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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여행을 부르는 문화유산 답사기] 여성의 전설을 만나는 풍경 스크랩

여행을 부르는 문화유산 답사기 with 이철호 작가



여성의 전설을 만나는 풍경

 

-청평사와 고려선원-

-아우라지-

 

 

우리의 역사를 남존여비라는 말로 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실 여성이라는 존재가 느꼈을 불평등의 아주 오래되고도 깊고 넓은 것임은 너무도 명확하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 속 여성이 또한 그런 취급을 받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선 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신화는 여성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특히 우리 설화의 원형이 남아 있는 제주에는 여성 영웅과 그 이야기가 무수히 전해지고 있다.

바리데기는 무조巫祖로서, 저승에 가서 아버지의 불치병을 구하는 불사의 약,

생명수를 구해오고, 자신은 망자의 영혼을 인도하는 저승신이 된다.

구원과 치유, 부활을 관장하는 무당은 이 바리데기의 후신들이다.

소서노는 비록 역사기록 속에서 도드라져 있지 않지만 주몽과 함께 고구려를 건국하고,

비류-온조와 함께 또 다시 백제를 건국하여 삼국 중에서 두 개의 나라를 개국한 대단한 여성이었다.

이렇듯 여성의 전설과 문화유적은 없는 게 아니라 잊히거나 묻혀 있다고 보는 게 더욱 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강원도에 남아 있는 여성 전설을 만나면서 새롭고 더 많은 이야기를 기대해보는 이유도 그것이다.

 

 

청평사의 고려선원과 상사뱀 전설

 

 청평사 가는 길 멀리 보이는 선착장

<청평사 가는 길 멀리 보이는 선착장>


청평사는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인 춘천을 대표하는 곳 중의 하나였다.

예전에는 오직 배로만 갈 수 있던 곳이 이제 차로도 갈 수 있어 더욱 가까워진 곳이기도 하다.

주차장에서 한참 조금 내려가면 다양한 먹거리와 함께 휴식을 할 수 있는 식당가가 있고,

그 아래로 호수와 유람선이 자리하고 있다. 다른 쪽으로 다리와 다리를 건너면 그때서야 청평사로 올라가는 길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이어지는 길은 주차장에서 대웅전까지 대략 2킬로미터에 이르니

청평사를 다녀올 때는 넉넉한 시간을 함께 가져오는 게 좋을 듯하다.

 

청평사 공주조각상

<청평사 공주조각상>


매표소에서 표를 받고 가파른 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옆에는 멋들어진 계곡이 함께 흐르고 있지만, 가파르고 미끄럽기 때문에 출입금지 푯말을 고개 들 때마다 마주하게 된다.

잠깐씩 계곡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을 때가 있는데, 청평사의 전설을 새겨놓은 다양한 유적과 조각상을 만날 때이다.

가장 먼저 당나라 공주의 조각상을 만나면서 청평사의 전설 속으로 차츰 걸어 들어가게 된다.

전설에 따르면 당나라 태종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평민 청년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를 알게 된 태종은 화가 나서 청년을 사형에 처해 버리고,

청년이 커다란 뱀으로 다시 태어나 공주의 몸을 칭칭 감고 놓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한 스님이 이름 높은 절에 가서 기도를 드려보라고 이야기를 해준 후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던 공주는 청평사까지 오게 되었다.

청평사 앞 구성폭포 아래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낸 공주는 아침을 여는 범종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공주는 절에 가서 밥을 얻어오겠다며 뱀에게 잠시 내려와 달라고 하자 웬일인지 뱀이 순순히 몸을 풀어주었다.

공주는 오래만의 자유를 느끼며 계곡에서 목욕을 하고 청평사에 들어가 법회에 참석하고,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공주를 찾아 나선 뱀은 청평사 회전문을 들어서는 순간 벼락을 맞아 죽었다고 한다.

공주와 당의 황제는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삼층석탑을 세우고 돌아갔다는 게 전설의 끝이다.

청평사로 오르는 길은 공주의 설화를 만나는 한 편의 연극과도 같다.


삼층석탑 공주탑

<삼층석탑 공주탑>


공주가 머물렀다는 구성폭포와 굴이 나오고, 계곡을 건너 언덕을 오르면 공주가 세웠다는 삼층석탑을 만날 수 있다.

삼층석탑은 그래서 공주탑이라고도 하는데 현재 2층 옥개석만 남아 있고, 3층 이상은 없어졌으며, 2층 옥개 위에 잡석들을 올려놓았다.

그렇지만 탑은 단정한 아름다움을 뽐내지고 있었고, 탑과 함께 내려다본 산 아래의 풍경은 높은 산위에서 느낄 수 있는 시원함을 전해주고 있었다.

또 청평사 입구를 지나면 계곡에 공주탕이 있고, 청평사의 입구는 상사뱀이 벼락을 맞고 죽었다는 회전문이니,

청평사로의 여정은 공주의 사연을 한마디씩 풀어놓는 무대를 만나는 길이기도 한 셈이다.

 

청평사 폭포

<청평사 폭포>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청평사로의 여정을 설명하기에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이곳이 바로 고려선원이기 때문이다.

명승 제70호 고려정원(高麗禪苑)은 지금까지 밝혀진 정원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일본 교토[京都]의 사이호사[西芳寺] 고산수식(枯山水式) 정원보다 200여 년 앞선 것이라고 한다.

청평사 원림은 산을 오르면 처음 만나는 거북바위부터 시작된다.

이어 공주의 전설이 새겨진 구송폭포가 상폭과 하폭의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데,

그 물줄기가 이어져 내려오는 잔잔한 모습도 인상 깊다.

그리고 원림은 구성폭포에서 29,000여 평의 방대한 지역에는 계곡을 따라 주변의 자연 경관을 최대한으로 살려 수로를 만들고,

계곡의 물을 자연스럽게 정원 안으로 끌어들여 영지에 연결시켰으며 주위에 정자와 암자 등을 세우는 등 놀라운 짜임새를 보여준다고 한다.

청평사 바로 앞에서 만나게 되는 영지는 청평사 뒤의 오봉산이 비치도록 되어 있다는데,

날 때문인지 지금은 그 반영을 보지는 못한다. 다만 연못 가운데 세 개의 큰 돌이 있고,

그 사이에 갈대를 심어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은 여전했다.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은 청평사 영지를 보고 네모난 못에 천 층의 봉우리가 거꾸로 들어 있다(方塘倒揷千層峀)”고 표현했다고 한다.


청평사 영지

<청평사 영지>


단지 유적뿐만이 아니다.

독특한 이야기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유적과 풍경 사이에는 그 어디에나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돌탑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하나하나가 예술품으로 보일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고,

발길이 닿는 모든 곳에 쌓여 있으니 이곳에 새겨진 정성이 정말 놀라운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현존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정원 유적은 매우 적다고 한다.

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 많이 훼손되었고, 남아 있는 유적조차 주로 북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평사의 고려선원은 그 아름다움만큼 귀하고도 귀한 유적이며, 옛 이야기를 전해주는 친근한 문화유산인 셈이다.

 

청평사 나한전

<청평사 나한전>


이제 드디어 청평사에 도착한다.

청평사 淸平寺는 원래 973(광종 24) 영현선사(永賢禪師)가 창건하여 백암선원(白岩禪院)이라 하였던 곳이다.

그 뒤 폐사가 되었다가 1068(문종 22) 이의(李顗)가 중건하고 보현원(普賢院)이라 하였으며,

1089(선종 6) 이의의 아들인 이자현(李資玄)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자

도적이 없어지고 호랑이와 이리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이에 산 이름을 청평(淸平)이라 하고 절 이름을 문수원(文殊院)이라 한 뒤,

견성암(見性庵양신암(養神庵칠성암(七星庵등운암(騰雲庵복희암(福禧庵지장암(地藏庵식암(息庵선동암(仙洞庵)

8암자를 짓고 크게 중창하였다고 한다그 자취를 찾아 또 하나의 다리를 건너고 계단을 오른다.

그곳에는 공터가 나오는데, 그 앞으로 입구인 회전문이 보이고, 양 옆으로 문수원기와 문수사장경비가 있다.

계단을 올라 회전문과 경운루를 지난다.


청평사 대웅전

<청평사 대웅전>


양 옆으로 이어진 창살이 햇살을 담아 주었고위에 매달린 연등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반겨준다.

누각인 경운루의 고즈넉한 화려함을 구경하고 안으로 들어서면 나한전, 관음전을 거느린 대웅전이 나온다.

전각이 길을 감싸고 있어 바람을 막아주니 좀 더 아늑하고 경건한 마음이 절로 든다.

대웅전 옆으로 오르면 극락보전과 삼성각이 이어지고, 그 뒤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마침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등산객들을 따라가며,

마치 세 곳을 여행한 듯한 풍족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곳의 자연, 이곳의 정원이 주는 역사이야기가 전해주는 신비함이 얽히면서 나른한 산책길이 놀라운 환상여행이 되는 듯하다.

 

 

아우라지를 찾은 이유

 

 아우라지 나루터

<아우라지 나루터>


어성의 전설을 찾는 것은 그 여성을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강원, 아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두 여성이라면 소양강 처녀와 아우라지 처녀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아마 두 여성이 주는 아련한 그리움과 막연한 친근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춘천역 뒤편 호반에 자리한 소양강 처녀의 동상 대신 상사뱀의 공주를 멋진 계곡에서 만났으니, 이제 아우라지의 처녀를 만나러 가본다.

비록 고속도로라 뚫렸지만 짧은 거리는 아니다.

특히 영동고속도로의 위쪽과 아래쪽은 특별히 구분이 되지 않는데도, 여행을 할 때는 나눠서 진행할 때가 많다.

동선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춘천은 위쪽에서도 상단이고,

아우라지가 있는 정선은 아래쪽의 대표적인 고장이니 아무래도 남북종단의 느낌으로 오갈 수밖에 없다.

그나마 그 사이에 메밀꽃의 봉평마을이 있고, 평창의 청심대가 있으니 또 다른 전설을 만나며 길을 이으면 더욱 풍성한 시간이 될 수 있을 듯하다.


2시간은 넘고, 3시간은 못 미치는 시간이 지난 뒤 청평사를 떠난 차는 아우라지 나루터 앞에 도착을 한다.

강원도 정선군 북면 여량리의 아우라지는 태백 검룡소에서 흘러온 골지천과 오대산 자락에서 시작된 송천이 만나 어우러지는 곳이다.

두 물길이 만나 어우러지는 곳이라고 하여 이름 지어진 아우라지.

작은 돌비석이 있어 그곳의 나루터를 찾기는 쉽다. 다만 배를 타고 끌고 당기는 골지천 위의 줄은 팽팽한데,

배는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겨울이어서인지 건너편 강둑에 올려져 쉬고 있다.

둘러보니 아리랑전수관 건물이 강 건너로 보이고, 송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와 저 멀리 구름다리가 보인다.

바로 앞에 건너기를 유혹하는 징검다리를 건너니 익숙해서 친국해 보이는 아우라지 처녀상이 있고, 그 뒤에 여송정이 있다.

정선아리랑 애정편을 기리고자 정선군에서 처녀상을 세웠다고 한다.

아우라지 처녀와 애절한 사랑을 나눈 총각은 강 건너 정선아리랑전수관 근처에서 여송정을 향해 세워져 있다.


 처녀상을 마주보고 있는 아우라지

<처녀상을 마주보고 있는 아우라지 총각상>


아우라지 강을 사이에 두고 여량리에 사는 처녀와 유천리 총각이 사랑을 했다.

그들은 남몰래 만나 싸리골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이는 뱃사공 지 서방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필이면 그들이 싸리골에서 만나기로 약조한 날 밤 배도 뜰 수 없을 만큼 장마가 들었다.

두 처녀 총각은 강을 사이에 두고 애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이 사정을 아는 지 서방도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장마가 그렇게도 오래갔던지 아니면 다른 사연이 있었던지, 끝내 둘은 맺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지 서방은 뱃일을 하면서 그들의 사연을 노래했다.

둘은 강가에 서서 마주보며 발을 동동 구르면서 서로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만 키워갔고,

둘의 하소연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은 그대로 아라리에 담겨진 것이다.

 

아우라지 지장구 아저씨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旌善아우라지노래碑]     <아우라지>     전공채(시), 변훈(곡)     1. 아우라지 강가에 수줍은 처녀 그리움에 설레어 오늘도 서있네 뗏목타고 떠난님 언제 오시나 물길따라 긴 세월 흘러 흘러 갔는데     (후렴)아우라지 처녀가 애태우다가 아름다운 올동백 꽃이 되었네     2. 아우라지 정선에 애닮은 처녀 해가지고 달떠도 떠날줄 모르네 뗏사공이 되신님 가면 안오나 바람따라 흰 구름 둥실 둥실 떴는데

<아우라지 노래비>


그리고 아우라지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정선아리랑의 대표적인 발생지 중 한 곳이 되었다.

특히 이곳은 주위에 노추산, 상원산, 옥갑산, 고양산, 반론산, 왕재산 등이 둘러싸여

땅이 비옥하고 물이 맑아서 옛부터 풍요로움과 풍류를 즐기던 문화의 고장이었다고 한다.

오래 전 남한강 상류인 아우라지에서 물길 따라 목재를 한양으로 운반하던 유명한 뗏목터로

각지에서 모여든 뱃사공의 아리랑 소리가 끊이지 않던 곳이기도 하다.

정선 아리랑은 강원도 정선에서 농민들이 즐겨 부르는 민요로, ‘진도 아리랑이나 밀양 아리랑과 비교해 볼 때

다소 느리고 단조롭지만 가난 속에서도 낙천적으로 살아온 강원도 정선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과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덕분이 이 노래는 정선 아우라지에서 한강 물길을 따라 서울 광나루와 마포나루까지 이동하는

정선 뗏목을 통해 여러 지역으로 널리 전파되면서 대표적인 아리랑 중의 하나가 되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우리의 대표적인 가락이라는 아리랑의 노랫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막걸리 한 잔 걸치면서 누군가 구성지게 뽑아내던 그 흥겨운 가락은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 했었는데,

이제는 전수자나 전공한 사람 외에는 좀처럼 알지 못하는 노랫말이 되어 버린 듯하다.

강가 처녀 총각의 간절함이 자연스럽게 노래로 흘러나오듯, 우리의 풍류와 멋이 좀 더 다양하고,

일상 또는 주말여행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오면 좋지 않을까 기대해보게 된다.


 아우라지 징검다리

<아우라지 징검다리>


그런 의미에서 다리를 건너 만나게 되는 정선아리랑전수관과 그 옆 12월에 개장하는 정선아우라지체험교육관은 소중하고,

널리 알려지고 애용되는 시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득 생각을 하게 된다.

처녀상과 마주한 강둑길에는 하트 모양이 조형물과 함께 있고, 처녀상을 마주보며 총각상이 세워져 있다.

그 아래에는 전수관이 있고, 12월에 문을 여는 정선 아우라지 체험교육관이 멋들어진 모습을 뽐내며 이어지고 있다.

앞마당에는 옛 아우라지 뗏목이 복원돼 있고, 건물 안으로는 다양한 옛 풍경들이 전시되어 있으니 이곳이 어떤 곳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교육관 옆은 캠핑장이고, 거기를 지나면 철도건널목이 나온다.

건너가며 보니 저편으로 아우라지 역은 보이지 않고, 기묘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어름치카페로, 열차 2칸을 물고기처럼 꾸며 놓았다. 독특하다고 해야 하나,

기괴하다고 해야 하나 판단을 하지 못하겠다.


정선아리랑전수관

<정선아리랑전수관>


요즘 이곳은 레일바이크의 종착역이라니 오히려 땀 흘리고 온 젊은 남녀들에게는 이런 특이함이 또 다른 재미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어름치카페 뒤로는 아우라지 역이 있고, 맞은편에는 장터가 조성되어 있다.

상가는 많지 않고, 오가는 사람들도 적지만 그래도 밤이 오자 밝히는 노란색 화려한 조명은 마음을 들뜨고 푸근하게 만들어준다.

다시 길을 돌려 다리를 건너 구름다리로 향한다.

이제 주변은 점차 어둠이 내리고 있었고, 구름다리는 아래와 길게 세운 기둥에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낮에 봤을 때는 그저 그런 모습인데, 조명이 들어오니 짙푸른 하늘의 어둠과 너무 잘 어울려 보인다.

그 조명을 받으며 출렁거리는 다리를 아래로 흐르는 송천의 물소리와 함께 건너니 그 기분도 나름 좋다.


 송천 위 구름다리

<송천 위 구름다리>


두 곳의 여성 전설과 문화유적을 만나는 길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다른 답삿길과 다른 것이라면 좀 더 아름답고, 좀 더 원초적인 감성이 그 밑자락에 진하게 깔려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남과 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감성을 어떻게 만나게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보다 따뜻하고, 보다 아련하고 아름다운 여정과 옛 이야기를 찾는다면 그런 인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을 가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이고,

의외로 우리 땅 곳곳에는 그런 다채로운 인물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글 이철호 작가



전)월간 러너스코리아 기자

전)격월간 연콘텐츠 기자

전)수원청소년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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