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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사진전

[박준규 작가와 함께하는 사진전]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 보길도 고산 윤선도 원림 스크랩

내용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사적 제114호)은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인 1598년(선조 31) 2월 17일 충무공 이순신이 수군 8,000여 명을 거느리고 고하도(목포)로부터 이곳에 옮겨 진을 친 뒤, 그해 7월 16일에는 명의 원병으로 진린 장군이 5천명의 수군을 이끌고 고금도에 도착해 관왕묘를 세우고 전쟁의 승리를 기원했으며 연합전선을 펴서 왜적의 침략을 막아냈던 유적이다. 해수로의 요새로서 이충무공이 고금도에 진을 옮긴 뒤부터는 장흥, 고흥 등에 출몰하여 살육과 약탈을 일삼던 왜군이 순천방면으로 도주해 버림으로 전투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충무공은 이때 우선 본영을 건설하고 피난민들을 거두는 일 등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보길도 고산 윤선도 원림(명승 제34호)은 고산 윤선도 선생이 보길도에 머물며 조성한 조선시대 대표 민간정원이며, 세연정 지역, 낙서재와 곡수당, 동천석실로 나누어진다. 세연정은 세연지와 회수담 사이에 위치한 정방형의 정자로서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고산연보에는 고산이 1637년 보길도에 처음 들어와 건축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로 정자는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1994년 복원되었다. 구조적으로 사방으로 퇴를 달아 경관을 감상하는데 용이하며, 보길도지에 따르면 중앙에는 세연정, 남쪽에는 낙기란, 서족에 동하각 칠암헌, 동쪽은 호광루 등 편액을 사방으로 달았다고 전해지는데 현재는 세연정 편액만 보인다. 낙서재는 윤선도 선생이 거주하던 곳으로 격자봉 밑의 혈자리에 자리해 있다. 고산 당대에는 초가였던 곳을 후손이 기와집으로 개축했는데 앞에는 귀암이 있어 달구경을 했고, 침소였던 무민당이 있었으나 농토로 개간되어 지금은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곡수당은 수리봉 계곡물이 흘러드는 곳으로 고산의 5남이었던 직미(학관)의 처소였으며, 경학에 힘쓰고 하루 세 차례 고산선생을 찾아뵈었다고 전해진다. 이때 건너던 다리가 일삼교이다. 선계세상으로 부용동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자리한 동천석실은 한 칸 정자와 석문, 석담, 석천, 석폭, 석전을 조성하고 차를 마시며 시를 지었던 곳으로서 특히, 석담에는 수련을 심고 못을 둘로 나누어 물이 드나들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구멍을 파고 다리를 만들어 희황교라 명명했고, 지금도 석실 앞에는 도르래를 걸었다는 용두암과 차를 끓여 마신 차바위가 남아 있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9-27
조회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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