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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국가무형문화재 31호 김기찬 낙죽장 - 시뻘겋게 달군 인두로 대나무에 인생을 그리다 스크랩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 여행(강희갑 작가,홍찬선 작가)


 

펄펄 끓는 한여름에도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틀지 않는다. 인두가 식어 대나무에 낙()이 잘 들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오돌오돌 떨리는 겨울에는 큰 선풍기를 틀어 놓는다. 인두에 몸이 달궈져 피어오르는 먼지를 없애기 위해서다. 여름과 겨울을 거꾸로 살아야 하는 청개구리 삶이지만 낙()에서 낙()이 솟아난다. 낙에 집중하다 보면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면서 새로운 삶을 창조해 낸 즐거움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시뻘겋게 달군 인두로 대나무에 무늬를 새겨 인생을 그리는 낙죽(烙竹). 낙죽은 국가가 인정한 무형문화재이며 낙죽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국가무형문화재 31호인 김기찬(金基燦, 66) 낙죽장(烙竹匠)이다. 전남 보성군 문덕면에 있는 서재필기념공원휴게소에 있는 그의 작업장인 <계심헌 공예미술관>을 찾아 낙죽장에게 낙죽과 인생에 대해 들어보았다.




   김기찬 낙죽장

<김기찬 낙죽장>




김기찬 낙죽장은 고향이 경기도 광주군 창곡리(현 위례신도시). 어려서부터 서화와 전통예술에 관심을 가졌다. 스물다섯 살 때 짐을 쌌다. 가슴 속에 있는 꿈을 이루기 위해 광주(光州)와 담양으로 갔다. 순천의 송광사가 운명처럼 다가왔다. 송광사 앞 여관주인의 눈에 들어 그 집 딸과 결혼하고 송광사에서 서화를 공부했다. 서른 살 때인 1983, 무형문화재 311대 낙죽장 이동련(李東連, 1911~1984) 문하에 들어가 전통예술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5년 뒤에 2대 낙죽장 국양문(鞠良文, 1914~1998) 선생의 전수교육조교가 되어 본격적으로 낙죽을 전수받았다. 19997,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무형문화재 31호 낙죽장으로 공인받았다. 고향을 떠난 지 21년 만에 국보가 된 것이다.

 


허허참 낙죽장

<허허참 낙죽장>




낙죽장이 된 그는 날개를 달았다. 미국 네바다주 카슨시에서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투표권만 없을 뿐 다른 것은 일반 시민과 똑같이 대우받는그야말로 명예를 얻었다. 아리조나주 피닉스 시장과 메사시 시장, 6.25참전용사협회장에게 감사장을 받았다. 송광사 금죽헌(金竹軒)에서 작품 활동에도 매진했다. 200712, 금죽헌 셋째 마당 <텅빈 충만>을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다. 화려한 축하도 잠시, 있을 수 없는 불의의 화재로 29년 동안 이루었던 작품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바뀌었다. 화마(火魔)에 타들어가며 신음하는 자식들을 구해내지 못한 부모의 마음.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했다. 결국 작품 <허허참 ○○○>으로 삭혀내고 이겨냈다.

 



새 옷 입고 부르는 노래

<새 옷 입고 부르는 노래>




송광사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 그때까지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었던 불교도 졸업했다.” 모든 것을 무(), ()으로 되돌려 놓은 화마를 이겨내야 했다. 화재가 있었던 이듬해 7, 보성군 문덕면의 서재필기념공원휴게소에 <계심헌 공예미술관>을 열고 새롭게 시작했다. “나는 국보다. 내가 있는 한 국가무형문화재 31호는 살아 있다는 자각이 자꾸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 2009년에 <텅빈 충만에서 빛의 세계로>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다. ‘새 옷 입고 부르는 노래첫곡이었다. 2015년부터는 글씨와 솜씨와 맘씨를 함께 묶는 <기찬삼씨전>을 열고 있다.

 



시 쓰는 낙죽장

<시 쓰는 낙죽장>




김기찬 낙죽장은 2014년 말에 현대시선에서 신인상을 받으면서 시인이 됐다. 낙죽을 놓는 바쁜 삶 속에서도 새벽 일찍 일어나 그때그때 문득문득 떠오른 시상을 글로 잡아둔다. 다음카페 <계심헌 공예사랑방(http://cafe.daum.net/nakjukjang)>에 모아놓은 시는 매년 여는 개인전인 <기찬삼씨전> 도록에 실린다. 2019년 설날 새벽에 쓴 <깨달음>은 화마에서 벗어나 소유와 집착에서 자유로운 그의 삶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부질없는 욕심이 만든 세계/천당도 지옥도 나 있어 생긴 사연/나 없으면 천당과 지옥도 없네”.




닭이 먼저 

<닭이 먼저>




깨달음은 먼저 껍질을 깨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낙죽장은 깨달음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를 내린다. 단단한 편견과 고정관념의 벽을 깨야 진정한 앎의 세계가 열린다는 말이다. 그 깨달음으로 닭이 달걀보다 먼저라는 진리를 터득했다. <시원합니다>라는 시가 그런 깨달음을 글로 쓴 것이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견이 분분한 가운데/낙죽장은 닭이 먼저라고 하고/흔들림 없네// 달은 음으로/음에서 양이 나오기에/닭이 먼저이네// 음은 어머니의 자리로서/없음으로 허공이며/만상이 그곳에서/양으로 나오네// 살아 있는 허공/9대 조상이/온 곳도 그곳이요/갈 곳 또한 그곳”. 2019827일에 얻은 한 소식이다.

 



작품 속의 낙죽장

<작품 속의 낙죽장>




김기찬 낙죽장은 갑오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한 갑자(60)가 흐른 1954년에 태어났다. 예순일곱 살, 1954년은 갑오년이다. 갑오(甲午)의 갑은 동쪽을 뜻하고 오는 말이니 푸른 말, 청마(靑馬). ‘닭이 먼저라는 깨달음을 얻은 덕분일까. 그의 얼굴은 주름이 거의 없이 팽팽하다. 어린아이처럼 우윳빛이 돈다. 한 눈에 봐도 무척 건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강에는 3가지가 필요합니다. 공기와 물과 음식이지요. 한국에서 가장 공기가 좋은 보성의 망일봉(望日峰) 아래에서 보성차 우려내기에 적당한 좋은 약수를 길어다 고기 대신 유산균 덩어리인 생막걸리를 곁들이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좋은 곳에서 국보에 이른 낙죽을 놓으며 시도 쓰니 무릉도원에서 사는 신선이라고나 할까. 참 부러운 삶이다.

 



2020학: 이영車 이영茶

<2020: 이영이영>




김기찬 낙죽장은 다른 작가들과 힘과 뜻을 모아 함께 하는 콜라보레이션 작품도 자주 한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2020년을 응원하고 코로나를 극복하는 기원을 담은 <이영이영>도 그런 작품이다. 김준길 작가가 2020마리 학을 만들고, 김기찬 낙죽장이 낙죽을 놓았다. 2020년 대한민국을 응원하고 보성과 하동의 차 산업을 지원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기찬삼씨전> 앞 부분에 콜라보레이션 작품을 모은 <하나 되어>를 선보이고 있는 것도 21세기형 협업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낙죽장 대나무 낙관

<낙죽장 대나무 낙관>




대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꺾이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어 매화 국화 난초와 함께 4군자로 칭송받고 있다. 바람이 세게 불 때 비록 흔들리고 휘어지더라도 꺾이지 않는 군자의 기상을 본받자는 것이다. 하지만 대나무라고 해서 모두 가느다란 것만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내공을 쌓은 대나무는 둘레가 50cm가 넘는 큰 것도 있다. 종류가 다양하니 대나무로 만드는 낙죽작품도 다양하다. 김기찬 낙죽장의 손을 거치면 멋진 낙관으로도 태어난다. <국가무형문화재 기찬김수로왕손>이라고 새긴 낙관이 정말 아름답다.

 



얼씨구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대나무는 김기찬 낙죽장의 손에서 음악으로도 모습을 바꾼다. 줄기가 다섯 개 난 대나무를 찾아 오선지로 삼고, 대나무 마디는 음표가 된다. ‘임 품에서 흥겨워’ ‘얼씨구나 절씨구라는 노래가 저절로 흐른다. “좋아좋아! 아주좋아! 매우좋아! 무척좋아! 그냥좋아!”(<낙죽장의 5단 좋아 쏭!>)며 어깨춤도 들썩거린다. “젊었을 땐 내가 못 가진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콤플렉스를 이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요. 그런 힘 덕분에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40년 넘게 한 우물을 팠으니 확실한 물구멍을 찾아 쏠림 없이 균형있는 중용의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낙죽장

<낙죽장>




낙죽장/ 如心 홍찬선

 

불 악마는 스승이었네

스물아홉 해 동안 욕심으로 쌓았던 것

남보다 못한 점을 이겨내려고 아등바등했던 것

눈 깜짝할 사이에 어찌 손 써 볼 새도 없이

모조리 으로 만들어 놓고

이제 어쩔 것이냐고 미소지었네

 

소나무 너른 절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갈고 닦았던 마음은

텅 비어 가득 찼다가 다시 텅 비어 빛으로

새 옷 입고 부르는 새 노래로 거듭났다네

글씨와 솜씨와 맘씨가 하나로 엉긴

기찬삼씨로 멋쟁이 되어

 

천당도 내 마음이 만들고

지옥도 내 욕심이 짓는 것

피땀 흘려 낳은 자식들

불구덩이에서 살려내지 못한

허 허 참 동그라미 세 개로 털어내니

매임 없이 놓는 이 사는 되었네

 

잘못된 것은 내 탓이라

잘못했습니다 반성하고

잘 되는 것은 남의 덕분이라

감사합니다 고마워하니

달걀보다 닭이 먼저라는 깨침이

어리석음 깨는 침 되어 망일봉을 비추네

 





 




: 서재필기념공원휴게소를 입력하면 <계심헌 공예미술관>에 갈 수 있다. 만평의 넓은 공간에 앞에는 망일봉이 멋지게 자리하고 뒤에는 주암호가 아름답게 펼쳐진 곳이다. 옆에는 서울에서 볼 수 있는 독립문과 똑같은 크기, 똑같은 디자인의 독립문도 볼 수 있다. 대나무는 1년에 자랄 수 있는 만큼의 키가 모두 크고, 이듬해부터는 몸통을 불리는 내공에 들어간다. 그 대나무에 발갛게 달군 인두로 인생을 표현하는 낙죽(烙竹).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한참 단풍이 아름다운 계절, 틈을 내서 낙죽의 세계를 찾는 것도 가을을 풍요롭게 보내는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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