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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칼럼

하멜과 아픔을 함께 나눈 강진 성동리 은행나무 스크랩

  천연기념물 제385호, 강진 성동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85호, 강진 성동리 은행나무 1997.12.30 지정, 전남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70




조선 효종 4년(1653 ) 8월 6일 제주 목사 이원진은 이렇게 보고한다. ‘’배 한 척이 고을 남쪽에서 깨져 해안에 닿았기에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보게 하였더니,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배가 바다 가운데에서 뒤집혀 살아남은 자는 38인이며 말이 통하지 않고 문자도 다릅니다. 파란 눈에 코가 높고 노란 머리에 수염이 짧았는데, 혹 구레나룻은 깎고 콧수염을 남긴 자도 있었습니다. 그 옷은 길어서 넓적다리까지 내려오고 옷자락이 넷으로 갈라졌으며 옷깃 옆과 소매 밑에 다 이어 묶는 끈이 있었으며 바지는 주름이 잡혀 치마 같았습니다. 일본어를 아는 자를 시켜 물으니 나가사키(郞可朔其)를 가려고 했다합니다.”  

지금의 제주 대정읍 해안가 어디에 표류한 것으로 보이며 이들 중의 한 사람인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은 이후 14년간 서울, 강진, 여수로 끌려 다니면서 억류 생활을 하다 탈출한다. 그 동안의 생활을 기록한 ‘하멜 표류기’ 한 권을 남겨서 폐쇄국가 조선을 서구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그가 강진 병영에서 지내는 동안 걸터앉아 뼈에 사무치게 고향을 그리워했다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단풍이 곱게 물든 강진 성동리 은행나무


단풍이 곱게 물든 강진 성동리 은행나무




영암순천 고속도로 성전IC에서 내려 작천면을 지나면 금방 병영읍에 이른다. 벌써 고려시대에 현청이 있던 곳으로서, 조선 초기 태종 17년(1417년)에 병영(兵營)을 설치하여 병마절도사를 둔 곳이기도 하다. 이 나무는 전라병영으로부터 약 5백 미터 정도 떨어진 동성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하멜 표류기에 적혀 있지는 않지만, 하멜일행이 여기서 억류생활을 하면서 이 은행나무를 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가 강진 병영에 머문 기간이 7년이나 되니 이 은행나무와의 인연은 틀림없이 있었을 터이다.


하멜기념관 광장에서 바라본 ‘하멜 은행나무’


하멜기념관 광장에서 바라본 ‘하멜 은행나무’




하멜이 걸터앉아 고향 생각을 했다는 은행나무 밑 고인돌


하멜이 걸터앉아 고향 생각을 했다는 은행나무 밑 고인돌




키 32m, 가슴높이 둘레 7.2m, 가지 펼침 동서 25m, 남북 23m의 거대한 수나무다. 땅에서 5m정도 높이부터 많은 가지가 퍼져 타원형의 아름다운 나무갓을 만들었다. 천연기념물 알림판과 함께 나무 옆에는 이런 팻말이 붙어있다. “이 지역은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1656~1663까지 약 7년 간 억류생활을 했던 곳이다. 일행 33명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몇몇은 결혼해 살기도 하였으며 생계를 위해 잡역을 하거나 나막신을 만들어 팔았고 춤판을 벌여 삯을 받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나막신이 일본나막신과 달리 네덜란드 나막신과 같이 통으로 만들어 진 것을 볼 때 이들이 나막신을 전래한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또 이 지역 일부에 남아 있는 담장 중에 빗살모양으로 쌓인 담장이 있어 하멜 일행이 잡역을 하면서 쌓았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멜 일행은 이곳 은행나무 밑에서 고려 말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수인산성을 바라보면서 고향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무 밑에는 공교롭게도 다섯 개의 커다란 고인돌이 놓여 있다. 누구나 한번 앉아보고 싶은 편안한 돌이다. 약 350년 전 하멜이 앉아 있었을 고인돌에 필자도 걸터앉아서 지금은 교회건물의 십자가 끝으로 아련히 걸려 있는, 하멜이 바라보았을 그 방향에 눈길을 고정한다. 낯설고 물선 만리타향에서 뼈에 사무치는 고독으로 피눈물을 흘렸을 하멜의 아픔을 되뇌어 본다. 하멜의 피가 섞인 후손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필자의 상상 탓인지, 독특한 빗살무늬 흙 담장으로 둘러 쳐진 마을과 사람들의 모습이 어쩐지 이국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무의 나이는 5백 살이라는 이야기와 8백 살이라는 추정이 있다. 그러나 하멜이 큰 나무로 보았다니 8백 살이 맞지 않나 싶다. 또 다른 전설로는, 옛날에 이곳에 부임한 어느 병마절도사가 폭풍으로 부러진 은행나무 가지로 목침을 만들어 베고 자다가 병이 들어 버렸다한다. 병은 잘 낫지 않고 점점 깊어져서 아무리 이름난 의사를 불러 치료해도 백약이 무효로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어느 날 홀연히 한 노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이 은행나무에 제사를 지내고 목침을 나무에 붙여주면 병이 나으리라”하였다. 노인의 말대로 하였더니 병이 감쪽같이 나았다 한다. 그 후로 마을에서는 음력 2월 15일 자정에 은행나무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바라는 제사 풍습이 생겨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병영읍내의 독특한 빗살무늬 흙담


병영읍내의 독특한 빗살무늬 흙담


제주 산방산 앞의 하멜기념비와 재현한 하멜호, 부근의 해안에 표류했던 것을 짐작한다.


제주 산방산 앞의 하멜기념비와 재현한 하멜호, 부근의 해안에 표류했던 것을 짐작한다.




박상진프로필

작성자
박상진
작성일
2014-07-14
조회
8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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