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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여행을 부르는 문화유산 답사기] 경북 옛길이 기억하는 여유와 나눔의 지혜 스크랩



경북 옛길이 기억하는 여유와 나눔의 지혜

-7번 국도와 십이령바지게길, 오전약수탕과 계서당, 옛길박물관과 객주문학관의 자취-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에서 바다는 위기의 원인이자 풍요의 원천이며 역사의 혈관과도 같은 곳이다.

바다를 통해 외적과 태풍 그리고 귀한 산물이 들어와 산과 강을 넘어 내륙을 살찌우고 또 변화시켰다.

새롭게 길이 만들어지면서 옛 자취는 하나둘씩 사라졌지만, 다행인지 그 기억과 지혜를 찾는 이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흔적과 기억이 복원되기 시작했다.

이는 고단한 여정 속에 빚어낸 여유와 지혜를 깨달았으며, 그 이야기에 우리가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동해의 풍요로운 바다를 떠나 거친 산과 산을 넘어 마을을 연결했던 그 흔적을 찾아 더듬어보고자 한다.

그 달라진 풍경에서 문화유산이 말해주는 우리는 우리 일상을 더욱 지혜롭게 만들어주는 힘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바다와 내륙이 만나는 십이령바지게길


<장사해수욕장에 복원된 문산호>


동해안을 따라 달리는 길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 바다와 더욱 가깝다.

경주 대왕암을 지나 포항을 넘어 영덕에 접어들면 장사해수욕장과 거대하게 복원된 문산호가 먼저 반긴다.

조성과정에 이런저런 말은 많았지만, 오직 젊은 애국심만으로 전쟁에 던져졌다가 잊힌 이들을 기억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일지도 모르겠다.

길은 계속 위로 이어지고, 영덕의 붉은 등대를 지나 울진의 짙푸른 바다와 오산항이 보일 때 고고하게 서있는 정자를 만나게 된다.


<망양정>


고려시대 처음 만들어졌고, 조선시대 몇 차례 허물어지고 다시 만들기를 거듭하다가 지금의 자리에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진 망양정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관동팔경 가운데 으뜸이라 하여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한 곳이기도 하다.

바다는 그렇게 한없는 낭만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또한 서민들에게는 풍요의 꿈을 선사하기도 한다.

망양정을 지난 길은 바다를 떠나 내륙을 향해 산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 길은 보부상의 길이며바다의 선물을 내륙에 나눠주는 길이며, 내륙의 풍요를 바닷가로 받아오는 여정이다.

 

옛 사람이 만든 길 어느 곳에도 보부상이 지나가지 않은 길이 없을 것이다.

산길, 강길, 바다길 등 지역과 지역, 시장과 시장을 잇는 모든 길이 보부상들의 무대이다.

교통과 상업 유통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 보부상들은 지게며 보따리를 지고 이고 방방곡곡을 누볐다.

그들은 상품만이 아닌 각처의 소식을 옮기는 1인 미디어이자 언론이었고, 새로운 문물과 문화를 퍼뜨리는 시대의 상인이었다.

또한 보부상들은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인생이었기에, 함께 고민과 고난을 나눌 수 있는 동료들과 끈끈한 연대감으로 서로를 의지했다.

그래서 보부상은 결속력이 강하고 전쟁 시엔 일사분란한 군사조직으로 변모해 병자호란 등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이곳 울진에서 봉화로 넘어가는 길에도 보부상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 지역 일대에서는 바지게꾼, 또는 선질꾼으로 불리었다.

바지게는 그들이 들고 다닌 다리 없는 지게를 이르는 말이며, 바지게를 지고 가면서 앉아 쉬지도 못하고 서서 쉬었다 가고 해서 선질꾼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두천1리 복원된 주막거리>


내륙으로 향하던 길이 산을 만나 두 다리 말고는 더 이상 오를 방법이 없는 곳에 두천 주막거리가 있는 말래마을이 있다.

울진군 북면 두천 1리를 이르는 말이다.

소금과 해산물이 풍부한 울진의 흥부장, 울진장, 죽변장에서 출발한 보부상들이 첫날은 이곳 에서 보내고

몇 고개를 넘어 이틀째 밤엔 소광리의 주막거리에 머물렀다가 34일 만에 봉화까지 갔었다고 한다.

봉화에선 비단이며 담배, 곡식을 싣고 되돌아왔는데, 이들이 들고 간 소금이며 해산물은 봉화, 영주, 안동 등 주변 내륙 주민들의 먹거리였다.

주요 길목이었던 당시 말래마을에는 두천원이라는 관에서 운영하는 여관이 있었으며,

주막과 말과 소에게 먹이를 주는 여섯 채 가량의 마방과 술도가도 있었다고 한다.

불영계곡 옆으로 36번 국도가 생긴 후 바지게 보부상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마을은 찾는 이들이 드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가로운 산골마을이 되어가던 마을은 전국적인 걷기 열풍이 불어오고

울진과 봉화에 만들어진 총 3개 코스의 금강소나무숲길이 이곳으로 이어지면서 또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금강소나무숲길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금강소나무의 산지이기 때문에 붙여졌는데,

한자로 쇠 금 굳셀 강 자라는 이름 그대로 비틀림 없이 곧게 자라며 견고하고 키가 큰 소나무라고 한다.

금강소나무는 궁궐 등 문화재 복원에 쓰이는 최고의 목재 소나무이다.

금강소나무는 흔히 적송으로 불리는데 이는 일본식 표현이고,

조선시대 때엔 소나무를 베면 안이 노랗다하여 황장목이라 불렸다고 한다.


<십이령길 징검다리>


금강소나무길의 1코스가 보부상길인 십이령바지게길이다.

십이령은 말 그대로 열두 고개를 이른다.

실제 40여 고개가 있지만 그중 높고 가파른 열두 고개를 묶어 이름 지었다.

울진에 일곱 고개, 봉화에 다섯 고개인데, 고개들 끝엔 봉화의 춘양장이 있었다.

십이령길의 선질꾼들은 다른 보부상과 달리 각처를 떠돌지 않고 일정 구간을 반복적으로 끝없이 오갔었다.

산과 산 사이로 그들이 만든 길과 약수터가 지금도 남아 있고, 그 길과 흔적을 찾아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십이령길 입구에는 예전 주막거리도 복원되었으며, 넓은 공터 겸 주차장에는 십이령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공터 앞으로 개천을 따라가는 나무데크가 있고, 그 끝에 징검다리와 연결된 바위 사이의 제법 넓은 공터가 나온다.


<십이령길 입구 내성불망비>


거기에 작은 전각과 장승들이 서있는데, 전각 안에는 고종 때인 1800년대 후반에

봉화 출신 접장 정한조와 반수 권재만을 기리기 위해 세운 철로 만든 공덕비인 내성행상불망비가 있다.

내성행상불망비는 십이령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선질꾼들은 이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춘 후 고갯길을 올라 십이령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길은 험해지고, 예전에는 맹수와 도적떼를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무리를 지어 산을 올랐는데, 적게는 열 명 남짓, 많게는 100여명이 함께 다녔다고 한다.

당시 그들이 춘양장까지 총 150(60km)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다니며 함께 불렀던 노래가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고,

또 십이령바지게놀이라는 전통놀이이자 공연으로 새롭게 복원되고 있다.


 

<내성행상불망비>


미역 소금 어물 지고 춘양장을 가는 고개

대마 담배 콩을 지고 울진장을 가는 고개

반 평생을 넘던 고개 이 고개를 넘는구나

- 중략 -

꼬불꼬불 열두 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오나 가나 바지게는 한 평생 내 지겐가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



오전약수탕과 계서당의 낭만


십이령길은 소천면 분천리를 거쳐 춘양면으로 이어지는데, 마지막 고개인 맷재, 배나들재, 노룻재는 외씨버선길과 겹친다.

외씨버선길은 청록파 시인이자 일제강점기 문인들 중 친일을 하지 않은 15인 중 한 명으로 기록된 조지훈의 시 승무에서 따온 것이다.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물야저수지앞 외씨버선길 표지판>


외씨버선은 버선의 앞 코가 아름답게 빠진 버선을 이르는 말로, 그만큼 아름답고,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외씨버선길 중 여덟째 길이면서 봉화에 걸쳐 있는 길 중 하나가 보부상길이다.

보부상길은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에서 춘양면 춘양면사무소까지 18.5km에 이르는 길인데, 분천리에는 협곡열차로 널리 알려진 분천역이 있다.

201412월 분천역 일대를 산타마을로 꾸미면서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다.


<춘양역>


길은 분천역을 넘어 현동역의 소천장을 지나 억지춘양으로 유명한 춘양역에 다다른다.

분천역과 춘양역은 모두 강원도의 석탄과 봉화 인근의 춘양목을 실어 나르는 역이었다.

춘양역에서 면 소재지를 한가롭게 걸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여덟째 길인 보부상길의 종착지인 춘양면사무소가 있다.

거기서 해발 780미터의 고개이자 외씨버선길 9코스인 춘양목 솔향기길의 종점이면서 약수탕길이 시작되는 주실령으로 오르게 된다.

주실령 가는 길 왼편으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목원인 <백두대간 수목원>이 조성되어 있다.

주실령은 또한 외씨버선길과 백두대간 등산길이 만나는 고개이며, 봉화군 물야면과 봉화군 춘양면의 경계이기도 하다.

멀리 겹겹이 이어지는 산의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오전약수탕 공원>


주실령에서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수십여 차례 커브를 돌며 내려가면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에 있는 오전약수탕이 나온다.

오전약수는 조선 8대 임금인 성종 시기에 보부상 곽개천이 발견한 약수이다.

그는 그곳에서 잠을 자던 중 만병을 치료하는 약수가 나오는 꿈을 꾸었고, 잠에서 깨어보니 누운 자리 옆에서 약수가 샘솟았다고 한다.

그 후 이 약수는 성종 시대 물맛이 좋은 약수를 뽑는 대회에서 1등으로 뽑혔고,

이를 기려 약수터엔 보상(봇짐장수)과 부상(등짐장수)이 나란히 서 있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오전약수탕과 조형물>


주변은 어느 약수터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종류의 음식점과 카페가 멋들어진 계곡 위에 즐비하고, 땀을 식히기 위한 정자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주세붕은 풍기군수를 하던 시절 이곳에 들러 약수를 마신 후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견할 만하다는 감상을 남겼다.

약수탕가의 바위에 그가 남긴 글씨가 새겨져 있으니, 탄산 가득한 약수 한 모금과 함께 피로와 세상의 찌든 때를 잠시 씻어보기 좋은 곳이라 하겠다.

 

<계서당>


오전약수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선 중기 이름난 청백리였던 문신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1595-1664)

1613년에 건립해 살면서 후학 양성에 힘쓰던 계서당이 있다.

특히 계서당은 춘향전의 주인공인 이몽룡의 모델이었던 성이성의 생가로 알려진 곳이다.

1999년 연세대학교 설성경 교수가 발표한 논문 이몽룡의 러브스토리에 따르면이도령의 본래 이름은 성이성(成以性: 1595~1664)이다.

조선 광해군·인조 때 살았던 실존 인물로남원부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전라도 남원에 머무르는 동안 기생과 사귀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른 뒤 암행어사가 되어 호남지역을 순행하다가 다시 남원을 찾았지만, 사랑하던 그 기생은 죽고 없었다고 전한다.

어쩌면 바람같이 떠도는 보부상의 꿈과 낭만이 동과 서를 넘나드는 청백리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재탄생한 곳이라는 생각마저 드는 곳이다.

아직 그 집에 살고 있는 나이 여든의 후손은, 남원에서 춘향제가 열리고,

이곳 봉화에서 몽룡이 축제가 열리면서 서로 오가면 동서화합에 그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냐며 두 도시의 만남과 교류를 바라고 있었다.

낡은 가옥 앞에 가을빛으로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처럼, 새롭게 이어지는 길처럼 어르신의 꿈이 이루어질 날을 기대해본다.


 

<보부상위령비>


사실 보부상의 자취는 그 유명세답지 않게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의 파란과 근대화에 따라 급격히 그 자취가 사라진 탓도 있을 듯하다.

지금으로서는 고령에 있는 상무사나 부여에 그나마 보부상단의 유물과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문경 옛길박물관>


다만, 십이령고개와 그 주변으로 뻗어나가는 길을 따라가면 만나는

문경새재의 옛길박물관과 소설 객주를 기리는 청송 객주문학관에서 그 일단의 풍경을 만나볼 수 있다.

옛날 도로 중 하나인 영남대로에서도 가장 험한 고갯길, 문경새재 입구에 있는 옛길박물관은

말 그대로 옛 길들을 모아놓은 듯 길에 관한 유물 유품 옛 지도 등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박물관이다.


영남대로는 부산 동래에서 시작해 한양까지 이어지는 길로, 오늘날로 치면 경부고속도로에 해당하는 길이라 할 수 있겠다.

옛 선비들이 과거 길에 오를 때 죽령이나 추풍령보다 문경새재를 선호한 것은 하루 이틀 더 빨리 한양에 닿을 수 있는 길이기도 했고,

죽령은 죽죽 떨어지고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풍문이 있어서라고 한다.

영남대로를 따라 부산 동래에서 한양까지 걸어가면 옛 사람들 발걸음으로 14일이 걸렸다고 한다.

영남대로는 한양으로 가는 최단거리 코스이지만 한양천리라는 말을 만든 길이다. 무려 380킬로미터의 거리이다.

흥미롭게도 현재의 경부고속도로 길이가 428킬로미터로 오히려 옛 영남대로가 40킬로미터 더 짧은 최단거리라고 한다.

노잣돈을 아껴야 하는 옛 사람들의 지혜가 깃든 결과가 아닐까 싶다.


<청송 객주문학관 김주영 노트>


전시관에는 미술작품과 같은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다양한 지도와 함께 당시 길을 가던 선비와 보부상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으며,

보부상들이 쓰던 영수증이며 차정문서, 수표 등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유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청송 진보면 진보시장 근처에 있는 객주문학관에는 소설가 이주영이 객주를 쓰기 위해 보부상의 흔적을 찾아다니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커다란 노트에 깨알같이 적힌 당시 조사 자료를 보면,

그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보부상의 발걸음처럼 느껴지고, 그들의 일상과 모습이 하나둘씩 되살아나는 듯하다.

 

<문경새재>


옛것의 가치를 말하는 건 쉽다.

하지만 그 모습과 풍경 그리고 가치를 복원하는 일은 그처럼 쉽지만은 않다.

쉽게 보고, 듣는 풍경 속에는 그들의 땀과 지혜가 끈끈하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여느 관광지와 같이 그대로 보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그 숨결을 느껴보는 여정이 된다면 옛길은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전해줄 것이다.


 


글 이철호 작가



전)월간 러너스코리아 기자

전)격월간 연콘텐츠 기자

전)수원청소년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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