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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칼럼

[현대 대중문화 속의 12동물 이야기 _ 돼지] 복, 탐욕, 부조리 그리고 폼나는 돼지 2018-06-14 스크랩

한국인의 돼지고기 사랑 삼겹살 데이 |
복의 상징 |
탐욕의 상징 |
지배에 길들여진 힘없는 자들의 표상 |
군국주의에 대한 거부감 |


돼지가 인류에 등장한 것은 4천 만 년 전이라고 한다.

중국의 유적지 등에서 발굴된 돼지뼈 등을 통해 야생돼지가 가축화된 것을 6천년에서 1만 년 사이로 보고 있다.

돼지는 12띠 동물 가운데 마지막 동물이다.

12띠 동물의 체계는 중국, 일본, 한국 등이 같다. 그 기원은 인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래 기간 동안 식용과 제사 제물의 용도로 사용되어 왔던 돼지.

현대에서는 어떠한 이미지들로 그려 지고 있는지 살펴 보도록 한다.



한국인의 돼지고기 사랑 “삼겹살 데이”

2003년 국립국어원 ‘신어’자료집에는 삼겹살데이라는 단어가 수록되었다. 3이 겹치는 3월 3일을 달리 이르는 말로 축협이 양돈 농가의 소득을 늘리기 위하여 삼겹살을 먹는 날로 정하였다. 이처럼 한국에서의 돼지고기의 사랑은 남다르다. 2013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2009~2012년 고기 총 소비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육류소비량은 217만 7,900t이었으며, 그중 가장 많이 소비한 고기는 돼지고기로 2012년 기준 108만 1,900t이었다. 맛과 영양이 우수한 돼지고기는 오래 전부터 국민고기로 사랑 받아 왔다. 지난 1995년부터 약 15년 동안 돼지고기의 전체소비량이 66만1710톤에서 2011년 93만7643톤으로 꾸준히 상승한 것을 보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겹살, 목심, 갈비 등 구이부위를 좋아하고 즐겨 국내 생산만으로는 양이 부족해 외국에서 수입해오고 있다. 특히 삼겹살은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란 말이 속담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깊이 사랑 받는 대표 부위이기도 하다. 반면 그외 부위는 소비가 부진한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최근 안심과 등심, 뒷다리살과 같은 부위들이 ‘웰빙 부위’로 불리며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이 부위들의 가장 큰 특징은 지방이 적고 살코기로 이루어져 있어 단백질이 풍부하면서도 에너지 함량이 적어 쉽게 살찌는 사람이나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에게 고단백 저지방 식이로서 딱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이 부위를 활용한 다이어트까지 등장할 정도로 효과는 이미 증명되어 있다. 이처럼 돼지는 이슬람과 같은 특정 종교국가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많은 나라에서 돼지를 식용육류로 애용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소고기보다 돼지고기 섭취량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의 상징 돼지 - 복권과 돼지 / 돼지저금통

육고기로서 이미지 외에 돼지는 전통적으로 재복을 상징하는 동물로 알려져 왔다. 과거 중국에서도 부를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길상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전히 돼지꿈을 꾸면 당연히 복권을 사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저금통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릴 때 여전히 돼지저금통이 우리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을 보면 돼지가 재복을 상징하는 것은 현대에 와서도 이어진다 할 것이다. 한편, 2005년 개봉한 <웰컴 투 동막골>이라는 한국영화에서 감자밭을 침입한 멧돼지를 잡는 장면은 국군과 인민군 그리고 동막골 주민이 힘을 합치는 결정적인 계기로 활용됐다. 또한, 이 멧돼지를 잡아먹으며 서로 긴장을 푸는 한편 마음을 트고 정을 나누게 된다. 공동의 적을 통해 서로가 힘을 합쳐 서로의 긴장관계를 해소하는 요인으로 활용된 것이다. 그렇다고 멧돼지가 극히 부정적인 의미로 작용한 것은 아니라 여겨진다. 동막골의 멧돼지는 비록 감자밭을 침입하여 피해를 주긴 하지만 동막골 주민들에게는 퇴치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이며, 마치 옆 마을 부족처럼 인식되기 때문이다. 돼지는 재복을 상징하는 길상의 의미를 여전히 이어오고 있지만, 진흙탕에서 몸을 뒹구는 습성이나 그 외모로 인해 게으름이나 뚱뚱함, 더러움 등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돼지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현대 대중문화 속에서 더욱 부각되고 고착화 되어 가고 있는 듯 보여 진다.


[탐욕의 상징]

색정과 음식에 대한 탐욕 ; 날아라 슈퍼보드의 저팔계

중국 고전인 <서유기>에 기본을 둔 만화가 허영만의 원작만화를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날아라 슈퍼보드>에서 저팔계는 ‘~하셔’라는 익살스러운 말투로 인기를 끌었지만, 원작 서유기와 마찬가지로 여자를 밝히고 먹을 것과 탐욕에 눈이 먼 캐릭터로 묘사된다. 손오공, 사오정의 모습이 많은 만화와 다른 작품 등에서 변화하는 것과는 달리 저팔계의 캐릭터는 돈, 여자, 재물을 밝히는 못된 돼지라는 이미지는 변함이 없다.

음식에 대한 탐욕 ; 돼지로 변해버린 치히로의 부모

음식에 대한 탐욕을 상징하는 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2002년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나타난다. 짜증 잘 내고, 칭얼거리기 좋아하는 평범한 열 살 짜리 소녀 치히로네 가족은 이사가던 중 길을 잘못들어 낡은 터널을 지나가게 된다. 터널 저편엔 폐허가 된 놀이공원이 있었고 그곳엔 이상한 기운이 흘렀다. 인기척 하나 없고 너무나도 조용한 이 마을의 낯선 분위기에 불길한 기운을 느낀 치히로는 엄마, 아빠에게 돌아가자고 조르지만 엄마, 아빠는 호기심에 들 떠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어느 음식점에 도착한 치히로의 부모는 그 곳에 차려진 음식들을 보고 즐거워하며 허겁지겁 먹어대기 시작하는데, 그곳이 왠지 싫었던 치히로는 혼자 되돌아가겠다고 음식점을 나선다. 결국 치히로의 부모는 먹어서는 안되는 신들의 음식을 먹고 돼지로 변해버린다.

반공시대가 만들어낸 탐욕스런 권력자의 표상

한국의 애니메이션의 경우 돼지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1978년 한국에서 제작된 최초의 반공 애니메이션 영화인 <똘이장군>에서도 확인된다. 이 애니메이션의 부제는 <제 3 땅꿀편>으로 감독은 김청기, 제작은 황기태와 김춘범, 각본은 조항리가 담당했다. 이 작품이 제작된 이후 1979년에는 《간첩 잡는 똘이장군》이 제작되었고, 《암행어사 똘이》 《공룡 백만년 똘이》 등 시리즈로 이어졌다. 개봉 당시 흥행에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 작품의 영화음악은 어린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당시의 반공사상이 짙게 배어 있는 작품으로, 어린이들에게 애국심 고취와 함께 반공방첩 의식을 강화시키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북한군은 늑대 등 각종 동물로 등장하며, 특히 북한의 수령이 가면을 쓰고 나오는데, 결말에는 똘이장군의 활약으로 그가 돼지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부조리에 대한 거부 반응]

지배에 길들여진 힘없는 자들의 표상 _ 돼지의 왕

2011년 개봉된 연상호 감독의 대한민국 성인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의 왕>에서 돈 있는 집, 공부 잘 하는 집, 힘 있는 집 아이들은 개에 비유되고, 돈 없고, 존재감 없는 데다 힘마저 없는 아이들은 돼지에 비유된다. 그들 때문에 이들은 서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고 끝내 너무 가슴 아픈 반전의 비밀을 갖게 된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사업가 경민은 회사가 부도난 뒤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다.

그는 분노를 뒤로 한 채 자서전 대필작가로 일하고 있는 15년 전 중학교 동창 종석을 찾는다.
종석은 경민의 방문에 당황하지만 경민은 그에게 15년 전 중학교에서 같은 반 학생들에게 무시당하고 짓밟혔던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철이의 이야기를 꺼낸다.

경민은 종석을 15년 전으로 끌어들여 그 날의 충격적인 진실을 다시 떠올린다.
중학생 시절, 학교에서 권력을 지닌 패거리들은 나약한 성격과 작은 체구를 지닌 경민과 종석을 무시하고 끊임없이 괴롭힌다.
하루하루 끔찍한 학교생활을 하던 이들에게 갑자기 등장한 철이라는 인물은 단숨에 패거리들을 제압하고 이후 철이는 경민과 종석의 우상이 된다.
하지만 철이는 패거리들과의 불미스러운 일로 퇴학을 당하고, 이에 극단적인 방법으로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오늘, 오랜만에 종석과 마주한 경민은 그와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교정으로 데려가 철이에 대한 충격적인 마지막 진실을 털어놓으려 한다.


현대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돼지의 왕>의 교실에는 두 가지 계급이 존재한다. 소수의 힘 있는 자와 다수의 힘 없는자, 두 사이에는 오직 지배관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힘 있는 아이들은 단순히 힘 없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지배한다. 그들은 선생님과의 긴밀한 유대를 통해 공권력을 등에 업은 것과 같이 견고한 지배 체제를 쌓아간다. 학년에서 학년으로 세습되고 계속되는 지배에 길들여진 힘 없는 자들을 영화는 돼지로 묘사한다. 그들은 이러한 압제의 주먹을 피하면서 살을 찌우며 안도하며 개로 묘사되는 이들 힘있는 자들의 지배에 익숙해지고 둔감해져 간다. 현대 사회를 하나의 교실로 축소시키고 그 안에서의 약자들의 저항을 다룬 영화들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말죽거리 잔혹사> 등이 있지만 <돼지의 왕>은 그 비판의 대상이 다르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지배하는 자의 잔인함이 아닌 지배당하는 자의 비겁함과 찌질함을 철저하게 드러내며 현실에 대한 지독한 환멸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돼지들은 외친다. “놀고 먹어도 잘먹고 잘사는 그 놈들은 애완견같은 놈들이야, 개같은 놈들이라고 그놈들 먹이가 되는 우리는 돼지들이고, 우리는 죽어서 팔다리가 찢겨져야 가치가 생긴단 말이야.”

군국주의에 대한 거부감 : 폼나는 돼지 <붉은 돼지>

한편, 돼지가 나름 폼나는 캐릭터로 묘사되기도 한다.
전쟁과 군국주의에 물들어가는 인간에 대한 거부로 스스로 돼지가 되기를 선택한 포르코라는 캐릭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992년작 <붉은 돼지>의 주인공이다.
마르코 파곳(Captain Marco Pagot)는 1차세계 대전 중의 이태리 공군의 에이스 파일럿이었다. 하지만 그가 파시즘의 발호를 목도하고는 공군을 그만두고, 그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날고자 했다.
그는 국경의 헌터가 되었고, 포르코 롯소가 되었다. 그의 젊은 인간의 얼굴은 지나의 레스토랑의 벽에 걸려있는 사진 속에 유일하게 남아 있다.
어느날 한 정찰비행에서 아군이며, 적군을 구별할 수 없이 격추되는 공중전 가운데 마르코는 살기위해 몸부림쳤다고 고백한다.
그는 희미해가는 의식 속에 하얀 구름 평원위로 수많은 죽은 파일럿들의 넋이 은하수처럼 떠가는 걸 보았고, 거기엔 갓 결혼한 그의 친한 벗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동료 파일럿의 죽음으로 그는 회의를 품게 된다. 그날 이후 그는 돼지, 포르코가 된다.
스스로 그런 마법을 걸었는지, 혹은 걸렸는지는 알 수 없다. 폼나는 낭만적인 돼지로 묘사되긴 하지만 결국 돼지는 돼지다.
“파시스트가 되느니 차라리 돼지로 살겠네.”라고 하는 포르코의 대사에서 알 수 있다.
즉, <붉은 돼지>에서 역시 돼지캐릭터 자체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기 보다는 전쟁과 군국주의에 물든 사람으로 살기 보다는 차라리 돼지가 낫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돼지는 자유롭다. 돼지에게는 법도 없고, 국가도 없다. 낭만적인 돼지이지만 씁쓸한 풍자에 가깝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돼지에 대한 현대 사회속의 이미지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양면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전통적인 이미지 외에 새롭게 각색된 대중문화에서의 돼지의 이미지는 과거 시대와 달리 부정적인 이미지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문화 속에서 표현되는 대상의 이미지들은 대개 긍정적인 이미지와 부정적인 이미지 등 다층적인 이미지로 표현된다. 다만, 시대에 따라 그 대상에 대한 이미지가 한 방향으로 치우치거나 고착화되는 것은 당 시대의 문화변화에 따른 대중의 인식차에 기인한 것일 것이다.



작성자
이치헌
작성일
2018-06-14
조회
4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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