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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칼럼

내설악의 감추어진 비경-수렴동 구곡담계곡과 만경대 스크랩

 


내설악의 감추어진 비경-수렴동 구곡담계곡과 만경대. 수렴동 구곡담계곡(명승 제99호) 만경대(명승 제104호)

설악은 은자(隱者)의 산이라 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산봉우리와 길고 긴 능선, 그 사이를 굽이돌아 깊게 파고 든 설악의 계곡은 세속을 떠나 모든 것으로부터 숨어버리고 싶은 은자가 깃들기에 충분한 심산유곡이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선 초기의 대표적 방외인(方外人)이었던 그는 삼각산 절 방에서 공부하던 책을 불사르고 뛰쳐나왔다. 사육신(死六臣)의 시신을 수습하여 노량진(鷺粱津)에 묻은 후, 김시습은 유랑 길로 나서 오랜 방황 끝에 설악으로 숨어든다.

조선 후기 권문세가였던 안동 김씨의 후손인 삼연 김창흡(1653~1722)은 아버지와 형제들이 기사사화에 연루되어 사사되는 참혹함을 격은 후 전국을 유랑하다가 설악의 깊은 계곡으로 은둔한다. 당시 권력의 중심에 있던 한양 장안의 안동 김문은 특별히 장동 김문이라 하여 조선의 「메디치 가」역할을 하기도 했던 세도가였다. 생육신의 한 사람이며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저술한 김시습과 5천여 수의 시를 남긴 김창흡이 은거했던 설악산은 이들의 자취와 글에 의해 더욱 높이 평가되고 있다. 김창흡은 시를 모은 『삼연집』과 1705년 8월 24일부터 12월 5일까지 설악산을 여행하며 감상을 기록한 기행문인 『설악일기』를 남기고 있다.

김시습과 김창흡이 설악산에 들어가 주로 머물렀던 곳은 백담계곡으로부터 이어지는 수렴동계곡과 가야동계곡이다. 내설악의 중심을 이루는 이 계곡은 내설악 전체면적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인제 속초간 국도 상에 위치한 용대리에서 분지되는 깊고 깊은 이 골짜기는 백담계곡으로부터 시작된다. 백담계곡은 용대리에서 시오리 정도에 걸쳐 굽이굽이 돌아올라 백담사까지 이어지는 계곡이다. 이 계곡은 매우 아름다운 비경을 간직한 골짜기다. 하지만 지금은 백담매표소에서 백담사까지 다니는 셔틀버스가 수시로 운행을 하고 있어 백담사까지 오는 길은 매우 쉬워졌는데 반해, 백담계곡의 푸른 물과 맑은 풍광을 느끼기에는 오히려 힘들게 되었다.

만경대에서 본 가야동계곡.만경대에서 내려다 본 가야동계곡의 풍광. 거대한 암벽 사이로 좁게 형성된 협곡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 있다.

명승으로 지정된 수렴동계곡은 백담사로부터 시작된다. 백담사는 독립운동가 이자 승려였던 만해 한용운이 '불교유신론', '님의 침묵' 등을 집필한 곳으로 유명하다. 백담사는 서기 647년(신라 진덕여왕1) 자장율사에 의해 한계령 부근에 처음 세워진 한계사로부터 유래된 사찰이다. 한계사는 창건이후 십여 차례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짓기를 거듭한 절이다. 1455년(세조1) 한계사는 대청봉에서 작은 못이 백 번째 이어진 이곳으로 옮겨 지으며 백담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백담사는 6.25 전쟁 때 또다시 소실되었다가 1957년에 재건되어 현재는 내설악의 대표적인 절로 자리 잡았으며, 근래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머무른 절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수렴동은 명산으로 이름난 설악산과 금강산 두 곳에 모두 자리하고 있는 지명이다. 설악산의 수렴동계곡은 본래 금강산의 수렴동계곡에서 따온 이름이라 한다. 그러나 금강의 수렴은 설악의 수렴에 못 미치는 곳이라고 평해진다. "금강의 수렴동이 오두막집의 쪽 들창에 친 발이라 한다면, 설악의 수렴동은 경회루의 넓은 한쪽 면을 뒤덮고 있는 큰 발이라 할 것"이라고 육당 최남선은 그의 저서 <조선의 산수>에서 평가하고 있다. 수렴동계곡은 백담사 인근의 백담탐방안내소에서 시작하여 수렴동대피소에 이르는 계곡을 말한다. 행정구역으로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속하는 계곡이다. 계속 이어지는 구곡담계곡과 함께 내설악을 대표하는 계곡으로서, 특히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이다.

수렴동계곡 가을.붉은 단풍으로 가득히 물들어 있는 수렴동계곡의 아름다운 가을 풍광

수렴동계곡의 시작인 백담탐방안내소에서 500여m 정도 오르면, 계곡이 왼쪽으로 굽이돌면서 작은 폭포를 만나게 된다. 백담대피소 위의 대승골 어귀 근처를 흐르는 황장폭포다. 높은 곳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는 일반적인 폭포와 달리 물살이 조금 세게 흐르는 여울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이 황장폭포는 폭포 같지 않은 폭포라 하여 「조용한 폭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황장폭포에서 1㎞ 남짓 더 올라가면 사미소라고 하는 못이 자리하고 있다. 사미란 스님이 되기 위해 출가했지만 아직 공부가 모자라는 어린 스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여기서 다시 1㎞정도 계곡을 따라 가면 영시암이라는 암자에 다다르게 된다.

영시암은 '영원히 쏜 화살'이라는 뜻으로 김창흡이 창건한 암자다. 숙종 15년(1689년)은 장희빈 사건으로 남인이 서인을 몰아내고 재집권하는 등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영시암은 영원히 세상과의 단절을 맹세하는 뜻이 담겨있는 명칭이다. 김창흡은 영시암을 지은 이곳을 가리켜 "봉우리와 골짜기가 그윽하고도 기이하며, 흙이 많아 작물을 심을 수가 있는 곳이다. 또한 아름다운 수풀과 무성한 나무들이 많고, 밤새도록 두견새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이라 하고 있다. 지금의 영시암은 서예가로 유명한 일중 김충현, 여초 김응현 등이 그의 11대조였던 김창흡을 기리기 위해 다시 지은 건물이다.

수렴동계곡과 영시암.수렴동계곡 상부에 자리하고 있는 영시암의 가을 풍경

구곡담계곡은 수렴동계곡으로부터 설악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봉정암 방향으로 계속 이어지는 계곡이다. 구곡담계곡은 봉정암(鳳頂庵)으로 연결되는 골짜기를 흐른다고 해서 봉정골이라 불리기도 한다. 계곡의 굽이굽이에 9개의 담(潭)이 있어 구곡담이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첫 번째 못은 방원폭(方圓瀑)이라 하는데, 다른 못에는 명칭이 붙여져 있지 않다. 네 번째 못 부근에 사자암이 위치하고 있고, 맨 끝에 자리하고 있는 못에는 백담대(百潭臺)라고 하는 바윗돌로 만들어진 층계가 있다. 구곡담계곡은 그 위쪽으로 용소폭포, 쌍용폭포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이 길을 따라 계속 오르면 봉정암을 거쳐 소청봉, 대청봉에 이를 수 있다.

수렴동계곡.수렴동계곡 아래에 위치한 하천주변 모습으로 등산객들이 쌓아 놓은 돌탑이 아름답다.

수렴동계곡 여름.녹음으로 우거진 수렴동계곡의 풍광. 담에 가득찬 물이 수정같이 맑다.

영시암에서 북쪽으로 갈라지는 산길을 따라 2㎞정도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아늑한 분지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오세암(五歲庵)에 다다른다. 오세암은 눈 속에 갇힌 오세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보살핌으로 이 암자에서 겨울동안 홀로 무탈하게 살아 있었다는 전설에서 붙여진 암자의 이름이라 한다. 이 설화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매월당과 관련 있는 오세암의 정경을 조선 후기의 문신 정범조(1723~1801)는 그의 저서 「설악기」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어스름에 오세암(五歲庵)에 들어갔다. 기이한 봉우리가 사방에서 옹위하고 있으면서 삼엄하여 사람을 치려는 듯하다. 중간에 토혈이 뚫려 있어, 고즈넉하게 암자를 하나 들여 넣고 있다. 매월당 김시습이 일찍이 은둔한 곳이다. 암자에는 두 개의 초상화가 있는데, 매월당을 유학자로 그려둔 형상과 불자로서 그려둔 형상이다. 나는 배회하며 추모하면서 서글픈 느낌에 사로잡혔다."

만경대와 오세암.가을단풍으로 화려하게 단장한 만경대와 오세암 주변의 풍광

오세암의 남쪽 방향에는 우측으로 뻗은 산 능선이 마치 앞을 가로 막듯이 우뚝하게 솟아 있다. 이 능선 위로 오르면 내설악에서 으뜸이라 일컫는 전망지점이 위치하고 있다. 외설악·내설악·남설악 지구에 각각 하나씩 있는 전망위치로, 만경대(萬景臺)라 부르는 봉우리다. 만경대는 '많은 경관(萬景)'을 볼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많은 경관을 '바라볼 수 있다'는 뜻에서 망경대(望景臺)라고도 한다. 내설악 지구에 있는 이 만경대는 오세암 바로 앞의 해발 922m의 봉우리로, 용아장성과 공룡능선, 나한봉 등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내설악의 만경대는 조망지점을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는 명승지정기준에 따라 명승 제104호로 지정된 국가지정 명승이다.

물은 산 속에서 나와 골짜기를 두루 덮으며 아래로 흘러간다. 산 속의 골짜기는 바위가 엎드려 있다가 솟아나고, 좁았다가 넓어지고,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다가 깊은 담을 이루기도 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든 풍광은 물이 흐르며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렇듯 수렴동계곡, 구곡담계곡은 내설악의 물줄기가 깊이깊이 파놓은 계곡으로 골골이 비경을 이루는 아름다운 경승지다. 이러한 설악의 절승을 조망할 수 있는 만경대는 내설악의 기암고봉을 사방에 두른 명소중의 명소다.

만경대 정상.내설악의 조망지점으로 잘 알려진 만경대

만경대 전경.오세암에서 바라 본 만경대

만경대 주변 풍광.만경대에서 능선방향으로 바라 본 설악산의 풍광으로, 오른쪽 위로 용아장성의 암릉이 멀리 바라보인다.

만경대에서 본 설경.만경대에서 바라 본 설악의 겨울 풍광으로 용아장성의 능선이 흰눈으로 덮여 있다.

글, 사진 김학범. 현 한경대 조경학과 교수, (사)한국전통조경학회 고문. 전 문화재위원, 지정문화재 조경 수리기술자, 저서마을숲, 문화재 대관 명승. 보고서 명승 우수지원 지정 정밀조사. <br/>/ 김학범의 한국의 명승소개 <br/>아름다운 우리나라 금수강산에는 수 없이 많은 명승이 자리하고 있다. 사적이나 천연기념물과 같이 국가지정문화재의 중요한 하나의 종목인 명승은 10여 년 전까지는 전국에 불과 7개소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을 뿐이었다.<br/> 2003년 이후 문화재청에서는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밝히는데 자연유산 정책의 중점을 두어 명승지정을 확대해 오고 있다. 새롭게 지정되기 시작한 한국의 명승을 읽어본다.

작성자
한국문화재재단
작성일
2013-12-13
조회
8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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