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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기자단

고궁무악전, 위대한 시간 앞에 서다 스크랩

 왕실과 서민이 함께하니 이것이 태평이라

‘고궁무악전, 위대한 시간 앞에 서다’



 



 



지난 10월 20일 초승달이 걸린 가을밤, 그러나 창경궁 문정전 앞은 아직 쓸쓸한 가을이 찾아오지 않은 듯 보였다. 3일간 진행되는 ‘고궁무악전-위대한 시간 앞에 서다’ 공연의 첫째 날 ‘태평무악’을 관람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기 때문이다. 창경궁의 야간개장을 즐기러 온 사람들도 화려하게 준비된 무대를 보고 서둘러 문정전 앞에 마련된 좌석에 자리 잡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고궁무악전



놀랍게도 공연의 시작은 무대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농악대가 명정전에서 문정전으로 이어지는 길에서부터 길놀이로 관객들을 이끌고 관중석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들이 상모를 신나게 흔들며 한 줄로 뛰어 들어와 흥겨운 연주를 선보이자 관객들도 절로 몸이 함께 흔들리는 듯 보였다.



고궁무악전



나중을 기약하며 농악단이 모습을 감추고 그 자리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 보존회가 연주를 하기 위해 준비했다. 나라의 경사가 있으면 바로 종묘에서 조상께 아뢰었다고 하니 3일간의 축제의 서막에 종묘제례악을 거행하는 것은 옛날로 치면 아주 옳은 법도인 것이다. 종묘제례악에 등장하는 악기들은 북, 장구, 편경, 편정, 방향, 어, 대금, 해금, 피리 등으로 한국문화의 집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진옥섭 사회자가 악기들을 하나하나 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악기들만 보고 입만 떡 벌리고 있던 관객들도 친절한 악기 소개로 점점 무대에 몰입하게 되는 듯 했다.



고궁무악전



문정전과 초승달을 무대로 울려 퍼지는 영신희문은 조상들을 축제로 불러들이기 충분했다. 영신희문은 종묘제례에서 맨 처음 신을 불러들이는 영신례에 연주하는 음악으로 역대 조종의 문덕을 찬양하는 곡이다. 치고 올라가는 듯 높고 째지는 소리가 나다가도 곧 느릿느릿하며 깊어서 땅으로 꺼질 듯한 연주는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종묘제례악이 기악으로만 구성된 걸로 알 수도 있지만 사실 종묘제례악은 기악, 노래, 춤을 총칭하는 것으로서 오늘 무대에서도 악장의 노래와 집사의 안무가 곁들여졌다. 악기가 다양한 가락을 구사하고 악장의 노래가 그에 중첩되는 풍성한 무대를 조상신들이 지나칠래야 지나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궁무악전



“지오”와 함께 영신희문을 마쳤는데도 관객들은 끝난 건지 헷갈려서 눈치 보며 박수 치기를 주저했다. 이를 포착한 진옥섭 사회자는 이러한 사태를 예상한 듯 종묘제례악의 모든 음악은 ‘드오’로 시작하여 ‘지오’로 마친다고 소개하며 ‘드오’와 ‘지오’ 사이에 고여 있는 위대한 시간이 바로 종묘제례악이라고 했다. 이러한 소개 덕분에 이어지는 보태평1), 전폐희문2) 연주는 ‘지오’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관객들의 힘찬 박수를 받게 되었다.

  1)보태평 : 왕이 잔을 올리는 초헌례에서 연주되는 음악이 보태평이다. 총 11곡인데, 연주된 곡은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의 덕을 찬양하는 곡인 기명과 역대 조종의 문덕을 찬양하는 역성 2곡이다.

  2)전폐희문 : 영신례 후 왕이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에서 울리는 곡이디. 영신희문과 같은 곡이나 매우 느리게 변주하여 연주하는데, 종묘제례악을 대표하는 곡으로 손꼽힌다.



고궁무악전



마지막 연주라는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드오”, 정대업 연주가 시작되자 관객들은 다시 조용히 그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정대업은 아헌과 종헌관이 잔을 올릴 때 연주되는 음악으로 총 11곡인데, 이 날 역대 조종의 무공을 칭송하는 소무와 영관, 이렇게 2곡이 연주되었다. 무공을 칭송하는 만큼 보태평에서의 절고 대신 진고를 치고 대금과 태평소 등 음량이 큰 악기가 등장했다. 그래서인지 앞의 연주보다 훨씬 과감하게 들렸고 집사의 몸짓과 악장의 노래도 더욱 풍성해졌다. 그러나 정대업의 진가는 이처럼 치켜든 칼의 용맹함을 생각하는 동시에 그 칼에 베인 상처의 아픔도 함께 담겨져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대업은 과감한 선율인 동시에 구슬픈 선율이기 때문이다. 정대업은 서양식으로 이야기하면 단조풍의 노래로 구슬픈 태평소 소리가 전반적인 연주를 지배하고 있었다. “지오”, 힘차면서도 슬픈 연주에 빠져있던 관객들은 그 때서야 종묘제례악의 모든 연주가 끝났음을 알았다.



그러나 슬픔에 빠져있는 시간도 잠시, 곧 명성 높은 여성 농악단 팔산대연희단의 판굿 무대가 시작되었다. 옛 남성들의 농악을 현대까지 계승시켜 온 징검다리 역할을 한 것은 여성 농악단이라는 사회자의 소개는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여성들로 구성되어 농악의 박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레 짐작한 관객들은 공연을 보며 더욱 놀라게 되었다. 판굿은 동네의 타작마당 같은 너른 곳에서 펼치는 농악으로 팔산대연희단은 모든 관객을 한 동네 주민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할 정도로 판굿의 흥을 잘 살려내었다. 판굿은 오채질굿과 오방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채질굿은 문을 여는 굿으로서 직진과 후진, 유턴과 비보호좌회전으로 이루어진 행진악이며, 오방진은 상쇠를 중심으로 다섯 방위에 나선형으로 감아 들어간다.



고궁무악전



상모를 돌리며 화려하게 춤을 추던 농악단은 점차 하나의 원을 만들고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원의 가운데서는 꽹과리를 연주하는 농악단의 상쇠가 단원들과 눈을 맞추며 간간히 ‘호우’, 이런 추임새를 넣었다. 마치 오케스트라가 지휘자의 손짓 하나로 조화로운 소리를 내듯 농악단은 상쇠의 눈빛과 소리로 하나가 되는 듯 했다. 점점 빨라지는 꽹과리 소리에 몸이 이끌린 듯 단원들의 움직임과 연주도 점점 경쾌해지고 빨라졌다. 웃음꽃으로 활짝 핀 단원들의 얼굴은 보는 관객들까지 신이 나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고궁무악전



일렬로 섰다가 원을 그리며 가운데를 향해 달려가고 그렇게 한 떼로 뭉쳤다가 상모를 흩날리며 흩어지는 모습에 관객들은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이 절정에 달했을 즈음 농악단이 자반뒤집기를 선보였다. 자반뒤집기는 손을 무대에 대고 옆으로 도는 것으로 가을비에 축축해진 무대 위에서 도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걱정하는 관객들의 ‘아’하는 탄성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흥을 뿜어내는 농악단원들의 모습에 잠시 감동의 물결이 일기도 했다.



고궁무악전



그렇게 마치 양철통을 돌던 설탕가루가 일순간 솜사탕이 되는 ‘굿이 핀다’는 절정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판굿 무대는 막을 내렸다. 위대한 시간이 고여 있는 창경궁의 밤에서 3일간의 축제의 서막인 ‘태평무악’은 바로 오늘의 이 시간까지도 위대하게 만들었다. 왕실의 위엄이 서린 종묘제례악과 일반 서민들의 흥을 담은 농악의 조화가 알려주는 것이 바로 태평이 아니겠는가.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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