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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칼럼

무형문화재이야기-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만봉 스님 2018-05-30 스크랩

불화에 바친 구도의 길 _ 단청장 만봉스님


지금 단청이 올려지고 있는 경내 칠성각 앞뜰에 서면,
목면 고의 적삼의 소매를 반만 걷고 산자 위에서 천장을 우러러 조용히 붓을 움직이는 중년 승려가 있다.
운필삼매(運筆三昧), 인기척에 아는 체가 없다. 왼편 귀뒤의 돌배만한 혹이 인상적이다.
이윽고 공손히 합장, 만봉 스님은 그제야 온 뜻을 묻는 것이다.
- 예옹해 <인간문화재> 중


단청, 일정한 질서와 약속된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

단청이란 각종의 안료를 사용하여 건물의 모든 부재면과 벽면 등에 도채(圖彩)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나아가 각종의 조각상이나 공예품 등을 채색하는 행위나 서(書), 회(繪), 화(畵)의 개념을 망라하는 의미를 폭넓게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예로부터 단청의 대상은 전통적인 목조건축은 물론 고분이나 동굴의 벽화, 칠기, 공예품, 조각상,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 단청장은 이러한 궁궐이나 사찰 및 사원 등 목재 건물에 무늬나 그림을 그려 장엄하는 장인이며, 부처나 보살의 도상을 회화적으로 그리는 불화장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채색과 무늬의 사상적 배경은 음양오행사상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곧 단청은 청색, 백색, 황색, 적색, 흑색 등 다섯 가지 오방색(五方色)을 기본으로 각 방위와 위치에 따라 일정한 질서와 약속된 언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목조건축에서 단청은 필수조건이다. 목조건축물에서 단청을 하는 이유는 우선 목재 표명이 갈라지거나 비, 바람 등 자연현상으로 인한 부식과 충해방지의 목적에서이다. 동시에 건축물의 성격을 나타내거나 특수한 건물의 용도에 맞는 장엄성과 위엄을 보이기 위한 목적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고대 단청의 유물은 고구려357년(고국원왕 27)에 조성된 황해도 안악의 안악3호분이 대표적이다. 단청과 관련된 국내의 사료는 「삼국사기」․「삼국유사」․「고려사」․「고려사절요」․「조선왕조실록」등으로 다양하다. 한편, 단청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컬어 화원, 화공, 편수, 도채장 등이라 하였으며 승려로서 단청 일을 하거나 단청에 능한 사람을 금어, 화사, 화승이라고도 불렀다.

6세의 어린 나이에 출가, 8세 때부터 불교미술에 관심 가져

만봉 스님(속명 이치호)은 1910년 서울 종로에서 부친 이윤식 공(公)의 독자로 태어났다. 스님은 6세의 어린 나이에 출가하였는데 그 까닭은 타고난 사주팔자로 인하여 단명할 것이라는 점술가의 권유 때문이었다. 지금의 봉원사에서 만봉(萬奉)이란 법명을 받은 스님은 8세때부터 타고난 예술적 자질을 바탕으로 불교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1916년 불교 강원에 입학하여 봉원사(奉元寺)에서 이동명 스님을 은사로 모셔 경문(經文)을 배우게 되었으며, 1924년 전문 강원을 수료하였다. 그해 10월에 17세 나이로 당대 제일의 금어(金魚)인 김예운 스님을 만나면서 그림을 사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20세에 스승의 하교로 처음 편수(단청책임자)를 맡아 시공한 단청불사 건축물은 평양의 황건문을 옮겨 복원한 서울 조계사의 일주문이었다. 첫 작업을 무사히 마친 스님은 예운선사에게 그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10여년간의 사사(師事를) 마치고 단청책임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만봉 스님의 기법은 색상이 유독 화려하다는 것과 초(草)가 다양하고 세밀하다는 뚜렷한 개성이 돋보인다. 스님의 손이 거친 사찰 단청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특히 경복궁 경회루, 남한산성, 공주 마곡사 등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스님은 2006년 5월 서울시 서대문구 봉원사에서 입적하셨다. 스님의 문하에는 이세환, 이인섭, 홍창원, 박정자, 양선희, 김정순, 배정숙, 김창순, 이형기, 박귀영 등의 제자들이 화업을 계승하고 있다.



약력

1910. 10월 출생
1926 봉원사 출가 금어 자격취득
1929 서울 경국사 불화
1931 금강산 표훈사 단청
1947 경기도 회암사 불화
1972. 8월 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보유자 인정
1972 한국불교 태고종 서울 종교원장
1975 한국불교 태고종 봉원사 주지
1972~2006 국가무형문화재보유자 작품전 출품
1978 일본전시 귀국 작품전
1989 전통공예관 특별기획전
1993 단청 도화전
1997 ‘97’문화유산의해 대불화전
1998 은관 문화 훈장
1999 이치호 전시회
2002 교토 전통공예전시 “한국 전통문화의 향기전”출품
2006 5월 입적

금니오백나한도는 붉은 비단 바탕 위에 금니를 이용하여 오백나한을 선묘로 그린 불화로서 만봉 스님의 필력이 엿보인다. 나한은 석가가 열반한 뒤 56억 7천만년 후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열반에 들지않고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수 있는 무제한의 수명을 지니고 불법 수호의 사명을 위임 받은 사람들이다. 흔히 아라한 또는 응공(應供), 복전(福田) 등으로도 불린다. 따라서 인간의 한계 상황을 초월하는 신통력을 발휘하여 설법으로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기 때문에 신앙의 대상으로 많이 그려진다.

채색나한도는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하고자 하는 다양한 모습의 나한을 그린 불화이다. 도상적으로 볼 때 천인, 사람, 동물 등이 나한에게 공물을 바치는 응공(應供) 나한도와 함께, 용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항룡복호(降龍伏虎) 나한도의 도상이 결합되어 있다. 나한들은 앉거나 서거나 일정하지 않은 자세를 보이고 있다. 불화에서 용은 천신을, 호랑이는 지신을 상징하며, 이것은 불교가 도교나 유교 및 조상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내용을 우의적으로 나타낸다. 화면의 상단은 하늘을, 하단은 땅으로 표현하고 나한의 발끝에 그림자를 표현하여 근현대 불화의 표현기법도 엿보인다.

단청(丹靑)은 궁궐이나 사찰 등 목조건물에 여러 가지 빛깔로 무늬를 그려서 장엄하는 것이다. 단청이 칠해진 건물에는 현왕인 임금과 법왕인 부처가 거주하는 곳이여서, 그곳에는 임금과 부처의 권위와 신성성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무늬나 길상적인 문양을 그려 넣게 된다. 오색 영롱한 단청을 칠하면 비바람이 불어도 나무가 썩지 않고 건물을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 쌍봉황도는 서로 마주보며 날개를 활짝 편 봉황 1쌍이 오색 구름 속에서 높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활달하게 그려내어 단청장 본연의 솜씨가 잘 드러난다.

작업도구 및 제작과정

단청은 빛과 색의 예술이다. 때문에 단청장이 사용하는 안료는 단청 작품을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예전 단청 안료는 자연에서 나는 조개나 흙이나 흙을 채취하여 만들어 썼다. 예컨대 흰색을 내는 호분은 천연 상태의 굴이나 조개껍질을 채취하여 3년 정도 쌓아두었다가 분쇄하여 가루로 만들고, 이 분말을 물로 씻은 후 물통에 담가 침전시켰다가 자연에서 건조시켜 안료로 만든 것이다. 간혹 불에 굽는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염색할 때 매염제가 될 뿐 안료로 쓰지는 못한다. 그러나 근래에는 화학적으로 만든 안료가 보편화되고 있다.
안료의 종류는 원색과 혼색을 포함하여 대략 20여종이다. 원색은 양록‧당단‧주홍‧양청‧황‧군청‧석간주‧황토‧뇌록‧호분‧지당‧먹 등을 사용한다. 이중 뇌록은 시아닌 그린에 다른 색을 첨가 조색하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혼색은 육색‧삼청‧하엽‧다자‧뇌록‧미색(가칠용) 등이 있다.

안료로 단청을 그리려면 각종 도구가 사용된다. 특히 단청이나 불화를 그릴 때에는 각종 ‘붓’을 사용하는데, 그 종류는 평필‧원필‧세필‧바림붓‧가칠붓 등 크기와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그밖에 안료의 가루를 곱게 치기 위해 ‘체’로 거르며, 아교나 부레풀을 끓일 때에는 중탕한다. 안료를 뜨거나 조색할 때에는 ‘주걱’을, 채료를 담을 때는 ‘사기그릇’에 담는다. 단청장이 사찰 건물에서 칠을 할 때에는 ‘달로(타래)’라고 하여 채기를 끼워 매달 수 있는 도구가 유용한데, 이것은 철사로 원형을 만들고 실로 3곳을 묶어 마치 저울의 접시처럼 매단 형태로서 장척 끝에 걸어 사용하면 편리하다.


* 사진 : 서헌강 (문화재전문사진작가)

작성자
이치헌
작성일
2018-05-30
조회
6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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