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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기자단

[2016궁중문화축전]정통사극 <인조, 길 끝에서> 스크랩

“나는 나의 길을 가야 한다”

-정통사극 <인조, 길 끝에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남겨진 의문


 


왕세자가 창경궁 환경당에서 죽었다.


 


인조실록 46권, 인조 23년 4월 26일 무인 첫 번째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당시 왕세자였던 소현세자의 졸기(卒記, 죽음에 대한 기록)다. 소현세자는 인조의 맏아들로, 병자호란이 끝난 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 소현세자는 9년 동안 청나라에 머물러야 했으며, 인조 23년 2월이 되어서야 귀국할 수 있었다. 돌아온 바로 그 해 4월에 사망했으니, 귀국의 기쁨을 제대로 누릴 새도 없이 세상을 떠난 셈이다. 


 


그런데 이 죽음에는 미심쩍은 데가 있었다. 인조 23년 6월 27일 기사를 보자.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오므로

(중략)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조선왕조실록』은 여기서 인조의 후궁이었던 조씨를 언급한다. 그녀가 세자 및 세자빈과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으므로, 밤낮으로 인조에게 가 두 사람을 모함했다는 것이다. 세자빈 강씨의 운명도 그리 좋지 못했다. 인조 24년 1월 3일, 전복구이에서 독이 검출되자 인조는 세자빈 강씨부터 의심한다. 이 일로 강씨는 후원 별당에 갇혀 문에 뚫린 구멍으로 음식과 물을 받아먹는 처지가 된다. 같은 해 2월 4일 인조는 “강빈은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단언하기까지 한다. 결국 강빈은 폐출 후 사약을 받는다. 그런데 여기서 또 후궁 조씨의 이름이 거론된다. 3월 15일 기사는 강빈이 사사된 일에 대해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그 죄악이 아직 밝게 드러나지 않았는데 단지 추측만을 가지고서 법을 집행하였기 때문에

안팎의 민심이 수긍하지 않고 모두 조 숙의(趙淑儀)에게 죄를 돌렸다.


 


결국 인조는 아들과 며느리를 잃고 혼자 남았다. 이 이야기에는 몇 가지 의문 나는 점이 있다. 소현세자가 정말 독살 당했다면, 그에게 약을 먹인 것은 누구인가? 강빈은 정말로 어선(御膳)에 독을 넣었을까? 실록은 강빈이 “어선에 독을 넣는 것은 형세상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증언하고 있다(인조 24년 1월 3일). 그렇다면, 정말 이 모든 일이 후궁 조씨의 음모였을까? 인조는 일련의 일을 모두 겪은 후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정통사극 <인조, 길 끝에서>: 역사에 답하다


창경궁 문정전


인조와 후궁 조씨, 소현세자와 강빈. 실록에 곡진히 기록된 이들 네 사람의 이야기가 정통사극으로 탄생했다. 5월 5일부터 5월 7일까지, 창경궁 문정전에서 <인조, 길 끝에서>가 극단 ‘집현(集賢)’에 의해 상연되었다. <인조, 길 끝에서>는 인조의 인간적 불안과 죄책감, 그리고 결의를 1시간 50분에 걸쳐 보여준 연극이었다.

 


S#1. 밤마다 찾아오는 망령

인조는 반정(反正)을 통해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유폐되어 있던 인목대비를 자유롭게 했고, 하례를 받은 후 반정 김류를 비롯한 공신들에게 관직을 내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왕의 길을 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길에서 인조는 비극을 피할 수 없었다.


 


[장소: 창경궁 문정전]

문정전 앞에 무대를 마련하고, 무대 뒤편에는 사군자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서로 거리를 두고 서 있다. 사군자 사이로 드나드는 산 자와 죽은 자들은 계절과 생사의 경계를 넘어 관객 앞에 나타난다. 인조는 충효의 나라 조선에서, 왕을 폐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으며 아들을 외면하고 며느리를 사사했다. 그런 인조 뒤에 선 매화와 국화, 난초와 대나무는 인조 생애의 모순과 역설을 상징하는 듯 버티고 있다.


 


인조는 내내 괴로워한다. 인조는 병자호란을 겪은 후 민심을 잃었고, 아들과 며느리까지 세상을 떠났다. 인조는 또 다시 반정이 일어날까 염려하느라, 그리고 소현세자와 강빈의 망령에 시달리느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인조는 원혼의 형상을 하고 나타난 강빈과 그녀가 불러낸 소현세자 앞에 선다. 귀신들이 춤을 추고, 인조가 자기가 사직을 위해 옳은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할 때마다 큰 소리로 그를 비웃는다. 인조는 자기를 둘러싼 귀신을 베고 또 베지만, 그들은 쓰러지는 척 다시 일어나 인조를 둘러싼다. 그리고 붉고 긴 끈을 인조의 목에 감는다.


 


과거의 인조는 소현세자와 강빈이 혼례를 올리는 것을 흐뭇한 얼굴로 지켜본다. 이때 그들은 서로 완전한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간은 길지 않다. 인조는 병자호란을 막지 못하고, 결국 남한산성에서 오래 항전한 끝에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세자와 세자빈을 볼모로 내어놓으라는 청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된다. 인조는 소현세자에게 부정의 징표를 남긴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들 부부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S#2. 비극의 길 끝에서


시간이 갈수록 인조 가족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인조의 후궁 조씨는 끊임없이 소현세자와 강빈을 모함한다. 그들이 청나라와 한통속이 되었으며, 반정을 일으켜 스스로 왕위를 찾이하려 들 것이라고 속삭인다. 인조는 그 속삭임 앞에 더없이 무력하다. 다름 아닌 인조 자신이 반정을 통해 왕이 되었다. 그 스스로, 왕위는 빼앗을 수 있는 것임을 증명했다. 그러니 자신의 아들이라고 반정을 생각하지 않는다 장담할 수 있을까?

청나라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아들 부부가 왕위를 위협할 세력이 되지 않으리라고 호언할 수 있을까? 실제로 인조가 소현세자를 죽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인조, 길 끝에서>는 소현세자가 맞이한 의문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인조의 두려움이 아들을 죽였다.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를 잃은 후 인조가 살았을 삶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한다.


그럼에도 인조는 자기의 길을 갔다.


인조는 멈추지 않는다. 인조는 자기의 죄악에 매몰되지 않는다. 인조의 밤을 고통스럽게 하던 강빈은 그의 목에 걸린 붉은 끈을 풀어준다. 인조가, 자기에게 사약을 내린 시부가 왕으로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뒤늦게나마 조선의 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그러면서 강빈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에는 때로 이런 모순도 있어야겠지요.


인조가 꿈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새날이 시작된다. 인조는 어쩐지 가볍게 느껴지는 자기의 몸을 내려다보며, 더는 손발이 저리지 않고, 목이며 어깨도 무겁지 않다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그는 밤새 식은땀에 젖었던 몸을 추슬러 자리에서 일어난다. 환한 조명이 들어온 문정전에서, 인조가 말한다.


나는 나의 길을 가야 한다.


<인조, 길 끝에서>는 역사가 남겨둔 의문에 이렇게 답한다. 닫혀 있던 문정전의 문이 열린다. 옥좌와 일월오악도가 보인다. 인조는 관객에게 등을 보이고, 그쪽으로 걸어간다. 그는 조선의 왕이다. 소현세자와 강빈은 죽어 사라졌지만 그 자신은 아직 죽을 수 없다.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무대의 조명이 사라진다.


연극은 끝난다.


 


비극을 겪어도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살아남은 자는 자기의 길에 남아 끝까지 그 길을 간다. 지금을 사는 모든 사람들도 인간으로서의 인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든 좌절하고 두려워하고 실수하면서, 주어진 시간의 길을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야 한다. 새로운 시작과 닿아 있는 길 끝에서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창경궁 문정전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


 


<징검다리 6기 김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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