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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칼럼

못다한 아리랑 이야기 스크랩

 110년전 경에 제조된 에디슨 원통음반에 담은 ‘1896년 아리랑 1, 2, 3’




들어가는 말


지금까지 ‘정창관의 음반으로 꽃피우는 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9회에 걸쳐 음반으로 출반된 아리랑을 중심으로 글을 게재해왔다. ‘민족의 노래 아리랑, 음반으로 순례하다‘를 시작으로 4대 아리랑인 ’정선아라리, ‘진도아리랑’, ‘밀량아리랑’, ‘본조아리랑’과 ‘지방아리랑’, ‘북한아리랑’, ‘일본으로 간 아리랑’, ‘해외동포아리랑’ 순이었다. 본고는 10번째 마지막 글로 그 동안 필자가 아리랑 음악을 즐기면서, 아리랑에 대해 궁금한 이야기와 조심스레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고자 한다.




1. ‘산도 설고 물도 설네’라는 ‘1896년 아리랑’의 첫 가사




산도 설고 물도 설네 무얼 찾아서 여기왔나

별도어린(?) 자강정에 풍악산 세돌아(?) 여기오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얼-쓔 아라리야

노다가세 자다가세 저달이 지도록 노다가세




산도 설고 물도 설네 희망을 찾아서 여기왔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얼-쓔 아라리야


일도창해(?) 고국산천 가세 각시가 보고싶네


아리랑 아리랑 아이고-오

- ‘1896년 아리랑 1’ 가사 -




위의 가사는 미의회도서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6개의 에디슨형 원통음반에 수록된 1896년 7월 24일 녹음, 한민족 최초의 ‘아리랑 1’의 가사이다(?는 현재 미확인) 처음 나오는 ‘산도 설고 물도 설네...’라는 가사는 당시 미국으로 도망간 3명의 유학생이 그들의 처지를 빗대어 불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1894년에 일본은 중국 침략을 위해 조선의 시회민정을 조사한다는 명목아래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우리민요를 수집하였다. 유우빈호우치신문 동년 5월 31일자 6면에 수록된 ‘조선의 유행요’ 아라란(아리랑으로도 발음) 가사에 ‘산도 싫고 물도 싫은데 누굴 바라고 여기 왔나’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가사는 일본어를 번역하면서 ‘.. 싫고 .. 싫은데’라고 번역하였다. 1896년 아리랑의 가사로 보아 ‘싫고.. 싫으데’가 아니라 ‘설고.. 설네’로 번역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유우빈호우치신문의 가사를  처음 소개한 분도 ‘설고.. 설네’로 번역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동의한 상태이다. 본 가사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가 되어야하겠다. 




110년전 경에 제조된 에디슨 원통음반에 담은 ‘1896년 아리랑 1, 2, 3’(필자 소장:미국서 2013년 제작) / 실제 미의회도서관에 있는 원통음반은 1분에 99회전으로 녹음되어있지만, 본 원통음반은 표준회전인 1분에 160회전으로 담음)


110년전 경에 제조된 에디슨 원통음반에 담은 ‘1896년 아리랑 1, 2, 3’(필자 소장:미국서 2013년 제작) / 실제 미의회도서관에 있는 원통음반은 1분에 99회전으로 녹음되어있지만, 본 원통음반은 표준회전인 1분에 160회전으로 담음)




http://www.youtube.com/watch?v=UEgdXpDGNQs : ‘1896년 아리랑 1’(미국 원통음반 제작자가 찍은 동영상: 필자 저작권 보유)


 


2. 아쉬운 1896년에 손으로 쓴 최초의 ‘아리랑’ 오선보


2007년에 필자는 미의회도서관 수장고에 있는 한민족 최초의 음원(1896년 7월 24일 녹음)을 발굴하여 음반으로 출반한 있다. 11곡의 음원은 6개의 에디슨형 원통음반에 담겨져 보관되어 있다. 혹시나 더 오래된 음원이 있을지 모른다는 가정 하에 주로 인터넷을 통하여 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2012년에 미국 워싱톤에 있는 스미소니언 산하 국립인류학자료관에서 손으로 쓴 악보 8매(9쪽)를 발견하였다. 조사 결과 본 악보는 미의회도서관에 있는 원통음반을 녹음한 여성 인류학자 엘리스 플레처 여사가 기증한 것으로, 원통음반에 담긴 음악을 오선보로 채록한 것이었다. 이는 우리 음악을 손으로 직접 쓴 최초의 오선보로, 오선보의 상단에는 미의회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실린더음반의 번호가 기록되어 있는데, ‘아리랑1’의 실린더 번호(3 Record / Box 7. No 11)도 있다.




1896년 최초의 손으로 쓴 아리랑 악보(아리랑 음악이 아님)


1896년 최초의 손으로 쓴 아리랑 악보(아리랑 음악이 아님)


하지만, 이 오선보는 초보자가 채록한 것으로 추정되며, 실제 음악과 대조 결과 아리랑 음악이 아님이 전문가에 의해 확인되었다. 만약 아리랑의 오선보로 확인이 되었다면 헐버트의 아리랑 악보와 더불어 아리랑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을 것인데, 아쉽기 한이 없다.


기증을 건의할 수 있는 사람까지 알아내었지만, ‘기증해 줄지 안해줄지 모르는데, 어떻게 국가기관이 나설 수 있느냐’는 답변에도 불구하고 현재 필자는 1896년 한민족 최초의 손으로 쓴 오선보 원본을 국립의 박물관으로 기증시키기 위해 혼신을 노력을 다하고 있다.




3. ‘헐버트아리랑’의 오선보에 대한 생각


필자는 2012년 9월 7일 KOUS에서 회갑기념 음악회를 개최하였다. 이 때에 1896년 녹음의 음원들을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채보하여 비교연주를 한바 있다. 1896년의 악보는 당시 서양인이 우리의 음악을 처음 듣고 채보한 것이고, 새로 채보한 오선보는 국악인이 한 것인데 상당히 많이 상이하였다. 실제 무대에서 비교연주를 하였을 때는, 다른 음악같이 들렸다.

그럼 1896년 헐버트가 채보한 악보는 당시의 아리랑을 제대로 채보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1896년 아리랑 음원과, 1914년 이상준이 채보한 ‘아르렁타령’ 악보와, 아래 1916년 아리랑 음원(고려인 포로들이 불렀던 아리랑)을 참고하여 연구가 좀 더 필요한 대목이다.




1896년 헐버트 박사가 채보한 ‘아르랑’


1896년 헐버트 박사가 채보한 ‘아르랑’


이상준이 1914년 채보한 ‘아르렁타령’


이상준이 1914년 채보한 ‘아르렁타령’




4. 1916-17년 고려인 포로들이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부르는 아리랑


독일 베를린시립박물관 산하 베를린민족학박물관 음향아카이브에 1차 대전때 고려인 전쟁포로가 부른 우리음악이 에디슨형 원통음반 11개(관련자료 1점 포함)에 녹음되어 보존되어 있다. 1916-17년에 녹음한 음원으로, 독일의 프로이센포로수용소에서 러시아 병사로 참전한 3인(Grigori Kim, Stepan An, Gawriel Kang)의 고려인 포로들이 부른 14곡(24분 정도)이 남아있다. ‘수심가’(2곡), ‘애원성’(2곡), ‘기생점고’, ‘성주풀이’, ‘담바고타령’, ‘백로타령’, ‘조국강산’, ‘대한사람’, ‘염불’과 ‘아리랑’이 3곡(각각 2분 정도) 수록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국립국악원이 현재 자료를 입수하여 CD음반으로 제작하고 있으니 곧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 라우트아카이브에도 위의 고려인 포로가 부른 우리음악이 유성기음반에 담겨 남아 있다. 원래 30장에 담았으나, 12장은 2차대전 때에 분실되고, 1장은 최근에 분실되어 17장이 남아 있다. 31곡에 약 48분(?) 정도의 음악이다. 위의 포로들이 부른 음악이지만, 같은 음악은 아니다. 여기에 수록된 ‘아리랑’은 2013년 4월 경북 문경에 있는 옛길박물관의 기획전시 ‘길 위의 노래, 고개의 노래 아리랑’에서 처음 유성기음반과 함께 소개된 바 있다. 아리랑을 부른 한국인은 고려인 2세인 김 그리고리(한국이름 김홍준, 당시나이 27살)와 안 스테판(한국이름 미상, 당시 나이 29살)이라고 소개하였다.




훔볼트대학에 보관중인 고려인 포로 사진


훔볼트대학에 보관중인 고려인 포로 사진


훔볼트대학의 자료는 2014년 8월 21일 방영된 KBS 파노라마플러스 ‘독일군 전쟁포로가 된 고려인들’ 프로그램(아래 유투브 영상 참조)의 서두에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훔볼트대학에 있는 자료는 원반형유성기음반자료이다. 프로그램에서는 에디슨 원통형유성기를 재생하면서 원반형유성기 음원을 들려주고 있다.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는 것이다.


훔볼트대학의 원반형유성기음반 음원도 국립국악원이 전부 입수하여 CD로 제작하고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AJ3U3uwAkhw : 2014년 9월 7일 KBS에서 방영된 KBS파노라마플러스 ‘독일군 포로가 된 고려인들’




* 본 정보는 국립국악원이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비공식적으로 들은 단편적인 이야기들  적은 것으로 부정확할 수 있으며, 음반이 발표(2014년 12월 13일 10:00 독일문화원)되면 해설서에 자세하게 내용이 공개될 것이다.




5. 나운규의 아리랑에 대한 의문점


지금의 아리랑과는 사뭇 다르지만 나운규의 아리랑은 ‘본조아리랑’으로 각인되어있다. 영화 ‘아리랑’은 1926년 10월 1일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되어 장안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1926년 영화 아리랑의 평을 보면 음악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영화평론가들은 아예 음악에 대해서는 무시를 한다지만, 그렇게 음악 아리랑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면 몇 마디 평이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또 당시 상황으로 영화 아리랑이 3~4년만에 전국을 순화한 후 1930년대에 들어 여러 아리랑 음반들이 출반된다. 그런데 1930년에 Victor레이블로 소개된 김연실 독창(반주:일본빅타악단)의 영화소패(주제가)로 아리랑 음반이 출반되는데, 음반제목이 ‘아리랑’이 아닌 ‘아르렁’이다. 왜 일까? 영화 ‘아리랑’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했는데.....




영화 아리랑 포스터(인터넷에서 퍼옴)


영화 아리랑 포스터(인터넷에서 퍼옴)


필자가 1987년 처음 국악에 입문하였을 때, 임방울 명창의 유명한 춘향가 중 한 대목인 ‘쑥대머리’를 취입한 SP 음반이 일제강점기에 100,000장이나 팔렸다고 읽었다. 사실 일제강점기의 유성기 보유가정을 고려하면 100,000장 판매는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한 15년후인 2000년에 초에 임방울 명창의 제자라는 분이 1,000,000장이 팔렸다고 떠벌렸다. 2~3년전에는 누가 1,200,000장이 팔렸다고 했다. 점점 부풀러진 것이다.


아리랑은 이 정도 아니지만, 점점 더 부풀러지고 미화되는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 아리랑은 일반 유행요의 하나로 1930년 전에는 SP음반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1930년 이후에 나타난 아리랑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나가는 말

민족의 노래, 아리랑은 우리 민족이 존재하는 한 영원할 것이며, 음반으로도 아리랑 꽃을 곱게 피울 수 있다.


* 아리랑 음반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필자가 운영하는 '정창관의 국악CD음반세계'(www.gugakcd.kr)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국악CD음반이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본고에 대한 질문은 ckjungck@hanafos.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정창관 프로필

작성자
정창관
작성일
2015-01-26
조회
9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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