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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칼럼

[월간 문화재] 대중문화 속 문화유산 - 역사와 영상의 짜릿한 만남, 세종과 『뿌리 깊은 나무』 스크랩


월간문화재_문화유산채널뉴스_타이틀


역사와 영상의 짜릿한 만남
세종과 『뿌리 깊은 나무』



역사의 대중화에 영상만한 것도 없을 듯싶다. 그 파급력이 큰 만큼 사극의 인기도 높다. 하지만 그 인기에 키를 맞추듯 재미를 위한 더 많은 상상력이 더해져 역사를 왜곡하는 우(愚)를 범하곤 한다. 미디어 속 ‘세종’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예로, 역사와 영상이 함께 사이좋게 걸어가야 할 길을 모색해본다.


월간문화재_문화유산채널뉴스_신기전 뿌나 포스터

영화 『신기전』과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포스터.
세종 시대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었다는 것. 하지만 극적 재미를 추구하기 위한 장면들은 역사적 사실이냐 왜곡이냐를 놓고 이견이 분분하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SBS


 
영상시대, 역사와 사극의 접점이 필요하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청운대학에서 ‘영화 속 우리 역사’라는 교양 강좌를 2년 전에 개설했다. 역사를 배경으로 제작 된 영화를 수업의 교재로 활용한 강좌였다. 학생들의 수강 신청이 폭주했고, 수업에 대한 만족도 역시 상당히 높았다. 그 만족도는 교재를 통한 이론식 강의에 비해 역사의 이해에 훨씬 도움이 됐다는 강의 후 평가로 이어졌다. 책 보다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얻는 영상시대의 학생들에게 어울리는 맞춤형 강좌라고 할 수 있다. 강좌의 개설을 통해 학생들이 역사적 사실을 논증하는 ‘딱딱한’ 역사(이론)보다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부드러운’ 역사(영상)를 원한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일반인들이 알고 싶어 하는 역사 역시 쉽고 효율적으로 전달되기를 원한다는 점과 사극 열풍이 지속되는 이유를 이해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무거운 과제가 어깨에 쌓이는 느낌이 들었다. 역사(History)와 극(Drama)의 만남이 역사 이해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시청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감독의 연출력에 의해 금도를 넘어선 역사의 왜곡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역사만 강조하면 재미가 떨어지고, 드라마틱한 요소만 강조하면 역사 왜곡이 심해지는 현상의 완충점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역사와 영상(드라마와 영화 등)의 만남은 우리 역사의 구체적인 이해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뗄 수 없는 공존의 관계가 성립된다. 그런데 역사가는 과거의 사실을 바탕으로 현재의 문제 해결과 미래의 예견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이에 비해 『뿌리 깊은 나무』를 비롯한 사극의 제작자는 과거 이야기를 어떻게 재미있게 구성할 것인가에 관심이 더 크다. 이것이 바로 역사와 영상의 건강한 만남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처음 제작 당시 감독의 의도는 역사를 왜곡시키지 않겠다는 전제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관을 찾는 관객의 수와 TV 앞에 모이는 시청률이라는 변수에 좌우돼 의도와 다른 방향의 연출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역사란 기본적으로 시간·공간·인간 등 ‘삼간’의 조화 과정에서 전개된다. 그리고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는 존재이고, 역사란 기본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와 발전을 도모하였던 인간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의 고증을 기본으로 한다는 전제가 성립된다. 따라서 인간의 삶, 곧 역사가 성립되기 위한 기본 조건은 시간과 공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역사를 소재로 한 영상은 이 둘을 중첩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된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고, 경계선을 허물어 시청자나 관객의 추체험(追體驗)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생을 드라마나 영화처럼, 드라마나 영화를 인생처럼 보이게 하는 것과 ‘드라마와 영화는 소통이다’라는 전제가 성립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뿌리 깊은 나무』 속 세종이 그렇다.



월간문화재_문화유산채널뉴스_뿌리깊은나무_한석규

『뿌리 깊은 나무』 속 세종대왕.
드라마 속에서도 애민정신을 몸소 실천한 세종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SBS

 
미디어 속 ‘세종’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이해

『뿌리 깊은 나무』의 기획 의도는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의 이야기를 기본으로 하면서, 실록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창제의 과정과 목적, 반대 세력의 이유와 배경을 추적했다. ‘세종이 어떤 조선을 꿈꿨는지’와 그것을 이룩하는 과정에서의 고뇌, 우리가 차마 생각하지 못한 부분의 해석을 통해 세종을 재해석하려고 도모했다. 그 과정에서 감독의 창작력이 지나칠 정도로 노출됐다는 점은 역사적 사실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볼 때, 상당히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 『뿌리 깊은 나무』 속 감독의 다양한 연출력을 역사의 왜곡으로만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세종이 수시로 ‘욕’(지랄, 우라질)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조선시대 국정의 일체를 기록으로 남긴 실록에 군주의 욕이 기록됐을 리 만무하다. 기록에 없으니 100% 허구일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대해 사극이라고 해서 마구잡이로 왜곡하고 허구를 지어 낸다면, 그것은 이미 사극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이 상황을 완벽주의자에 가까웠던 세종이 국정 운영 과정에서 받았을 엄청난 스트레스와 가족사의 고통을 온몸으로 버텨야 했던 내면의 아픔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을까? 비록 역사적 사실이 아니기는 하지만, 이를 시뮬레이션함으로써 역사의 진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의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2008년에 개봉된 영화 『신기전』의 마지막 장면 중에는 세종이 설주(정재영 분)와 홍리(한은정 분)에게 절하는 모습이 있다. 신하들의 만류에 대해 “오랑캐한테도 네 번 절을 하는 마당에 내 나라 백성에게 절하는 게 어찌 부당하냐. 이 나라의 황제는 백성들이다”라는 세종의 표현은 매우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분명히 허구임을 알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세종의 민본주의를 읽을 수 있었다. 오히려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역사적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 애민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세종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이런 세종의 모습에 당시 백성들은 온몸으로 감동받았을 듯하다. ‘세종이 다스린 32년 동안 그의 백성으로 사는 것을 기뻐했다’라는 표현은, 세종이 실천한 민본주의와 애민정신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했다고 생각된다.



월간문화재_문화유산채널뉴스_즉위도(세종대왕유적관리소 제공)

세종대왕 즉위도(해촌 김학수 화백 作).
태종의 셋째 아들인 세종은 스물 두살이던 1418년 8월 국왕에 즉위했다.
이미지 출처: 세종대왕유적관리소


‘역사의 대중화’를 위한 즐거운 동행을 기대하며

우리는 역사 속 다른 사람의 삶과 생각, 현실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면서, 자신에게 유익한 무언가를 찾는 습관이 있다. 실제 일어나지도 않은 가공된 사극을 보면서, 그 허구 속에서 인간의 다양성을 찾으며,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는 거울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상상력이 한층 부풀려 있고 잘 짜인 시나리오와 배우의 열연은 픽션을 역사적 사실처럼 착각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는 표현을 볼 때 『뿌리깊은 나무』의 일부 허구 내용과 가공의 등장인물, 『신기전』에서 세종이 절하는 장면 등은 세종 시대의 숨겨진 실체를 이해할 수 있는 근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역사 속의 많은 사람과 사건들 중에 중요하지 않거나 재미없는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지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역사다. 그런데 역사로 남은 개인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가지 않은 미지의 길과 의미 있는 흔적을 남겼고, 그 길과 흔적은 역사를 흔들었다. 『뿌리 깊은 나무』 속의 세종이 그랬고, 드라마에 등장한 수많은 인물들이 그랬다.

그리고 그 인물들이 선택한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지침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역사를 오목하지도 않고, 볼록하지도 않은 평면거울(감, 鑑)이라고 한다. 이들이 남긴 어제의 역사를 보면서(鑑),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 모양의 역사를 빚어야 하는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월간문화재_문화유산채널뉴스_훈민정음 반포도

훈민정음 반포도(운보 김기창 화백 作).
훈민정음은 세종 25년인 1445년에 완성하여 3년 뒤인 1446년에 반포하였다.
이미지 출처: 세종대왕유적관리소


따라서 역사는 지나간 과거의 단순한 일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는 가장 맑은 거울이며,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유일한 데이터베이스다. 그렇게 소중한 역사를 어떻게 대중에게 전달할 것인가가 큰 과제다. 역사가 일부 학자나 지식인의 전유물로 남아서는 안 된다는 전제와 역사의 대중화에 드라마나 영화 등 영상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또한 역사가 진정 가치 있는 것이라면, 대중과 대화를 나누는 역사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대중이 알고 싶어 하는 역사(역사적 사실)를 역사학(역사학자)이 채워 주지 못한다면, 단언컨대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은 사극 열풍이 계속된다고 믿는다. 정보화 시대를 맞아 책을 통한 역사 이해보다 영상을 통한 역사 정보의 습득 경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여하튼 영상이 대중을 위한 역사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볼 때, 대중이 요구하는 역사 감정을 자극한다는 긍정적인 효과와 더불어 역사의식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단점이 분명히 상존한다. 그러나 일부의 단점 때문에 보다 큰 장점이 가려져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를 소재로 한 영상의 교육적 기능은 결코 새털처럼 가볍지 않고, 무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역사(세종)와 영상(『뿌리 깊은 나무』)의 짜릿한 만남이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월간문화재_문화유산채널뉴스_라인(수정)
월간 문화재  2018. 04+05. 제387호
<대중문화 속 문화유산>

글. 김경수. 청운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작성자
김태영
작성일
2018-06-27
조회
4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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