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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도깨비 문화유산여행] 알쓸신잡 따라잡기 - 통영 스크랩

도깨비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알.쓸.신.잡 시즌1!

잡학박사님들이 푸른 바다의 노래가 들려오는 통영으로 떠나셨군요!
이번 통영편에서는 통영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불멸의 이순신 장군과 얽힌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알쓸신잡 통영편의 문화유산 키워드는 총 세 가지입니다.









#이순신


통영과 이순신은 떼놓을 수 없는 사이입니다.

통영에 남아 있는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살펴볼까요?

1. ‘통영’이라는 지명이 이순신 장군과 관련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통영'이라는 지명은 이순신이 대외세력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군영인 ‘통제영’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2. 통영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승리로 이끌었던 한산도 대첩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3. 이 한산도 대첩에서 승리를 거두고 나서 지은 곳이 바로 알쓸신잡에도 등장한 ‘제승당’입니다.
한산도 제승당은 이순신 함대의 사령부 역할을 했던 곳으로, 승리를 만드는 집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4. 이순신이 전사한 이후에 이순신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신 ‘충렬사’도 통영에 있답니다.

통제영 세병관, 제승당, 충렬사까지.
통영에 남아있는 불멸의 이순신의 흔적을 영상으로 따라가 볼까요?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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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자막. 23전 23승의 신화 戰 勝 자막. 불멸의 이순신 (1545~1598) 자막. 자막. 7년간 왜적과 싸우면서 쓴 난중일기 (국보 제76호) “어머니의 편지가 왔는데, 평안하시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1593년 6월 1일)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다(1597년 9월 15일) “나라의 정세를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아침 이슬과 같다.”(1595년 7월 1일) 자막. 풍전등화 (風前燈火) 자막. 조선의 바다를 지킨 명장, 이순신 -------------------------------------------------------------------------------------------- # 타이틀문화유산 여행길 임진왜란 격전지, 이순신 장군의 자취를 따라 ----------------------------------------------------------------------------------------------------- # 지도 (보고) # 바다NA.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자취를 따라 떠나는 여행은 통영의 견내량에서 시작합니다 자막. 견내량 경남 거제시 사등면 덕호리와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를 잇는 좁은 해협 # 거북선 보이고NA. 견내량은 옥포해전과 한산대첩의 현장입니다. # 전투하는 그림NA. 지금도 그날의 뜨거웠던 전투가 느껴지는데요, 옥포해전은 임진왜란의 첫 승리를,그리고 한산대첩은 조선수군이 해상권을 확보하고 전라도 곡창을 지킨 전투입니다. 자막. 한산대첩 1592년(선조 25년)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전투. 진주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린다. # (자막 빠지자마자) 바다위 + 수군디졸브영상 NA. 그날의 작전은 견내량에 있던 적선을 한산도 앞바다로 끌어내는데서 시작되었죠. # 대포구멍 T.그리고 포위하듯 공격하는 학익진으로 약 70여 척의 왜선을 격파하며 대승을 거둔 현장이, 이 바다입니다 ---------------------------------------------------------------------------------------------------- # 지도NA. 이제 전승신화의 출발점이 된 특별한 장소로 발길을 향합니다 # T.U 바다 보이고 NA. 옥포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이룬 첫 승리이자 조선수군의 첫 승전입니다 23전 23승의 불패신화가 여기서 시작된 거죠 자막. 옥포대첩기념공원 # PAN정자난간 사이로 바다NA. 이를 기념하며 기념탑은 거친바다를 배경으로 당당히 서 있습니다 ---------------------------------------------------------------------------------------------------- # 부감/항구전경NA. 밤에 아름다운 항구가 여수항이라면, 낮에 가장 아름다운 항구는 통영의 강구안입니다 NA. 이 아름다운 항구에 거북선이 정박해 있는데요. 이순신 장군이 사용했던 거북선의 모양을 그대로 재연해 놓은 겁니다 # 이순신 동상NA. 이처럼 가는 곳곳마다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그대로 남아있는 통영! 과연, 이순신의 고장이라고 할 만하지요. # 터미널 외경NA. 통영 여객 터미널. 여기서 한산도로 가는 배를 탈 수 있습니다. # 통영->제승당 표시 T.SNA. 한산도에서 전남 여수로 가는 뱃길은, 한려수도라고 불리며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얘기를 듣는데요. # 바다 전체와 한산도 전경 NA. 이 아름다운 한산도는 조선 수군의 근거지이자 한산대첩의 현장입니다 자막. 거북등대 한산도로 가는 길목에 거북등대가 보이는데요뱃길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한산대첩의 승전지가 이곳임을 알려줍니다 ----------------------------------------------------------------------------------------------------------------- # 부감/ 밝아진 제승당외경NA. 한산도가 조선 수군의 근거지였음을 알려주는 또다른 증거는 제승당입니다. 자막. 제승당(사적 제 113호) 옛 이름은 운주당. 한산대첩 이후 1593년부터 원균의 참패로 불타 없어진 1597년까지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이다 # 내부 PAN NA. 제승당은 전라, 경상, 충청도 3도의 수군을 일원화해 지휘하는 삼도수군통제영입니다. 오늘날의 해군작전사령관실과 같은데요 # 유허비 T.D 하면NA.초대 삼도수군통제사가 바로, 이순신장군 이었습니다 자막. 제승당 수루 적의 동태를 살피는 일종의 망루 # 수루 현판 T.S NA. 사람들이 가장 많이 추억하는 장소는 수루입니다 NA. 이순신 장군은 이 망루에서 우국충정의 시를 읊기도 했는데요. 그 유명한 <한산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하는 진중시의 탄생지 입니다 자막.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閑山島明月夜 上戍樓撫大刀 深愁時何處 一聲羌笛更添愁 # 이순신 동상 실루엣NA. 성웅, 이순신! 겉으로 강해보이지만 인간적인 고뇌와 외로움을 시와 일기로 달랬을 그 뒷모습이 그려집니다 ----------------------------------------------------------------------------------------------- #지도NA. 이제 한산도를 떠나 통영의 세병관으로 향합니다 # 부감/ 한옥의 집들 세병관은 육지로 옮긴 삼도수군통제영의 객사입니다. 자막. 세병관 (보물 제 305호) 선조 37년(1604년)에 한산도의 본영을 통영으로 옮기면서 지은 삼도수군통제영의 객사 우리나라 목조건물 가운데 경복궁 경회루, 전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평면이 가장 넓은 건물이다 # 나무 기둥들NA, 세병관은 ‘하늘의 은하수를 가져다 피 묻은 병장기를 닦아낸다’라는 뜻인데요.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 지붕위 + 발자국NA, 장군의 마지막을 알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요? 충렬사로 향합니다. 자막. 충렬사 (사적 제 236호) 이순신 장군의 사당으로 선조 39년 (1606년) 세워졌고 현종 4년 (1663년)남해 충렬사와 함께 충렬 사 현판을 하사받았다 # 깃발들 세워져 있고충렬사는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낼 목적으로 세워진 사당인데요. 주 활동무대가 한산도와 통영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사당을 세워 장군의 넋을 기리고 있습니다 # 전시관 외경NA, 장군을 기리는 다양한 유물들도 함께 전시하고 있는데요. 그중에는 명나라 임금이 보낸 선물도 있습니다 자막. 충렬사 팔사품 일괄 (보물 제 440호) 이순신의 뛰어난 무공이 전해지자 명나라 임금인 신종이 이순신 장군에게 보내 온 물건들로 동으로 만든 도장인 도독인을 비롯해 영패, 귀도, 참도, 독전기 등 8종류의 유물이다 ------------------------------------------------------------------------------------------------------------------- # 항공샷+지도 NA. 이순신 장군의 격전지를 따라가는 여행, 마지막 여정은 남해의 이락사 일대입니다 # 관음포 바다NA. 관음포 앞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숨을 거둔 바다라는 뜻으로 ‘이락파’ 라고 불리는데요. 자막. 이락사 (사적 제232호)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이락사는 이곳에 세운 제단과 유허비, 비각을 말합니다. # 비석 글씨 T/DNA. 이순신 장군은 죽음을 맞는 순간조차,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말로 선공후사의 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NA. 저 출렁이는 관음포 앞바다에서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숨을 거두었는데요. # 석양 붉게 물들면NA 어느덧 바다는 그날처럼 붉은 빛으로 물들어갑니다. ` # 하이라이트 NA. 어두운 시대, 불굴의 의지로 고난을 헤쳐 나갔던 성웅 이순신! 그의 시대정신을 되새기면서 통영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끝>.


통영에 남아 있는 이순신 장군의 흔적들을 살펴보셨나요?
그럼 이제 더 자세하게 들어가볼까요?

'통영'이라는 지명이 유래한 곳, '통제영'
이 통제영에서도 핵심 건물인! 세병관에 관해 알아볼까요?


어지러운 전란의 시대에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통제영 세병관.
‘세병관’이라는 이름은 "하늘의 은하수를 가져다 피 묻은 병장기를 닦아낸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이곳은 이순신이 대외세력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군영입니다.

평화를 기원하는 이곳 세병관을 영상으로 만나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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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경복궁 경회루와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국내 현존하는 목조건물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세병관 오랜 역사성과 학술적, 예술적 가치를 지닌 당대 최고의 지방관아 건물, 세병관을 소개한다. 통제영이란 1594년 이순신이 대외세력을 방어를 하기 위해 설치한 군영으로, 세병관은 통제영의 중심건물이다. 세병관은 초창 당시 일반적인 객사건물과 달리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곳에 거대한 규모로 지었으며, 건물 내부에 우물마루를 깔고, 내부 공간에 단을 설치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훼철과 근대화에 따른 훼손으로 몇 차례의 보수를 거치긴 했으나 최근까지 망일루, 지과문, 수항루 등 여러 건물들이 복원되어 당시 최고의 위치에 있던 지방관아 건물의 위용을 되찾았다. 외관의 단순함과 내부의 대칭적 구성을 통해 군영건축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세병관.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던 위풍당당한 건물, 세병관을 소개한다.
통영 세병관 방문 정보
위치 : 경남 통영시 문화동 62
연락처 : 관리사무소 055-650-4590
주변 볼거리 : 충렬사, 안정사,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소매물도 등대섬
홈페이지 : 통영시청 문화관광 http://www.tongyeong.go.kr

평화의 꿈을 꾸는 사람들을 지켜준 건물, 세병관.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던 위풍당당한 건물입니다.


#난중일기

통영에 남은 이순신의 흔적을 찾아봤으니, 이제 "이순신의 정신"을 더 깊게 이해해 볼까요?
장군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의 7년의 기록, "난중일기"를 살펴보면 이순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2013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난중일기는 최고 지휘관이 직접 남긴 전 세계 유례없는 전쟁사입니다 이순신장군은 난중일기를 쓰며 긴박했던 전투의 순간 순간을 기록했습니다.

이 난중일기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요?
난중일기의 탄생기, 영상으로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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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난중일기의 흔적을 찾아서 1 --------------------------------------------------- 비디오 오디오 --------------------------------------------------- 바다 전경 (흘리다가) 18 거북선 보이는 몰려오는 적군에 맞서 조선의 바다를 수호하고, 전란을 철저히 대비하여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영웅, 이순신. 7 이순신 동상 난중일기의 기록을 따라 이순신의 흔적을 찾아가 보자. --------------------------------------------------- 2. 서브 타이틀 : 난중일기의 흔적을 찾아서 1 --------------------------------------------------- 기념관 외경 (흘리고) 7 천장서 T.D 2013년 여름, 현충사 충무공이순신기념관에서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7 난중일기 보이고 난중일기가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된 것을 기념하는 난중일기특별전이었다. +“전장에서 무려 7년 동안 일기를 쓴 충무공 이순신의..” 8 전시관 내부 팬 보존처리를 앞두고 난중일기가 일반에 공개되는 마지막 전시회이기도 했다. 10 난중일기 난중일기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임진왜란 7년 동안 충무공 이순신이 집필한 일기로. + 난중일기 (국보 제76호/ 세계기록유산) 9 임진일기 보이면 임진일기, 계사일기, 갑오일기, 병신일기, 정유일기, 속 정유일기, 무술일기 등 친필본 일곱 책을 한 데 묶은 것이다. 임원빈 소장 / 순천향 대학교 이순신 연구소 “무인 관료로서, 그것도 전쟁와중에 일기를 썼다는 것은 개인의 느낌이나 이런 부분들도 있지만 임진왜란 전반을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자료입니다 이 난중일기가 그래서 개인의 자료지만 그 당시 이순신제독의 눈으로 본 임진왜란, 이것을 이해하는데도 ‘굉장히 귀중한 가치가 있는 자료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10 각 책들 하지만 이순신은 생전에 난중일기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없다. 어떻게 된 일일까? 20 묘 봉분 보이면 이순신의 고향인 충남 아산 어라산 언덕에 + 아산 이충무공묘 이충무공묘가 있다. (사적 제112호) 이순신은 1598년, 노량해전에서 전사한지 84일 후에야 임시장례를 치렀고, 16년 후인 1614년에 이곳에 이장되었다. 10 봉분에서 팬해서 전각 이순신의 묘 앞에 비각이 눈에 띈다. 내부에는 정조가 이순신을 영의정에 추중하며 세운 어제비가 있다. 12 비석으로 Z.I 정조는 이순신을 위해 친히 시를 짓고 비를 세워 전공을 기렸다. 우리 열조의 중흥의 공로에 기틀을 만든 것은 오직 충무공 한 사람의 힘에 힘입은 것이다 25 난중일기 이순신이 세상을 떠난 지 200여 년이 지난 1794년. 정조는 이순신이 남긴 일곱 권의 일기와 시, 장계 등을 모아 <이충무공전서>를 간행한 다. 이때 편찬과정에서 편의상 붙여진 이름이 <난중일기>인 것이다. 15 여수 바다 (잠깐 흘리다가) 난중일기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임진년, 1592년의 일기에서 시작된다. 1591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임명된 이순신은 10 바닷가 트래킹 전라좌수영이 위치한 여수에 머물고 있었고, + 전라남도 여수시 이곳에서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12 팬해서 거북선 등장 (잠깐 보다가) 이곳에서 이순신의 활약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거북선이 탄생한다. 조미숙 / 여수문화관광 해설사 “이 거북선은 전라좌수영 거북선을 재연한 것입니다 태종 때 거북선이 있었다고 하지만 철갑판을 두르고 각종 포로 무장한 것은 이순신 장군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 거북선 풀 샷 난중일기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1592년 3월에 거북선이 완성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맑고 바람도 없다 아침밥을 먹은 뒤 배를 타고 소포에 갔다... 거북선에서 대포 쏘는 것도 시험했다 - 1592.3.27 10 거북선 머리 4월에는 화포 사격 연습을 마쳐 실전에 배치될 준비가 끝났음을 알 수 있다. 맑음. 식후에 배를 타고 거북선에서 지자포, 현자포를 쏘았다 - 1592.4.12 +임원빈 소장 / 순천향 대학교 이순신 연구소 “거북선에 돛을 달고 천자총통, 지자총통 함포를 싣고 나가서 사격훈련을 마친 날이 임진왜란 발발 하루전날이거든요 그러니까 우연히 조선수군이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니라 이순신의 일기만 보더라도 전쟁 준비가 굉장히 나름대로 철저하게 있었구나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거죠” 15 거북선 내부로 들어가고 일본군의 신무기 조총 앞에 조선군의 활과 화살은 한없이 무력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거북선에 각종 총통을 부착해 파괴력을 강화했다. 조미숙 / 여수문화관광 해설사 “거북선은 안에서는 밖을 볼 수가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볼 수가 없을뿐더러 수백 척의 적진 속으로 뚫고 들어가서 좌충우돌하며 대포를 쏘게 되어 있습니다” 8 내부 팬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이 첫 출전한 사천해전에서의 활약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화살을 비 퍼붓듯이 쏘고, 각종 퐁통을 바람과 우레같이 어지러이 쏘아 대니, 적들은 무서워서 물러났다. 화살에 맞은 자가 몇 백 명인지 알 수 없고, 왜적의 머리도 많이 배었다 - 1592년 5월 29일 바다 (흘리고) 7 진남관 멀리 보이는 여수시 군장동에 위치한 진남관은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 본영이 있던 곳이다. 12 진남관 입구 들어가고 (잠깐 흘리다가)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임진년에 이곳에 머물며 전라좌수영의 수군을 통제하고 있었다. 10 하늘에서 T.D (잠깐 흘리다가) + 여수 진남관(국보 제304호) 진남관은 국내 최대의 단층 목조건물로 당시 전라좌수영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15 진남관 내부 달리 이순신은 이곳에서 예하부대 순시점검, 군사시설 보수, 군사훈련 등으로 전란에 대비했는데, 매일 훈련을 거르지 않았음이 난중일기에 잘 드러나고 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후 활 10순을 쏘았는데 다섯 순은 잇따라 맞고, 2순은 네 번 맞고, 3순은 세 번 맞았다 - 1592. 3.28 11 진남관 정면 진남관에는 이순신의 또 다른 흔적이 남아있으니 화대 T.U 앞마당의 석주화대가 그것이다. 조미숙 / 여수문화관광 해설사 “이 석주화대는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 때 수군들을 밤에 훈련시킬 때 불을 밝히는 용도로 사용했는데요 이 유물을 통해서 우리는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을 대비해서 철저하게 준비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맑으나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정오에 활을 쏘았다. 우후가 방담에서 돌아와서 방담첨사가 방비에 진력하더라며 극찬을 했다. 동헌 뜰에 돌기둥 화대를 세웠다 - 1592.2.8 13. 화대 화대에 횃불을 밝혀 병사들이 야간에도 훈련을 계속하도록 한 것이다. 그가 얼마나 군사훈련을 중요시 했고 전란준비에 만반을 기했는지 알 수 있다. 10 하늘에서 T.D (흘리다가)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부산 앞바다로 몰려든 일본군은 6 돌담길 따라가고 조총을 앞세워 북상을 거듭하고 불과 20일 만에 한양을 함락한다. 7 좌수영 다리 표지석 이 소식을 들은 이순신은 휘하 장병을 이끌고 바다로 향한다. 8 고소대 들어가고 여수 고소동의 고소대는 이순신이 처음 출격명령을 내린 곳이다. 10 입구 달리 1592년 5월 7일. + 고소대 이순신은 전라좌수영 성벽의 (전남 여수시) 포루인 이곳 고소대에서 전투를 준비한다. 10 전각에서 T.D하면 비석 출격명령을 내리며 다음과 같이 명한다. 명령 없이 함부로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신중히 행동하라 - 이충무공전서 9권 18 비석 T.U 이 날 옥포해전에서 일본 함대를 대파하며 + 여수 통제이공수군대첩비 임진왜란에서의 첫 승리를 거둔다. (보물 제571호) 이후 연전연승이 계속되자 수세에 몰린 일본군은 해상전투에 대한 의지를 상실한다. 남해의 통제권이 조선군에게 넘어온 것이다. 15 타루비 보이고 (잠깐 보다가) + 여수 타루비 이곳에는 부하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보물 제1288호) 세운 타루비가 남아 그날의 전공을 기리고 있다. 12 노을 지는 바닷가 풍경 난중일기의 현장에서 발견한 이순신은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전란을 철저히 대비한 명장이었다. 그렇기에 이순신은 조선의 바다를 지켜낼 수 있었다.

이 난중일기 속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임진왜란을 준비하고 어떤 전투를 벌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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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 비디오 오디오 --------------------------------------------------- 바다 전경 (흘리고) 12 거친 물살 남도의 바다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 이곳에서 이순신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승리를 거뒀다. 10 기념석상 팬 난중일기의 기록을 따라 그 승리의 현장을 찾아가 보자. --------------------------------------------------- 2. 서브 타이틀 / 난중일기의 흔적을 찾아서 2 --------------------------------------------------- 4 현충사 전경 (흘리고) 16 현충사 건물 외경 충남 아산의 이충무공 유허, 우리에게 현충사로 알려진 이곳은 이순신의 업적을 기리는 사당이자 그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 아산 이충무공 유허 (현충사) (사적 제155호) 8 이순신 영정 임진왜란 중 많은 전공을 쌓았으나 선조의 오해를 산 이순신은 옥살이를 하고 모든 관직을 박탈당한다. 9 T.D해서 본가 1597년 봄, 백의종군을 위해 한양을 떠나 전라도로 향하던 이순신은 이곳 아산의 본가에 도착한다. 김대현 주무관 / 문화재청 현충사 관리소 “이 집은 충무공이 살던 옛집입니다 충무공이 21살에 장가 들어서 이 집과 재산을 물려받습니다 난중일기에는 정유년, 그러니까 1597년 4월 5일자에 이 집이 나옵니다” 본가에 이르러 장인 장모님 신위에 절했다 - 1597.4.5 16 처마에서 T.D 당시 이 집에는 이순신의 아내와 자식들이 살고 있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여수에 머물고 있었다. 아들의 석방 소식을 듣고 아산으로 오던 어머니는 도중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김대현 주무관 / 문화재청 현충사 관리소 “백의종군 중에 고문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오게 된 곳이고 이곳에서 며칠 쉬는 중에 어머니의 부고를 받게 되고 그리고 어머니의 장례를 체 치르지도 못하고 다시 백의종군을 위해 내려가야 했던 난중일기 속에서는 아주 슬픈 공간입니다“ 7 집 내부 S.K 어머니의 죽음을 예감했을까? 부고를 받기 이틀 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새벽꿈이 몹시 산란하여 이루다 말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매우 언짢아서 취한 듯 미친 듯 마음을 가눌 수 없으니 이것이 무슨 징조인가. 종을 보내서 어머님의 소식을 듣고 오게 했다 - 1597.4.11 9 집 외경 평소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컸던 이순신은 큰 슬픔에 빠지지만, 백의종군을 위해 길을 떠나야 했다. 12 진도 바다 팬 (흘리다가) + 전라남도 진도군 그해 정유년 초, 일본은 14만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다시 침략했다. 정유재란이다. 25 깃발 날리는 성벽 8월 말, 이순신의 뒤를 이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이 지휘하는 조선수군이 칠천량 전투에서 전멸된다. 이순신 동상 보이는 이에 당황한 선조는 권율 휘하에서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한다. 9 해설사 걸어가는 이후 이순신은 진도의 벽파진에 머물며 또 한 번의 출전을 준비한다. 허상무 / 진도군 문화관광해설사 “바로 이곳은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위치하고 있는 벽파진지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1597년 8월 29일, 이른 아침에 맏아들 회와 (군선) 열두 척을 거느리고 저 멀리 보이는 어란진에서 진을 옮겼던 곳이 바로 (여기) 벽파진입니다” 9 벽파진 S.K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긴장감이 가득한 + 벽파진 상황에서, 이순신은 패기 넘치는 (전라남도 진도군) 장계를 올리며 반격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지금 신에게 아직 열 두 척 전선이 있사오니 죽을힘을 내어 막아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전선이 비록 적으나 미천한 신이 죽지 않았으므로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 이충무공전서 9권 허상무 / 진도군 문화관광해설사 “이순신 장군은 벽파진에서 16일 동안 있으면서 ‘울돌목 거센 물결을 등지고 싸울 수는 없다’해서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기게 됩니다” 9 지도 CG (잠깐 보다가 CG에 맞춰서) 9월 중순, 이순신은 진도의 벽파진에서 바다 건너 해남의 우수영으로 진을 옮긴다. 9 다리 트래킹 벽파진 앞의 울돌목은 지형이 좁고 조류가 거칠어 전장으로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겼다. 벽파정 뒤에 명량(울돌목)이 있는데 수가 적은 수군으로서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1597.9.15 9 걸어오는 해설사 해남 전라우수영으로 진을 옮긴 것은 바다의 움직임을 읽은 후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전략이었다. 허상무 / 진도군 문화관광해설사 “바로 이 명량의 좁은 물은 이순신 장군이 13척으로 왜적선 130 여척을 무찔렀던 진도 울돌목입니다” 12 팬하면 거친 물살 보이고 (보다가) 하지만 조선 수군에게 남은 배는 단 13척 뿐. 승리가 보이지 않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했으며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그대를 뭇 장수들은 살려는 마음을 가지지 말라 - 1597.9.15 임원빈 소장 / 순천향 대학교 이순신 연구소 “누가 봐도 불가능한 상황인데 어쨌든 리더 이순신 머릿속에, 이 분이 그렇게 엉성한 분이 아니잖아요 굉장히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기 때문에 우리 판옥선 한척이 가지는 막강한 전투력과 명량의 물목이라고 하는 지형적 이점을 잘 활용하고 또 한편 우리 조선 수군병사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한 번 해 볼만 하다’ (라고 생각한 것이 죠)“ 17 물결치는 바다 팬 진을 옮긴 다음 날인 9월 16일, 드디어 명량해전의 막이 오른다. 울돌목의 좁은 공간에서 일본군선과 조선군선이 대등하게 맞설 수 있었고, 이후 빠른 물살에 휩쓸린 일본군선은 서로 부딪히며 자멸하고 만다. 돌격하며 지자포, 현자포와 각종 총통을 어지러이 쏘아대니 마치 바람과 번개 같았고, 군관들이 화살을 비처럼 어지러이 쏘아대니 적도들이 감히 대적하지 못하여 다가왔다가 물러나고는 했다 1597.9.16 18 팬하면 승전비 전각 보이고 (잠깐 흘리다가) + 명량대첩비 조선 해안의 지형과 조류의 흐름을 활용한 (보물 제503호) 그의 비책은 성공이었다. 명량해전에서 대패한 일본군은 이후 다시는 바다에서 조선을 공격하지 못하고 전란의 분위기는 반전된다. 임원빈 소장 / 순천향 대학교 이순신 연구소 “명량해전 승리 요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량의 좁은 물목을 해전 장소로 택함으로써 전체적으로는 133대 13으로, 10대 1의 열세였지만 전투가 벌어지는 맨 앞은 우세한 상황을 만든거죠 명량의 좁은 물목, 또는 조류, 이런 지형적 특성을 활용해서 절대열세의 수적 열세를 극복한 거죠 이게 가장 뛰어난 이순신의 전략전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2 바다에서 T.U하고 (잠깐 흘리다가) 동상 보이면 모두가 불가능하다 여겼던 전투에서 승리한 이순신은 이날의 소회를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적선 31척을 깨부수자 적선들이 물러나 도망치니 다시는 아군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이번 일은 실로 천행이었다 - 1597. 9.16 4 트래킹 (흘리고) 10 바닷가 마을 부감 팬 (잠깐 흘리다가) + 경상남도 남해시 경남 남해의 바다는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22 충렬사 계단에서 T.U (흘리다가) + 남해 충렬사 남해 충렬사는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사적 제233호) 이순신의 유해를 안치했던 곳으로 입구 달리 그의 사후 이 지역 선비들이 노량해전과 이순신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강광수 / 남해군 문화관광 해설사 “이곳 사당이 이순신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일 년에 두 번 제를 모시는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충무공 탄신일인 4월 28일에 다례제를 모시고 있고요 돌아가신 날, 음력으로 동짓달 열 아흐렛날에 기행제라는 제사를 모시고 있는 곳입니다“ 10 사당 내부 팬 1598년, 일본군은 퇴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순신은 도망치는 일본군을 쫓아 노량에 이른다. 맑음. 이른 아침에 적을 공격하러 배를 내보내 종일 싸웠는데, 적들은 허둥지둥 달아났다 - 1598.10.4 12 산길 올라가고 퇴각하는 일본군과 쫓는 조선군의 최후의 일전, 노량해전이 벌어진다. 마지막까지 적을 쫓던 이순신은 결국 이 바다에서 적의 총탄에 쓰러지고 만다. +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사적 제232호) 6 전각에서 보는 바다 팬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전사하기 이틀 전인 1598년 11월 17일의 일기로 끝이 난다. 왜의 중간 배 1척이 군량을 가득 싣고 남해에서 바다를 건너는 것을 한산도 앞바다까지 추격하였다. 왜적은 한산도 기슭을 타고 육지로 달아났다 - 1598.11.17 10 바다 담담한 기록 속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루며 7년을 하루 같이 살았던 진정한 영웅 이순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거북선



이순신 장군 하면 바로 떠오르는 거북선! 아닌게 아니라 거북선은 난중일기에도 등장한답니다 .
임진왜란에서 어떻게 거북선으로 적을 격파했는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잠깐 난중일기를 살펴볼까요?

먼저 거북선으로 곧장 충루선 밑으로 치고 들어가 용의 아가리로 현자철환을
소고 또 천자 지자철환과 대장군전을 쏘아 그 배를 쳐 깨트리고..


-1592년 6월 14일 당포왜병장

이 거북선이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전투에서 사용됐는지 영상으로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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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보기 # 사천 앞바다 1592년 5월 29일 사천선착장. - 거북선 오는 거북선이 처음으로 전장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 화공 조선의 해안을 장악하려는 왜선을 향해 화공과 총공세를 퍼부은 조선의 통쾌한 역전승! - 깃발 흔들리는 배 이전 해전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비밀병기 거북선의 등장으로 일본군 전함 13척은 모두 격침되고 불에 타버렸다. # 박재광 인터뷰 해상의 탱크라고 저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결국엔 적이 들어오지 않는 장갑을 통해서 적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함으로써 전투원이 보호된 상태에서 적선과 접근전을 펼칠 수 있는 그런 돌격함이기 때문에 해상의 탱크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죠. # 당포파왜병장 문헌 내용 (1592년 6월 14일) - 먼저 거북선으로 곧장 층루선 밑으로 치고 들어가 용의 아가리로 현자철환을 쏘고, 또 천자 지자철환과 대장군전을 쏘아 그 배를 쳐 깨뜨리고 (톤 변화) 먼저 거북선으로 적진에 돌진케 하여 용의 입으로 현자철환을 쏘게 하고 또 천자, 지자 철환과 대장군전을 쏘아 배를 깨뜨렸습니다. # 해전 그림 거북이를 닮은 전함, 거북선의 역습! 백전백승의 불패신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 거북배 스케치 수군은 보호하고 적군은 무력화 시키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해전 역사상 가장 과학적이고 해전에 최적화된 돌격함 거북선을 탄생시켰다. ---------------------------------------------------------------------------------------------------- 타이틀 ---------------------------------------------------------------------------------------------------- # 거북선 그림 우리 역사 속에서 거북선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조선 초기 태종 때다. # 태종 13년 2월 5일 국왕이 임진도를 지나다 거북선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것을 구경했다는 것이다. # 이순신 그림 그 후 180여 년간 거북선에 관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다가 이순신과 함께 거북선의 기록은 다시 시작된다. # 난중일기 기록 자막 - 2/8 거북선에 사용할 돛베 29필을 받다 - 3/27 거북선에 대포 쏘는 것을 시험 - 4/11 베로 돛을 만들다 - 4/12 식후에 배를 타고 거북선의 지.현자포를 쏘아 보았다 전투함으로서 하나 하나 채비를 갖춰가는 모습이 이순신의 일기에 나타나 있다. # 용머리 용머리에는 대포를, 등에는 쇠못을 박은 조선의 돌격함 거북선! # 판옥선 그림 그 모태는 판옥선이다 널빤지 위에 갑판을 얹은 모양이라는 뜻의 판옥선은 평평한 바닥이 특징이자 핵심이다. # 이원식 인터뷰 우리나라의 지리적 조건에 적합하게 만드는 배가 이제 평저선이에요. 왜냐하면 서남해안은 리아시스식 침강해안이라고 해서 조수간만의 차가 많아요. 그런데 물이 빠지면 (배가)그대로 갯벌에 앉아야 된단 말이에요. 갯벌에 앉으려면 바닥이 평평해야 되잖아요. 그리고 이제 조수가 들어오게 되면 또 그대로 바다로 또 나갈 수 있다는 거죠. 그러한 편리한 점이 있었어요. # 지도 우리나라의 복잡한 해안구조에 맞춰 평평한 바닥, 즉 평저선 구조를 전략적으로 택한 것이다. # 일본배 들어오는 애니 반면 일본은 바닥이 뾰족한 모양의 첨저선을 가지고 왔다.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 첨저선 VS 평저선 문제는 물이 빠져나가는 썰물 때다. 평저선은 안전하게 내려앉는 반면 첨저선은 그대로 넘어질 수밖에 없다. # 애니메이션 이런 현상은 포를 쏠 때도 나타났다. 원거리 포 공격이 극렬하게 오가는 해전에서 평저선은 포를 쏠 때 생기는 반동에 안정적이지만 첨저선은 그때마다 위태롭게 흔들렸다. # 이원식 인터뷰 대포를 쏘게 되면 대포에 반동이 상당히 크거든요 판옥이라고 씌웠는데 그것도 마찬가지로 상당히 튼튼하니까 뭐 웬만큼 쏴가지고는 배가 흔들리지 않아요. # 선조 33년 6월 15일 적이 깨트리지 못했다는 판옥선의 비밀, 평저선의 과학 원리를 거북선은 그대로 본 땄다. # 전쟁 그림 당시 일본은 통일을 이룩하고 정권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잠깐 보고) 왜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해 왔고 초기 1년 조선은 일방적으로 밀리다시피 했다. # 여수 앞바다 하지만 바다에서는 달랐다. 남해를 지키던 수군은 왜구의 침입에 준비되어 있었다. 특히 1591년 전라좌군 절도사로 임명되어 온 이순신은 새로운 위험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거북선이다. # 박재광 인터뷰 거북선 자체는 창의적인 산물이죠. 혁신의 산물이라고 얘기하거든. 우리가 가진 판옥선이나 조선 수군의 전술능력을 봤을 때 일본군에게 밀릴 수 있는 부분이 단점이 있다. 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판옥선에 덮개를 씌우고 철심을 해서 적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이렇게 해서 조선 수군이 연승할 수 있는 하나의 밑바탕을 만들었죠. # 거북선 이순신은 우리 해안의 맞춤 구조인 판옥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배 위에 지붕인 덮개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더한 것인데 당시로서는 전례가 없는 형태였다. # 이원식 인터뷰 판옥선 위에다가 이제 지붕을 덮고 그 다음에 지붕 덮고 난 다음에는 거기다 창을 꽂았어요. 칼 하고 창하고 한 자가 되는 거. 그럼 적들 적선들이 이제 와가지고선 배 위에 올라 탈 거 아니예요. 배에 올라타면 창에 찔려서 죽고 배 위에 보니까 밋밋한데 둥그런 건데 거긴 들어갈 자리 없고 그러니까 이제 적하고 전쟁할 적에 우리 쪽에 유리하겠다. # 전투 당시 전투는 멀리서 포를 통해 적을 공격하고 점차 가까이 접근하면 적의 군함으로 건너가서 칼로 싸우는 백병전 형태. # 일본 사무라이 그림 일본은 역사적으로 칼에 강한 민족이었고 우리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 거북선 덮개 그러자 아예 이를 원천봉쇄 할 기막힌 아이디어! 덮개를 고안해낸 것이다. # 박재광 인터뷰 기존의 전투함에서는 어떤 형태도 덮개가 씌워져 있지 않은데 덮개가 씌워져서 안으로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전함이 그리고 안에서 누가 뭘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니까... 근데 갑자기 포도 쏘고 갑자기 와서 들이받고 시착문 열고 화살도 쏘죠 위로 뛰어내려서 뭔가 불을 지르고 위로 뛰어내리려고 하더라도 철촉이 있어서 걸어다닐 수도 제대로 없고 그렇게 되니까 일본군들은 적은 숫자지만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보여집니다. # 거북선 선채 sk 거북선의 또 다른 강점은 바로 튼튼한 선체다. 거친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질기고 강한 해송을 재료로 사용했다. 왜구의 공격에도 부서지지 않는 강한 배가 완성된 것이다. # 이충무공전서 1795년에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는 거북선의 외판 두께를 4치, 약 12~13cm라고 기록하고 있다. # 인터뷰 배 밑은 한자 반 정도 되는 통나무를 열줄 올려서 바닥에 한 열 다섯줄 정도 되잖아요. 그 옆에 올라가는 상판은 4치. 12cm이상 두꺼운 걸로 올렸어요 현대 우리가 조선공학에서 설계를 해보면 필요 이상으로 두배 이상으로다가 나무를 튼튼하게 썼어요 # 거북선 전투 막강한 방호력을 갖춘 거북선은 수군 최선봉에서 돌격선 역할을 했다. 거북선이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 적의 함대를 흩트려 놓으면 뒤이어 판옥선이 적을 무너트렸다. # 박재광 인터뷰 초기 전투에서 거북선의 역할은 돌격함으로써 적의 전열을 흐트려 놓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일본군들은 그 거북선에 대해서 장님배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기도 하고요. 좌충우돌 충격을 해서 부딪혀서 적선을 깨트리기도 하고 가까이 다가가서 좌우측면에 있는 포를 이용해서 직격탄을 날리기도 하고 # 전투 그림 적군 사이로 파고들어간 거북선은 천자포, 지자포 등 14문에서 강력한 포공격을 퍼부었다. 상당한 화력을 가진 전선이었다. # 선봉에 선 거북선 애니 사천해전의 승리은 시작에 불과했다. - 포 적의 코앞에서 명중탄을 날리는 거북선은 한산도대첩에서 적선 70척을 대파하고 1598년 노량해전까지 세계 해전사에 유래 없는 승전고를 울렸다. # 거북선 sk 조선의 바다를 지킨 돌격함, 거북선. 나라를 지키고 수군을 보호한다는 것은 생각만 한다고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잠깐 보고) 전략적이고 과학적인 사고 그리고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조선 기술이 만난 거북선은 그 자체로 도전이고 혁신이다.


여기까지 푸른 바다의 소리가 들리는 통영의 문화유산 이야기였습니다.
다음 문화유산 키워드에서 만나요~!

그럼 다음 여행지의 문화유산 키워드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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