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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칼럼

영친왕 일가가 남긴 유산 스크랩









첫 번째 이야기: 영친왕 일가가 남긴 유산 

익선관(맨위)
곤룡포(중간)
옥대(허리)
곤룡포(아래)
목화(아래)



왕(王)의 옷은 한 나라의 표상(表象)입니다. 천상천하의 가장 존엄한 왕의 권위는 언행과 함께 옷으로 표현되었기에, 왕의 복식을 보면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국격(國格)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TV사극을 통해 조선시대 왕실의 복식을 자주 접합니다. 왕의 일상복인 곤룡표, 왕비의 예복인 원삼과 적의, 왕자의 평상복 등이 종종 TV드라마와 영화의 소품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들 소품들이 모두 역사의 고증(考證)을 거쳐 제작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애써 구했겠지만, 국적과 시대불문의 엉뚱한 의복과 장신구들이 등장해 실소를 자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안되는 데 말입니다.

조선시대의 왕실 복식(服飾)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유물들이 있습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친왕(英親王)과 왕비인 고(故) 이방자 여사, 그리고 왕자 진(晋)과 구(玖)가 사용했던 유물 333점이 그것입니다. 이들 유물은 지난 91년까지만 해도 일본의 동경국립박물관에 보관되었지만, 우리 정부의 외교 노력으로 환수받았습니다. 91년 한일정상회담에서 얻어낸 성과로, 환수 이후에는 현재 서울 사직동의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중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정계옥의 친절한 왕실복식이야기’ 시리즈는 어렵게 돌려받은 조선시대 왕실의 의복과 장신구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분석하면서 알게 된 사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친절한’이란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역사·문화유산·복식·공예를 공부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풀어 쓰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현미경을 대고 들여다보듯 자세히 보면, 왕실의 의복의 씨실과 날실 한올 한올과 무늬 그리고 장신구에서 보이는 정교한 기법들은 우리 선조들의 고매한 품격의 기운과 섬세하고 창의적인 장인의 솜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아! 우리의 옷과 장신구 수준이 이 정도였구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백화점 명품코너의 값비싼 옷과 장신구에는 없는 형언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습니다.

[영친왕의 일생]



































































 
1897년(1세) 고종황제와 순헌황귀비 엄씨 소생으로 덕수궁으로 태어남.
1900년(4세) ’영왕’에 책봉됨.
1907년(11세) ’황태자’로 책봉됨.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일본으로 감.
1910년(14세) 한일합방과 순종 폐위로 ’왕세제’로 격하됨.
1913년(17세)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함.
1920년(24세) 일본 황족인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梨本宮方子)와 정략 결혼함.
1926년(30세) 순종황제 승하로 이왕(李王)이 됨.
1927년(31세) 유럽을 순방함
1940년(44세) 일본 육군 중장으로 오사카 유수 사단장에 취임함.
1947년(51세) 이왕의 자격을 잃고 평민으로 강등됨.
1959년(63세) 뇌혈전이 발병함.
1960년(64세) 부인 이방자 여사와 함께 미국을 방문함.
1962년(66세) 박정희 대통령과 만나 한국 국적을 회복함.
1963년(67세) 56년만에 귀국함
1970년(74세) 사망하여 홍유릉 내 영원(英圓)에 묻힘.

오늘은 첫 회로 조선시대의 왕이 입고 쓰고 신었던 기본적인 의복부터 이야기를 풀어갈까 합니다. 폐위되었던 광해군과 연산군을 제외하고 조선시대에는 스물 일곱 분의 왕이 계셨습니다만, 오늘날 전해져 내려온 임금님들의 옷은 없습니다. 왜냐구요? 왕의 옷은 세탁해서 입는 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때가 타면 태워 없앴다고 합니다. 그러니 영친왕의 유물이 유일하겠지요. 그리고 1897년 대한제국 선포로 조선은 ’황제’의 나라가 되었기에, 황태자인 영친왕이 황제제도에 의해 왕자가 아닌 ’왕’의 지위에 올랐고, 그가 입었던 곤룡포(袞龍抱)가 조선시대 왕의 옷으로는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니 이 옷을 보면 조선시대 왕의 옷이 어떠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영친왕은 이 옷을 입고 1922년 순종황제를 배알했다는 기록과 사진자료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곤룡포를 포함해 일본에서 환수했던 영친왕가의 유물은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이 발간한 도록인 ’영친왕 일가 복식’에 자세히 실려 있습니다만, 압축된 설명과 제한된 해상도의 사진으로는 유물을 상세하게 전하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계옥의 친절한 왕실복식이야기’ 시리즈에서는 고해상도 사진 원본 자료를 활용해 왕실 복식의 세밀한 부분까지 실감나게 전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계옥 프로필 사진

글 = 정계옥 /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

88년 문화재청 학예연구사로 시작해 여성으로는 드물게 익산 미륵사지, 나주 복암리 고분, 함안 성산상성, 창녕 송현동 고분 발굴 작업에 참여한 발굴 전문가다. 전국문화유선분포지도를 제작하고, 매장문화재지리정보 GIS를 구축하는 등의 업적이 있다.

작성자
한국문화재재단
작성일
2010-10-05
조회
1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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