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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칼럼

제 가치 인정받아야 할 유교문화 유적 스크랩


제 가치 인정받아야 할 유교문화 유적

강당연구모임

오늘 날 일부 문화비평가들 중에는 유교문화를 부정적으로 매도, 평가 절하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전근대적, 보수적, 공리공론, 비실용적, 당파성, 추상적, 관념적 등등을 이유로 유교문화가 극복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유교문화가 이처럼 부정적인 것이었다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정신 사조로서 과연 500년을 지탱할 수 있었겠나 하는 점이다. 또 그들이 도덕적 실천을 최고의 가치로 삼으면서 특권세력의 사회경제적 독점에 반기를 들고, 향촌의 자율성을 추구하던 양심세력이었다는 점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비판에 앞서 오늘의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정신, 지성사의 올바른 전통을 바라보는 자세와 노력, 그리고 가치 부여가 아닌가 한다. 전통은 “필요로 하는 자, 그 가치를 아는 자에 의하여 보물처럼 재활용 된다”고 한다. 오히려 유교문화에서 오늘의 우리에게 부족하고 퇴색된 이러한 현실 비판과 개혁정신을 되찾는 일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유교문화는 21세기 미래 사회의 화두인 '지성사'와 '정신사'의 본질적 모습을 지닌다. 사실 우리가 잘못 인식하고 폄하해서 그렇지 조선 시기는 누가 뭐래도 ‘도덕과 지성’이 존중된 사회였다. '양반', 곧 선비의 문화 수준은 적어도 현대 인문학의 수준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높았다. 우선 방대한 문집의 양, 관심의 폭(문학-정치-사상 종합지식)이 그렇고, 학문 이외의 현실적 관심과 대응력에 있어서도 명실상부한 실력 집단이었다. 그런가하면 그들은 왕도(王道), 도학(道學), 성현정치(聖賢政治)를 추구했던 도덕집단이었다. <군자와 소인>의 격을 가르고, 비판과 공론(여론)을 통한 민의의 대변자이기도 하였다, 또한 그들은 무엇보다 실천을 중시하였다. 그런 점에서 과거 조선시대 선비의 삶은 어쩌면 오늘의 지성들에게 오히려 귀감이 될 만하다. 그들의 학문적 삶, 도덕적 실천의 삶, 사회문화적 삶, 개성과 자존심의 삶 등 제 부면에서 현대인들이 귀감을 삼고 부러워해야 할 모델들이기 때문이다.

(사진 왼쪽)서원, (사진 오른쪽)도산서원도

주지하듯이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도덕성의 타락과 참된 지성인의 부재는 커다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우리의 현재를 올바로 평가하고 미래를 예시할 "어른"이 없다고 걱정들이다. 그 대안과 교시를 우리는 바로 유교문화 전통에서 구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유교문화 유적들은 지역의 대표적 지성들이 모여 정치와 시회, 문화를 논하던 '어른들의 집합소'였다. 그러므로 과거의 향교와 서원이 단순하게 경서와 글짓기를 가르쳐 자제들을 과거에 급제시키기 위한 '학원'이었다거나, 공자님을 모시는 제사 기능만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같은 유교 유적은 지역 지성들이 함께 모여 제향과 교육의례의 모범을 모이며 교류하였던 장소이자, 문화예술의 창작, 교류의 장이기도 했고, 때로는 출판과 도서관 기능까지도 담당한 정말로 조선시대 '지역문화센터'이자 문화의 거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 지역의 자랑스러운, 미래 경쟁력이 될 유교문화 유산에 대하여 오히려 우리는 지금까지 매우 불편한 모습들을 계속 보아 왔다. 혹평을 한다면 각개 유적과 인물을 나열 하는 수준, 권위적 건축물의 복원과 정비, 특히 가문 선조의 추숭이나 경쟁 모습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향교에 가도 눈으로만 보이는 겉모습이 주로 설명되고, 이는 서원에 가도 마찬가지이다.

때로 부가되는 인물 설명은 특정 가문 선조의 영웅적 일화가 중심을 이루며, 그 유적의 유교적 가치나 문화의 올바른 전달은 이루어지지 않는 아쉬움이 크다. 그래서 아이들은 흥미를 잃고 유교문화 유적에 무관심하게 되며, 현대적 가치를 인정받고 재생하는데 오히려 장애가 되기도 한다.

병산 전경

사실 양반-선비문화의 정신사적 유적들은 다른 '유형적' 문화자원보다도 훨씬 '내면적 특징과 지성적 품위'를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교육·문화·정신적인 부면에서 미래의 중요한 문화가치가 될 수 있다. 유교문화는 다른 문화와 달리 인물과 사상, 정신, 학문, 그리고 가치관을 중시하는 문화로 그곳에서 살고 생활했던 사람과 그들의 정신이 핵심이며,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주목하고 개발할 유교문화의 대상·범위·유형도 유교적 인물의 사상, 저술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교육, 제례, 경제, 생활문화, 유적, 유물 등이 망라되는 종합적인 것이기를 기대한다.

글, 사진 이해준. 현 공주대 사학과 교수. 공주대 사학과 교수이자 문화유산대학원장이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한국서원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역사민속학회 회장, 1999년부터 2001년까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역사문화학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조선후기 향약연구(민음사, 1990), 조선시기 촌락사회(민족문화사, 1996), 역사속의 전라도(다지리, 1999), 지역사와 지역문화론(문화닷컴,2001), 충남의 역사와 문화(충남역사문화연구원,2009) 등이 있다.<br/> /'지역문화유산 바로보기'소개<br/>지역 문화는 서로 다른 모습을 갖게 마련이나 대부분 소수, 변형, 예외라는 이름으로 낮게 평가된 경향이다.중앙중심의 역사가 '챙기지 않은 지역 이야기', '지역문화',그리고 풋풋한 민중의 '생활문화'가 지닌 의미를 되찾아 보고자 한다.

작성자
한국문화재재단
작성일
2013-05-13
조회
6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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