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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여행을 부르는 문화유산 답사기] 건강과 쾌락의 견문록 – 충남에서 우리의 전통술을 만난다 스크랩

여행을 부르는 문화유산 답사기 with 이철호 작가



건강과 쾌락의 견문록 충남에서 우리의 전통술을 만난다

  

-신평양조장과 백련막걸리-

-면천 두견주-

-한산 소곡주-

 


술은 만 가지 문제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를 울리고 웃기면서 만 가지 이야기와 사연을 만들어주던 오래된 친구이기도 하다.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막걸리, 반가운 이를 기다리며 100일을 익혔던 전통주, 세뱃돈 대신 내어주던 맑은 청주 한 잔까지,

우리의 술은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 했던 오래된 벗이었다.

그렇게 가깝던 우리의 술은 일제가 만든 주세법으로 차츰 사라져갔고,

거기에 대량화산업화의 물결이 더해지면서 귀하고도 드믄 존재가 되었다.

다행히 바깥세상과 조금 가까워지고우리가 가진 전통,

그중에서도 관계를 풍성하게 해주는 술을 언제부터인가 다시 찾기 시작했다.

경주교동법주, 문배주, 면천두견주가 중요무형문화재 86향토 술 담그기로 지정되고,

각 지역은 자신의 풍토와 손맛을 술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그 복원된 시간이자 문화와도 같은, 우리의 전통을 간직한 충청의 술 익는 마을을 찾아가 본다.

 


막걸리열풍과 신평양조장

 

신평양조장 옛건물

<신평양조장 옛건물>


조상님을 모시고 음식을 대접하는 제사는 우리 민족의 삶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풍경이다.

비록 그 법과 식이 동네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상 위에 올라가는 한 잔의 술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술은 집과 지역에 내려오는 전통의 가양주일 때가 많았다.

일제의 주세법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전국으로 이름난 전통주만 해도 360여 가지에 달했고,

기록상으로는 800여종의 전통주가 있었다고 한다.

1916년에 가양주 허가를 받은 곳이 289,356개소였지만 하나둘씩 만들어진 요상한 정책으로

1934년에는 단 한 곳 남았던 곳마저도 허가가 취소되었다.

우리 술, 가양주를 공식적으로 만들 수 있는 곳은 이 땅 어디에도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영영 자취를 감추었을 것만 같았던 우리네 술들이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며 돌아오고 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바깥세상 사람들을 초대한 나라의 잔치는 전통주를 필요로 하였고,

시골집의 할머니들은 옛 기억을 더듬어 다시 술을 담그기 시작했다.

이제 마트와 편의점 냉장고은 각 지역에서 만든 전통주와 수제맥주 등으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열풍의 시작은 막걸리였다.

막걸리가 제 맛을 찾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 막걸리에 대한 규제가 하나둘 풀리면서부터다.

제일 먼저 판매구역 제한 규정이 사라졌다.

이전까지만 해도 막걸리는 1965년부터는 시행된 법률로 인해 양조장이 속한 시, 군에서는 다른 막걸리가 판매 주조될 수 없었다.

또한 종전에 6% 이상으로 규제되었던 알코올 도수를 3% 이상도 가능하도록 완화했으며,

과실 원액을 20%까지 넣을 수 있도록 해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도록 했다.


백련막걸리 만들기

<백련막걸리 만들기>


좋은 막걸리가 나오자 소비자의 선택도 달라져 막걸리의 부활에 이어 열풍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가운데 지역을 대표하는 막걸리들이 하나둘씩 등장했는데,

충남 당진군에 있는 신평양조장의 하얀 연꽃 생쌀막걸리 백련이 대표적이다.

1933년 창업한 신평양조장은 당진에 있던 15개의 양조장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아 3대에 이어 80여년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원래 파란 양철지붕을 이고 있는 낡은 단층 건물이었던 곳으로, 마당에는 오래전에 사용했던 커다란 술독이 골동품처럼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오른쪽 술을 만들던 건물은 이제 창고로 사용하고 있고, 왼쪽 건물은 리모델링을 통해 양조장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은 공간에 양조장이 만든 술이 든 냉장고와 박스 등 전시한 선반이 한쪽 벽을 채우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산업관광지 13선 선정     신평양조장 전시기획전     시간이 익는 양조장     2021.6.5 ~ 2021.7.31 신평양조장 內, 신평양조뮤지엄, 양조갤러리     대한민국 양조 근현대 역사의 시간_아버지들의 익어가는 꿈     신평양조장 박물관 수선된 술독

<신평양조장 박물관 수선된 술독>


연결된 문을 들어서면 은근한 조명에 양조장의 역사와 함께 양조장에서 사용했던 다양한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먼저 처음 창업했던 양조장의 모습과 창업주의 흑백 사진이 보이고,

그 앞으로 깨져서 두꺼운 철사와 같은 것으로 수리된 커다란 술독이 있었다.

안내를 해주던 직원이 당시에는 깨진 술독을 전문적으로 수리해주던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독에 담긴 술의 양을 재던 나무 자와 막걸리를 걸러내던 용채 그리고 고두밥을 만들던 나무궤짝도 그곳에 있었다.

제일 안쪽의 방안에는 1대와 2대 그리고 대기업에 잘 다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내려와 가업을 잇고 있는

3대와 더불어 자라고 있는 4대 아이들의 사진까지 걸려 있는 게 이채롭다.

안내하던 직원에게 아이들도 4대를 잇기로 했냐고 묻자 웃음과 함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회사의 분위기가 한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신평양조장 갤러리

<신평양조장 갤러리>


박물관 뒤편으로 나가면 새로 만든 건물이 있다.

이제 술을 만드는 작업은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입구는 갤러리로 활용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중간은 뻥 뚫려 있어 아래 층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1층은 폭이 좁은 통로를 따라 하얀 벽에 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이 새겨져 있다.

신평양조장에서는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 중인데 술에 관심이 많은 일본 관광객이나 양조장 개업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박물관과 갤러리 등을 통해 양조장과 함께 막걸리와 술에 대한 것을 알려주고 있다고 한다.

술맛이라는 것이 한두 번 보는 것으로 따라잡을 수 없다는 자신감과 우리 술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예전에 사용하던 술독이 멋지게 전시되어 있고,

중간 벽과 유리창 너머로 술을 만드는 양조실과 연구실 등이 보인다.


 백련막걸리 만들기

<백련막걸리 만들기>


시간을 잘 맞춰오면 양조장에서 직접 막걸리를 만드는 작업을 직접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고두밥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새벽 4~5시에 출근을 하고

일찍 퇴근하기도 하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추는 게 좋다.

그리고 가끔 막걸리를 만드는 데 기본이 되는 발효실의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밑술을 만드는 발효가 술의 맛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문을 꼭꼭 잠가둔다.

발효실 안에 들어간다면 넓은 탁자 위에 효모를 뒤집어 쓴 고두밥이 익어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2일 정도 발효 과정을 거친 고두밥에 물, 연잎을 섞어 다시 3~4일 정도 발효시키면 막걸리가 완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생막걸리고, 여기에 멸균작업을 한차례 더하면 일반 막걸리가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커다란 통 안에서는 잘 익은 막걸리의 가스를 빼는 작업과 막걸리를 술통에 담는 작업을 볼 수 있다.

막걸리의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탄산은 막걸리 특유의 쏘는 맛을 주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많을 경우에는

트림이 나거나 술맛이 개운하지 않기 때문에 적당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막걸리의 유통기간은 보통 20일 정도지만 실제로 맛있게 마실 수 있는 기간을 열흘정도로 짧다.

그리고 생산일로부터 2~4일 정도 지난 것이 맛이 가장 좋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된 기술개발 덕분에 새롭게 만든 맑은 술 막걸리는 대략 1년까지도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의 16강을 기원하며 전국 대표 막걸리 16을 뽑는 시음 대회가 열렸다.

여기에 출전한 백련막걸리는 전국의 막걸리를 제치고 결승에 올랐고,

결국 국순당의 막걸리 생생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백련막걸리는 시원한 뒷맛, 톡 쏘는 맛에 달착지근하면서도 입안에 감도는 은은한 향이 살아있다며 극찬을 받았다.

이처럼 주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백련막걸리의 비밀은 당진평야에서 생산되는

해나루 쌀과 지역적 색깔과 맛을 더해주는 연잎에 있다고 한다.

당진의 쌀과 더불어 백련막걸리의 맛과 향, 건강한 기운까지 북돋아주는 연은 당진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연암 박지원이 면천의 군수로 있을 때 세운 건곤일초정(乾坤一草亭)’이 있는

당진 면천면 골정지(骨井池) 연못은 당진의 명소로 유명하다.

당진의 역사와 함께 한 골정지는 일제강점기에 소멸되어 저수지로만 이용되어오다 2006년에 이르러서야 복원되었다.

그리고 건곤일초정을 복원하며 몇 뿌리의 연을 심었는데, 어느새 연잎은 연못을 가득 메우고 해마다 화려한 꽃을 피워낸다.

당진 신평면 상오리에 위치한 오봉저수지도 694700에 달하는 수면 위에 펼쳐진 연꽃이 장관을 이룬다.

아미산 자락에 있는 정토사 주변에 만개한 연꽃의 자태 또한 아름다워 해마다 여름이면 연꽃 축제를 열기도 한다.

이밖에도 당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연잎은 항산화 효과, 체중 증가 억제 효과 등의 효능뿐만 아니라

텁텁할 수 있는 막걸리의 뒷맛을 부드럽고 깔끔하게 해준다고 한다.

 


효심으로 빚은 술, 면천 두견주(沔川 杜鵑酒)

 

두견주 전수교육관

<두견주 전수교육관>


신평양조장이 있는 신평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면천면이 있고,

그곳에는 전통주를 대표하는 면천 두견주 전수관이 있다.

대부분의 전통주들이 가을에 수확한 햅쌀로 술을 빚어 설 무렵에 마시는데,

두견주는 그와 달리 봄바람 살랑 불어야 제 맞을 내는 술이다.

고려시대부터 빚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두견주에 관한 재미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918, 고려의 개국공신인 복지겸은 큰 병을 얻어 자리에 몸져 누웠는데

아무리 좋은 명약을 써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복지겸의 딸 영랑은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해달라며 매일같이 면천 아미산에 올라 기도드렸다.

그러기를 100, 어느 날 밤 영랑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아미산 진달래와 안샘의 물로 술을 빚어 아버지께 드리고,

안샘 곁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어 정성껏 기도하면 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했다.

영랑이 일어나 꿈에서 들은 대로 하니 아버지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면천 은행나무

<면천 은행나무>


영랑이 심은 은행나무는 여전히 면천초등학교에 자리하고 있다.

면사무소 마당을 돌자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다.

길게 뻗은 가지는 학교 건물 앞까지 넓은 그늘을 만든다.

영랑의 깊은 효심만큼이나 은행나무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사랑도 애중한지 은행나무는 건강한 모습이다.

영랑이 면천주를 빚는데 썼다는 안샘은 은행나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공터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 다소 쓸쓸해 보이지만 샘은 마르지 않고 여전히 맑은 물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의 맑은 물과 면천면을 감싸 안고 있는 아미산의 진달래가 만나 담황색의 오묘한 빛깔과 향기를 품은 두견주가 탄생한 것이다.

 

각 지방의 고유의 술이 있었던 것과 달리 두견주는 그 약효가 널리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특히 봄이면 우리 땅 어디에나 흐드러지게 피어 쉽게 구할 수 있는 진달래는

우리 음식과 술의 좋은 재료였던 탓에 천 년의 역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양주 금지정책으로 인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면천면에서만 근근이 그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유일한 전승자인 박승규 씨가 2001년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며 두견주의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이를 안타까워한 마을 사람들은 2004년부터 3년간 복원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2007년엔 이들이 주축이 돼 보존회가 결성됐다.

거기에다 남북정상회담 만찬주로 두견주가 선정되면서 다시금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그보다 앞서 20148월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당진 솔뫼성지를 방문할 때도

천주교 아시아청년대회의 사제단 만찬주로 두견주가 쓰였으며이후 교황에게 보낼 선물에도 포함된 바 있다.

또한 두견주는 본래 봄에 빚는 술로 알려져 있지만,

보존회 회원들은 마을 어귀에 있는 진달래동산의 진달래를 채취해 냉동 건조시켜 사시사철 두견주를 빚고 있다.


 면천 두견주 담그기

<면천 두견주 담그기>


두견주가 경주교동법주, 문배주와 함께 3대 국주가 될 수 있었던 데는 빼어난 맛과 향에 있다.

전통적으로 좋은 술의 맛은 단맛, 신맛, 쓴맛, 떫은맛, 매운맛이 잘 조화된 감칠맛이 으뜸으로 쳤는데,

면천 두견주는 18도의 알코올 높은 도수에도 부드럽게 넘어가고 감칠맛이 좋아 예로부터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이 자주 찾던 술이라고 한다.

성상리 주민들이 선보인 고운 빛깔의 두견주 역시 입 안 가득 향기를 남기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전통주 특유의 누룩 냄새와 진달래의 은은한 향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움이 강점이다.

 

전통주를 만날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청주, 법주, 소주, 약주, 단양주. 오랜 역사만큼 많은 이름들이다.

전통주의 가장 큰 분류는 술을 거르는 방법, 제조법에 따르는 것으로 탁주, 청주, 소주로 나뉜다.

막걸리로 대표되는 탁주는 술을 빚고 걸러서 바로 마시는 술이고 청주는 술을 거른 뒤 익혀서 먹는 술,

소주는 탁주나 청주를 증류시켜 만든 술로 대체로 청주를 증류한다.

또 술을 빚는 횟수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붙기도 하는데, 밑술과 덧술을 섞어 한번 빚는 술을 단양주(單釀酒),

밑술로 한번 발효시킨 것에 덧술을 하여 다시 숙성시키는 것을 이양주(二釀酒).

밑술 발효 뒤에 덧술을 두 번 해 세 번 빚는 술은 삼양주(三釀酒)라 한다.

또한 그 효능이나 술의 맛과 향기에 따라 분류하기도 하는데 꽃이나 향기를 첨가한 가향주(加香酒),

탁주나 청주에 소주를 섞은 혼양주(混養酒), 증류주인 소주에 과실이나 향초 등의 추출물을 섞은 혼성주(混成酒) 등이 있다.

그리고 약주(藥酒) 도 효능에 따라 술을 구분하는 하나의 범주인데,

이는 약재를 넣어 빚은 술이 아니라 어떤 술이든 약이 되기 위해 먹는 술을 통칭한다.

조선시대 성종(成宗, 1469~1494년 재위)은 강력한 금주령을 시행했는데,

병을 가진 자가 약으로 먹는 술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분류에 따르면 면천 두견주(沔川 杜鵑酒)는 청주이면서도 두견화 꽃잎을 넣어 만든 가향주인 동시에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만든 약주이자 두 번 발효시킨 이양주가 되는 것이다.

 

 

앉은뱅이 술, 한산 소곡주


소곡주 재료들

<소곡주 재료들>


조선시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가 한산지방의 한 주막에 들렀다.

선비는 미나리부침을 안주로 소곡주 한 잔을 마셨는데 그 맛이 너무 좋았다.

결국 선비는 취흥이 돋아 시를 읊으며 술을 즐기느라 과거를 치르지 못했다.

물건을 훔치러 들어왔던 도둑이 술맛에 취해 도망가지 못했다가 잡혔다는 일화도 있다.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도무지 술잔을 놓을 수 없는 술.

그래서 소곡주(素穀酒)’는 본래의 이름보다 앉은뱅이 술로 더 유명하다.


소곡주 밑술

<소곡주 밑술>


술맛만큼 소곡주의 역사 또한 깊어, 15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다안왕(多晏王) 11(318)에 흉작으로 민간에서 제조하는 소곡주를 전면 금지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일본 사서인 고사기 응신천황조 편에도 베 짜는 기술자인 궁월군의 증손인 수수허리(仁番, 인번)가 일본에 가서 술을 빚어

응신천황에게 선물하니 왕이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 노래를 불렀다는 내용과 후세에 그를 주신(酒神)으로 섬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같은 사실로 인해 소곡주가 일본 술의 모태가 되는 술로 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

수수허리가 빚은 술이 소곡주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상당수 학자들은 시기와 주조방법 등을 근거로 비슷한 술로 추정하고 있다.

백제왕실에서 즐겼던 술이었던 소곡주는 백제 멸망과 함께 잠시 맥이 끊겼다가

백제 유민들이 충남 서천군 한산지역에 군락을 이루면서 다시 빚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주세령, 양곡법 등 전통주에 대한 각종 규제와 양조금지 정책으로 인해 오랜 시간을 밀주의 운명으로 살아왔다.

소곡주가 다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1979년 김영신 할머니가 충남 무형문화제로 지정되면서였다.

그리고 대를 이어 그의 며느리인 우희열 씨에게 전수되다 지금은 우희열 씨의 아들인 나장연 씨가 한산소곡주라는 이름의 술도가를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산면에서 정부의 허가를 받은 소곡주는 나장연 씨의 술도가에서 나오는 소곡주가 유일했다.

하지만 마을에서는 허가여부와 상관없이 소국주를 집집마다 빚고 있었다.


 술거르기 시범 나장연씨

 <술거르기 시범 나장연씨>


처음 소곡주를 찾아 한산면을 갔을 때였다.

주변의 도로와 감시카메라까지 지도로 만들었던 관광과 계장님은 어떤 소곡주를 찾느냐며 대뜸 물어오던 기억이 생생하다.

계장님이 그때 묻기를 많이 알려진 소곡주를 원하느냐 아니면 밑술을 잘 만드는 집을 원하느냐 묻더니,

마을에서 밑술을 잘 만드는 집을 친절히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음지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만들어오던 소곡주는 200910, 한산면 일원이 전통주 생산지로는

처음으로 산업특구로 지정되고 주류 제조면허가 간소화되면서 정식 술도가로 양지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술을 빚어 아는 사람들에게만 판매되던 다양한 맛의 소곡주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오늘날 한산면에서 소곡주를 빚는 양조장은 70여 곳에 이른다.

이곳에는 나장연 씨의 한산 소곡주외에도 크고 작은 술도가의 소곡주가 함께 팔리고 있다.

다만 다른 소곡주는 모두 16도의 소곡주이고, 오직 나장연 씨의 소곡주만이 18도라고 한다.

그리고 똑같은 품질과 같은 양으로 김치를 담궈도 담구는 사람의 손맛에 따라 김치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소곡주 역시 마찬가지다. 비슷한 재료, 비슷한 제조방법으로 술을 담그지만 쌀과 누룩의 배합량,

발효과정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술맛이 달라져 집집마다 내놓는 소곡주의 맛이 다르다.


한산소곡주 갤러리

<한산소곡주 갤러리>


또한 술을 대하는 사람의 취향도 제 각각이어서 이집의 술이 어떤 이에는 형편없는 술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자신에게 잘 맞는 술일 수 있고 이것이 가양주의 매력일 것이다.

이런 다양한 소곡주의 종류를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 한산면시장 앞에 만들어진 소곡주갤러리리이다.

소곡주를 만드는 모습을 재현한 간단한 전시물과 함께 한산에서 소곡주를 만들고 있는 다양한 술도가를 알려주고 있다.

집마다 그 맛과 향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이번에 마시는 게 어떤 집의 소곡주인지를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그 중 자신에게 가장 맞춤한 술도가의 소곡주를 즐기는 게 슬기로운 방법이 된다.




글 이철호 작가



전)월간 러너스코리아 기자

전)격월간 연콘텐츠 기자

전)수원청소년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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