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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칼럼

이순신 장군의 쉼터 남해 창선도 왕후박나무 스크랩



 남해 창선도 왕후박나무


천연기념물 제299, 남해 창선도 왕후박나무


1982.11.04 지정, 경남 남해군 창선면 대벽리 670-1




남해도의 한편으로 비켜선 창선도는 육지와 연결되어 이름만 섬이다. 그래도 우리의 뇌리에는 바다와 맑은 하늘과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섬으로 남아있다. 창선도의 끝자락에 커다란 왕후박나무 한 그루가 멀리 바다를 내려다보고 외로이 서 있다.


고속도로 진주IC를 빠져나와 3번 국도를 달리면 곧 육지 끝 삼천포항에 이른다. 배에다 차를 싣고 건너다니던 낭만시대는 이제 추억일 뿐, 그림 같은 연륙교가 넋을 빼앗는다. 3.4길이의 다리를 건너면서 바로 우회전하여 채 5분도 안 되는 거리, 바다가 비스듬히 내려다보이는 들판 가운데 작은 숲이 눈에 들어온다. 푸른 바다를 두르고 단아하게 서있는 모양새는 맑은 수채화를 마주하는 듯하다. 가까이 가보면 나무 하나가 만들어내는 숲 아닌 숲이다.




이순신 장군의 쉼터였다는 웅장한 왕후박나무


이순신 장군의 쉼터였다는 웅장한 왕후박나무


이 나무는 이순신나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장군이 왜군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틈틈이 병사들과 함께 쉬어간 나무로 알려져 있어서다. 격전지인 사천, 당포해전 터가 가까우며, 마지막 싸움에서 장군이 전사한 노량 입구가 가물가물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장군의 난중일기를 따라 잠시 당시로 되돌아가보자. 1592529일 이른 새벽 장군은 좌수영을 출발하여 지금 남해 대교가 있는 노량에서 원균장군을 만나, 함께 사천항에 정박하고 있던 왜군을 쳐부순다. 바로 사천해전, 전쟁 발발 후 두 번째의 짜릿한 승리다. 이 전투에서 처음으로 거북선이 참전하였다. 장군도 왼쪽 어깨에 조총을 맞는다. 싸움이 끝나고 사천만에서 빠져 내려오면 바로 지금의 왕후박나무가 있는 대벽항에 이를 수 있다. 초여름 더위가 시작될 무렵이니 새벽부터 시작된 전투에 군사들도 지쳐 있었을 것이다. 상륙하여 이 나무 주위에 군사들을 쉬게 한다. 한숨 돌린 그는 다시 전투준비를 하여 62일 통영시 산양면 당포의 왜군을 또 무찔러버린다. 같은 해 76일 한산도로 가는 중에 창선도에서 하룻밤을 머문 기록도 있다. 이렇게 전설과 함께 여러 기록으로 보아 왕후박나무 주변은 장군이 승전의 기쁨과 패전의 쓰라림을 추스르던 쉼터이었으리라.




넓은 들판에 홀라 자라는 왕후박나무 원경


넓은 들판에 홀라 자라는 왕후박나무 원경




가늘고 굵은 11개의 줄기


가늘고 굵은 11개의 줄기


왕후박나무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대표적 늘 푸른나무인 후박나무의 한 품종이다. 후박나무 보다 잎이 조금 더 넓은 것을 두고 이란 접두사를 붙여 구분하였으나 기준이 애매하다. 나무는 밑동에서부터 작게는 한 뼘, 굵은 것은 두 아름에나 이르는 11개의 줄기가 모여 한 나무처럼 자란다. 이들이 밑으로부터 올라오면서 비스듬히 사방으로 뻗어 커다란 버섯 갓 모양을 만들어 낸다. 전체 뿌리목 둘레는 11이고 나무높이는 8.6. 세상에 나무 둘레가 높이보다 더 크다니! 나무나라에서 보기 드문 땅딸보다. 그러나 다이어트를 해야 할 그런 땅딸보가 아니다. 주위를 압도하는 위엄과 기품을 잃지 않는다.






왕후박나무 잎사귀, 후박나무와 구분이 애매하다.


왕후박나무 잎사귀, 후박나무와 구분이 애매하다.


무게 중심을 아무리 밑에 두어도 허허벌판에 혼자 자라다 보니 태풍이 가장 무섭다. 그는 성난 바람과 맞서겠다고 무모하게 버티지 않는다. 보챌 때는 육신의 일부를 아예 떼어주어 버린다. 95년 태풍 제니스를 맞아 위 부분 가지가 대부분 부러졌지만 거의 20년을 지난 지금은 옛 모습을 완전히 회복하였다. 이런 유연함이 수백 년을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일 것이다.


나무가 태어나게 된 설화도 전해진다. 옛날 이 마을에는 노부부가 고기잡이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큰 고기를 한 마리 잡았는데, 뱃속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이상한 씨앗이 나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그 씨앗이 예사 씨앗이 아니라 생각하고 뜰 앞에 정성스럽게 심었더니 자라나 오늘날의 왕후박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무의 나이는 이순신 장군이 군사들과 함께 쉬어갈 정도로 큰 나무였고, 뿌리목의 엄청난 굵기로 따져보면 실제 나무의 나이는 적어도 600년 이상이 되었을 것 같다.






박상진프로필



작성자
박상진
작성일
2014-06-27
조회
1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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