 종무소 주변볼거리: 송광사, 순천만, 낙안읍성, 고인돌공원 관련 웹사이트: http://www.seonamsa.net

태고종의 사찰 중 가장 큰 선암사는 많은 선승을 배출한 태고종의 본산입니다.

여기에서 잠깐, ‘태고종’이 뭘까요?

태고종은 고려말 한국불교를 통일한 통불교의 전통을 계승한 정통종단으로, 대처승(결혼한 승려)을 인정한다고 합니다.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대처승이 일반적인 것이었다고 하네요~



이런저런 선암사 이야기를 듣다보면 오래된 돌다리, ‘승선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승선교의 뜻은 ‘도를 깨달아 신선이 되는 다리’ 라고 하네요.

이 승선교 밑에는 용머리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 용머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승선교 건축 원리는 아치를 이루는 돌들의 맞물림에 있고, 용머리와는 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즉, 용머리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도대체 왜 용머리가 있는 걸까요?

영상으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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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백제시대 창건된 천년고찰이다.오랜 불법과 아름다운 풍광으로 예로부터 이름이 높았는데... - 그 이름값에 한몫을 한 것이 바로 이 무지개다리다.(컷 전환) - 그런데 이 다리의 아래쪽에 특이한 것이 하나 있다.한 중간에 불쑥 튀어나온 용머리.왜 다리에 이런 용머리를 설치했을까. - 선암사 승선교가 처음 세워진 것은 조선 숙종 때, 선암사를 중건하면서 다리를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 수백년 이어온 다리에는다양한 이야기들이 전해오는데...그 중심에 바로 용머리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용머리를 빼면 다리가 무너진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일까. - 용머리는 무게중심일까 -용머리는 승선교의 가장 중심돌인 요석 안에 박혀 있다. 마치 무게중심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러나 사실... 승선교의 건축원리는 아치를 이루는 돌들의 맞물림에 있다. 특히 위가 넓고 아래는 좁게 다듬어진 사다리꼴 모양의 돌들이 서로 촘촘히 맞물려 무게를 분산시킨다. 양측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은 이미 요석이 하고 있어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현재 남아있는 무지개다리 중에는 용머리가 없는 것도 많다. 용머리가 기술적으로 필수적인 장치라면이 다리들에도 용머리가 있어야 한다.(2초 쉬고)그렇다면 용머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0253# 송광사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사적 제 506호) -재미있는 사실은 용머리가 사찰의 다리에서 주로 발견된다는 것이다. 송광사에 있는 무지개다리, 삼청교.이곳에도 용머리가 보인다. 사찰과 용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불교에서 용은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 사악함을 물리치고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한다는뜻을 담고 있다. -사찰의 다리에 새겨진 용머리...그것은 상징적인 조형물이었다. 사악함을 물리치는 용을 통해다리를 건너는 이들을 보호하겠다는 뜻. 그런데 용을 자세히 보다보면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다.철사에 꿰인 동전 한 잎. 용은 왜 동전을 물고 있을까. - 용은 왜 동전 한 잎을 물고 있을까 -용이 물고 있는 동전 한 잎은 승선교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그렇다면 다리를 만든 이가용에게 동전을 물렸다는 뜻인데... 선암사 뒤쪽 숲에 그와 관련된 유물이 남아있다.선암사중수비.비의 내용에 따르면 승선교를 세운 이는 조선 숙종 때의 호암대사.정유재란 때 불탄 선암사를 중창하면서승선교를 세웠다고 한다. # 벌교 홍교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보물 제 304호) - 그런데 호암대사는 벌교에도 다리를 세웠다. /(pause)스님은 왜 그렇게 여러 다리를 만들었을까. - 서산대사 <회심곡>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선심 하였느냐 좋은 터에 원을 지어 행인구제 하였느냐 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공덕 하였느냐 목마른 이 물을 주어 급수공덕 하였느냐 예부터 불교에서는 다리를 놓는 일을 월천공덕(越川功德)이라 하여 큰 덕을 쌓는 것으로 여겼다.험한 산길 따라 사찰을 찾던 이들에겐계곡 하나 건너는 것도 큰 일, 그래서 다리를 놓는 것은 부처의 세계로 가는 중생을 돕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 호암대사가 승선교를 놓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컷 전환-목탁)그런데 시주를 받아 불사를 진행하고 나니동전 한 잎이 남았다고 한다. 시주 받은 금품을 다른 일에 쓰는 것은 율법에 어긋난 일.호암대사는 고민 끝에 남은 돈을 용에게 물려 다음에 쓰도록 했다는 것이다. -물빛 계곡의 아름다운 다리, 승선교. 그 다리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용머리. 그것은 단순한 장식성이 아니라 다리를 건너는 이의 안전을 빌고,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의 상징이었다. 아울러 동전 한 잎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던 옛 사찰의 청빈한 마음이었다.

#낙안읍성



유시민 작가님이 찾아간 낙안읍성. 이곳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전라남도 순천의 낙안읍성이 있는 ‘낙안’의 지명은 ‘낙토민안, 관락민안’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땅이 기름지니 곡식이 많이 생산되어 백성이 행복하고,
송사가 없어 관과 백성이 모두 즐겁고 평안하다


이렇게 낙안은 지명의 뜻처럼 백성들이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낙안에 사는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왜구였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바로 “낙안읍성”입니다.
태조 6년 김빈길 장군이 왜구들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흙으로 성을 쌓았고, 세종 때 임경업 장군이 돌로 다시 쌓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낙안읍성은 지금까지도 우리의 곁에 시간이 멈춘 채로 남아있습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전국의 초가집들이 모두 사라졌지만, 이곳 낙안읍성에서는 마을 전체에서 초가집들을 볼 수 있습니다. 경직된 기와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지붕의 곡선과 담들의 우아한 선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까지 풍요로워집니다.

정겨운 우리의 낙안읍성을 영상으로 감상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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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순천시 낙안면에 위치한 낙안읍성은 넓은 평야지에 축조된 성곽으로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석성이다. 한양을 모델로 하여 만든 조선시대의 지방계획도시로 ‘낙안’은 풍요로운 땅에서 만백성이 평안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관아와 100여 채의 초가가 돌담과 싸리문에 가려 소담스레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낙안읍성. 느긋하게 제 그림자를 드리운 성곽과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음까지 풍요로워지는 곳, 그곳이 바로 낙안읍성이다.



낙안읍성은 "임경업 장군"과 깊게 연이 이어져 있습니다. 낙안 사람들은 임경업 장군이 낙안읍성을 하루 만에 쌓았다는 전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과연 어떤 인연이었길래 그런 전설이 만들어진 걸까요?

1626년부터 2년 동안 임경업 장군이 낙안 군수로 있을 당시,짧은 시간이지만 백성들에게 많은 선정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낙안 사람들은 임경업 장군이 떠날 때 10리 길을 메워 눈물을 흘리며 전송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임경업 장군이 하루만에성을 쌓았다는 전설은 아마 장군이 성을 확장해 쌓은 것이 구전되는 과정에서 확대되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낙안읍성에는 임경업 장군 이외에도 더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숨은 이야기를 찾으러 영상으로 확인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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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순천의 낙안에 작은 읍성이 있다. 낙안이란 지명은 ‘낙토민안, 관락민안’에서 나온 말. 땅이 기름지니 곡식이 많이 생산되어 백성이 행복하고, 송사가 없어 관과 백성이 모두 즐겁고 평안하다는 뜻이다.낙안은 그렇게 백성들이 살기 좋은 곳이었지만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왜구였다. 그래서 만든 것이 낙안읍성이다. 낙안읍성은 태조 6년 김빈길 장군이 왜구들로 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흙으로 성을 쌓았고, 세종 때 석성으로 쌓기 시작했다는기록이 전한다. 그런데... 낙안 사람들은 임경업 장군이이 성을 하루만에 쌓았다는 전설을 만들었다.조선시대 이름난 명장이었지만 역모의 누명을 쓰고 억울한 죽임을 당한 임경업장군. 낙안읍성과 임경업장군은 과연 어떤 인연이었길래그런 전설이 만들어진 것일까? 조선 인조 때의 명장 임경업 장군의 일생을 작품화한 한글소설 임경업전.이 책은 정조의 명에 따라 임경업장군에 대한 기록을 모아 1791년에 간행된 ‘임충민공실기’또 구전설화를 토대로 창작된 작품이다.이렇게 임경업 장군은 왕명으로 기록을 모으고,고대소설의 영웅이 될만큼 뛰어난 장군이었다. 임경업장군은 낙안과 인연이 많다.1626년부터 2년동안 낙안군수를 지냈는데, 비록 2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낙안 백성들에게 많은 선정을 베풀었다. 임경업 장군이 업무를 처리했을 동헌.중앙 마루는 송사를 다루던 곳인데,전라도 감사가 처리하기 어려운 송사는낙안군수인 장군에게 맡겨 처리할 정도로장군은 명관이었다. 또 인조 6년 전라도를 순검한 김류가 낙안군수 임경업은 청렴하고 백성들을 위해 맡은 소임을 다하고 있다고 보고하자 왕이 임경업장군에게 옷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래서 낙안사람들은 임경업 장군이 떠날 때10리 길을 메워 눈물을 흘리며 전송했다는 말이 전해온다. 그러니까 낙안읍성을 임경업 장군이 쌓았다는전설은 아마 장군이 성을 확장해 쌓은 것이구전되는 과정에서 확대되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낙안 읍성의 객사.왕명으로 내려오는 사신들이나 귀빈들을 영접하는 곳이다.객사의 양 옆의 건물은 사신들의 숙소이지만중앙의 마루는 독특한 용도로 쓰였다. 정당이라고 하여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안치해 놓고 수령이 부임하거나 매월 음력 초하루와보름날, 대궐을 향해 예를 올리는향궐망배를 했던 것이다. (임경업 장군 역시 이곳에서 매달 대궐을 향해 나라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을 것이다.) 낙안읍성은 우리나라의 대부분 성곽과 달리 산이 아닌 평지에 쌓은 성이다. 대부분의 성은 적이 오면 백성들이 마을을 떠나성안에서 버티기 위해 만들었는데,낙안읍성은 다른 성과 달리 마을을 둘러 성벽을쌓은 독특한 형태다. 또 독특한 점은 마을의 형상인데...낙안읍성은 풍수지리로 보면 배의 형상이라고 한다. 서쪽의 빽빽한 대나무숲은 뱃머리를 상징하고, 배의 닻에 해당하는 곳은 향교의 뒷산.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돛.그리고 노는 성곽을 따라 있는 노거수로임경업 장군이 심었다고 전해오는 300년 이상된나무들이다. 그래서 낙안읍성엔 깊은 우물이 없다. 낙안읍성은 배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깊은 우물을 파면 배 밑이 뚫려 배가 가라앉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낙안읍성은 전설도 많고, 풍수에 따른 이야기도 많은 곳인데,특이하게도 동문 앞에 삽살개의 상을 만들어놓았다. 이 상을 만들어 놓은 이유는 정면에 보이는 오봉산 너머에 왜가 위치하고 있어, 그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서. 그러니까 풍수지리설에서 허한 곳의 부실함을 메꾸기 위해 상징물을 세워 보완하는 비보인 셈이다. 낙안읍성은 동문에서 서문으로 통하는 일직선의길이 가장 큰 도로다. 이 길을 사이로 관아건물과 백성들이 사는 초가집들이 나뉘어 있는데, 지금도 사람들이 사는초가집에선 조선시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낙안읍성에선 지금도 짚으로 지붕을 얹는데, 짚은 조선시대 여러 곳에 쓰였다. 먼저 아기 탄생을 신성시하기 위해 짚을 깔았고, 왼새끼를 꼬아 금줄을 쳤다. 또 사람이 죽으면 짚으로 염을 하고 초분을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짚은 우리 민족의 삶에 큰 역할을 했는데이곳에선 아직도 그 짚이 생활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 이곳에선 아직도 부엌에 조왕신을 모신다. (2안 짚 이야기 뺄 경우)이곳에선 아직도 부엌에 조왕신을 모신다. 조왕신은 부엌을 다스리는 신.조왕신의 신체는 놋쇠로 만든 작은 밥그릇으로조왕 중발이라고 하는데... 그 안에 정화수를 담아 놓는다.조선시대의 주부들은 조왕 중발의 물을 갈아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부엌의 정리 정돈으로 마무리 했는데, 그 모습이 아직 이곳에 남아있었다.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전통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렸다.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은 우리 전통과 문화... 그럼에도 우리 시골마을의 정취와 조선시대의흔적이 남아 있는 곳,임경업 장군의 발자취를 만날 수 있는 곳,낙안읍성이 우리에게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전통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우리 전통이 아직 남아 있는 곳,임경업 장군의 발자취를 만날 수 있는 곳,낙안읍성이 우리에게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태백산맥



전남 보성군 벌교읍 한구석에 위치한 일식가옥, 보성여관.
이곳에서 소설 ‘태백산맥’에 관한 잡학박사님들의 수다가 시작됩니다.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지인 보성여관은 1935년 개관해 실제 여관으로 사용된 곳으로 시민, 기업의 후원으로 복원사업을 거쳐 현재는 숙박 및 다목적 문화체험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태백산맥’ 속에서 보성여관은 어떻게 나올까요?
소설 속 보성여관의 이름은 ‘남도여관’으로, 반란군 토벌대장 임만수와 대원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곳으로 나옵니다. 1935년 일본식 2층 건물로 지어진 보성여관은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어 2004년 등록문화재로 등재되었습니다. 하지만 보성여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부족으로 크게 훼손되고 사라질 위기였지만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2년의 공사를 걸쳐서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복원된 보성여관은 지금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지 않으세요?

지금 바로 영상을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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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남도여관 -반란군 토벌대장 임만수와 대원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남도여관의 실제 모델은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구 보성여관’(등록문화재 제132호) 이다. 소설 속 남도여관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바로, 문화재청과 보성군청이 2년 동안 17억 원을 들여 진행해온 보성여관의 보수 공사가 모두 끝나고, 옛 모습 그대로 복원이 되어 개관식을 열게 된 것.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문화명소로 재탄생한 구 보성여관의 개관식 현장을 문화유산 핫이슈 카메라가 담아냈다. 태백산맥문학관 http://tbsm.boseong.go.kr 순천만자연생태공원 http://www.suncheonbay.go.kr 낙안읍성민속마을 http://www.nagan.or.kr


그럼 이제 ‘태백산맥’ 이야기를 더 해볼까요?
소설 ‘태백산맥’은 조정래 작가가 쓴 역사소설로 무려 1000만부가 판매되고 그 시절에는 모두가 책이 나오길 만을 기다렸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책입니다. ‘태백산맥’은 총 4권에 걸쳐 여순사건과 그 후 6·25 전쟁에 까지 이르는 우리 근대사를 담고 있습니다.

작품의 서사를 이끄는 중심은 바로 ‘좌우갈등’입니다. 염상진을 중심으로 한 좌익 세력과 토착지주 및 자본가를 중심으로 한 우익 세력 사이의 갈등을 따라 전개가 펼쳐집니다. 그 사이에 놓인 민중들과 지식인들이 저마다의 길을 택하는 모습도 작품을 채우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처럼 <태백산맥>은 역사를 복원하면서 한국사의 중요시기를 총체적으로 그려내는 작품입니다.
그럼 이제 태백산맥을 영상으로 생생하게 보면서 함께 태백산맥의 길을 걸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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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천 만부 이상 판매되고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태백산맥’한국문학사의 독보적인 작품이라 평가받는다. 소설 태백산맥에서 반란군 토벌대장 임만수와 대원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남도여관’ ‘남도여관’의 실제 모델은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위치한 구 보성여관이다. 그동안 크게 훼손되고 사라질 위기였던보성여관이 복원돼 세상 밖으로 나왔다. 총 공사기간 2년공사비용 17억 원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복원된 보성여관의 개관식.그 현장에 간다. 소설 ‘태백산맥’ 속 보성여관 세상 밖으로 나오던 날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소설 태백산맥의 주 무대였던 곳이다. 소설 속 공간들이많이 남아있는 이곳에'태백산맥‘ 관계자들이 총출동했다.잠시 후 열릴 보성여관의 개관식에 참가하기 위해서다.태백산맥을 집필한 조정래 작가를 비롯해임권택 감독의 모습도 보인다. 우리 근현대사의 질곡을 견뎌내고민초들의 삶과 함께 했던 보성여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하다,복원된 보성여관을 둘러보며,사람들은 감회에 젖는다.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던 건물을 다시 복원한 것이 의미가 있고 (소설 속 시대) 당시의 모습과는 약간 변형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것이 100퍼센트 복원될 수는 없는 것이고요.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에요. 보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끔 많이 좋아졌네요. 하나, 둘, 셋 각계 주요인사의 축하 아래,보성여관의 문이 활짝 열렸다. 소설 태백산맥 에서자주 등장하는 남도여관남도여관의 실제 모델은 구 보성여관이다.1935년 일본식 2층 건물로 지어진 보성여관은 그 가치가 높게 평가돼 2004년 등록문화재로 등재됐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 부족으로많이 훼손되고 원형을 잃어버린 상태로 있다가2009년부터 문화재청과 보성군청이 복원공사를 시작.2년 만에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게 되었다. 보성여관의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이들. - 김찬 / 문화재청장앞으로 구 보성여관의 의미가 더욱더 잘 보전되어서 나라의 문화유산이나 문화사적인 공간이나 의미로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정종해 / 보성군수 사라져가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소중하게 가꾸는 곳에 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보성여관을 잘 관리 활용하기 위한국민신탁과 보성군청의 보전관리협약서 전달식이 진행됐다. 성금전달식도 이뤄졌다.성금은 보성여관의 추가 복원과유지운영에 사용될 예정이다. (보고)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구 보성여관 -전형적인 일본주택형식의 2층 목조건물로,지어졌을 당시에는 벌교 최고의 여관이었다.이번 작업으로세월이 흐르면서 훼손되고 변형되었던 보성여관이 원형 그대로 복원됐다. 여닫이 문으로 된여관 주출입문을 비롯해다양한 모양의 유리창, 굴뚝은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내부 곳곳의 모습은여관이 지어진 당시의 생활상을 가늠케 한다. 복원된 보성여관은 다양한 쓰임새로 사용된다. 1층은 카페와 소극장 등 이벤트 공간과벌교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 공간으로.2층은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으로 사용 된다.(쉬고) # 또 보성여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숙소 공간도 마련해숙박체험 장소로 손님맞이를 할 계획이다.강임산 / 문화유산국민신탁 사무국장 우리 근현대사의 생활사의 중요한 징표로서 보성여관을 새롭게 알려주고자 이런 복원작업에 문화재청과 함께 참여를 하게 되었고요. 전라남도 보성군, 특히 벌교읍의 근현대사를 증언할 수 있는 소중한 역사 공간으로 잘 가꿔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새 단장을 한 보성여관 내부를 꼼꼼히 둘러보는 사람들 김지인 / 부산광역시책에서 인상 깊게 봤었는데 의미도 남다르고 복원도 잘 된 것 같아요. 전시도 잘 되어있고 건물도 예쁘게 지어져서, 뜻 깊고 좋은 것 같아요. 다음번엔 이곳에서 묵고 싶어요. 보성여관은 이제 소설 속 여관이 아니다.역사 교육의 현장이자,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문화명소다. 박인숙 / 보성군 문화관광과 과장이 장소는 주민들에게 일자리 창출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주민들에게 문화 복지 공간으로 활용이 될 계획입니다.향후에는 이 주변에 보면, 보성 벌교 농민상담소 (구 벌교 금융조합), 술도가, 구 경찰서 등 태백산맥 소설 속 무대 배경지가 많이 있습니다. 이 부분들도 앞으로 차근차근 복원 해 나갈 계획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땀과 열정으로복원을 마치고 세상 밖으로 나온 보성여관 보성여관처럼 앞으로 우리의 많은 역사적 건축물들이잘 복원 관리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여기까지 보성부터 순천까지의 문화유산 키워드 이야기였습니다~

다음 키워드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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