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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

[여행을 부르는 문화유산 답사기] 장수와 안녕을 위한 기원의 다채로움을 만나다! 마니산, 고인돌 스크랩



인천, 장수와 안녕을 위한 기원의 다채로움을 만나다

-건강과 평안을 위한 문화유산의 지혜를 찾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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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고인돌>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

한때 전 국민이 즐기던 코미디의 주인공 이름이자 노래의 한 구절이다

너무도 귀한 자손을 위해 부모는 세상의 모든 장수의 아이콘으로 아이의 이름을 지었는데

비록 웃픈 결말이었지만 가족을 위한 우리의 마음이 그와 같았다.

할 수 있는 모든 일만으로 채우지 못한 간절함을 주변과 세상 그 너머에서 찾은 존재에 담아 정성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이제 그 다채로운 기원과 그 속에 담긴 정성과 지혜를 만나러 인천으로 떠나본다.


 

장수동 은행나무의 화려한 자태와 든든한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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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동 은행나무>


시흥과 소래산을 마주보고 있는 인천의 장수동 만의골에는 거대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산과 산 사이의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자리 잡은

그래서 지금은 다양한 맛집을 거느리고 있는 이 나무는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仁川 長壽洞 銀杏나무)라 불리며

199212월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2호를 거쳐 202128일 천연기념물 제56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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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세월을 견뎌온 장수동 은행나무 밑둥>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이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30미터의 키와 약 8.6미터의 둘레를 가진 수령 약 800년의 장수동 나무와 같은 오래되고 거대한 은행나무는 보기 드믄 경우라고 한다.

일단 겉에서 본 그 규모가 놀랍고, 그 그늘 아래로 들어가면 기기묘묘하고, 우람하게 솟고,

뻗어나가고 엉켜있는 수형의 화려함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자연히 사람들은 은행나무를 귀하게 여겼고, 집안에 액운이나 돌림병이 돌면 이 나무에 제물을 차려놓고 치성을 올렸다고 한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해마다 음력 7월과 10월에 제물을 차리고 풍년과 평온을 기원하는 행사를 가졌었다고 하니

 마을과 함께하던 바람과 기원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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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동 은행나무>


이제 오랜 기원의 상징이었던 은행나무는 새로운 건강과 문화의 상징이 되려하고 있다.

인천 남동구에 새롭게 조성되는 둘레길의 기점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둘레길은 약 33.5킬로미터 규모의 도보 관광코스이며, 네 개의 작은 코스로 구성될 예정이다.

은행나무에서 시작된 길은 아래로는 소래습지포구로 이어지며, 위로는 수목원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먼저 생태공원으로 가는 길은 계절별로 화려한 옷을 갈아입는 장수천 꽃길을 따라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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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갯벌 생태공원>


거기서 만나는 소래습지생태공원은 수도권 최대의 생태공원으로 생명의 원천인 광활한 습지와 함께 체험용 염전과 소금창고 그리고 산책로를 품고 있다.

또한 도심을 가로질러 수목원을 가는 길은 약 7킬로미터에 달하는데

인천대공원의 명소인 수목원에서 벚꽃, 장미 등 제철 꽃들의 눈부신 향연을 즐길 수 있다.

은행나무는 그야말로 맑은 공기와 다양한 화초의 수목원과 갯벌과 염전의 생명을 자신의 새로운 풍경으로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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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갯벌 생태공원>


사실 건강과 장수는 가장 먼저 우리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항상 부모는 자식들의 끼니 잘 챙기고,

좋은 것을 골라 먹이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산책과 운동을 권한다. 거기에 더해

알 수 없는 삶의 불안감을 다독이기 위해 오래되고 알 수 없는 존재에까지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이제 은행나무를 찾아 제를 지내는 모습은 없어졌다. 그렇지만 은행나무에 깃든 기원과 정성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맞잡은 손과 기도가 건강을 위한 길로 이어지고 있으니, 결국 기원이란 허망한 바람이 아니라 노력과 함께 더욱 빛이 나는 지혜인 셈이다.

 

 

마니산에서 만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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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정상에서 바라본 강화>


나와 가족의 건강 그리고 마을의 안녕을 위한 정성을 만났다면, 이제 마을의 경계를 넘어 좀 더 높고, 넓은 곳을 찾아보자

인천은 그런 다채로움을 만나기에 좋은 곳이며, 특히 강화는 좀 더 오랜 시간의 기억을 간직한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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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정상>


강화에서 가장 높은 마니산摩尼山을 찾는다

물론 높이는 472.1미터로 그리 높지는 않다. 등산을 위해 찾는 이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운 산일지도 모른다

입구의 광장을 벗어나면 정상까지 계단이 끝없이 이어지기 단조로운 코스이기 때문이다.

물론 단군길 등 몇 가지 다른 코스가 있지만 아무래도 바로 정상으로 치달아가는 계단길의

 유혹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이 코스를 택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런 낮은 높이와 단조로움에도 불구하고 마니산은 예부터 민족의 영산으로 숭앙되어왔으며

사시사철 등산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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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입구 천부인 광장>


계단이 어려운 것은 똑같은 걷기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마니산은 계단의 지겨움과 힘듦을 시원한 풍경으로 달래준다

계속된 계단에 허리가 숙여지고, 숨이 더 이상 나갈 곳을 찾지 못할 때 잠깐 멈춰 뒤를 둘러보자

그러면 강화의 풍요로운 평야와 바다 그리고 주변의 풍경이 오롯이 보이는 놀라운 곳에 자신이 있음을 알게 된다.

순간 가슴이 뻥 뚫리고, 가쁜 숨을 하늘의 넓은 품이 다독여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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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정상비>


마침 이 힘겹고, 시원한 계단길에 한 가족이 올라온다. 유치원생인 듯한 두 아이의 고사리 손은 엄마와 아빠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고

엄마의 등에는 갓난아이가 세상모르고 잠이 들어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아이의 손을 잡아 높은 계단을 올려주고

또 주변과 산위를 가리키며 쉴 새 없이 무언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쩌면, 아이들은 오늘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힘든 하루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 어쩌면 부모에게는 가장 행복했고, 건강한 시간으로 남겨질지도 모른다

부모로서의 정성이, 가족에 대한 관심이 그 시간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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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참성단>


그 가족을 따라 잠시 오르니 드디어 정상이다. 그곳 정상에 먼저 자리 잡고 있던 고양이에게 인사하고,

마침 공사 중인 참성단과 풍요로운 강화의 논과 바다를 바라본다. 마음이 충만해진 느낌이다

아마 고사리 손을 붙잡던 그 마음의 뿌리가 처음 단을 세우고 몇 천 년의 세월 동안 하늘에 기원하던 그것과 같음을 느꼈기 때문인 듯하다

가족의 행복한 시간이, 아래로 보이던 풍요로운 들이 오랜 기원처럼 계속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마니산의 산행은 건강과 함께 순수한 기원이 충만해지는 길이기도 하다.

 

 

전등사와 지석묘의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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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대웅전>


마니산을 신령함으로 채워주던 단군의 이야기는 강화의 다른 곳에서도 이어진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삼랑성(정족산성)이 그것이다

<고려사>에 이 성은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고 삼랑성이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그 성안에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전등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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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등사 느티나무>


전등사傳燈寺381(소수림왕 11)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고찰이다. 처음 진종사(眞宗寺)라고 했지만

충렬왕의 비인 정화궁주(貞和宮主)1282(충렬왕 8) 승려 인기(印奇)에게 부탁해서 송나라의 대장경(大藏經)을 간행하여 이 절에 보관하도록 하고

또 옥등(玉燈)을 시주했으므로 절 이름을 전등사로 고쳤다 한다. 현재 그 옥등은 전하지 않고 있지만

오랜 역사를 말해주듯 전등사에는 각종 보물과 유적이 가득하다.

보물 제178호로 지정된 대웅전이 있고, 보물 제179호인 약사전도 그 옆에 자리 잡고 있다.

보물 제393호인 전등사 철종과 보물 제1785호로 지정된 전등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보물 제1786호인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이런 역사의 흔적을 둘러보고 단정하고 곱게 늙은 대웅전과 약사전과 고즈넉하지만 세련된 사찰을 거니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이 길을 더욱 푸르고, 시원하게 해주는 동반자들이 전등사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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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등사입구 삼림성>


삼랑성 남문을 나서 조금 오르면 거대한 나무들이 먼저 반기고 그 사이로 전등사의 빨갛고 검은 건물과 기와가 보인다

좌로 우로 거대하게 솟은 나무들은 그 하나하나가 보호수였고, 그 굵기와 기묘한 생김새만큼 다양한 사연을 간직한 듯하다.

좌측의 느티나무는 큰나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나무 둘레가 무려 4미터나 되고,

 1615년 전등사를 재건할 당시 풍치목으로 심은 거라 추정되는 나무이다.

우측에는 둘레가 6.5미터에 달하고, 수령이 약 700년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가 있다.

노승나무와 동자승나무라는 전설을 품고 있는, 70여 년 이래로 은행이 한 톨도 열리지 않았다는 은행나무이다.

그리고 대웅전과 명부전, 약사전을 올려다보는 넓은 공간에도 전등사를 재건할 당시 세웠던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전등사의 가장 아름다운 쉼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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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등사 보호수>


전등사 역시 창건 이래로 화재나 전쟁으로 소실되고, 재건되기를 반복한 곳이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절을 다시 세우고

나무도 함께 심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찰은 오랜 역사를 들려주는 여유로운 곳이 되었고, 함께 자란 나무는 사람과 건물이 쉬고, 기댈 수 있는 그늘이 되었다.

종교는 인간의 역사 이래로 인간의 약하고, 힘든 마음을 다독여주는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

전등사의 오래된 건물과 그 옆의 나무들은 그 다독임을 위한 인간의 정성을 만나기 좋은 시간을 만들어주는 듯하다.

 

강화도 여정의 마지막은 고인돌, 강화 지석묘와의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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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고인돌>


인간인 이상 죽음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고인돌은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오랜 방식을 알려준다.

고인돌은 당시의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믿고 있던 어떤 대상이나 자연의 힘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의 의식을 거행하던 

'제단고인돌'과 죽은 사람을 묻기 위하여 만들었던 '무덤고인돌'로 크게 나눈다

그리고 전 세계 고인돌의 50%가 이 작은 한반도에 있는데, 그 대부분이 무덤고인돌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수만 기()에 해당하는 많은 고인돌이 제주도를 비롯한 여러 섬에 퍼져 있는 것이다.

이는 당시 한반도에 있었던 이들이 죽음, 그렇게 떠나간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하늘과의 소통과 기원에 적극적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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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옆 강화역사박물관>


그 수많고, 다양한 고인돌 중 가장 유려한 모습을 자랑하는 고인돌은 강화역사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넓은 들판과 꽃밭 사이에 마치 길을 떠나는 것처럼 길게 이어지면서 남겨진 다채로운 부근리의 고인돌

강화 지석묘는 1964711일 사적 제137호로 지정되었으며, 10기 중 9기가 세계유산에 선정되었다

이는 우리의 오래된 의식과 노력이 가진 가치를 인정받았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장수동 은행나무에서 시작한 우리의 오랜 기원과 바람에 관한 여정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은행나무에 깃든 마음은 생과 평안이다.

그리고 그건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오고 단군이 

하늘에 다시 고했던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마음과도 닿아있고, 다시 힘겨움을 다독이고,

죽음을 기억하는 마음과도 이어진다. 비록 시대는 달라졌지만

 우리가 우리와 주변을 생각하는 마음과 정성은 항상 같을 수밖에 없음을 오랜 문화의 기억들이 말해주는 것이다.  




글 이철호 작가



전)월간 러너스코리아 기자

전)격월간 연콘텐츠 기자

전)수원청소년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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